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83)
제 333화
117화. 누가 진짜 룬칸델인가(4)
끔뻑, 끔뻑.
한동안 무라칸은 제 귀를 의심하는 듯 눈만 끔뻑였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는데, 이내 눈빛을 반짝이며 사악한 웃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크하하하! 마검사 가문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을 하겠다고? 그게 정말이냐!”
예상치 못한 선물이라도 받은 어린애처럼 잔뜩 들뜬 목소리.
“그럼 농담이겠냐.”
“그 녀석의 네 번째 무덤에서 뭔가 해답이라도 찾은 거냐? 지플과 놈들의 신들이 내린 저주를 없앨 수 있는.”
천 년 전, 지플로부터 겪은 룬칸델의 굴욕, 맹약이라는 이름의 저주.
두 번 다시 마법을 사용하지 말 것.
또한 마법을 사용했던 선조들을 숭배하지 말 것.
유일한 마검사 가문이었던 룬칸델이 평범한 기사 가문으로 전락하게 된 이유. 저주의 결과로 테마르 이후 모든 룬칸델은,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났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럼?”
“테마르의 무덤들을 돌아보다 보니 결심이 섰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룬칸델엔 미래가 없어.”
무덤마다 남긴 솔더렛의 기록 장치에서 진은 옛 룬칸델의 위엄을 엿보았다.
그들의 의지를 이어받은 적통자로서 비사를 확인했고, 위대한 마검사들의 무위를 직접 경험했다.
옛 룬칸델은 분명 이루 말할 수 없이 빛나는 가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찬란한 룬칸델조차 지플의 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현실과 역사를 뜻대로 조작하는 그 어둡고 거대한 힘 앞에선, 위대한 마검사들조차 어쩔 도리가 없었다.
미래를 위한 작은 불씨를 하나 남기는 것밖에는.
“놈들의 역사 조작 능력은 네 시대에 빗댈 바가 아니지. 우리가 옛 룬칸델의 역사를 되찾고 있듯, 지플도 그 시절의 힘을 되찾기 위해 뛰고 있을 거다.”
그때의 지플도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지플도 옛 룬칸델을 꺾으며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이다.
별다른 피해 없이 전쟁을 끝냈다면 지금 룬칸델이 존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었을 터.
이미 천 년이 흘렀으나 룬칸델도, 지플도. 옛 힘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겠지. 근원석을 재현하려고 하는 것만 돌아봐도, 그것들은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려고 작정했어.”
“내 생각에 지금 상태로는 지플이 더 빨리 옛 힘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내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어.”
지금까지는 그러지 못했다.
회귀 이후 진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가문에 힘을 숨겨왔다.
예비 기수가 끝날 무렵에서야 마검사라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냈고, 기수 정복을 입은 뒤에도 가문의 일원들 앞에서 실력을 온전히 다 드러낸 적은 많지 않았다.
힘을 숨기는 게 재미있어서일 리는 없다. 답답하지 않았을 리도 없다.
그저 그럴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힘이 드러났을 때, 가문의 압박을 견뎌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 전까지는 말이다.
진은 바로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다.
-막내야.
-예, 아버지.
-널 기수로 임명하는 것은 룬칸델에 큰 손해다. 네가 그 손해를 메꿀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지켜보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내게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한 시간 뒤 임명식이 시작될 테니, 그때까지 이곳에 있다가 나오도록 하라.
기수가 되던 날, 시론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시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단 한 가지를 뜻했다.
세계 최강의 기사가 룬칸델을 수호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아버지가 계시는 한, 지플은 룬칸델을 치지 않는다.’
진은 얼마 전 문득 그런 결론을 내렸다.
지플이 명백히 전력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룬칸델과 전면전을 피하는 이유가 시론 때문이라는 건, 세상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다만 서로 물러설 수 없는 계기만 생긴다면, 결국 두 세력이 큰 싸움을 하리라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진이 내린 결론은 두 세력 사이에 충분한 계기와 명분이 생기더라도 전면전은 없다는 것이었다. 시론이 존재하는 한, 절대로.
‘이미 나는 오래전 룬칸델과 지플이 맺은 맹약을 어겼다.’
그뿐인가.
순혈 지플인 안드레이와 칼, 뮤론을 비롯해 지플 내 최고 전력인 망령대도 몇 처치했다. 대외적으로 지플이 지닌 힘을 상징하는 함선 코젝을 두 번이나 반파한 이력도 있었다.
특히 성국 사건 때는 예비 기수였던 진 혼자 지플의 위신을 바닥까지 떨어뜨리며 농락했고, 최근에는 화장품 사업으로 지플의 속을 벅벅 긁어대고 있었다.
매번 흔적을 남기지 않거나 명분을 만들어 문제가 커지는 걸 방지하기는 했지만, 하나하나 전면전으로 번져도 이상할 게 없는 사건들이었다.
‘그런데도 지플은 룬칸델을 치지 않고 있다. 내가 그 모든 사달을 일으키고, 아버지는 흑해에 계시는데도.’
그건 시론이 버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플 또한 시론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놈들은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자신들의 승리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지…….’
내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진은 이제 시론이 자신에게 그 말을 남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제 내가 다시 룬칸델을 마검사 가문으로 되돌리겠다고 선언해도, 검의 정원에 있는 그 누구도 나를 함부로 벌할 수 없어. 내 존재감이 너무 커졌으니까.”
“이야, 우리 꼬마. 진지한 낯짝으로 그런 부끄러운 소리를 다 하고. 자신이 있긴 있나 보네? 어?”
피식, 진과 무라칸이 동시에 웃음을 흘렸다.
