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35)
제 444화
125화. 습격자들, 형제들(4)
거미줄처럼 퍼지는 냉기가 살수를 빠른 속도로 옭아맸다. 그는 빠져나가려 했지만 탈라리스의 검을 피하느라 속수무책으로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큭……!”
채 몇 초도 되지 않아 살수는 길게 뻗은 만빙의 냉기 결정들에 포박되어 몸을 움직이지 못했고, 조금 더 지나자 얼음 속에서 겨우 눈동자만 굴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9성 무인을 이토록 쉽게 제압할 수 있는 건, 그녀가 탈라리스 엔도르마이기 때문이었다.
“흐응, 아주 보기 좋게 굳었네. 정리될 때까지 그 속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혹시라도 자살이나 자폭 같은 그런 어쭙잖은 짓은 할 생각 말고. 애초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겠지만.”
살수를 뒤로한 채 티칸 내부로 들어서며, 탈라리스는 다시 한 번 그를 어디서 보았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래, 30년쯤 전이었지. 시론을 만나러 갔던 날이었다.’
약 30년 전 어느 날, 탈라리스는 시론의 비밀 거처를 한 번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의 탈라리스가 시론을 찾는 건 단 한 가지 이유가 전부였다.
결투.
몇 번째 결투 신청이었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탈라리스는 시론에게 최소 일백 회 이상의 패배를 경험하고 있었으니까.
그날은 패배하고도 왜인지 평소보다도 훨씬 격하게 울분이 차올랐다.
때문에 차라리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결투가 끝난 뒤에도 계속 난동을 부렸었다.
시론의 비밀 거처를 부수고, 그에게 온갖 상말을 내뱉으며 그냥 한쪽이 죽을 때까지 계속 싸우자고 소리를 쳤었다.
‘으…… 오랜만에 떠올리니 흑역사도 그런 흑역사가 없군. 그때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긴 했다만.’
지난 천 년간 비궁이 룬칸델의 권력을 넘어선 적은 없으나, 비궁주가 룬칸델의 가주보다 더 높은 무위를 소유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탈라리스도 그걸 목표로 매일 시론에게 도전했다.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시론은 난동을 부리는 탈라리스에게 관용을 베풀었었다.
-탈라리스. 내게 승리하는 것을 목표하기보다, 차라리 비궁이 룬칸델을 넘어서는 걸 꿈꾸는 게 나을 것이다.
시론에게 탈라리스는 거의 유일한 벗이자 언젠가 만약, 자신이 ‘혼돈’에 잠식될 경우 가장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이니 죽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당시의 집행기사들 일부에게 탈라리스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시론을 향한 그녀의 불경한 태도는 물론이고, 그즈음 창궐하는 역병처럼 번진 둘 사이의 소문도 문제였다. 시론이 연정을 느껴서 탈라리스를 베지 못한다는 소문이었다.
‘아, 드디어 기억이 나는군. 루턴 페르만, 분명 그런 이름이었지.’
루턴 페르만.
그는 방금 탈라리스에게 당해 온몸이 냉기에 결박된 인물이자, 30년 전 젊은 나이로 집행기사 1진의 조장이었다.
루턴을 비롯한 당시의 집행기사들은 자신들이 탈라리스를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시론의 위명과 가문의 권위를 위한 길이라고 여긴 것이다.
당연히 시론은 탈라리스를 치라고 명령을 내린 적이 없으나, 치지 말라는 명령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게 루턴의 조에 속해 있던 집행기사 1진들이 탈라리스를 습격한 계기가 되었다.
‘다짜고짜 비궁에 쳐들어와 덤비기에, 죽도록 패서 보냈었지.’
그때도 루턴과 그의 조원들은 대부분 9성, 혹은 근처의 실력자였으나 탈라리스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특히 비궁 내에서라면 더더욱.
집행기사들을 패고, 제압하며 탈라리스는 그들의 과도한 충성심이 귀엽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론 같이 차가운 인간에게 이토록 뜨거운 부하들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었다.
즉, 루턴과 조원들이 저지른 무례가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는 뜻이다.
