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06)
제 444화
120화. 왜 하이란인가(1)
우레를 검기가 밀어내고 있었다.
론의 검기였다. 그가 라시드를 휘두를 때마다 해일 같은 검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검황성을 통째로 뒤덮을 것 같은 우레조차 론의 검기 앞에선 그저 어린애들의 불장난처럼 보였다.
‘검기를 우산처럼 펼쳐 이만한 성을 지킬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 풍경을 보자마자 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었다. 10성 기사, 그중에서도 최고를 다투는 이들에게나 가능한 영역.
더 놀라운 것은 그만한 검기를 쉴 새 없이 뿌려대면서도 론이 전혀 지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론 경!”
진이 소리치자 론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기절한 채 슈리에 묶여있는 베라딘을 확인한 뒤, 진을 향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그런 얼굴이었다. 비록 베라딘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진이 그를 구한 것만으로도 적들의 농간을 덜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최전방에서 마물과 생체 골렘을 상대하고 있는 라타는, 돌아온 진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를테면, 일종의 존경심.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진은 자신과 싸우고, 그 결투를 여유롭게 넘기고, 예기치 못한 테러가 시작되자 즉시 상황을 살피고, 혼자 핵심을 짚고 베라딘을 데려왔다.
진과의 관계가 방금까지 어떠했든, 존경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론조차 베라딘이 핵심이라는 걸 파악하지는 못했으니까.
‘멋진 놈이다. 이 라타가 남자에게 (인간적으로) 반하는 날이 올 줄이야.’
슈리가 거대 마물들을 밟고 뛰어 론의 옆자리에 착지했다.
“내가 왜 그놈을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군. 부상이 심각하더냐?”
“생명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알겠다. 사태가 지나간 후 합당한 보상을 해주마. 그 얼음덩어리들은…… 대충 알겠군.”
론은 지금껏 마법사들이 재생할 때마다 거의 가루가 되도록 베기만 했을 뿐.
‘봉인’이라는 수단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건 그가 마법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은 데다, 성내 대기 중인 마법사들은 모두 경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론이 이토록 엄청난 검기를 뿌려대면서도 전혀 지치질 않으니, 굳이 다른 수단을 찾을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성내 마법사들은 들어라! 뇌기를 사용하는 골렘들을 봉인하도록!”
론이 명령을 내리자 뒤쪽에 있는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길을 열었다. 마법사들이 그 사이로 빠져나와 빙결의 마력을 뿌려대는 모습.
‘그런데 이상해. 왜 우레가 잦아들지 않는 거지?’
마법사들의 등장에 곳곳에 명인의 신체를 봉인한 얼음덩어리들이 솟구치고 있건만, 하늘에서 쏟아지는 우레는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명인이 더 있는 건가? 론 경의 검기가 너무 대단해서 묻히고 있지만, 명인 서넛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뇌기다. 정신없이 오느라 생각지 못했는데.’
적어도 오백 이상의 명인.
혹은 명인이 아닌 다른 무언가.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우레였다.
얼핏 보기에 검황성을 공격한 여섯 명인은 모두 봉인이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뇌기는 점점 강해지고 있으니, 이제는 확신이 되었다. 다른 무언가가 더 있다고 말이다.
론도 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빙결계 봉인에 갇힌 놈들과 느낌이 전혀 다른데…….”
하늘을 바라보는 론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영기와 검기, 우레가 뒤섞인 하늘이 색색이 혼란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무엇인지 한 번 보아야겠구나.”
뒷말을 이은 론이 발산하던 검기를 거뒀다. 둑이 터진 듯 우레가 쏟아졌지만, 방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약해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난데없이.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드러난 것은, 함선의 아랫부분처럼 보였다.
‘저건 뭐야……!’
진을 포함해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알기로, 하늘을 부유하는 배는 세상에 단 한 척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코젝, 지플의 공중 결전병기.
하지만 검게 물든 구름을 밀어내며 나온 것은 코젝이 아니었다. 형태만 비슷할 뿐, 전혀 다른 비행 함선이었다.
“……비행 함선까지 나오니 저것들이 정말로 옥타비아의 부하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론이 헛웃음을 내뱉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지플이 아니라 킨젤로일 겁니다, 론 경.”
“그렇겠지. 하지만 정말로 관련이 없으리라 생각하느냐?”
진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이쯤 되니 지플이 이번 테러에 아주 관련이 없으리라고 생각이 되진 않는군요. 직접적으로 사주하진 않았더라도, 자기들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일 테니 사건 이후에 암묵적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추접한 놈들이로고.”
파지직, 파짓……!
함선의 근처로 뇌기를 품은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함선은 겉보기에 코젝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지닌 듯 보였는데, 선체 곳곳에 돋아있는 돌기 같은 것이 마력을 모아 먹구름을 형성하는 모양이었다.
함선이 등장하자 일순 전장이 고요해졌다.
미친 듯이 날뛰던 마물들도 움직임을 멈췄고, 무인들은 호흡을 고르며 멍한 눈으로 함선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대부분 본능적으로 위축된 상태였다. 땅에서 튀어나온 거대 마물과 생체 골렘, 명인에 이어 비행 함선까지 등장했으니 당연한 일.
진은 고개를 돌려 무라칸, 퀴칸텔과 눈을 맞췄다. 두 용도 처음 보는 함선인 듯 달리 반응이 없는 모습.
한 치의 동요도 없는 것은 론이 유일했다.
