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02)
제 444화
119화. 검황성의 연회(8)
그 회색 로브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망령대는 룬칸델의 흑기사와 달리 세상에 드러난 무력집단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마물 가운데 서서 부서져가는 검황성을 지켜보고 있었다.
꼭 중앙 대련장의 벽이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 같았다.
천천히, 그들이 중앙 대련장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검황성 근처에 대기하고 있다가, 베라딘을 호위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건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진은 회색 로브들에게서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쩐지 그들이 마물과 생체 골렘을 부리고 있는 듯한.
그저 괴리감이 아니었다는 건 즉시 깨달을 수 있었다.
생체 골렘들이 그들이 걷는 방향을 따라 길을 여는 것이다.
론은 그 모습을 보고도 무심한 눈빛이었다. 여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극지에 다다른 무인 특유의 평정심이었다.
우우웅-!
회색 로브들의 지팡이에 붉은 빛깔의 마력이 맺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예비 기수의 끝 무렵, 베라딘의 별장에서 진이 직접 겪어본 바 있는 마법이었다.
-[인세의 패자라는 것들이 애 하나 잡자고 적색심연까지 펼치는 꼴이라니, 옛 망령대가 무덤을 박차고 나와도 할 말이 없겠군.]
당시 미샤는 그 마법의 이름이 적색심연이라 알려주었다.
영기의 장막에 젖은 하늘 곳곳에 거대한 붉은 얼룩이 번지기 시작했다. 망령대의 결전기라 부를 수 있는 대大 연환 마법, 적색심연은 그때도 흑룡들의 영기와 힘겨루기를 했었다.
그날은 진의 삶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붉게 물든 하늘에서 쏟아지던 핏빛 칼과 사슬, 그것들을 쳐낼 때 손바닥이 찢어지는 듯했던 감각.
그리고 한 가지, 진이 명백히 기억하고 있는 감상이 있었다.
-‘서로의 마력을 보완하는 과정에 어색한 요소들이 있다.’
열다섯의 망령대가 펼친 적색심연의 흐름을 읽으며 느꼈던 감상이었다.
그 사실을 기반으로 진은 적색심연이 보다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는 마법이라 직감했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놈들의 마력이 너무 깔끔해.’
검황성을 찾아온 회색 로브는 총 여섯이었다.
열다섯조차 마력이 부족해 어색하게 펼친 마법을, 여섯 명이 완벽하게 시전하고 있는 것이다.
진이 아는 마법적 지식으로는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한 데다 책으로도 접할 수 없는 마법인 만큼, 처음엔 회색 로브들이 펼친 것이 망령대의 적색심연이라고 생각했다.
유심히 살펴보니 유사하긴 하나 분명 다른 마법이었다.
‘망령대가 아니다. 여섯 명 다 망령대와 그들의 비전 마법을 흉내 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실력자들이지만.’
그 사실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은 진이 유일했다.
애초에 이곳에 있는 무인들 중 망령대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인물도 몇 되지 않는 데다, 그들도 적색심연을 직접 겪어본 적은 없기 때문이었다.
지플이 하이란을 공격하는 건 가능한 일이나, 망령대와 마물이라는 조합을 이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경우였다.
안 그래도 성국 사건 이후 추락한 선의 이미지에 마물까지 덧씌우는 건 미친 짓이니까.
‘지플은 아니로군. 남은 건 킨젤로와 비먼트, 둘 중 전자가 하이란을 칠 이유는 훨씬 많아 보이는데. 황제가 론 경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였다고 보기에는 이상하지.’
킨젤로.
놈들이 이번엔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것인지, 짜증이 치솟았다.
굳이 지플의 비밀 마법사 부대인 척 어설픈 분위기를 연출한 것엔 이유가 있을 터였다.
고오오오……!
회색 로브들의 연환 마법에 대기가 진동하고 있었다. 하늘의 붉게 물든 지점들에서부터 마력으로 이루어진 시뻘건 칼과 사슬이 쏟아졌다.
진짜 망령대의 적색심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것 또한 그에 준하는 마법사들의 연환 마법인 만큼,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품고 있었다.
무라칸과 용들이 모조리 막아줄 수는 없었다. 그것만 상쇄시키는 역할이라면 모를까, 지금도 지상에서 거대 마물들이 끊임없이 포를 쏘아대고 있으니 여력이 많지 않았다.
“비먼트에서 권능을 쓰는 건 찝찝한데, 하는 수 없군.”
결국 퀴칸텔은 본모습으로 변신해 시간의 권능을 부리기로 결정했다.
[엔야, 너는 용화차단막을 펼쳐라. 내게서 멀리 떨어지지 말고.]“네……!”
퀴칸텔은 비행하지 않고 상공을 향해 권능을 쏘았다. 그녀의 이마에서 뻗어진 은빛 파동이 연환 마법을 옭아매는 모습이 이어졌다.
시간의 권능과 용화차단막이 펼쳐지자 지상의 사정이 한숨 돌릴 만큼 나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인들 중에도 치명상을 입거나 즉사하는 이들이 있었다.
“아악-!”
한 여인이 바닥으로 내팽개쳐지며 새된 비명을 토했다.
“마르지엘라!”
비슈켈이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연환 마법의 파편에 휘말려 휠체어가 다 부서진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아까부터 비슈켈은 동생을 지키고자 다가오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베었다. 마물의 살점과 뼈, 마력포와 연환 마법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까지도.
비슈켈이 모든 사람을 다 벤 것은 아니나, 마르지엘라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마구잡이로 뛰어드는 이들에겐 가차 없었다.
부바르는 이미 중상을 입은 채 비슈켈의 뒤에서 간신히 몸만 가누고 있었다.
정신없이 마물을 베던 와중, 진의 시야에 우연히 그 모습이 들어왔다.