탈라리스는 집행기사들의 일탈을 시론에게 전하지 않았고, 그들은 매번 (다 같이 덤비는데도) 패배하면서도 주야장천 그녀에게 도전을 해왔다.
마치 시론에게 탈라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과격하고 순수하고 짐승 같은 녀석들, 탈라리스는 루턴과 그의 조원들을 그렇게 인식했었다.
그러다 보니 나름대로 정이 싹터 그중 몇 명과는 짧은 연애도 했다. 루턴도 그중 하나였고 말이다.
피식, 선명히 떠오르기 시작한 기억에 탈라리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직후에 굳은 표정으로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는 걸 보아하니 이름 없는 낭인처럼 살아온 것 같은데, 그렇게 충성스럽던 녀석이 왜 저런 꼴이 된 거지? 아마 섬을 친 다른 놈들도 추방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거야. 시론이 저랬을 것 같지는 않고.’
깔끔하게 삼족을 멸하면 멸했지, 얼굴을 저 지경으로 만드는 건 시론의 방식이 아니었다.
잊지 못할 만큼 좋았던 건 아니지만, 그리 싫지는 않았던 기억들인지라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궁금증이 일었다.
‘뭐가 됐든 룬칸델의 일이니 내가 간섭할 사안은 아니지. 다만, 가능하다면 저 명예 잃은 짐승들을 우리 사위가 흡수하면 좋겠는데.’
진이 룬칸델의 가주가 되든, 비궁의 안주인이 되든. 탈라리스가 보기에 진이 잘 흡수하기만 하면 추방자들은 상당한 전력이 되어줄 터였다.
추방자들은 꼭 전력으로 흡수하지 않더라도, 차후 원로회를 칠 때 중요한 명분이 될 수 있는 이들이었다.
티칸 내부는 얼핏 보기엔 아수라장이 된 것 같았다.
하늘은 만빙의 얼음과 무라칸의 영기로 어둡게 물들어 있었고, 그 아래로는 층층마다(티칸 자유도시는 탑 형태의 구조다) 오러와 마력 등이 뒤섞여 폭발을 일으키는 모습.
하지만 보기와 다르게 내부는 달리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비궁 최대의 세력이 더해진 데다 영토가 작고, 그 작은 영토를 날아서 순식간에 살펴볼 수 있는 용들이 있는 덕이었다.
무라칸과 퀴칸텔은 층 사이사이를 비행하며 미처 피하지 못한 민간인들을 챙겼다.
날뛰는 살수들은 진과 시리스, 비궁 7검, 토나 형제, 티칸의 동료들이 막아내고 있었다.
탈라리스는 만빙의 얼음을 타고 그 모든 층을 모두 빠르게 둘러보며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쪽에 힘을 실어주었다.
“사위, 내가 이자들의 정체를 알아내었…….”
진을 발견한 탈라리스가 그 옆에 다가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을 다 끝맺지 않고 멈추었는데, 그 이유는 진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살수들을 죽이는 진은 거의 악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살기와 독기가 어찌나 깊고 짙은지 탈라리스조차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이런 모습은 제 아비를 쏙 빼닮았군.’
젊은 시절, 동료들을 잃고 증오에 차 있던 시론이 일순 엿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보다 민감한 것 같았다. 아직 동료들 중 사상자가 발생했는지 확인된 사안은 없으니 말이다.
살수는 전원이 집행기사 출신 추방자는 아니지만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하지만 진은 그들을 낙엽이라도 쓸듯 손쉽게 베어버리고 있었다.
“이 찢어죽일 것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흠칫!
진이 홱 고개를 돌려 탈라리스를 바라보았다.
뒤늦게 그녀의 인기척을 느끼고 분노에 묻혔던 이성을 다시 붙잡아 꺼낸 것이다.
“죄송합니다, 탈라리스 님. 잘 듣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씀해주십시오.”
“녀석들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말을 했었다. 룬칸델 추방자들이더군.”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이런 수준의 용병들을 움직일 수 있는 단체는 한정적이니…….”
“흐응. 밖에서 내가 상대한 녀석을 포함해, 일부는 집행기사 출신일 것이다. 모조리 죽이기 전에, 티칸의 피해가 크지 않다면 한 번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내 기억 속엔 썩 나쁘지 않았던 놈들이라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진.
