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87)
제 333화
117화. 누가 진짜 룬칸델인가(8)
진과 룬티아, 천천히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졌다.
그리고 대련장이었던 땅 위에 뒤늦은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끄아악, 아악……!
어림잡아도 백여 명이 넘는 수호기사들이 사방에 쓰러진 채 신음을 뱉었다.
그들을 지켜낸 무인들은 겨우 한숨을 돌렸으나, 이제 새로운 충격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3기수가 분노했다…….’
‘방금까진 기사들을 구하느라 12기수를 막을 정신이 없었건만, 이제는 끼어들 수도 없게 되었어.’
특히 룬티아를 ‘조금 아는’ 이들(주로 원로회의 주축들)은 다시 시작될 싸움을 말리기 어려우리라 판단했다.
권태를 밀어낸 룬티아가 얼마나 위험한 인간인지 알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말릴 필요도 없었다.
‘가문의 수호기사들이 불에 타서 몰살당할 뻔했다.’
‘이것이 반역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가문의 중앙 대련장을 통째로 없애버렸고, 자칫하면 수십 이상의 수호기사가 잿더미로 변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기수를 비롯한 상위 무인들의 노고 덕에 다행히 사망자는 한 사람도 발생하지 않았으나.
충분히 반역이라는 죄명을 거론해도 될 만한 일이었다. 심지어 공격당한 룬칸델들의 입장에선 진이 가문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일삼는 모습까지 본 것이다.
물론 진은 기수와 상위 무인들이 수호기사들을 충분히 지킬 수 있으리라는 판단하에 업화를 펼쳤고, 린 밀카노가 ‘힘자랑’을 운운하며 사태를 종용한 정황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게 참작의 이유가 되기는 어려울 터, 무엇이든 정도라는 것이 있는 법이니.
이제부터 진이 보여줘야 할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가치.
룬칸델을 마검사 가문으로 되돌리겠다는 선언이 그저 말뿐이라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일.
그러기 위해선, 두말할 것도 없이.
‘이겨야 한다.’
룬티아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순간.
그게 얼마나 충격적인 언어였든, 얼마나 대단한 도전이었든, 얼마나 강렬한 경고였든, 얼마나 빛나는 진실이었든.
진이 내뱉은 모든 말들은 가치를 잃게 된다.
본래는 12기수로서 3기수와 그럴싸한 싸움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괄목할 만한 성과일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천 년의 이야기를 담은 무거운 말들에 책임을 져야 했다. 한 사람의 룬칸델로서.
사이에 열 걸음을 남겨둔 채, 잠시 진과 룬티아는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투지, 그리고 살의가 화염에 젖은 진의 눈동자와 룬티아의 오묘한 눈빛을 깊이 채우고 있었다.
업화를 삼킨 검과 오러를 머금은 검.
브라다만테와 샤를이 진동하고 있었다. 검들이 서로를 찢어 죽이려는 짐승들처럼 예리한 공명음을 일으켰다.
신호는 없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식도, 형도 없이, 마치 검이 아니라 몽둥이를 휘두르는 듯했다. 다시 시작된 두 사람의 첫 격돌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폭발.
검신에 묶여 있던 두 사람의 기운이 해방되며 굉음과 충격파가 일었다. 그리고 충격파가 대련장이었던 땅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한 번 더 검들이 서로를 강타했다.
거대한 유리가 부서지는 듯, 두 사람의 칼날에서 불과 오러가 쏟아지는 모습이 이어졌다.
“큽!”
뼈와 장기 속에 한 움큼 쇠못이 박힌 것 같았다. 진은 고통에 표정이 일그러졌고, 룬티아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화염을 옷처럼 입고 있으면서도 룬티아가 오히려 여유를 갖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공방을 타고 브라다만테로부터 흐르는 업화의 정수들까지 감당하면서.
널 죽일 것이다.
입을 열지 않았으나 룬티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녀의 살기가 일종의 형태를 갖고 머릿속을 송곳처럼 찔러대는 것 같았다.
‘정말로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고 있을 리는 없다.’
룬티아가 아무리 강인하다 한들.
진이 펼친 것은 사라 룬칸델의 마검 비기였다. 전성기의 사라가 펼치던 것에 빗대기엔 아직 부족하나, 방금까지 대련장에 있던 룬칸델 전체를 압박한 검이었다.
‘계속 이렇게 버틸 수는 없어, 누님도. 그건 아버지를 제외한 세상 그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태도가 무감하다 하여 정말로 충격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브라다만테에 깃든 업화는 끊임없이 룬티아의 육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진 역시 몸이 부서지고 있는 중이다. 룬티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업화만으론 부족하다.’
처음부터 오직 룬티아 한 사람만을 해하기 위해 펼쳤다면 이야기가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업화의 힘은 5할 이상이 다른 룬칸델들을 상대하는 일에 소모되었다. 남은 불을 그러모은 것만으로는 룬티아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직 누님은 결전기를 꺼내지도 않았어. 이대로라면 분명 내가 당한다.’
승부수를 띄워야 했다.
업화와 견줄, 혹은 업화를 뛰어넘는 파괴력을 가진 검으로.
화아아악-!
진이 브라다만테에 남은 마지막 불들을 쏟아내며 거리를 벌렸다. 불들이 영기와 함께 용솟음치며 룬티아를 휘감고 있었다.
