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84)
제 333화
117화. 누가 진짜 룬칸델인가(5)
“알겠습니다, 도련님.”
호다다닥!
잠시 후 페트로가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 가져온 것은 고기가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였다. 페트로는 대체 이 판국에 샌드위치를 찾는 게 맞는 것인가 싶긴 했지만, 진은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오, 딱 좋아. 수고했네.”
“도련님.”
“왜 그러는가?”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길리랑 무라칸이 돌아오거든, 다 같이 맛있는 식사라도 하면서 기다리고 있어.”
“……무운을 빌겠습니다, 도련님!”
페트로의 비장한 목소리가 무색하도록, 진은 한껏 태연한 얼굴로 샌드위치를 씹으며 걸음을 옮겼다.
와구, 와구, 냠…….
검의 정원이 어찌나 적막한지 진이 샌드위치 씹는 소리가 도드라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들이 있었다.
‘가문 내 대기 중인 수호기사가 대체 몇이야?’
로사와 원로회가 기사들을 대기시키고, 조슈아도 호출 가능한 모든 병력을 소집했으니 정원 길목마다 기둥처럼 기사들이 서 있었다.
진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호의적일 리 없다. 최대한 감추고 있지만, 대다수의 기사들은 진에게 적의를 품고 있었다.
진이 가문에 일으킨 혼란은 기사들에게도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진은 그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샌드위치만 열심히 삼켰다.
‘남들이 보면 룬칸델이 전쟁이라도 준비하는 줄 알겠군.’
실제로 그랬다.
기사는 검의 정원에만 깔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시 칼론도 길들이 봉쇄되었고, 그 사이사이에 수호기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전 세계로 첩보가 퍼지고 있었다. 칼론에 기사들이 모이는 게 심상치 않으니,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지플도, 비먼트도, 킨젤로도, 그 외 세력들도. 정말 룬칸델이 전쟁을 준비하는 것은 아닌지 바짝 촉각을 곤두세운 상태였다.
바로 12기수, 진 룬칸델 단 한 사람 때문에 세상이 긴장하고 있는 셈이었다.
느긋이 걷는 내내 샌드위치를 먹었다.
이윽고 대련장 대문 앞에 다다랐을 때, 진은 손바닥에 가벼운 불꽃을 일으켜 포장 종이를 태웠다.
그 모습에 문지기들은 하마터면 움찔할 뻔했다.
12기수가 마검사라는 건 이제 비밀조차 아니긴 하나, 이토록 조심성 없이 검의 정원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룬칸델을 보는 건 충분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문 열어.”
입가를 닦으며 말하는 진.
문지기들도 수호기사였다. 평범한 인간에겐 극한이나 다름없는 수련을 해왔다는 뜻이고, 진의 목소리에 담긴 기운을 읽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 쓰는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건만, 진의 목소리에 담긴 위엄은 분명 낯설고 깊은 힘을 품고 있었다.
“……12기수가 도착했습니다!”
키이이익……!
거대한 철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대련장 상석에 앉아있는 로사였다.
그녀의 아래로 서 있는 기수와 원로들이 진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그 뒤편에 서 있는 수호기사들은 눈빛을 바꾸었다. 언제든 명령이 떨어지면 진을 난자할 수 있는 눈빛으로.
늦었습니다, 어머니.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런 인사치레도.
절 겁주려고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인 것 아닙니까? 저 한 사람 때문에 룬칸델이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군요.
이런 비아냥대는 소리도 내뱉지 않았다.
진은 그저 한동안 우뚝 서서 그들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치기만 했다.
숙적들의 소굴을 홀로 찾아온 야수처럼.
그리고 숙적들이 먼저 짖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12기수!”
누군가 신경질적으로 자신을 부르자, 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먼저 짖는다면 당연히 누님들일 줄 알았지.’
뮤였다.
그녀는 살의를 전혀 숨기지 않은 채, 오늘이야말로 진의 주검을 보겠다는 기대와 열망으로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얼굴이 찌릿찌릿 당겨질 정도의 살기.
그러나 진은 그 살기가 뮤와 앤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 대련장에 있는, 9성 이상의 모든 무인들이 느끼고 있듯이.
“여기가 지금 네놈이 이리 목석처럼 서 있을 수 있는 자리란 말이냐?”
“당장 고개를 조아리고 가주 대행께, 그리고 상위 기수들과 원로들께 예의를 갖춰라!”
뮤와 앤의 표독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대련장을 가로질렀다.
진은 한참이 지나도록.
누님들의 목소리에 답하지 않았다. 그토록 크게 퍼진 목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처럼 굴었다.
그것만으로도 뮤와 앤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굴욕일 수밖에 없다. 치미는 분노에 얼굴이 시뻘게졌고, 목울대에 도드라진 핏줄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었다.
“이 건방진 놈이.”
하아…….
한숨을 내쉬는 진.
허리춤의 검으로 손을 뻗던 뮤와 앤은 그 모습에 일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충격적인 것이다, 진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뱉은 사실이.
그러나 뮤와 앤의 충격 속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경외가 숨어있었다.
과연, 저 자리에 서 있는 게 나였어도 똑같이 할 수 있을까?
내가 검을 뽑아 덮치려는 걸 보고도, 한숨을 내쉴 수 있을까? 한숨을 내쉰 것만으로 우릴 멈칫하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대체 왜.
