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24)
제 444화
123화. 이렇게 갑자기?(3)
“꺄아아악!”
“으어억!”
무예를 익히지 않은 귀족과 상인들이 반사적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그들은 라타가 진을 공격한 것으로 착각했고, 떨어진 라타의 검지를 보고도 곧장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이게 무슨 짓인가, 라타 프로치!”
“이곳은 검의 정원이다!”
라타의 목에 검을 겨눈 수호기사들의 눈동자가 희번덕였다. 열 자루의 검이 목을 옥죄고 있으나 수호기사들은 느끼고 있었다.
라타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렵지 않게 자신들이 겨눈 검을 모두 쳐내고 뜻대로 움직일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귀신대장, 소문보다도 위험한 자다. 맨몸으로 제 검지를 잘라낸 상태로도 우릴 압도하는군.’
‘자기 손가락을 잘라냈기에 망정이지, 행여 12기수를 치기라도 했다면…….’
거기까지 생각한 수호기사들이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딱히 별일 없었을 것 같긴 하군. 12기수도 보통 괴물이 아니니.’
라타의 검지 절단면에서 끈적한 핏물이 흘러내렸고, 진은 미동 없이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인가.
진은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기다릴 뿐이었다. 라타가 먼저 제 행동의 이유를 밝히길 말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갑작스레 무기를 꺼내고, 돌발행동을 한 쪽은 라타임에도. 오히려 진에게서 더욱 묘한 박력이 풍겼다.
애초에 무게감이 다르다. 무위의 고하를 떠나 진에겐 설명하기 어려운 위엄이 있다…….
라타는 그렇게 느꼈다. 왜 그 사실을 이토록 늦게 깨달았을까 의아할 정도로, 진은 자신이 이제껏 만나온 다른 신성들과 분명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알겠지만, 정식으로 내 소개를 다시 하겠소. 이 몸은 귀곡새성의 주인이자 살수용병대 귀신대를 이끄는 수장, 라타 프로치요.”
그 정중한 말투에 장내에 있는 이들은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모두 귀신대장에 대한 소문을 한두 번 접해본 게 아니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살인귀들의 왕, 보통 세인들이 생각하는 귀신대장의 이미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룬칸델 12기수 진 룬칸델입니다.”
“내가 오늘 경을 찾은 것은, 지난번 검황성에서 내가 저지른 무례를 사죄하기 위함이오.”
떨어진 검지를 내려다보는 진.
“그래서 검지를 잘랐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검지 하나를 잃는다 할지라도 라타의 무위에 심대한 피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수준의 무인이라면 모를까, 이미 경지에 오른 이들에게 이 정도 장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라타가 검지를 자른 것은 피의 대가를 치르겠다는 의미였다.
“검을 치워라.”
진의 명령에 수호기사들이 라타의 목에 닿아있던 검을 빼냈다.
“라타 경.”
“말씀하시오.”
“경과 나 사이엔 아무런 원한이 없습니다. 그러니 경은 내게 사죄할 필요가 없고, 경의 손가락은 내게 아무런 가치를 지닐 수 없습니다.”
라타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러나 치욕이나 모욕에 젖어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에 깃든 감정은 불안에 더욱 가까워 보였다.
“……몇 개를 더 자르더라도 말이오?”
아니, 대체 손가락을 왜 자꾸 자르려고 하는 겁니까.
그렇게 묻는 대신 다른 대답을 골랐다.
“손가락이 아니라 팔을 자르셔도 마찬가지입니다.”
“젠장, 다른 걸 준비할 걸 그랬군. 어떻게 하면 내 과오를 덮을 수 있겠소? 말해주시오. 가능하면 최대한 맞추도록 할 테니.”
그 말에 장내에 있는 이들은 이제 서로 눈짓을 주고받을 지경이었다. 정녕 저자가 귀신대장이 맞나? 다들 그런 반응이었고, 수호기사들도 내색하지 못할 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진 역시 내심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라타 프로치, 이런 캐릭터가 아닐 텐데. 왜 이렇게 고분고분해?’
