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25)
제 444화
123화. 이렇게 갑자기?(4)
한동안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라타 프로치에게 이런 면이 있었단 말인가?’
귀신대와 귀신대장 라타 프로치.
사실 진에겐 그들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페이가 이끄는 귀신대 살수들에게 습격을 당했을 때도, 이후 라타가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왔을 때도. 진이 느끼기에 그들은 두 번 다 어리석었다.
그런데 라타에게 이만큼의 통찰력이 있을 줄이야. 테러 이후의 상황과 흐름을 꿰뚫어 보는 모양새가 놀라울 지경이었다.
‘아니지, 아니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똑똑한 느낌의 인간은 아니었다고. 누군가 라타에게 정보를 줬거나, 그를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이 감탄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마터면 오, 그렇습니까? 예상치 못한 훌륭한 판단입니다, 라고 말하며 너무 쉽게 넘어갈 뻔했다.
‘누구지? 지플? 킨젤로? 아니, 그 두 집단의 인물은 라타에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린 전부 검황성에 발이 묶여있었으니까.’
검황성에 체류하던 보름가량 동안, 당연히 남아있던 이들은 테러 진압을 도왔다 할지라도 대부분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하이란은 지플과 킨젤로의 끄나풀을 발견하지 못했다.
‘제피린.’
문득 그 악마룡으로 추정되는 여인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녀가 라타의 뒤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제피린은 아직 정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그녀는 지플과 킨젤로, 어느 쪽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건 지나친 비약이겠지. 제피린이 어떤 목적이 있어서 라타에게 접근했다 할지라도, 라타가 이렇게까지 저자세를 보일 수는 없어.’
제피린이 아니라 다른 그 누구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귀신대장쯤 되는 인물이 누군가의 장기짝이 된 채 평판을 포기하는 건 아무래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진이 만일 라타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쫓아낸다면, 귀신대장이라는 이름이 지닌 무게감은 단번에 나락으로 추락하게 될 터였다.
응접실에서부터 진과 라타를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이다. 물론 그들의 입단속을 시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나, 라타와 동맹을 맺지 않는다면 챙겨줄 필요가 없는 일.
잠시 고민하던 진은 라타가 온전히 자유의지와 통찰력으로 자신을 찾아왔다고 결론을 내렸다.
“진 경, 무슨 생각을 그리 하오? 내 말이 어딘가 이상한 것인가?”
“아뇨,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황을 너무 정확히 읽고 있어서, 정말 라타 경이 그 모든 걸 통찰한 것인지 의아한 마음이 드는군요.”
“크하하학!”
호쾌하면서도 날카로운 웃음을 터뜨리는 라타.
“뭐, 경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소. 나와 내 동생이 그간 보인 모습들이 영 좋지 못했으니. 하지만 진 경, 나 또한 한 집단의 우두머리요. 그것도 아주 인정받는 우두머리지.”
라타가 잘린 흔적도 없이 붙은 제 검지를 바라보며 뒷말을 이었다.
“경이 입원시켜준 내 부하 오백 명, 그들이 왜 나를 따라왔는지 아시오?”
궁금한 문제였다. 위세를 과시하기에도, 검의 정원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시간을 벌기 위해서도 오백은 턱없이 모자란 숫자였다.
또한, 우릴 부하로 받아주십시오, 그런 마음으로 데려온 숫자라고 보기에는 귀신대의 규모에 비해 애매한 숫자였다.
“모르겠군요.”
씨익, 라타가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말리고 말려도 결코 물러나지 않은 오백이었소.”
“무엇을……?”
“내가 경에게 검지를 잘라 사죄하겠다고 말하니, 억지로 따라온 녀석들이라는 뜻이오. 자신들도 나를 따라 경에게 검지를 바쳐야겠다며.”
이번엔 진의 눈동자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진짜일까?
라타는 그런 의문을 가질 수가 없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누구라도 지금 라타와 눈을 마주친다면, 그가 가진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엔 그보다 훨씬 많은 부하들이 나와 함께하겠다고 했었소. 아마 그놈들을 다 끌고 왔다면 룬칸델은 우리가 전쟁을 치르러 온 줄 착각했을 거요. 아무튼, 같이 온 놈들은 도저히 물러나질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데려온 것이지.”
“그럼 내가 그러라고 하면 그들 모두 검지를 자르는 겁니까?”
“그렇소.”
“기묘한 충성심이군요.”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것이지. 하나 같이 나만 손가락을 잃는 꼴을 볼 수 없다고 난리를 쳤으니 말이야. 이제 내가 얼마나 인정받는 대장인지 알겠소?”
“모두 다 함께 손가락을 잃지 않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룬칸델 12기수, 경이 허락해준다면 가능하겠군.”
“내 말은 애초에 그런 계획을 생각하지도, 실천하지도 않는 방법은 없었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값을 치러야 하지 않겠소. 앞으로 상대와 가깝게 지내고 싶다면 더더욱.”
“경께선 조금 전에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 비열하고 저열한 짐승이나 다름이 없다고 하셨습니다만.”
“맞소. 문제가 되는 거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형용함이 느껴지는 바람에 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잠시 무라칸이 데려간 라타의 부하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를 떠올렸다.
모두 별 생각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어쩌면 얼마 못 가 제 주군과 같이 평생 붙어있던 신체 한 부분을 잃게 될 텐데도.
