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38)
제 444화
126화. 언젠가, 너희가 잊고 있을 때에, 예고 없는 재앙처럼(2)
날카롭고 쩌렁쩌렁한 음성이 어두운 밤하늘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음성에 담긴 기운에 일순 빗방울들은 추방자에게 닿지 못하고 둥글게 흩어졌다.
기사, 로사 룬칸델은 밖으로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으라…….
검의 정원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목소리였다.
집행기사는 물론이고 흑기사라 할지라도 로사를 그렇게 부를 수는 없었다.
꿈속인가 싶었다. 그의 근처를 지나치던 권속들과 수호기사들로서는 꿈이 아니라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풍경인 것이다.
‘날씨가 이상하고 흐리더라니…… 이런 일이 있으려는 징조였나.’
‘어째 안채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불안했다!’
스릉!
검을 뽑는 수호기사들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강하고 묵직한 기운을 미루어보아 분명 집행기사가 맞는데, 어째서 이런 짓을 저지르는지 알 길이 없었다.
자신들은 분명 상대가 되지 않을 터였다. 다만, 어차피 원내에 대기 중인 다른 집행기사나 기수가 나올 테니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었다.
추방자는 두 갈래로 날아든 수호기사들의 검을 어렵지 않게 쳐냈다.
단 일격에 수호기사들은 튕겨나가 젖은 잔디밭을 뒹굴었고, 추방자는 또 한 번 소리를 질렀다.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을 테지, 로사 룬칸델. 모습을 드러내라!”
안채 곳곳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기수들이 있었다.
“와…… 내 귀가 잘못된 줄 알았네?”
“저런 미친 인간은 처음 보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서재에 있던 뮤와 앤. 자매는 들고 있던 찻잔을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다. 그 앞에 앉아 있는 란, 뷔고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실력을 보아하니 진짜 집행기사다.”
“구형 갑옷, 오래전 가문에서 퇴출된 인물인가?”
란과 뷔고가 말하자 뮤의 목에 핏대가 솟았다.
“빌어먹을! 가문 기강이 대체 어떻게 되어먹고 있는 건지. 막내가 매번 사고를 치니, 이젠 아랫것들까지 난리네. 안 그래요, 오라버니들?”
디푸스와 메리 역시 다른 방에서 추방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허, 이게 뭔 일이야? 오라버니, 짐작 가는 것 있어?”
“없어. 그런데 왠지…… 막내와 관련이 있는 인물 같군.”
“막내? 갑옷을 보니 막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집행기사였던 인물인데. 그럴까?”
“그냥 직감이다.”
“하긴, 막내의 방식이긴 해. 이런 식으로 다짜고짜 가문을 뒤집어 놓는 건. 흠…… 일단 내려가 보자. 살해당하기 전에 집행기사쯤 되는 인물이 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런 짓을 벌였는지 한 번 들어봐야겠어. 막내와 정말 관계가 있는지도 보고.”
추방자는 다른 순찰자들과 합세해서 덤벼드는 수호기사들을 계속 밀어내고 있었다.
‘일인군단’이라 불리는 9성 기사의 위엄이 돋보이는 대목이긴 하나, 이곳은 검의 정원이었다.
그 많은 수호기사를 혼자 계속 상대할 수도 없을뿐더러 비상사태를 인지한 고위 기사들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추방자와 거의 비슷한 회색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정원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문의 집행기사들이었다.
그들은 갑작스런 초유의 사태에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추방자가 어떤 이유로 이런 짓을 벌이는지, 그가 어느 소속의 집행기사인지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최대한 빠르게 그를 제압해 가문의 주인들이 조용히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뿐.
크아아아-!
추방자의 포효에 근접해 있던 수호기사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게 추방자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수호기사들 사이로 열 명에 달하는 집행기사들의 칼날이 들어섰고, 그로서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처음 몇 개의 칼날은 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엇비슷하거나, 그보다 우위에 선 집행기사들은 순식간에 그의 검과 갑옷을 뚫어버렸다.
어지러운 아지랑이처럼, 오러로 빛나는 검들이 추방자의 구형 회색 갑옷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상완갑이 꿰뚫어지고, 흉갑이 베이고, 쇄갑이 으스러지고, 각갑이 터졌다.
피와 흙탕물이 마구잡이로 튀었으나 사나운 비는 그의 피가 붉은 흔적을 남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커헉……!”
추방자의 투구 사이로 한가득 핏물이 쏟아졌다.
이윽고 집행기사들은 중정 한가운데 추방자를 무릎 꿇릴 수 있었다.
푹, 푹!
집행기사들은 그가 더 이상 난동을 부리지 못하도록 검으로 추방자의 허벅지를 찔러 바닥에 고정시켰고, 그가 당당히 고개를 들지 못하게 등허리를 짓밟아 몸을 숙이게 만들었다.
그 모습이 꼭 젊은 사냥꾼들이 늙고 사나운 맹수를 포획해 전시해놓은 것 같았다.
추방자는 검이 허벅지와 무릎을 관통해 바닥에 꽂힐 때에도 비명 한 번 내지르지 않았다.
집행기사들의 발길질에 두 팔이 덜렁거리도록 부러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제압이 완벽히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결정권자의 처분뿐이었다.
흑해로 간 루나와 대륙 임무를 수행 중인 룬티아를 제외한 모든 기수들이 중정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집행기사들은 조슈아가 나오자 그가 추방자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투구를 베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메리가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멈춰라! 그가 투구를 혼자 벗을 수 있는 자비를 베풀도록.”
