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40)
제 444화
127화. 흑왕단으로(2)
“흐응, 내일 바로? 우리 딸이랑 조금 더 놀다 가지 그래.”
“어머니! 제가 어린애입니까? 왜 자꾸 마음대로 이상한 말을 하시…….”
시리스가 홱 칼눈을 뜨며 말하자 탈라리스가 헛기침을 했다. 어지간해서는 시리스가 이렇게까지 날카롭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흐음, 흠! 그냥 해본 말인데, 이러면 내가 좀 민망해지지 않겠어?”
“그리고 오늘 같은 일이 또 없으려면, 진은 하루라도 빨리 병력을 구하는 게 맞습니다. 매번 어머니가 티칸을 지켜줄 수는 없으니까요.”
“맞는 말씀입니다, 시리스 님.”
진이 대답하자 시리스의 눈썹이 묘하게 씰룩였다.
“그게 싫다는 뜻은 아니야. 어차피 우린 동맹이니 서로 지켜주는 것은 당연하지. 다만 어머니나 내가 항상 비궁에 대기하고 있는 건 아니니 다른 대책도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시리스의 말대로, 이번 일로 더욱 확실해졌다. 티칸을 보호할 세력을 최대한 빨리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항상 이번처럼 운이 좋을 순 없다.’
루턴과 추방자들의 습격에 기물과 시설을 제외하면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것은, 천운에 가까운 일이었다.
물론 진과 동료들이 늘 적들의 침입을 경계해온 결과이기도 하나. 탈라리스가 조금만 늦었거나, 부재중이었다면 이토록 완벽하게 방어할 순 없었을 터.
앞으로의 적들은 루턴처럼 이동 관문의 개방 가능 여부까지 계산해서 찾아올 게 분명했다.
‘룬칸델은 여전히 직접 공격은 하지 못할 테지만, 원로들처럼 외부 세력을 끌어다 날 공격하려는 놈들이 더 나오기 시작할 거다.’
게다가 킨젤로, 지플, 비먼트.
그나마 킨젤로는 계속 다소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니 갑자기 진과 척을 질 가능성은 낮다.
‘그 사실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나, 동료들의 안전이라는 측면에선 나쁘지 않아.’
반면 지플과 비먼트는 전혀 아니었다.
그들은 아무런 예고 없이 언제든 티칸을 칠 수 있었다. 티칸은 ‘자유도시’라는 이름으로 출범 후 오랜 시간 지켜온 중립이라는 가치를 사실상 내려놓았으니까.
‘특히 두 세력 중 비먼트는 티칸이 눈엣가시처럼 보이겠지.’
황제, 그와의 유쾌하지 않은 만남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에게 숨겨둔 힘이 있다는 걸 암시하며 동맹을 제안했고 진은 매정하게 거절했다.
게다가 티칸은 폐황자 카시미르의 도시이기도 한 만큼, 황제는 언제든 이곳을 칠 수 있었다.
‘룬칸델 내의 내 적들과 황제가 일시적인 동맹을 맺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추방자의 죽음 이후 며칠이 지났건만. 아직 원로회와 로사, 조슈아 사이에는 달리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목줄을 쥐고 있는 쪽은 어머니야. 어머니와 원로회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오가는 중이거나, 어머니가 원로회에 어떤 처분을 내릴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중일 거다.’
로사로서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원로회를 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오래전 집행기사를 숙청한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물론 오래전 ‘흑검회가 이적 행위를 저지른 집행기사들을 제대로 숙청하지 못했다’는 명분을 꺼낼 수 있으나, 가문 분위기상 그건 힘을 갖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아무 일 없이 넘어가기엔 너무나 큰 사안이었다.
명분 없는 숙청이었든, 아니든. 어쨌거나 수십 년 전 원로회가 가주 대행의 명령을 똑바로 수행하지 못한 셈이니까.
결국 로사는 어떤 식으로든 원로회에 벌을 내려야 했다.
그 벌이 너무 크다면 반발이 심할 것이고, 작다면 가주 대행의 권위가 꺾인다.
‘전자는 원로회가 조슈아와 완전히 갈라설 수도 있는 문제, 후자는 가문의 법도가 어긋나는 문제다.’
조르덴은 자신만의 야망이 있으나 표면상으로는 조슈아의 세력에 가까웠다.
그리고 로사는 그런 조슈아를 흑기사와 원로회를 동시에 장악한, 매우 출중한 차기 가주라는 이미지를 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12기수와 3기수라는 위협적인 경쟁자가 새로 등장하고 있으니, 원로회가 완전히 돌아서서 그 이미지를 잃는 건 뼈아픈 타격일 수밖에 없었다.
‘목줄은 어머니가 쥐고 있어도, 선택지는 원로회 쪽이 더 많다. 그 늙은이들은 디푸스 형님이나 메리, 룬티아 누님에게 붙을 수도 있고, 아예 룬칸델을 배신하고 외부 세력에 붙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이를테면, 이번 사태로 인해 검의 정원은 또 한 번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미친 듯이 빠르게 돌아가는 정세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
그리고 승리를 위해선, 아군의 안위가 언제나 최우선이었다.
“앞으로 비궁 7검 중 둘, 류와 히텐을 상주시키도록 하지.”
탈라리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시리스가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짝짝!
탈라리스는 둘 사이가 진전되었다는 마음에 박수를 쳐댔고, 루턴도 그녀의 눈치를 살피느라 따라 손뼉을 두들겼다.