지금 진이 라타를 다소 냉대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라타 같은 부류의 인간. 말하자면, 짐승 같은 인물을 상대할 땐 무섭고 어렵게 보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태도였다.
짐승은 서열이 매우 중요한 만큼, 자신이 명백히 라타보다 우위라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진은 그 과정에 라타와 또 한 번 결투를 치르게 되리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검황성에서 치른 결투는 사실상 진이 승자였으나, 결과적으론 테러 때문에 승패가 갈리지 않은 셈이었으니까.
‘내 태도에 라타가 광분하며 달려들면, 그걸 빌미로 결투를 치르려고 했건만.’
가문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귀신대장을 꺾는 그림은 당연히 나쁠 것이 없었다.
그 다음 라타와 서로를 인정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자연스레 자신이 귀신대로부터 상당한 호의를 받고 있다는 걸 알리는 것.
그게 진이 이번 만남에서 바라는 그림이었다.
‘이렇게 나오면 싸울 필요가 없겠어.’
다시 결투해서 무릎 꿇릴 필요도 없이, 누가 보더라도 라타는 명백히 저자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테러 이후 검황성에 체류하는 동안, 라타가 뭔가 내 주변을 계속 얼쩡대긴 했었어. 다른 조건을 걸고 페이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려는 것인 줄 알았는데, 설마 내게 사과할 기회를 찾고 있던 건가?’
뚝, 뚝. 라타의 검지에서 흐르는 굵직한 핏방울이 계속 바닥을 물들여갔다.
“라타 경, 나는 솔직히 경이 내게 다시 싸움을 걸 줄 알았습니다.”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오. 나는 아직 12기수와 싸울 깜냥이 못 된다는 걸 그때 확실히 깨달았소.”
결국, 그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야 말았다.
‘저게 무슨 소리야?’
‘검황성 테러 당시, 두 사람이 결투를 치렀고. 12기수가 우위였다는 소문이 있기는 했었어.’
‘아무리 그래도, 귀신대장이 저리 말할 정도로 차이가 심할 수가 있단 말인가?’
결투 당시에도 많은 무인들이 진보다 라타의 우위를 점쳤던 만큼, ‘룬칸델 12기수’와 ‘귀신대장’은 본래 후자가 더 무게감이 있는 위치였다.
“그렇다면 라타 경은 내게 사과할 게 아니라, 채무를 갚아야겠군요. 기억하고 계십니까?”
-결투로 내기를 하자는 건가?
-내게서 찾아야 할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널 죽이기 전에 혈서를 받아두면 되겠군.
-혈서든 뭐든. 당신이 이기면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내 목숨을 취해도 좋고, 숨만 붙여놓은 채 날 모욕할 수 있는 어떤 행위를 해도 좋다는 뜻입니다. 단, 내가 이기면. 귀신대는 내 의뢰 한 가지를 반드시 수행합니다.
진이 결투 당시의 대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물론, 기억하오.”
“내 의뢰를 수행하려면 라타 경은 지금보다 더욱 강해져야 합니다. 손가락을 자르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죠. 하지만, 경이 정말 내 의뢰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인지 의구심이 드는군요. 수호기사, 내 방으로 신속히 의료원장을 모셔라.”
“예!”
츠저적!
이어 진이 빙결계 봉인 마법을 펼쳐 떨어진 라타의 손가락을 챙겼다.
“따라오십시오.”
응접실을 벗어나 방으로 가는 길에 돌연 검의 정원 내부에 강렬한 진동이 일어났다. 지진 같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누군가 어마어마한 힘을 사용할 때면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게다가 하늘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기까지.
라타는 이미 이런 현상을 한 번 경험해본 바가 있었다. 검황성에서 무라칸이 힘을 드러냈을 때 말이다.
“이건 경의 수호룡이…….”
“아, 시작된 것 같군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엇이 시작된 것인지 궁금했으나 라타는 더 묻지 않았다. 진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 눈치였으니 말이다.
방으로 가는 동안, 진은 라타가 대체 어떤 심리로 이러는 것인지를 고민했다.