저 시건방진 모습을 보고도, 아무도 격노하지 않는 것이지?
극히 짧은 순간 사이 두 사람의 머릿속엔 온갖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졌다.
혹은 이길 수 없다. 검을 뽑는 순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다. 뮤와 앤의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검을 뽑아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룬칸델이 아니니까.
“한숨 소리 한 번 듣기 좋네. 나도 너만 할 때 이것들 때문에 한숨 쉴 일 많았다.”
뮤와 앤으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메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그녀들을 자연스레 물린 것이다. 철없고 나약한 동생들이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지는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뮤와 앤은 검을 쥔 손으로 미친 듯이 뛰는 자신들의 맥박이 전해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7기수……! 비켜!”
“12기수한테 예의 운운할 거면 너희도 주위를 좀 둘러봐라. 아직 가주 대행께서도 말씀이 없으시건만, 이리 날뛰어도 될 것 같냐? 확 패 죽일까 보다. 얌전히 있어라, 좋은 말로 할 때.”
뮤와 앤이 메리에게 패배하는 것은 굴욕이 아니었다.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애초에 그 셋 사이엔 명백한 서열이 있다는 것을 룬칸델의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메리가 굳이 뮤와 앤에게 기회를 준 건 다름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금 막내에게 베여 완전히 날개가 꺾이게 되면, 룬칸델 전체 차원에서 손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뮤와 앤에게도 직감적으로 보인 미래가 메리에게 보이지 않았을 리 없었다.
심지어 메리의 눈엔, 잔뜩 흥분한 뮤와 앤이 진에게 덤벼들었다가 단 일검에 당하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경고하는데, 나를 향해 흥, 칫, 같은 짜증나는 소리도 꺼내지 마. 상황 끝날 때까지 송장처럼 찌그러져 있어.”
뮤와 앤이 간신히 감정을 다스리며 자세를 고쳤다.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진은 그때까지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질식할 것 같이 무거운 침묵 속에서, 대련장에 모인 이들은 저마다 여러 감상을 느끼고 있었지만.
대부분 진에게 어느 정도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뮤와 앤이 느꼈던 것처럼, 과연 이 자리에서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인물이 또 누가 있을까 싶을 지경이었다.
몇몇 원로들은 기시감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1기수가 떠오르는군.’
‘1기수가 가주 자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던 날도 이러했지.’
1기수, 루나 룬칸델.
가문 모두의, 시론의 기대를 그야말로 한 몸에 받고 있던 그녀 또한. 가주 경쟁을 포기하겠다며 선언했을 때 이토록 당당하고 태산 같았었다.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말릴 수 없을 것 같았었다.
그러나 그때의 루나와 지금의 진 사이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진은 정반대의 선언을 하고자 이 자리를 찾은 것이다.
“12기수.”
마침내 상석에 앉은 로사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예, 가주 대행.”
로사를 올려다보는 진.
“이곳에서 너의 운명이란, 고작 나의 몇 마디 말로도 수 초 안에 결정될 수 있는 나약하고 가벼운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러니 너는 반드시 내가 묻는 말에 진실만을 고하라.”
“알겠습니다.”
“어째서 7기수에게 초대 가주의 무덤에 관한 이야기를 흘렸느냐?”
“저를 대신해 7기수가 공론화해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네 말대로 되었군. 그래, 이제 어쩔 셈이냐?”
“가주 대행을 비롯해 여기 모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진이 잠시 주위를 살피며 뒷말을 이었다.
“제가 예비 기수 시절부터 초대 가주의 무덤을 여럿 찾아가며 느꼈던 바. 룬칸델은 절대로 지플을 이길 수 없습니다.”
“감히!”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원로회, 그중에서도 조르덴의 흑검회에서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제가 듣고 싶은 것은 의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덧없는 일갈이 아니라. 원로들께선, 차후 지플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가망이 있다고 보십니까?”
“뭐라……!”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신다면 당장 접시 물에 코라도 박고 뒈져버리십시오.”
스릉-! 스릉!
소리쳤던 원로들이 검을 빼들었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는구나, 핏덩이 같은 놈이.”
“헛된 희망에 기대어 근거 없는 미래를 꿈꾸는 것은 나약하고 썩은 집단에게나 어울리는 것입니다. 룬칸델에 그런 인간은 필요치 않습니다.”
“네놈이 무엇을 아느냐? 룬칸델과 지플의 전쟁을 운운할 만큼, 그 성패를 가늠할 만큼! 이 가문에 이바지해온 것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냐? 네놈이 그만큼 적들과 싸워왔다고 생각하느냐?”
“질문을 좀 비틀어보죠. 가주께선 이미 창성에 오른 지 오래되었는데도 지플과의 전면전을 치르지 않고 계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이 원로들을 노려보았다.
“말할 것도 없이,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 모인 이들을 먼지처럼 쓸어버릴 수 있는 아버지조차! 그런데 감히 원로들께서 우리가 지플과 싸워 가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원로들은 대답하지 않고 진을 노려보았다. 진이 시론을 직접 언급하며 빗대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없을 겁니다. 여기 모인 그 누구도 가주보다 대단한 힘을 갖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이어서 진이 한 마디를 더 붙이자, 검을 빼든 원로들로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게는 방법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