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88)
제 333화
117화. 누가 진짜 룬칸델인가(9)
녹아내린 대련장 위로 명왕족 투신의 힘이 재현되고 있었다.
반만년 전 세상의 패자로서 신들에게 도전했던 지상 최강의 존재들. 그들의 혼을 닮은 서슬 퍼런 뇌기 속에서, 진은 자신에게 고정된 룬칸델들의 눈동자를 살펴보았다.
보호받고 있던 이들의 눈에는 공포가, 보호하고 있던 이들의 눈에는 당혹이 스몄다. 그들은 모두 이를 악물고 있었다.
가문의 12기수, 말석에 앉은 자가 설마 룬칸델 전체를 상대로 이런 무위를 보일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그것도 이미 업화가 지나간 다음에.
[그리고 기수 이하 가문의 일원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리겠습니다.]수십 명의 명왕들이 한꺼번에 말하는 것 같이 울림 가득한 목소리. 가문의 일원들은 그 목소리에서 일종의 경외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명왕족의 투신을 만나본 적 없으나, 본능적으로 진에게서 그녀의 아우라가 쏟아지고 있는 것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검으로 인해 단 한 사람의 수호기사도 죽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 그들을 지키시오.]파즈즈즉-!
진의 몸을 뒤덮은 뇌기가 소용돌이치며 시퍼런 불꽃이 튀었다. 손톱까지 뇌기로 물든 손아귀에서 명왕들의 신검 시그문드의 창백한 빛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마치 죽음에 색이 있다면 이것일 것 같은 창백함.
업화의 열기조차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데다 명왕군림검의 뇌기까지 더해졌다.
바위가 녹아 터질 만큼 뜨거운 공기가 폐부를 무겁게 짓누르는 가운데, 룬칸델들은 이상하게도 죽어 오래된 시신을 만지는 듯 온몸이 서늘해지는 감각에 휩싸여야 했다.
“다들 피해, 피해라……!”
이내 그 검이 궤적을 그리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악을 쓰듯 소리를 지른 사람은 다름 아닌 룬티아였다.
방심했다.
이제 끝장을 낼 수 있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막내는 그녀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괴물이 되어있었다.
그 사실을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나도 목숨을 걸어주마, 그런 오만한 마음으로 상대해선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는 것을,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
눈동자를 끔뻑이자, 보이는 것은 뇌기를 몰며 쇄도하고 있는 막내의 검.
천둥이 내리치는 것과 같은 속도, 그 일격에 담긴 힘은 이제껏 룬티아가 경험한 그 어떤 검들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몸이, 곧장 반응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뒤편에 있는 기사들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 화근이었다.
추하아악……!
룬티아의 가슴 한가운데에서부터 시뻘건 선혈이 튀었다. 한 걸음만 덜 물러났다면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대로 몸이 반으로 갈라졌을 터.
“컥!”
다행히 장기에 손상이 있진 않았다.
그러나 결코 얕다고 할 수 없는 부상에 룬티아의 초점이 또 한 번 흔들렸다.
자세를 다잡기도 전에 시그문드가 몰고 온 뇌기가 룬티아를 덮쳤다.
온몸이 불에 타는 듯 끔찍한 고통이 일었다.
루나조차 능가하는 강체.
이 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가.
루나가 가주 포기를 선언한 이후, 룬티아는 짧은 시간 동안 몇 가지 대안으로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떠안았었다.
루나가 룬티아를 묘하게 어려워하고, 그녀에게 약한 이유. 루나는 룬티아가 이토록 강한 육신을 갖기 위해 스스로를 ‘죽이던’ 그 모습을 옆에서 다 지켜보아 왔었다.
그렇게 얻게 된 강체였다.
그 어떤 작은 즐거움조차 없이, 인생엔 오로지 권태와 고통뿐이라는, 그 속에선 어떤 생각이나 행동도 하지 않는 게 안식이라는 불행한 답을 내려가면서 얻은 강체.
