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36)
제 444화
125화. 습격자들, 형제들(5)
“복수라. 당신들과 나 사이엔 원한이 없었다. 오늘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렇다면 당신들이 날 친 이유는, 원로회의 힘을 통해 복수를 실현하기 위함이란 뜻이겠지.”
진이 답하자 루턴의 시선이 탈라리스에게로 향했다. 옛정을 이용해 목숨을 구걸하고자 쳐다본 것은 아니었다.
“흐응, 왜 날 봐? 어차피 내가 없었어도 너흰 티칸을 어쩔 수 없었을걸. 그 정도도 계산하지 못할 만큼 감을 잃은 건 아니지?”
티칸을 습격한 이들은 약소국쯤은 멸망시킬 수도 있는 무위를 갖추고 있었다.
티칸도 퀴칸텔이 없었다면 큰 피해를 입었거나,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알고 있소. 우리도 은룡이 이곳에 있다는 얘긴 듣지 못했으니까. 우리의 검이 무뎌졌듯, 내 기억과 인식보다 원로회도 꽤 무능해진 것 같군. 이번 일은 죄다 사전 정보가 불일치하고, 변수가 가득했으니.”
“그런 변수 속에서도 반드시 맡은 바를 수행해내는 게 룬칸델의 집행기사들 아니던가?”
“그 말이 맞소, 탈라리스. 하지만 우린 이제 추방자일 뿐, 집행기사가 아니지. 어쨌거나 당신이 12기수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지긴 하는군.”
“왜 이상해? 사위 좀 도운 건데.”
시잇, 추방자들의 일그러진 입에서 기괴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언젠가 이리 허망하게 죽을 날이 오리라 예감은 했었소. 마지막에 옛 친구를 만난 것이 저주인지 축복인지는 모르겠군.”
“굳이 따지자면 축복에 가깝지. 넌 젊을 때도 가끔 이렇게 쓸데없이 감상적인 이야기를 했었고. 루턴, 어떻게 된 것인지나 좀 이야기해봐. 언젠가부터 소식이 없기에, 난 너희 중 일부가 흑기사가 된 줄 알았거든.”
탈라리스는 그들이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친구라고 할 것까진 아니어도, 나름 정이 쌓였던 이들이니 당연한 마음이었다.
진도 ‘집행기사’쯤 되는 인물들이 추방당한 사실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
열 개의 검은 투구를 제외하면, 집행기사는 일반적으로 룬칸델 소속 기사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위치였다.
‘반역을 저지른 것이라면 아무리 공로가 크다 한들 추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앗았을 터. 하지만 반역이나 배신을 제외하면 집행기사가 추방 이상의 징계를 받을 일도 없다.’
숙청.
그 말이 떠올랐다.
‘대충 알겠군.’
다시 진과 루턴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루턴은 꽤나 오랫동안 말없이 진을 쳐다보기만 했다. 자신들의 최후를 12기수가 장식하게 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시잇, 키. 또 새어나오는 웃음을 내뱉으며 루턴이 입을 열었다.
“12기수, 우린 그대가 태어나기 전부터 룬칸델의 기사이자, 가주의 검들이었소. 비록 검은 투구는 쓰지 못했으나 당시 집행기사들 중 최고에 가깝다 자부할 수준은 되었지.”
얼굴이 뭉개지고, 몸 곳곳에 끔찍한 상해를 입지 않았다면 루턴은 흑기사가 되었을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시론 룬칸델, 그분께서 흑해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 즈음. 우린 가주의 명에 따라 1기수 예하로 편입이 되었소.”
“루나 누님의?”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흰 고래, 백경이라는 이명답게 루나는 무리 짓지 않는 습성으로 유명했다.
“모두가 1기수야말로 차기 가주가 될 것이라 확신하던 시절이었지. 그런데 12기수, 그대가 태어날 무렵이었을 거요.”
1기수가 가주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루턴이 뒷말을 이었다. 얼굴이 죄다 뭉개져 있음에도, 진은 그가 무척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가문의 수호기사에서 집행기사로, 가주의 기사로, 그리고 1기수의 기사로…… 수십 년 세월 동안 우리는 이런 식으로 소속이 바뀌어 갔지.”
그렇다면 다음은 다른 기수의 기사가 되거나, 원로회에 소속되어 가문 집행기사로 지내는 게 옳은 순서였다.
하지만 루턴과 그의 조원들은 전혀 생각지 못한 미래를 맞이해야만 했다.
“2기수…….”
조슈아 룬칸델, 루턴이 그 이름을 말하며 잠시 말을 멈췄다.
“우린 그의 기사가 될 줄 알았소. 1기수가 왕좌를 포기하기 이전부터, 로사 경은 종종 2기수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낌새를 보여 왔으니.”
그때도 시론은 검의 정원보다 흑해에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가문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것은 로사의 몫이었다.
로사는 추방자들을 2기수의 기사로 기용하지 않았다.
당시 루턴의 조원들은 열다섯, 그건 곧 최상위급 집행기사가 열다섯이라는 뜻이었는데도 말이다.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듯, 우릴 그냥 버려버리더군.”
대화가 시작될 때 진이 예견한 것처럼 로사는 그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마치 루턴과 조원들을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사람들로 만들려는 듯, 로사는 그들의 모든 것을 없애버렸다.
본인의 목숨, 가족, 식솔들, 기르던 동물, 알고 지내던 주변인들까지.