“이름을 밝혀라, 불청객.”
웅혼한 기운이 담긴 목소리였다. 편안하게 읊조리듯 말했는데도 론의 목소리는 강렬한 공명을 일으키며 함선까지 닿고 있었다.
이윽고 함선 선두에 나타난 것은,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베락트 시드리커! 위대한 백랑족의 대전사이자, 시드리커 부족의 족장이며 로스칼 대평원의 주인이고, 안토맥 산맥의 절대자이자…….”
베락트를 대신 소개하는 그자는 차가운 조였다.
“닥쳐, 짧게 소개해라. 조.”
“그렇다면 조금 생략하고…… 우리 킨젤로의 총대장이시다!”
이번만큼은 진도 놈들의 계획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테러를 한 것도 모자라, 대놓고 자신들이라는 걸 밝힐 줄은 예상치 못한 것이다.
하지만 압권은 다음 순간 조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우리가 함선 그르닐을 몰고 검황성을 찾은 것은, 본 단의 부단장과 그 동생을 구하기 위함이다.”
미친놈들…….
반사적으로 속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자기들이 테러를 벌여놓고, 비슈켈과 마르지엘라를 구하러 왔다고?’
진이 놈들의 속셈을 선뜻 읽지 못한 건 다름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뻔뻔하고 단순하기 때문이었다. 과연 계산이라는 걸 하고 행동하는 건가 싶을 지경이었다.
‘테러를 벌이며 비슈켈과 마르지엘라가 일부러 부상을 입도록 조장하고, 그걸 명분 삼아 자신들은 테러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 셈이었나.’
당연히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비슈켈이 세상에서 동생을 가장 끔찍이 아낀다는 건 무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
그 누구도 비슈켈이 동생의 안위를 이용하면서까지 이런 테러를 벌이리라곤 생각지 못할 터였다.
무엇보다 증거가 없었다.
함선 그르닐이 마력을 통해 뇌기를 다루고는 있으나, 심증을 제외하면 명인과 생체 골렘, 마물들이 킨젤로의 것이라는 걸 증명할 완벽한 수단은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혹, 론 경이 심증만으로 자신들을 범인이라 규정하는 것도 거리낄 게 없다는 태도다. 하이란을 완전히 깔보고 있어.’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을까?
불현듯 스치는 의문에, 진은 곧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본래는 적당히 하고 물러날 생각이었을 거다. 그런데 내가 베라딘을 구출하는 바람에 놈들에게도 차질이 생긴 거야.’
베라딘이 이대로 돌아가면 하이란과 지플의 적대 관계는 성립되기 어려웠다.
오히려 진이 론의 특명으로 베라딘을 구출했으니 적대할 명분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는데도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하나뿐이었다.
‘킨젤로는 어떻게든 하이란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작정이다. 지플과 적대 관계를 만들 명분을 잃었으니, 차라리 자신들이 직접 하이란을 짓밟겠다는 느낌인데.’
그게 아니라면 베락트와 조가 나타나 이렇게 론의 속을 긁는 일은 없었을 터.
베락트와 조가 보여주고 있는 행동은 한 판 붙자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허허허.”
론이 다시 한 번 헛헛한 웃음을 터뜨렸다.
“황제조차도 나와 이야기할 땐 직접 목소리를 내건만. 게다가…… 이 검황성에서, 내가 누군가를 올려다보는 일이 생길 줄은 몰랐군. 내려와라, 수인.”
그러자 베락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싫다면 어쩔 것인가, 인간족 검황.”
“내려오게 만들어야지.”
론은 베락트와 조에게 다른 상황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왜 검황성을 공격했는지, 지금 이게 무슨 개수작인지.
그런 건 대화의 여지가 있을 때 묻는 것이었다. 론 역시 마음을 굳힌 것이다. 킨젤로와 전쟁을 하기로.
‘놈들 뜻대로 놀아나주는 꼴이다. 론 경이 그걸 모를 리는 없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날 수 없는 그림이었다. 킨젤로가 이렇게 나오는데도 물러나는 순간, 론의 하이란은 두 번 다시 위신을 되찾지 못할 터였다.
함선 그르닐이 등장한 직후부터,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킨젤로에 대해 같은 심증을 갖게 된 셈이니 말이다.
라시드의 칼날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딱 한 번만 경고를 해주마. 당장 내려와서 예를 갖춰라.”
“나는 분명히 네게 목적을 알렸다. 킨젤로 부단장과 그 동생의 신병을 넘겨라.”
“그들의 목숨이 그다지 소중하지 않은가 보군.”
함선을 향해 올려쳐진 검신이 오러를 토해냈다.
론이 쏜 검기에 일대가 순간적으로 눈부신 빛에 물들었다.
함선 그르닐은 마치 바다에 빠진 듯, 검기에 완전히 파묻히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빛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함선 그르닐이 코젝과 동급의 결전병기라 할지라도, 저런 검기에 당하고는 멀쩡하지 못할 것 같았다.
진심을 담은 일격이었다.
10성 기사, 그것도 론 하이란이 진지하게 뻗은 그 검기는, 놀랍게도.
함선 그르닐에 작은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론 하이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르닐은 여전히 상공에 나타났던 모습 그대로 부유하고 있었다.
“정 나와 싸우고 싶다면, 차라리 우리 둘만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떠한가, 인간족 검황 론 하이란. 여기서 너와 내가 싸우면 네 식솔들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