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37)
제 444화
126화. 언젠가, 너희가 잊고 있을 때에, 예고 없는 재앙처럼(1)
추방자와 낭인들이 티칸을 친 후 닷새가 지났다.
그런데 기사만 잔뜩 나올 뿐, 아직까지 12기수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 원로들은 나날이 증폭되는 불안감 속을 헤매는 중이었다.
도시 칼론의 어느 원로회 별장, 조르덴과 그의 원로들은 답답한 듯 어두운 표정을 한 채 둥근 탁자에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의 앞엔 최근 일어난 한 사건을 다룬 각국의 소식지가 한 뭉텅이 놓여 있었다.
티칸 자유도시,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습격당하다.
일부 시설과 기물이 파괴되었으나 인명 피해는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져…….
티칸 자유도시 수비대가 철인의 군대가 된 이유, 진 룬칸델에 대하여.
검황성 사건 당시에도 증명되었듯, 룬칸델 12기수는 테러 대응에 남다른 무언가가 있다.
12기수가 특별히 뛰어난 게 아니라 룬칸델의 기수라면 당연히 지니는 덕목인 것…….
부상자 12, 사망자 0! 테러범 전원 사살, 자유도시의 위엄.
검황성 테러 이후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 요즘 테러범들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테러범들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아…… 과연 12기수는 어떤 대응을 보여줄 것인가?
소식지 1면이 죄다 티칸 테러에 대한 내용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휴페스터는 물론이고 비먼트와 루테로 마법 연방 쪽의 일부 소식지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식지를 내려다보는 원로들 중 일부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모두가 한숨을 내쉬고 싶었으나, 격분해서 부들부들 몸이 떨릴 지경인 조르덴의 눈치를 보느라 참는 것이었다. 그나마 한숨이라도 내쉬는 건 고위 원로들만의 특권이었다.
“사망자가…… 단 한 명도 없다고……!”
조르덴이 앞에 놓인 소식지를 거칠게 움켜쥐며 소리쳤다. 벌겋게 핏발이 서 있는 두 눈동자에 음울한 분노가 가득했다.
“이게 가능키나 한 수치야!”
쾅!
조르덴의 주먹에 원형 탁자가 산산조각 부서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추방자들을 티칸에 보내기로 결정했을 때, 조르덴은 당연히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티칸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괴멸적인 수준의 민간 피해와 더불어 진의 동료 몇 사람의 목숨 정도는 앗을 줄 알았다.
추방자 둘과 최소 7성으로 구성된 이들이 테러를 자행한 것이니, 본래 그 정도 피해를 예상하는 건 전혀 지나침이 없는 일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깁니다, 원로장님. 아무리 못해도 민간인 몇 백은, 아니. 그것도 너무 적습니다. 최소 천 단위의 민간인 피해가 있었어야 정상입니다.”
“고정하십시오, 원로장님. 여기, 찬물 들이켜시고. 여봐라! 더 시원한 물 좀 가져와!”
“추방자들이 배신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이 대체 무엇 때문에 배신을 한단 말이오? 그 종자들의 목표는 복수요. 흑검회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자들인데, 설마 12기수를 원로장님보다 높게 평가했을 리는 없소.”
“하지만 배신이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결과가 나왔잖소? 게다가 이 기사들은 12기수가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린 정보를 토대로 나온 것이오. 추방자와 낭인들이 전원 사망했다는 것조차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티칸의 사망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 역시 거짓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12기수를 겪어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시오? 그 악마 같은 놈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을 절대 하지 않소. 작정하고 조사하면 뻔히 진실이 밝혀질 문제고, 이미 티칸의 피해는 각국의 다른 기관들이 검증을 하였소이다.”
“하, 참. 12기수. 저번엔 죽은 원로들의 목을 가져올 만큼 대담했던 작자가 아직 움직임이 없으니 괜히 더 불안하구려.”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원로들은 모두 조르덴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사건이 잘 덮어질 수도,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씨잇, 씻, 쇳소리 같은 조르덴의 거친 숨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간신히 분노를 가라앉히고 있는 것이다.
“……다들 걱정되는 마음은 알겠소. 12기수, 그 미친 작자가 지금은 잠자코 있으나. 이대로 그냥 넘어갈 리는 없소. 저번에 원로들의 목을 가져왔던 것처럼, 분명 보복을 할 것이오.”
조르덴이 입을 열자 원로들의 표정이 또 한 번 어두워졌다.
그중 일부는 내심 조르덴이 ‘감을 잃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호기롭게 12기수와 전쟁을 하겠다며 비장의 수를 꺼내는 듯하더니, 시작부터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실망스러울 수밖에.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원로장님.”
“저번에 가주 대행이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한 번만 더 실망시키면, 원로회를 잠정 폐쇄 시키겠다던…….”
“어허, 그런 부정 타는 말은 집어치우시오!”
그 말들에 조르덴은 이마를 짚었다.
“우선 흑검회를…….”
조르덴이 대답하려는 찰나, 복도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로장님, 큰일 났습니다!”
원로회 소속의 수호기사였다.
그의 다급한 태도와 일그러진 표정, 불안한 눈빛에서 조르덴과 원로들은 이런 직감에 휩싸여야만 했다.
아무래도 12기수가 제대로 보복을 시작한 것 같다고 말이다.
“무슨 일이냐, 차분히 말하라.”
애써 침착하게 묻는 조르덴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추방자가…… 검의 정원을 찾아왔습니다!”