그때 룬티아가 처음으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다음 순간, 룬티아가 오러를 발산하자 업화는 잔불이 되어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진을 감싸고 있던 불도 흩어지고 있었다. 불이 되어 이글거렸던 몸이 본래의 색으로 돌아가는 모습.
후욱, 후, 후우욱……!
진의 호흡이 거칠었다.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는 핏물이 흘렀다. 불이 흘렀던 생채기들에서도 이제는 피가 쏟아졌고, 비틀거리는 모양새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반면 룬티아는 자신을 괴롭히던 업화가 사라졌으니, 오히려 한층 몸놀림이 가벼워진 듯 보였다. 진처럼 불안정한 호흡을 토해내지도 않았다.
‘끝났군…….’
‘분명 대단했으나, 3기수의 승리다. 12기수의 상태를 보아하니 이제 3분 내로 승부가 나겠어.’
‘3기수는 12기수를 살려두지 않을 거다. 설령 숨을 붙여놓더라도, 불구로 만들 것이야.’
지켜보던 이들이 그런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진이 마검사로서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괴력을 보여준 건 분명한 사실이나.
애초에 루나를 제외한 최강에 거론되는 3기수와, 이제 열아홉 된 12기수는 체급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다만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일부 룬칸델들은 진이 이렇게 끝장나리라는 것이 안타까워 미칠 것 같은 지경이었다. 불과 십여 분 전까지는 12기수의 행동을 보고 직접 목을 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진이 보여준 마검의 힘에 전율한 것이다. 그 힘이 지플을 꺾을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진의 말에 설득력이 있다고 느낀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가주 대행께서 나서주신다면, 12기수를 회생시킬 수 있다.’
‘12기수를 죽이면 초대 가주의 무덤에 대한 비사들을 알아내기가 요원해진다. 3기수가 목숨을 거두기 전에, 가주 대행께서 손을 쓰신다면……!’
상반되는 생각이 룬칸델들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만 진이 죽기를 바라는 이들도, 살기를 바라는 이들도 한 가지 공통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진의 운명은 로사의 손에 달렸다는 것.
로사 룬칸델, 그녀가 앉아있는 대련장의 상석은 업화가 펼쳐지기 전과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몰려드는 업화의 화염을 앉은 채로,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모조리 밀어냈다.
기수와 상위 무인들이 수호기사들을 보호하는 동안, 로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과 룬티아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3기수.”
로사의 부름에 룬티아가 걸음을 멈췄다.
로사가 부르지 않았다면 두 걸음만 더 나아가서 진의 숨통을 끊어놓았을 것이다.
“예.”
“죽일 것인가?”
“그렇습니다.”
로사는 룬티아의 대답에 달리 어떤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도드라지는 진의 거친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검을 모르는 이들이 듣기에도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여겨질 만큼 호흡이 가빴다.
십여 초가 그렇게 지나버리자 룬티아는 결국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12기수를 죽이는 것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입니까?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러자 로사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의문이 들기에, 생각을 좀 하고 있었다.”
“어떤 의문이…….”
“왜 다들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의아하군.”
로사의 말에 룬칸델들이 일제히 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거친 숨을 토하고 있는 그는, 브라다만테를 납검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 자루의 새로운 검을 꺼내들고 있었다. 검집을 빠져나오는 칼날이 새벽하늘처럼 창백했다.
봉뢰검 시그문드.
투신 반에게 이어받은 명왕족의 신검.
프즈즈즉…….
뇌기를 품은 칼날이 낮고 음울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룬칸델들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아직 싸울 힘이 남았단 말인가……!?’
‘방금까지 그 미친 화염의 검을 펼쳐놓고, 기력이 남아있다고?’
‘아니, 가주 대행께선 그저 12기수에게 의지가 남은 사실을 살펴보신 것이다. 실제적인 체력은 더 이상 받쳐주지 않아.’
진에겐 더 이상 싸울 힘이 없다.
있더라도, 전세를 바꿀 수 있는 정도는 절대 아닐 것이다. 룬칸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후우…… 속 시원하게 다 때려 부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가 남았었군요.”
이윽고 진이 입을 열자 룬티아는 머리칼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그녀 또한 로사의 말이 진에게 남은 의지를 뜻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께서 앉아계신, 그 상석. 그것까지 다 없애버려야 오늘 제가 한 선언의 의미가 진해질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룬칸델들은 또 한 번 머리를 둔기로 강타당한 것 같이 멍한 감각에 휩싸여야 했다.
명왕검 투신기 제10검
명왕군림검 – 개開
핏발 선 진의 눈동자가 뇌기를 머금어갔다.
지대가 뒤틀리고, 시커멓게 탄 땅들이 갈라지며 뇌기를 토했다. 업화의 화염과는 또 다른 악독한 열기가 뇌전을 타고 순식간에 사방을 잠식하고 있었다.
[다들 두 눈을 부릅뜨고…… 똑똑히 보십시오. 무엇이 진짜 룬칸델인지, 무엇이 룬칸델을 수호해왔는지. 그리고.]지금의 룬칸델이 무엇을 잊고 있는지.
진이 번쩍이는 두 눈으로 룬칸델들을 돌아보며 뒷말을 이었다.
명왕군림검의 뇌기가 어지럽게 부서진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