오히려 마르지엘라가 위태로운 상태에 놓였다는 사실이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들켜도 상관없다는 듯, 애초에 진이라면 이때쯤 범인을 알아볼 줄 확신한 듯.
일순 진과 눈이 마주친 순간, 마르지엘라는 이렇게 입모양을 꾸몄다.
당신은 큰 이득을 보게 될 거예요, 진.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마르지엘라가 이토록 당당하게 나오는 건, 이미 킨젤로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의미였다.
‘……그렇군, 킨젤로는 망령대 흉내를 낸 마법사들이 지플이 아니라고 밝혀져도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진이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쾌감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으나, 당장 그쪽으로 가서 따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하에서 솟구치는 거대 마물의 숫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쿠우욱-!
결국 지반이 무너지는 불길한 소음과 함께 사방에서 땅이 통째로 꺼지는 광경이 이어지기도 했다. 시커먼 구덩이가 형성될 때마다 그곳에 빠져 긴 비명을 남긴 채 사라지는 사람들이 한 무더기였다.
그래도 검황성의 기사들과 무인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마냥 헛되고 있지는 않았다.
벌써 중앙 대련장에 있던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내성을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바깥의 마물들이 계속 외성을 공격하고 있으니, 놈들을 끝장내지 않는 한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누가 이걸 킨젤로가 저지른 습격이라 생각하겠는가.
증명할 수단도 적을뿐더러, 비슈켈 일당을 붙잡아 고문해봐야 자백을 받아내지 못할 것이다.
론이라는 거목이 버티고 있는 하이란은 물론 적을 명확히 직시할 테지만.
이 습격에 피해를 입은 다른 중소 가문들은 사정이 달랐다.
피해자들 사이에선 하이란이 ‘지플에 공격당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킨젤로를 이용한다는 소문이 돌 터.
론이 두려우니 쉬쉬하긴 할 테지만, 하이란의 평판은 예전 같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지플은 곤경에 처한 하이란을 위해 손을 내밀 것이다.
혹은 검황성이 해명이라도 요청하는 순간 ‘다른 세력에 당해놓고 자신들을 이용한다’며 하이란을 물어뜯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하이란은 막대한 손해였다.
‘론 경은 지플이 어떤 거래를 제안해도 거절할 거고, 이번 사태는 하이란만 바보가 된 채 종료된다.’
그게 진이 한 계산이었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킨젤로는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하이란과 지플의 적대 관계. 놈들은 다른 거대 세력들이 지플을 더 적극적으로 견제하기를 바라고 있다.’
비약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은 이 사건의 ‘마지막 한 조각’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완벽하게 확신할 수 있는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론 경에게 그게 무엇인지를 알려야 한다!’
회색 로브들이 연환 마법을 거두고 있었다. 하나 그건 새로운 공격을 위한 안배일 뿐, 퇴각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회색 로브들에게로 한 줄기의 섬광이 쏘아졌다.
섬광은 네 마리의 거대 마물을 꿰뚫고, 생체 골렘 수백을 쓸어버리고, 겹겹이 펼쳐진 보호막까지 찢어버리며 결국 회색 로브 한 사람의 가슴팍을 뚫어버렸다.
절명, 다섯이 된 회색 로브들이 흩어지며 방어막을 재정비했다.
“그 회색 로브를 뒤집어쓰면 내가 속을 것 같던가? 네놈들이 옥타비아 지플의 부하들이라고 말이다.”
벌써 거대 마물을 일백 이상, 생체 골렘은 수천을 베었건만 론의 기운은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었다.
론에게 마물이나 생체 골렘의 숫자 따윈 단위가 어떻든 무의미했다. 불씨가 많아 봐야 폭풍 앞에 의미가 없듯이.
그럼에도 그가 사태를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검황성을 찾아온, 그리고 지키고 있는 ‘범인’들이 인질로 잡혀있기 때문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속에서 천불이 끓었다. 시론과의 경쟁에서 스스로 패배를 인정했을 때보다도 더한 분노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론 하이란, 착각을 하고 있군. 당신을 속이는 건 애초에 우리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계획이 무엇인지는 차차 네놈들 주둥이를 찢어가며 듣도록 하겠다. 그래,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준 것이냐?”
회색 로브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이 생각한 사건의 마지막 조각을 부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론 경!”
론이 눈을 돌려 진을 쳐다보았다.
“그자들을 죽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베라딘을 찾아야 합니다!”
“뭐라……?”
“베라딘이 부상을 입은 채 본가로 돌아가는 순간, 킨젤로의 공작을 감당키 어렵게 됩니다. 하이란은 지플과 명백한 적대 관계가 될 겁니다!”
그 말에 론의 눈동자가 커졌다.
방금까지 진이 생각했던 여러 경우의 수들이 순간적으로, 완전히 똑같이. 론의 뇌리를 스치고 있었다.
진의 말이 옳았다.
베라딘이 무사히 돌아가지 못하면 이후 사태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더라도 하이란과 지플은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킨젤로가 모르쇠로 일관하더라도, 피해자들이 하이란을 의심하더라도, 지플이 그것들을 이용해 하이란을 압박하더라도.
베라딘만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본가로 돌려보내면 그 모든 경우에 적당히 대처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후드로 감추고 있으나, 진에겐 회색 로브들의 당황한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뒤에서 부상당한 척 연기를 하고 있는 비슈켈 일당의 일그러진 얼굴도.
“분명 저런 수준의 마법사들이 더 있을 거고, 그들이 베라딘을 추격하는 중일 겁니다!”
론은 두 눈을 부릅떴다.
“네게 맡겨도 되겠느냐, 진 룬칸델!”
그에겐 당장 눈앞에서 죽어가는 권속과 손님들을 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물론입니다, 론 경. 영광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