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03)
제 444화
119화. 검황성의 연회(9)
품속에서 꺼낸 적옥이 빛을 발했다.
[먀아아!]진이 슈리의 등으로 올라타자 론이 길을 열어주었다.
츄하아악-!
론의 거대한 검기가 전방에 있는 마물들을 단숨에 휩쓸고 지나쳤다. 피와 살점들이 분수처럼 튀었고, 슈리는 그 사이를 내달렸다.
그 모습을 본 무라칸이 순식간에 하강하며 인간으로 변신했다. 검은 바람이 진을 향해 쇄도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꼬마, 어디 가냐?”
“베라딘을 찾아야 해.”
“그걸 왜?”
“킨젤로가 테러 세력이야. 놈들의 목적은 하이란과 지플의 적대 관계고.”
무라칸은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더니 곧 알아들었다는 눈빛을 보였다.
“음, 대충 알겠군.”
“베라딘이 위에서 보였어?”
“아니, 없던 것 같은데.”
“다시 올라가서 확인해봐. 보이면 바로 알려주고, 안 보이면 너는 계속 상공을 맡아.”
“그놈을 혼자 찾으러 가겠다는 거냐? 또 어떤 괴물이 튀어나올 줄 알고.”
“증거를 남기면 안 되니, 베락트쯤 되는 인물은 없을 거야. 만일 혼자서 감당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땐 신호를 보낼게.”
“알았다.”
무라칸이 다시 본모습으로 되돌아가며 하늘로 치솟았다.
잠시 지켜보아도 무라칸에게서 다른 신호는 없었다. 베라딘은 이미 전장을 이탈한 것이다.
‘객석 내부에도 테러 세력이 있던 거다. 베라딘은 그놈들을 피해서 움직였어.’
베라딘의 근처에 앉아있던 이들이 누구였나.
가면을 쓴 황족들이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베라딘은 지플의 차기 가주인 만큼 당연히 비먼트에서도 황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베라딘이 그들로부터 공격당해 도주하는 중이라 생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었다.
외벽이 허물어진 전장 전방에는 진과 라타, 론이 있었다. 내부 통로를 제외하면 그곳이 유일한 탈출구인 만큼 베라딘이 빠져나갔을 가능성은 없었다.
‘황족이 항상 가면을 쓴다는 걸 이용했군, 킨젤로 놈들이.’
슈리의 방향을 틀었다.
외성벽 쪽이 아니라 성내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통로를 이용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무인들이 일반객들을 대피시키느라 통로는 완전히 포화 상태였다.
진은 망설임 없이 검에 오러를 둘렀다.
스걱-!
내지른 일검에 두꺼운 벽이 종잇장처럼 잘려 나갔다.
뒤쪽의 무인들은 몰려드는 마물을 저지하고, 객들을 보호하느라 여력이 없는 데다 검황성을 훼손한다는 행위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길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쿵!
사각으로 잘린 벽이 넘어지며 묵직한 소음이 일었다.
“통로로 이동하시오!”
진은 그 말을 남긴 채 먼저 중앙 대련장을 빠져나갔다.
혼잡하기는 성내도 마찬가지였다. 하인들이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있었고, 외성벽에서 유입된 생체 골렘이 하나씩 보이기도 했다.
생체 골렘이 한 무리의 하인을 덮치려는 찰나, 슈리가 도약하며 앞발을 휘둘렀다.
마물의 머리통이 터지자 하인들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내질렀다.
“감사합니다……!”
“베라딘을 본 자가 있는가?”
“누, 누구 말씀이십니까?”
“베라딘 지플. 긴 백발에 하얀 코트를 입고 있다.”
“못 봤습니다.”
“그런데, 진 경. 베라딘 경은 보지 못했으나, 성내 도자기 창고 쪽에서도 난리가 났습니다.”
그들은 창고 관리 하인들이었다.
“자세히 말해보게.”
“저흰 중앙 대련장에서 테러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별안간 창고에서 폭발이 일어나 피하는 중이었죠.”
“잘은 모릅니다만, 폭발의 원인이 마법인 듯 보였습니다. 경비병들이 확인을 하러 들어갔는데, 이후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단서를 잡은 듯했다.
“창고가 어느 쪽이지?”
“제가 직접 따라가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자네를 지켜주면서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어. 약도를 그려주게.”
하인이 급히 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약도를 그렸다.
“여기 있습니다.”
“곧 다른 무인들이 나올 테니 이동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게.”
곧장 약도를 따라 도자기 창고로 향했다.
도자기 창고는 검황성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하는 창고였다. 론과 이전 가주부터 백여 년 동안 모아온 도자기의 9할 이상이 보관된 창고.
그 창고는 입구부터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곳곳에 불씨가 보였다.
‘일반적인 불이 아니야, 화염계 마법의 흔적이다. 그것도 9성 이상의.’
베라딘의 주력 계통이 화염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도자기 파편들이 슈리의 걸음에 부서졌다.
그리고 화염이 아닌 다른 마법이 펼쳐진 흔적들도 보였다.
대지, 빙결, 전격.
그리고 어둠.
검은 구슬처럼 보이는 시커먼 마력 덩어리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어둠계 마법을 많이 본 적은 없으나,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형태였다.
‘암흑 마법회는 완전히 괴멸시켰는데, 킨젤로가 어디서 그런 마법사들을?’
하이란을 공격하는 일에 명성 자자한 대마법사들이 참여했을 리 없었다. 추콘 톨더러나 수잔 릴리스타, 키다드 홀 같은 마법사들은 이미 죽었기도 하고.
킨젤로 내부에 알려지지 않은 마법사들이 더 있거나, 조력자가 있거나.