수호기사의 대답에 원로들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탄식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당장…… 마차를 준비해라!”
* * *
12월, 겨울이 한창이건만 터무니없이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우중충하고 괴팍한 날씨에 검의 정원을 지키는 수호기사들은 일없이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서럽게 울고 있는 듯했다.
“한낮인데 밤 같군. 무슨 놈의 비가 이렇게 오는지.”
“이런 날은 괜히 우울하다니까. 끝나면 진하게 한 잔…….”
잡담을 나누던 문지기 수호기사들이 자세를 고치며 입을 닫았다. 저 멀리서부터 빛나는 회색 갑옷을 입은 기사가 다가오는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 회색빛 갑옷은 그가 가문의 법도를 집행하는 기사라는 사실을 상징했다.
검은 투구와 더불어 가문의 모든 수호기사들이 염원하고, 존경하는 계급.
척!
수호기사들이 바짝 군기가 든 모습으로 경례를 올렸다.
집행기사 역시 절도 있게 답해주었고, 검의 정원으로 통하는 대문이 열렸다.
수호기사들은 집행기사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경례한 손을 내리지 않았다.
“확실히, 집행기사부터는 일반 수호기사들과 분위기가 달라.”
“그런데 방금 지나간 분이 입고 계시던 건 구형 집행기사 갑옷이 아니었나? 생도 시절 교재에서 본 것 같은데.”
“그랬나? 잘 모르겠네. 자주 볼 일이 없으니…… 언젠가 우리도 저 갑옷을 입을 날이 오려나.”
문지기들은 그가 오래전 숙청당한 기사라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갑옷이 구형이라 할지라도, 설마 룬칸델 집행기사의 물건을 제작해 사칭을 저지르는 미친놈은 세상에 없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다른 곳도 아닌 휴페스터 칼론, 검의 정원에는 더더욱.
“아무나 입을 수 없는 갑옷이기에 우리가 이토록 존경을 표하는 것이지.”
철벅, 철벅, 철벅.
추방자의 발에 진흙과 물이 밟혔다.
유난히도 무겁게 젖은 망토가 꼭, 이곳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걸린 세월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12기수의 말이 옳았다.
로사의 권위에 흠집을 내고, 진실을 부르짖으며 장렬히 산화하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였다.
‘왜 그토록 간단한 생각을 하지 못했나, 그간.’
추방자들은 답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복수심은 ‘로사 룬칸델’을 향한 것이지, 룬칸델을 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검의 정원으로 들어가 자신이 지금껏 생존해 있음을 밝히면, 분명 로사는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문에 충성과 헌신을 바친 대가가 이 끔찍한 몰골과 숙청이었다는 사실을, 다른 기사들이 알게 된다면…….
충분히 룬칸델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문제였다.
치열하게 부정했지만, 추방자들은 숙청을 당한 이후에도 늘 룬칸델을 사랑해왔다. 누군가는 분명 뒤틀린 충심이라 비웃을 테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들이 가장 빛나던 시절은 분명 이 땅에 귀속되어 있는 것이다.
-12기수의 말대로,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는 맞군. 하지만 우리가 찾아가는 건, 로사 경뿐만이 아니라 룬칸델 전체를 위협에 빠뜨리는 일이오.
-그렇겠지.
-가문의 결속력은 약해질 것이고, 지플을 비롯한 거대 세력들에겐 기회가 될 터. 그걸 모르는 것이오?
-그게 당신들이 바라는 룬칸델의 모습인가?
-뭐라고?
-구린내를 숨기지 않으면 적들에게 잡아먹힐 만큼 더럽고 나약한 가문이, 당신들이 바라는 룬칸델은 아닐 것 같군. 어쨌건 선택은 당신들의 몫이다. 내게 죽을 것인지, 진실을 밝히러 갈 것인지.
문득 검의 정원을 찾기 전, 12기수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12기수가 조금만 더 빨리 태어났다면, 우린 그자의 기사가 되었을 것이다. 끝까지 명예를 지킬 수도 있었을 테지.’
무섭게 차오르는 아쉬움을 묻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자신들이 일구어낸 검의 정원을 음미하며 걸었다.
정원 사방에 꽂힌 셀 수 없이 많은 검들을 보며 잠시 걸음을 멈추기도 했고, 늙은 집사와 문사들의 아는 얼굴을 맞이했을 땐 속으로 그들의 이름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추방당하기 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한쪽으로 보수 공사가 한창인 광경이 보였다.
‘저게 12기수의 작품인가?’
그건 진이 ‘가주 선언’을 하며 박살을 낸 중앙 대련장의 모습이었다. 추방자는 잠시 그곳에 서서 그날의 전투가 얼마나 격렬하고 대단했는지를 상상해보았다.
갑옷 속으로 무심히 흘러드는 빗방울들이 차가웠다.
이윽고 다시 걷기 시작한 추방자의 발걸음이 멈춘 것은, 안채 바로 앞의 중정이었다.
우뚝 서서 안채 높은 곳을 올려다보고 있는 추방자를 향해 조금씩 시선이 모여들었다. 다들 그의 행동이 평범치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집행기사가 왜 저렇게 가만히 있는 것이지?’
‘요즘도 구형 갑옷을 착용하는 집행기사가 있었던가?’
지나치는 이들이 하나둘씩 의문을 갖는 와중.
추방자는 안채 위에 있을 한 사람을, 그토록 증오해온 사람을 향해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천둥같이 거대하고 깊은 울림을 가진 목소리로.
“기사, 로사 룬칸델은 밖으로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