“나를 벌하기는커녕 파벌이 나뉠 거다. 마검사 가문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진보 세력과 기존 정통성을 고수해야 한다는 보수 세력으로.”
“너와 조슈아가 각각 한 축을 담당하겠군.”
“그렇게 되겠지.”
“네 어미가 가로막진 않을까?”
“어머니는 아마 큰 문제가 안 될 거야. 이제 와서 날 제거하기엔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내가 직접 테마르의 무덤을 운운한 이상 내게 알아내야 할 게 너무 많거든. 이용할 일도 많고.”
“하여간 짜증나는 인간이란 말이지. 그나저나, 네 번째 무덤에서 알게 된 것들 좀 이야기해봐. 네놈 기다리는 동안 궁금해 죽는 줄 알았다.”
“네 번째 무덤에선…….”
진이 한동안 무라칸에게 완타라모 숲에서 겪은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무라칸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경청하는 모습.
“……허, 그 히스터의 아이라는 녀석이 요정의 후예였다고? 게다가 완타라모 숲의 요정들은 헬루람에게 저주를 받았고?”
“그래.”
“젠장, 그때의 요정들에 대해서도 생각나는 게 거의 없어. 빌어먹을 역사 조작 때문인지, 잠이 길었기 때문인지 이제는 잘 모르겠군.”
무라칸이 답답한 듯 이마를 짚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이 온전치 않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마다 짙은 공허감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유가 무엇이든 전우들을 잊었다는 자괴감과, 끝내 혼자 살아남았다는 무력감에서 비롯되는 현상이었다.
“차차 찾아가면 된다, 무라칸. 자책하지 마라.”
진의 말에 무라칸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꼬마. 네놈이 있으니 결국 다 되찾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 발레리아라는 녀석 말이다.”
“응.”
“어쩌면 그 녀석도 솔더렛의 안배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럴 수도 있지. 사실상 히스터야말로 지플의 역사 조작에 완벽히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패니까.”
“지금 어디에 있냐? 한 번 나도 이야길 좀 해보고 싶은데. 네 기록을 살핀 것처럼, 내 기록도 살펴서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지 않겠냐?”
“발레리아는 지금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섯 번째 무덤을 찾고 있을 거야. 연락할 수 있는 주소가 몇 개 있으니, 조만간 자리를 한 번 마련해볼게.”
“하긴, 녀석은 기록 마법을 쓸 수 있으니 우리나 적들보다 훨씬 더 잘 찾겠군. 훌륭해. 히스터 꼬마를 만났을 때 내 기록에서도 뭔가 소득이 있길 기대해야겠어.”
“대충 정리된 것 같으니 슬슬 나가야겠다.”
진이 수술실에 있던 동안에도 검의 정원은 계속 비상사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무라칸이 난동을 부릴까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었지만, 그들도 모두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12기수가 깨어나거든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검의 정원이 격동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이다.
진이 방을 나서는 순간, 새로운 회의가 시작될 것이다.
“좋아, 가자. 네 선언에 룬칸델 애송이들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지 좀 지켜봐야겠어.”
“아니, 널 대동하면 모양이 안 살지.”
“뭐?”
“나 혼자 선언하고, 직후에 벌어지는 후폭풍까지 감당해야 그림이 좋아. 룬칸델이 룬칸델을 상대하는데, 수호룡을 등에 업고 있어서야 되겠어?”
“세상엔 만약이라는 게 있잖냐, 꼬마. 만약에라도 네 선언을 듣고 2기수나 그걸 따르는 녀석들, 혹은 네 어미가 널 죽이려고 하면?”
그러자 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내가 죽겠냐?”
진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피신할 자신이 있었다. 메리를 비롯해 자신에게 확실히 호감을 가진 몇몇 이들의 도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크, 어린이 영기 대회니 뭐니 농담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많이 크긴 했네, 꼬마 놈.”
“그리고 넌 따로 할 일이 있잖아.”
“뭔데?”
“딸기파, 아니. 길리를 데려와야지.”
길리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무라칸의 미간이 좁혀졌다.
“미리 말해두는데, 딸기파이한테 작은 생채기라도 하나 있으면. 그땐 네가 말려도 직접적인 관련자들은 싹 죽일 거다.”
“당연한 이야기를. 먼저 나가서 텔롯 원로께 길리가 구금된 장소를 듣고, 데려와. 네가 직접 데려와야 안심이 될 것 같다.”
무라칸이 방을 나서자, 진이 한 차례 호흡을 골랐다.
후우…….
전혀 긴장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나 가슴을 바짝 옥죄어오는 긴장감 속엔 부푼 기대감도 함께였다.
철컥!
창밖으로 무라칸이 비행하는 모습을 확인한 뒤, 문을 열고 나서자 태양빛이 유난히 환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도련님!”
페트로가 진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자네 덕에 팔이 잘 붙었군. 고맙네. 조금 감동이기도 했어.”
“당치 않습니다.”
“어머니와 기수, 원로들은 중앙 회의실에 있나?”
그 물음에 페트로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대련장에 계십니다.”
“대련장?”
“예. 도련님이 깨어나는 대로 모셔오라 했는데……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굳이 도련님을 대련장으로 부른 이유가 너무 뻔합니다.”
여차하면 무력으로 해결하겠다는 뜻.
걱정하는 페트로와 달리 진은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회의실을 때려 부수는 건 좀 부담스러웠는데, 차라리 잘 됐군.”
“예?”
“간단한 요깃거리 좀 가져오게. 샌드위치 같은 것.”
페트로가 눈을 동그랗게 뜬 사이, 진은 이렇게 뒷말을 이었다.
“빈속으로 칼을 휘두를 수는 없잖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