당장은 베라딘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이미 격렬한 전투가 있던 게 분명하니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깨진 도자기와 잔해만이 보일 뿐, 베라딘과 킨젤로의 테러범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 같았다.
‘입구 외엔 전투의 흔적이 없었다. 도자기 창고 내부로 이어지는 다른 통로가 있어.’
약도에도 도자기 창고 내부의 통로가 그려져 있었다.
길고 어두운 통로였다. 슈리를 타고 한참을 달려도 계속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달리던 중 진이 슈리를 멈춰 세운 것은, 시체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세 구의 시체는 연회장에서 봤던 베라딘의 호위 무사들이었다.
물론 그들이 전부는 아니지만, 베라딘이 수세에 몰린 상황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문제였다.
통로를 빠져나오자 곧장 배수로가 보였다. 도자기 창고의 통로는 유사시를 대비한 탈출구 중 하나였던 것이다.
진의 등 뒤로 영기에 물든 어두운 하늘이 보였다. 전장에서부터 전해지는 먼 폭음과 충격파가 여전히 격전이 이어지고 있는 걸 알리고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대지, 바람 마법을 이용해 경로를 알아보기엔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고민하는 와중, 저 멀리 한 줄기의 시뻘건 불빛이 보였다.
화염옥이 폭발할 때 나타나곤 하는 익숙한 불빛, 베라딘의 마법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마법을 보자마자, 진은 베라딘이 이미 ‘부상을 입었다’고 확신해야만 했다.
이미 9성에 이른 베라딘의 마법이라고 보기엔 불안정하고 미약한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가자, 슈리!”
[먀냐냐!]마침내 베라딘의 모습을 확인한 곳은 평야였다.
베라딘은 두 명 남은 호위와 함께 회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 그리고 놈들이 부리는 생체 골렘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베라딘!”
진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베라딘.
“……진!?”
파즈즉-!
진이 떨군 벼락에 베라딘을 포위하고 있던 생체 골렘들이 터져나갔다.
진은 그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베라딘의 상태를 살폈다.
입술에선 피가 흐르고,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다. 다행히 치명상은 없으나, 출혈이 심해 계속 전투가 이어졌다면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네가 올 줄 알았다.”
베라딘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이 묘하게 의미심장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알긴 뭘 알아, 멍청하게 저딴 것들한테 당하기나 하는 놈이.”
“상당히 강해, 저자들. 내가 모르는 자들 중에 이런 마법사가 있었나 싶을 정도거든. 처음엔 진짜 고모의 부하들인 줄 알았다니까.”
그 순간, 진의 뇌리를 스치는 의문은 이것이었다.
‘베라딘이 과연 지금 온전한 상태일까?’
온전하지 않다 하더라도 베라딘을 구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을 테지만, 문득 이상한 점이 한 가지 떠올랐다.
베라딘은 왜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번도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았나.
그저 연회에 참가했을 뿐이므로 신호탄을 소지하고 있지 않더라도, 마법으로도 얼마든지 신호를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객석에서 황족으로 변장한 이들에게 공격당해 정신이 없었다 해도, 소리는 칠 수 있었다. 베라딘이 있던 쪽엔 분명 그를 도와줄 만한 다른 무인들이 많았다.
‘만일 정신이 조작된 상태라면, 일부러 이런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하이란이 곤경에 빠지는 건 지플에 여러모로 이득일 테니.’
도자기 창고 곳곳에 남아있던 마법의 흔적들도, 다시 생각해보니 일부러 남긴 듯 어딘가 작위적인 구석이 있었다.
특히 어둠계 마법의 흔적이 보란 듯이 남아있던 게 마음에 걸렸다.
마치 베라딘이 어둠계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과 홀로 고군분투한 증거처럼 남아있던 것이다. 무인이 발에 차일 만큼 흔한 검황성 내부에서.
그러나 진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베라딘은 영락없이 친숙한 백발 얼간이였다.
‘확신할 수 없다. 연회장에서도 그랬듯이.’
진이 뒤돌아서 회색 로브들을 바라보았다.
회색 로브들은 진의 등장에 잠시 공격을 멈춘 채였고, 후드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당황한 기색인 듯했다.
“베라딘 지플.”
“응, 진.”
“왜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았지?”
“그럴 틈이 없었어. 객석에서부터 급습을 당해서, 피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예상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진은 베라딘의 정신이 적어도 ‘완전히’ 온전하지는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룬칸델 12기수 진 룬칸델은 검황성주 론 하이란 경의 특명을 받아 널 구출하러 왔다. 반드시 이 사실을 기억해라. 알겠나?”
“……알았다. 론 경께 신세를 지는군.”
“호위 무사들이랑 몸이나 추스르고 있어. 저것들은 내가 상대할 테니.”
진이 기운을 끌어올리자 평야의 자그마한 돌들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회색 로브들도 다시 마력을 방출하고 있었다.
‘망령대보다는 확실히 떨어지는군.’
그래도 망령대를 흉내 낼 수 있는 수준의 마법사가 넷이었다.
‘진짜로 놈들이 베라딘을 죽일 계획이었다면 검황성에 있는 회색 로브들도 베라딘을 노렸을 테지. 베라딘이 혼자 싸우다 간신히 도망칠 수 있는 정도의 숫자만 보낸 거다, 일부러.’
네 명의 마법사가 베라딘이 싸우다 도망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진에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진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어둠계 마법만 조심한다면 말이다.
“한 놈도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마라.”
시그문드가 빛을 발함과 동시에,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진의 손바닥 위로 모여들고 있었다.
대마법사 키다드 홀의 유산.
역천을 펼치기 위한 마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