‘부디 생각 없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군.’
수호기사가 부른 의료원장이 먼저 방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라타의 손가락을 붙여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고맙소.”
“인사는 됐고,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왜 이러는 겁니까?”
“무엇을 말이오?”
“내가 기억하는 라타 경은 내게 상당한 적의를 갖고 있었으며, 매우 조심성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게 결투를 걸었다가 하마터면 망신살을 당할 뻔했고요.”
“흠, 흠! 그건…….”
“갑자기 이렇게까지 태도가 돌변한 이유를 말씀하십시오.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면, 나는 경에게 승리의 대가를 받지 않겠습니다.”
라타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리고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진 룬칸델이라는 사내에게 반했소.”
진은 하마터면 길리가 내어온 찻물을 뿜을 뻔했다.
“내게 반했다, 그 정도론 납득할 수 없군요. 고작 그따위 이유로 이런 짓을?”
미간을 좁히며 뒷말을 잇는 진. 그 얼굴에 처음으로 노기가 서렸다.
“우리 가문의 원로들이 귀신대에 날 암살하라는 의뢰를 줬을 겁니다. 그럼 실패를 만회하고 의뢰를 다시 수행해야지, 내게 붙으려고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진심으로, 라타가 정말 ‘반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머저리라면. 진은 그를 아군으로 받을 생각이 없었다.
“말이 되지 않소. 내가 그대처럼 명문 무가의 사람이라면 말이지. 하지만 진 경, 나는 그저 칼밥 먹는 용병이오. 비열하고 저열한 짐승처럼 행동해도 상관이 없다는 말이지.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요즘 같은 상황? 계속 말해보십시오.”
“나는 경과 결투를 하고, 함께 검황성의 테러를 겪었소. 이후 보름가량 검황성에 체류하며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쭉 지켜보았고. 그 결과,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지.”
“무슨 결론입니까?”
“귀신대가 살아남으려면, 이제는 중립이어선 안 된다는 사실.”
-동맹이라고? 귀신대는 그 어떤 세력과도 손을 잡지 않는다. 우리에겐 의뢰와 의뢰자만이 있을 뿐이다. 진 룬칸델, 결투를 신청한다.
그건 연회장에서 라타가 했던 말은 물론이고, 그간 귀신대라는 용병집단이 지켜온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그날은 특별한 날이었소. 경과의 결투로 내 오만을 깨달은 순간이었으며, 테러로 인해 앞으로의 전쟁과 세력 구도는 지금까지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형태로 흘러가리라는 확신을 얻었지.”
땅굴과 마물, 생체 골렘, 거대 함선, 신체가 변형되는 마법사들, 그리고 그 모든 걸 재생시키며 압도적인 무위를 보인 마족.
라타의 말처럼 킨젤로가 그날 저지른 테러는, 이제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상식을 깨뜨리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황실은 이후 하이란을 보호하지 않았지. 그런 미친 집단이 검황성을 깨부쉈는데도 말이오. 그 론 경이 있는 검황성조차 황실에겐 그다지 쓸모가 없다는 듯이.”
“그저 황제가 하이란을 견제하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만 생각하기엔 론 경이 가진 힘이 너무 거대하오. 황실도 이미 준비된 것들이 있을 테니 하이란을 버리려고 한 것일 테지. 황실이 그 정도 준비가 되었는데, 지플이나 룬칸델은 어떨까 싶더군. 킨젤로는 직접 가진 힘을 보여주었고 말이오.”
라타는 그날 이후 쭉,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예감을 갖게 되었다.
계속 순수한 무인으로, 용병집단으로 살아가기엔 버거운 시대가 열렸다고 말이다. 론 하이란조차 필요 없다는 취급을 받는데, 귀신대라면 말할 것도 없을 터.
그렇기에 새로운 시대의 패권을 누가 잡게 될 것인지를 잘 선택하고, 그와 강력한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진 경이 장차 룬칸델의 패자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소. 그래서 경과 한패가 되고 싶어 찾아온 것이지. 이만하면 납득할만한 설명이 되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