그 강체가 부서지고 있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베이고, 피가 터지고 있는 것이다. 그 상처를 파고드는 소름 끼치는 고통에 숨이 멎었다.
‘빌어먹을……!’
이를 악물며 샤를을 내지르는 룬티아.
짙은 안개처럼 공간을 뒤덮고 있는 뇌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눈을 찌르는 날카로운 뇌전에 매 순간 영원히 빛을 잃을 것 같은 불안감도 엄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룬티아의 머릿속을 울린 것은 이곳을 벗어나 다치지 말아야 한다는, 혹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욕망이 아니었다.
‘기사들이 죽는다, 이대로라면.’
어머니와 기수들, 그리고 원로회의 주축들과 집행기사들이 있다. 진이 아무리 대단한 힘을 보이고 있다 한들, 그들 모두를 능가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나 ‘싸우는 것’과 ‘지키는 것’은 명백히 다른 영역이다.
과연 이 뇌기의 폭풍 속에서, 다른 강자들이 죽음을 목전에 둔 기사들을 모두 지킬 수 있을까?
확신을 내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업화의 불꽃을 막으러 뛰어들었던, 자신의 기사들은 지켜줄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주군인 자신이 진과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기사들을 지켜줄 사람이 아니야.’
이를 악무는 룬티아. 로사는 아직까지도 상석에 앉은 채 달리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확신하는 건, 로사를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로사 룬칸델, 어머니는…….
‘12기수의 검’에 수수깡처럼 쓸려나갈 정도의 수호기사들을, 굳이 살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인식이었다.
그런 이들은 룬칸델에 있어 봐야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이를 계기로 검의 정원에 더욱 강한 기사들만 남기려고 하거나. 룬티아가 인식하는 로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이들이 인식하는 로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업화가 펼쳐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룬티아는 물론이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화염과 뇌기에 지져진 수호기사들이 얼마나 괴롭게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지 말이다.
샤를에 새로 오러의 빛이 깃들었다.
그녀는 이 싸움을 어떻게 끝낼지 결정을 내렸다.
“막내, 네가 영광스러운 검을 보여주었으니…… 나도 그에 어울리는 검을 화답해야 할 테지.”
살의와 충격으로 가득하던 그녀의 눈동자에 깃든 것은, 새로운 의지.
오랜 시간 잊고 있던 기수로서의 책임감.
룬칸델 제3 비기
금환식金環蝕
룬티아가 샤를을 앞으로 뻗자, 뇌기로 가득 차 있는 허공에 달걀만 한 단 하나의 원이 생겼다. 그 원은 어떤 침범도 허용하지 않는 듯 홀로 이질적인 빛을 발하고 있었다.
텅-!
진이 원을 향해 내지른 시그문드가 튕겨졌다.
명왕군림검으로 강화된 시그문드가 이토록 튕겨지는 건 예상치 못한 일, 게다가 금환식의 원은 점점 더 커지며 영역을 늘려가고 있었다.
시그문드를 튕겨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만, 진은 이상하게도 금환식의 원이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결전기? 아니면 비기인가? 어느 쪽이든, 묘한 괴리감이 느껴지는 검이군.’
살의가 전혀 없는 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진은 이 검의 목적이 살인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 예상대로 제3 비기 금환식은 룬칸델에 단 하나뿐인, 타인을 지키기 위한 검이었다. 원을 그리는 단단한 검기는 일종의 방패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렵지 않게 결론을 내렸다.
‘부수면 그만이다.’
광심장 속에서 뇌기와 투신의 피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일격에 무너지지 않는다면 더 깊고 강대한 힘을 둘러 다시 휘두르면 그만이었다.
오늘은 몸에 무리가 간다고 적당히 끝낼 생각이 없었다.
상대를 죽이지 않을 만큼의 힘만 사용할 생각도 없었다. 어떤 형태로든 끝장을 보려는 것이다.
십대기사 실더레이의 대검조차 견뎌냈던 검이다.