“그렇게 하겠습니다, 탈라리스 님.”
“방금까진 미친 악귀 같더니, 금방 냉정을 되찾는구나.”
그 말에 진은 민망한 듯 미소를 지었다.
“실수였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기는 했는데, 막상 직접 맞닥뜨리니 분노를 다스리기가 쉽지 않군요.”
만일 탈라리스가 부재중이었다면? 모트가 차원 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자신이 카시미르와 페트로로부터 곧장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면?
그런 가정들이 진을 분노케 만들고 있었다.
“오면서 살펴보니, 다행히 달리 큰 피해는 없는 것 같더구나. 일단 눈에 보이는 사상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민간인까지 포함해서 말씀이십니까?”
“그래. 건물이나 시설은 파손된 부분이 꽤나 많기는 했지만 말이다. 마저 제압하고 정확한 피해를 확인해 보거라. 또한 살수들은 추방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어쩌면 네 검이 될 수도 있는 이들이니, 작은 자비를 베푸는 것을 추천하마.”
“감사합니다, 탈라리스 님.”
“감사하면 얼른 내 딸애와 결혼을 해.”
진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꾸벅 숙였다.
비궁 속의 비궁에서 하룻밤 동안 이야기를 나눈 날, 진과 시리스는 탈라리스의 결혼 운운을 되도록 무시하기로 입을 맞춘 것이다.
[진.]비행 중 진을 발견한 퀴칸텔이 하강하며 그를 불렀다.
“퀴칸텔 님! 다들 무사한 겁니까?”
[저택 쪽은 아예 피해가 없다. 너와 무라칸, 비궁이 즉시 찾아와준 덕에 말이지.]그 말에 진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고, 퀴칸텔과 탈라리스는 눈짓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고맙군, 51대 비궁주.]“별말씀을. 선대 비궁주들과 종종 인연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리지요.”
이윽고 테러가 완벽하게 진압된 것은 진과 무라칸, 비궁 일행이 티칸에 도착하고 30분이 지난 다음이었다.
티칸을 습격한 살수는 총 일흔 명이었다. 처음에 토나 형제가 확인한 스무 명과 더불어 반대쪽에서 내부로 진입한 오십 명이 더 있었다.
그리고 그 규모를 확인한 탈라리스는 애초에 자신들이 오지 않았더라도 티칸이 그들에게 어찌될 일은 없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네 가문의 늙은이들은 퀴칸텔 님이 이곳에 없는 줄 알고 이 인원만 보낸 것 같구나.”
퀴칸텔이 없었다면, 그리고 진이 빠르게 지원을 오지 않았다면. 충분히 티칸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인원이었다.
진이 생포되어 저택으로 붙잡혀온 살수들을 내려다보았다.
만빙의 냉기에 묶여 있던 루턴 페르만과 또 다른 집행기사 출신 추방자 하나, 그리고 일반 살수 셋이 전부였다.
나머진 진과 동료들이 모조리 죽인 것이다.
진은 그중 일반 살수 셋을 보며 이렇게 물었다.
“너희도 룬칸델에서 추방당한 자들인가?”
“아니오.”
“입장이 반대였다면 나 또한 그랬을 터, 억울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스걱!
진은 가차 없이 그 셋의 목숨을 앗았다.
아까처럼 분노에 사로잡혀 검을 휘두른 것은 아니었다. 이 정도 각오도 없이 자신의 땅을 쳤을 리 없으니, 그들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판단이었을 뿐.
남은 건 집행기사 추방자 둘.
그들을 내려다보는 진의 시선이 싸늘했다.
“감히 추방자 신분으로 어떻게 이곳을 건드릴 생각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갈 지경이군. 원로들이 네놈들에게 대체 무엇을 약속했는지 말해보아라. 아니면, 그 늙은이들에게 가족이라도 인질로 잡힌 것인가?”
“가족들은 모두 살해당한 지 오래요. 우리가 추방된 바로 그날이었지. 왜 추방된 주제에 원로들의 명을 받고 있느냐 물었소, 12기수?”
루턴이 고개를 저으며 뒷말을 이었다.
“복수를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