루턴과 조원들의 무위가 대단했다곤 하나 믿던 칼에 찔리는 건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가문이 자신들을 버리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흑검회장의 도움으로 열다섯 중 네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었소. 이런 몰골이 되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러나 넷 중 하나는 얼마 못 가 죽었고, 하나는 몇 년 전 원로회의 일을 돕다 죽었소.”
“그래서 당신들 둘만 남은 것인가?”
“그렇소.”
평생을 룬칸델에 헌신했건만, 대체 이토록 잔인하고 비참하게 숙청당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추방자가 된 집행기사들은 평생 그 의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머니께선 당신들이 2기수가 다루기 어려운 검이라고 판단하신 모양이군.”
“……아마 그럴 거요. 그게 아니라면 우릴 숙청할 이유가 없거든.”
루턴과 조원들은 시론의 기사였던 시절에도, 그의 명 없이 탈라리스를 공격하곤 했던 인물들이었다. 탈라리스가 ‘과격한 짐승’ 같다고 평할 만큼 날뛰는 구석이 있던 것이다.
그렇기에 로사는 그들을 조슈아의 기사로 만들지 않았다.
또한 원로회 소속 가문 집행기사로 배정하지 않은 것은, 원로회가 필요 이상의 힘을 갖게 되는 걸 경계한 결과였다.
그들은 아직 기수가 되지 못한, 혹은 그 무렵 기수가 된 다른 형제들에게 충성을 바칠 기회조차 없이 숙청을 당해야만 했다.
물론 그들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납득할 수 없는 불합리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은 없었다. 상대는 로사 룬칸델이었으니까.
“흐응…… 루턴, 그 이야기에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이야.”
탈라리스가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그 지경이 되도록, 시론은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야? 로사 경이 너흴 명분도 없이 몰살하는 동안, 시론은 가만히만 있던 거냐?”
천천히, 루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대체 왜?”
“……당신이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닐 테지, 탈라리스.”
탈라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부터 건기의 사막보다도 감정이 메마른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30년 전엔 시론이 너흴 꽤나 아꼈었는데…… 그 지경이 되도록 정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1기수가 왕좌를 포기한 이후, 가주는 한동안 세상 모든 것이 실망스러운 듯 행동하셨소. 그 때문에 우리 따윈 더욱 안중에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당신도 우리 소식을 궁금해했던 적은 없잖소?”
“그건 당연히 너희 신변에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지. 룬칸델 내부의 일을 내가 어찌 알겠어? 너흴 살펴보는 일에 외인인 나와 시론이 비교되어서도 안 되고.”
“그 말은 맞소. 가주께서 살펴보지 않으시는데, 당신이 우리 소식을 알아볼 이유는 없지. 다만 우린 가주를 제외하면, 당신과 가장 가까웠소.”
멈칫하는 탈라리스를 보며 루턴이 뒷말을 이었다.
“물론, 원망하려고 꺼낸 이야기는 아니오.”
“그래, 잘 아네. 날 원망하면 안 되지. 살아남은 후 도움을 청하러 비궁에 찾아온 적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맞소. 우린 당신이 이 일에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니 찾아가지 않았소. 나와 조원들은 곁에 사람이 없는 삶을 살았다 보니 당신이 가장 가까웠지만, 그게 객관적으로 특별한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당신에게 우린 그저 지나간 인연이었을 것이고 말이오.”
탈라리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찾아왔다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너흴 도왔을 거다.
탈라리스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소.”
“그건 내가 정할 일이지. 난 아직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있거든.”
진이 말했다.
“아까 날 친 이유가 복수라고 말했는데, 그 대상은 내 어머니인가?”
“그렇소.”
“어째서 그렇게 되지?”
“흑검회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내게 명령을 내렸겠지. 그리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은 가주가 되기 위한 행동들이오.”
“조르덴 원로장이 조슈아를 꺾고 가주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정말로?”
진이 진심으로 의아한 눈빛을 하자 루턴이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의미가 없소. 우리에게 그것 말고 다른 수는 없으니까.”
“말하자면, 흑검회장을 통해 복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군. 말하는 걸 보니 그자가 당신들을 구해준 은혜로 움직이는 것 같지는 않고.”
“은혜? 조르덴이 원할 때마다 우릴 개처럼 이용한 것으로 그건 다 갚았지. 이 몰골을 만들지 않고 살려줬다면 조금 더 감사할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야.”
그야말로 추방된 집행기사들은 복수를 원료 삼아 움직이고 있었다.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 묻지.”
“무엇인가?”
“당신들은 흑검회장, 조르덴 룬칸델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그 사실을 알고 계시나?”
“모르오.”
“그렇겠지. 어머니가 알았다면 절대 지금껏 살아있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사실은, 당신들이 어머니에게 현실적인 복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군…… 조금 더 가치 있는 죽음을 제시해주겠다.”
“……가치 있는 죽음?”
“어차피 너흰 흑검회장이 가주가 되는 미래를 절대로 볼 수 없어. 이대로 내 손에 죽으면 그냥 끝이니, 너희 복수는 실현될 수 없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인가, 12기수.”
루턴이 고개를 들자 진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검의 정원으로 돌아가라. 가서 지엄한 어머니의 명령을 흑검회장 따위가 거슬렀다는 걸 알려. 어머니의 권력에 흠집을 내라. 그게 너희가 할 수 있는 가장 유의미한 복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