‘아주 시시한 인간은 아니었군, 라타 프로치.’
지금까지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라타는 훌륭한 리더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라타의 무위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이토록 젊은 나이에 귀신대를 완전히 장악한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라타 경.”
“무엇이오?”
“검황성 연회장에선 왜 그렇게 삼류처럼 굴었습니까?”
진이 느끼기에 오늘과 그날의 라타 프로치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었다.
“이 몸은 대부분의 상황에 유능하고 훌륭한 우두머리지만, 가끔은 불완전한 인격이 드러날 때가 있소. 가령, 하나뿐인 혈육이 인질로 잡힌 상황이라거나.”
“경의 동생은 가장 엄격한 전쟁법규의 포로 조약을 기준으로 삼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뭐, 고맙긴 하나 튼튼한 녀석이니 목숨만 붙어있을 정도의 대우라면 상관없는 문제요. 그리고 또…… 가장 소중한 편에 속하는 부하를 잃었을 때도 그럴 수 있지.”
페이가 자신을 습격한 날이 떠올랐다.
‘그리몰이라고 했던가.’
귀신대 살수들 중 가장 압도적으로, 혹은 유일하게 자신을 애먹였던 인물. 그는 페이보다 훨씬 뛰어난 검을 구사했었다.
“고통 없이 보내주었습니다. 그리몰이라는 살수가 마지막에 보여준 검의 한 결실은 내게도 빛나는 무언가로 보이더군요. 페이 프로치를 끝까지 살리려고 했었고.”
“……줄곧 그 친구의 마지막이 어땠을지 궁금했건만, 용병치고는 명예로운 죽음을 얻었군. 오랜 시간 함께했으나, 그리몰은 살수보다는 기사가 어울리는 인물이었소.”
라타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잠시 동안 그리몰을 추모하는 모습이었다.
“돌아보면, 그때도 나는 경을 얕본 덕에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오. 애초에 의뢰를 받지 말았어야 하며, 받았다면 나를 포함한 최고의 살수들로 인원을 꾸렸어야 했지. 그래서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고 최대한 훌륭한 선택을 하려 하오. 도와주시오.”
담담한 말투 속에 진솔한 느낌이 묻어났다.
물론 지금 진솔한 느낌이 난다고 하여 얼마 전 그가 내뱉은 경솔한 발언들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것도 진은 잘 알고 있었다.
“라타 프로치 경.”
“말해보시오.”
“경이 정말 나와 동맹을 맺고 싶다면, 내게 신뢰를 보여주십시오. 단지 말뿐인 반성과 손가락을 자르겠다며 의미 없는 피를 보는 것으론 나와 한 배를 탈 수 없습니다.”
라타가 드디어 답답한 옷을 벗어 던진 사람처럼 미소를 지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오, 내가 무엇을 보여주면 좋겠소?”
“나와 귀신대는 제거 대상과 살수로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러자 라타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 악연이 인연으로 바뀌려면, 적어도 날 죽이라고 지시했던 이들의 목이 내 앞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룬칸델 원로들을 암살하라.
그건 당연히 살수집단이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의뢰 중 하나였다.
“내가 말하기 전에 알아서 그들의 목을 취해서 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난 라타 경이 그러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허를 찔린 듯, 라타가 움찔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원로들의 목을 가져왔는데 내가 동맹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뒤가 사라지는 셈이니.”
“……다시 한 번 느끼는 건데, 경은 정말 보통이 아니군.”
“또한, 그 늙은이들의 목을 가져왔더니 내가 쌍수를 들며 반겨준다 한들, 이후 12기수 따위가 룬칸델의 보복으로부터 귀신대를 지켜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을 겁니다.”
끼익, 진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라타의 등 뒤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는데, 라타는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앉아있었다.
몇 초 뒤 어깨에 가볍게 닿는 진의 손아귀가, 라타로서는 사신의 낫처럼 한없이 서늘하게만 느껴졌다.
“정말 날 믿는다면, 내가 룬칸델의 패자가 되리라 확신한다면. 모험을 해, 라타 프로치.”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 등줄기에 소름이 번졌다.
“일주일을 주겠습니다.”
진이 라타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그 안에 날 죽이려던 자들의 목을 가져오십시오. 어설프게 간 볼 생각은 말고, 일을 저지르라는 말입니다. 뒷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 아시겠습니까?”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라타.
‘12기수, 이건 생각하지 못한 전개인데…….’
물론, 라타는 진심으로 진이 언젠가 룬칸델의 가주가 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룬칸델 내에서 대단한 권력을 갖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우선 손을 잡은 뒤, 차근차근 진을 도와 그가 세를 불려갈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었으나.
일주일 내로 ‘기존의 룬칸델’과는 원수가 되어야 하는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어차피 12기수의 편에 설 예정이긴 했지만, 이거야말로 뒤가 없군.’
신뢰를 보여라.
라타가 방금 전 진이 했던 말을 머릿속으로 곱씹는 사이, 진이 입을 열었다.
“날짜가 지나서도 수급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나는 라타 경이 내가 아닌 다른 세력과 손을 잡았다고 판단할 겁니다. 그건 곧 나와 다시 적이 된다는 뜻이죠.”
“그럴 일은…….”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