메리는 추방자가 저지른 반역 행위의 이유가 무엇이든, 스스로 투구를 벗을 수 있는 명예 정도는 지켜주는 게 옳다고 여겼다.
집행기사들은 조슈아가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야 메리의 명을 수행했다.
추방자가 부들부들 떨며 부러진 팔로 투구를 벗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고, 그사이 기수와 가문의 주요 인물들이 그에게 당도했다.
조르덴을 비롯한 원로들의 강철 마차도 중정으로 들어섰고, 투구를 벗은 추방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뭉개지고 일그러진 옛 집행기사의 얼굴이.
막 도착한 조르덴은 가슴이 갑갑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헛소리를 내뱉기 시작하는 순간, 자신의 입지에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장 그를 죽이자고 떠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르덴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가만히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름을 밝혀라.”
조슈아와 추방자의 눈동자가 부딪혔다.
추방자는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대신,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로사 룬칸델! 끝까지 나오지 않는군.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을 테지.”
“이름을 밝히라고 하였다.”
“네놈에게 밝힐 이름은 없다, 2기수. 우린 네놈의 기사가 될 기회조차 없이 로사에게 꺾이고 짓밟혔으니, 내 이름이 궁금하다면 네 어미에게 물어보아라.”
조슈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는 자신 때문에 옛 집행기사들이 로사에게 숙청당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푸흐흐, 그게 무슨 소리냐고? 설마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인가. 웃음을 참을 수가 없구나.”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이야기해라.”
“나와 내 동료들은 과거 가주를 모셨고, 1기수를 모셨었다. 그러나 2기수, 널 모실 수는 없었지. 로사 룬칸델이 우리가 네놈에게 적합하지 않은 검이라고 판단을 내린 결과였다. 네놈은 1기수처럼 우릴 휘어잡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루나와의 직접 비교는 언제나 조슈아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재료였다.
그러나 조슈아는 그 말에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 그게 억울하여 반역을 저지른 것이냐?”
“반역? 나는 그저 진실을 밝힐 뿐. 반역을 저지른 자들은 따로 있지. 이상하지 않나, 2기수. 흑표범이 직접 숙청했는데도 내가 지금껏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추방자가 힘겹게 고개를 돌려 조르덴과 원로들을 찾았다. 조르덴은 눈이 마주치자 그를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으나 가까스로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다.
“흑검회장, 조르덴 룬칸델. 저자가 나와 동료들 일부를 살렸다. 네 어미가 알지 못하게.”
그 말에 기수들이 조르덴에게 시선을 옮겼다.
기수 중 조슈아만이 조르덴이 아니라 진을 쳐다보았다.
‘네놈…… 짓이로구나.’
‘너의 룬칸델은 이토록 거짓과 배신으로 가득하군, 조슈아.’
두 사람의 생각이 교차되는 사이, 조르덴은 드디어 분노를 터뜨릴 수 있었다.
“감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더러운 반역자 놈이! 내가 널 살렸다고? 당시 가주 대행의 명에 따라 네놈들의 수급을 마지막까지 확인한 것이 바로 이 몸이다.”
“그래서 가짜 수급을 만들어 우릴 살렸지. 연기력이 아주 좋군, 흑검회장.”
“게다가 네놈들은, 2기수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적 행위를 저질러 숙청된 것이다. 죽을 때가 되니 없던 명예욕이 생겨 거짓을 꾸리는 것이냐?”
“거짓? 나는 내 발로 검의 정원을, 나의 죽음을 찾아왔다. 진실이 아니면 다른 무엇도 그 이유가 될 수는 없음이다.”
그 처절한 외침에 조르덴이 대답하려는 찰나.
“흑검회장의 말대로, 네놈이 배신자가 아니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조슈아가 말했다.
“그리고 가주 대행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가문을 위한 일이다. 더러운 배신자의 몇 마디가 온 룬칸델이 갖고 있는 그 믿음을 더럽힐 순 없다. 네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그건 진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스르릉, 흑검 카이너의 검은 칼날이 검집을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지껄여보아라. 들어주겠다.”
“언젠가.”
그렇게 유언을 시작한 추방자의 시선은 진을 향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잊고 있을 때에, 예고 없는 재앙처럼.”
추방자는 찢어진 입으로 희미한 미소를 지었고, 진은 그가 자신의 동료들을 죽이려 했던 사실을 잊기로 하였다.
“한 맺힌 영혼이 나타나 너희의 더러운 모습을 만천하에 알릴 것이다.”
스걱-!
‘고맙소, 12기수.’
흑검 카이너에 목이 베인 순간, 추방자는 생각했다.
마지막 남은 추방자, 루턴 페르만이 언젠가 12기수를 통해 복권되어 다시 이 땅을 밟을 날을. 억울하게 죽은 집행기사들의 넋이 돌아올 날을.
툭…….
추방자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체는 개들이 먹게 내버려두어라.”
조슈아가 그렇게 말하며 돌아서자 중정에 모였던 이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추방자의 최후를 지켜본 이들은, 모두 한 가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그는 배신자였을까?
배신과 의문과 죽음 한가운데, 진은 우뚝 서서 모두가 중정을 떠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품속에 준비해둔 한 송이 조화를 꺼내 추방자의 가슴에 얹었고, 부러진 그의 검을 회수했다.
언젠가 검의 정원에 꽂아주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