제아무리 룬티아가 펼친 금환식이 견고하다 한들, 계속 명왕군림검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파지짓, 쩌엉-!
시그문드가 재차 섬광을 일으키자 이번에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더 거대해진 금환식의 고리에 칼날이 튕겨나갔다.
그러나 일렁이는 오러와 뇌기 속에서, 진은 똑똑히 보았다. 두 번째 검격을 막아낸 룬티아가 한 움큼 선혈을 뱉어내는 모습을.
이미 금환식을 펼치기 전에 중상을 입었다.
몸이 온전할 때 펼쳤어도 명왕군림검의 개를 막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중상을 입은 채 펼쳤으니, 룬티아가 버거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녀는 목숨을 걸었다.
그러나 처음 진을 상대하며 했던 각오와는 그 의미가 달랐다. 진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로부터 자신의 기사들을 지켜내기 위한 각오였다.
검과 고리가 부딪히며 일어나는 굉음.
그 사이로는 단 한 마디의 대화도 오갈 수 없으나, 진은 그녀의 마음가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을 구하려는 자들의 얼굴이 어떠한지를 여러 번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가볍게 생각할 사람이 아니로군, 둘째 누님은.’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녀까지 전력을 다해 명왕군림검을 저지한다면, 죄 없는 수호기사들이 죽어나는 일은 없을 테니까.
하나 그렇다 할지라도.
칼끝에 자비를 묻힐 생각은 없다.
진은 룬티아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시그문드를 휘두르고 있었다.
가문의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자리다.
어설픈 모습을 보였다간, 선언은 반드시 의미를 잃을 터.
‘살아남으면 가치 있는 경쟁 상대로 인정하겠습니다, 누님,’
크적, 크적!
거대한 어금니가 사냥감을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고리 위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검격에 룬티아의 출혈이 거세져 갔다.
반면 시그문드는 오히려 점점 더 매서워져 갔다. 시그문드를 따라 움직이는 뇌기가 밀려드는 폭우처럼 금환식의 고리 위로 쏟아졌다.
고리를 지탱하고 있는 샤를의 검신이 떨리고 있었다. 벌써 서른 합이 넘도록 그녀 혼자 명왕군림검의 힘을 5할 이상 버텨내고 있으니, 한계가 다가온 것이다.
별안간 고리를 강타하던 뇌기의 형태가 변했다.
투신기 3검 단죄.
명왕군림검의 힘이 깃든 단죄의 송곳은 사방을 잠식한 뇌기 속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기운을 품고 있었다.
다섯 개의 송곳이 동시에 밀고 들어서자, 결국 금환식의 고리가 깨졌다. 룬티아는 마지막까지 샤를을 놓치지 않았으나.
명왕군림검과 단죄의 뇌기는 이미 그녀를 휩쓸고 지나쳐 바깥에서 버티는 기사들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한 번 더 뇌기를 발산하려는 찰나, 진은 금환식을 펼친 자세 그대로 멈춘 룬티아의 인영을 보았다.
의식을 잃었거나, 죽었거나. 어느 쪽이든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진.
진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것은, 가주처럼 상석에 앉아있는 로사의 모습이었다. 이제 그 상석을 부술 차례였다.
한 번 더 뇌기를 발산하려는 찰나.
툭…….
돌연 무언가 단단하고 날카로운 것이 진의 등을 가볍게 찔렀다.
룬티아의 검, 샤를이었다.
그럼에도 진은 돌아서서 둘째 누이의 모습을 확인하지 않았다. 겨우 그 샤를을 자신의 등에 갖다 대는 것이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힘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진은 자신의 등에 닿은 것이 샤를이 아니라, 그것을 쥐고 있는 의지라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형제로서, 존중해줄 수 있는 의지라고 말이다.
털썩……!
이내 룬티아가 쓰러지자, 진과 로사의 눈동자가 맞닿았다.
[계속 그렇게 앉아계실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