작은 수인들도 다 같이 손뼉을 치자 무라칸까지 가세했는데, 진과 시리스만이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시리스 님, 생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 난 이만 좀 쉬어야겠군.”
시리스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탈라리스가 무라칸의 옆구리를 찔렀다.
“으흐응, 잘생긴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우리 사위가 나중에 다른 것이랑 결혼하면 큰일이 날 것 같지, 아무래도?”
“지금 꼬마를 협박하는 거냐?”
“꼭 그런 건 아니고. 아무튼, 내일이라. 흑왕단장이 만나주겠다던?”
“일단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흑왕단 측에 알아봐야 할 묘한 인물도 하나 있고요.”
“묘한 인물?”
“제피린이라는 신입 용병인데, 무라칸과 퀴칸텔 님은 그녀가 악마룡일 가능성이 높다더군요.”
마족으로 추정되는 킨젤로 단장과 명인, 귀신대 지하에 봉인된 스마리온 프로치, 다소 맛이 가서는 동맹을 제안했던 황제와 마인에 이어, 악마룡까지.
“시대가 달라지긴 했군. 내 젊은 시절엔 그런 이상한 것들이 설치고 다니질 않았는데 말이야. 게다가 네 최대 적인 2기수는 예언자인가 뭔가 하는 것을 달고 있다며? 말세야, 말세.”
탈라리스가 피곤한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는 최근까지 진이 얻은 여러 정보들을 대부분 전해들은 상태였다.
“그중, 스마리온 프로치에 대해서는 짐작이 가는 바가 좀 있긴 하군.”
“짐작 가는 바라고 하시면.”
“혼돈의 힘.”
“그게 무엇입니까?”
진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세상에 종종 나타나는 기이한 힘이다. 네 작은 누이, 요나 룬칸델에게 깃들어 있는 것처럼.”
-부당하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뭐가? 나만 널 지켜본 거? 아까도 말했지만, 네가 목욕하거나 볼일을 볼 땐…….
-그거 말고요. 누님은 지금껏 쭉 살인 인형 취급을 받으셨잖습니까. 그렇게 어릴 때부터. 그건 순혈 룬칸델이란 걸 감안해도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이라고요.
-그게 나빠?
-나쁩니다.
-혹시 막내는 살인을 안 해 봤어?
-그런 문제가 아니라.
-히히, 애초에 난 이렇게 태어났는걸. 그러니까 슬퍼할 필요 없어.
-그렇게 태어났다니 대체 그게 무슨…….
자연스레 예비 기수 시절 요나와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후로도 그녀는 자신이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힘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말해준 적이 없었다. 막내에게도 비밀이 있지 않느냐며 얼버무리기만 했을 뿐.
“요나 누님뿐만이 아니라 이블리아노가의 마르지엘라나 킨젤로의 부바르라는 작자도 특이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게 혼돈의 힘이라는 뜻입니까?”
“그래. 그건 선천적일 수도 있고, 후천적일 수도 있다. 나도 자세한 것은 모르나 확실한 것은, 그 힘의 소유자는 언제든 혼돈에 잠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잠식된다는 건, 설마.”
최하부에 봉인된 스마리온 프로치가 뇌리를 스쳤다.
“스마리온 프로치처럼 괴물이 된다는 뜻이야. 나 역시 젊은 시절 혼돈에 물들어 변한 사람들을 상대해본 적이 있지.”
그 대목에서 탈라리스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일순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탈라리스는 한동안 씁쓸하고 괴롭게 올라오는 그 기억들을 억누른 후 입을 열었다.
“반면 끝내 혼돈에 물들지 않고 생을 아름답게 마감한 사람들도 보았다. 내 경험에 빗대어보면, 괴물로 변화하는 것은 소유자의 의지나 그가 가진 혼돈의 크기와 관련이 있는 것 같더군.”
“탈라리스 님.”
“말하라.”
“혹시, 제 아버지께서도 그 혼돈이라는 힘과 관련이 있으십니까?”
그건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탈라리스도 본래 거기까지 말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이렇게 된 이상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 시론 역시 오랫동안 그 힘과 싸우고 있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라타 경에게 아버지와 스마리온 프로치가 생전에 나눈 대화를 듣고 유추했습니다.”
진은 급격히 마음이 심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론이 스마리온과 ‘같은 문제’를 갖고 있으리라는 것은, 이미 귀곡새성에서 스마리온을 처음 본 순간부터 예견한 문제였다.
그런데 설마 그것이 시론과 스마리온만의 문제가 아닐 줄이야.
‘요나 누님도, 아버지도. 언젠가 갑자기 괴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건가……!’
누이와 아버지가 그렇게 되는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그 어마어마한 능력을 미루어볼 때, 두 사람이 가진 혼돈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을 것 같았다.
부바르나 마르지엘라 따위완 궤를 달리할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론은 후천적, 요나는 선천적이라더군. 네 아비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아버지께서 흑해에 집착하는 이유도 그것과 관련이 있겠군요.”
“그래. 하지만 벗이라 할지라도 시론은 내게 자신의 혼돈에 관한 모든 걸 알려주지 않았으니, 더 이상은 해줄 이야기가 없구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스마리온 프로치는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혼돈은 한 번 사람을 잠식하면, 점점 더 커지기만 할 뿐이니 말이다.”
봉인된 스마리온의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기 전에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잘생긴 오빠는 혼돈의 힘에 대한 걸 잘 모르는 눈치인데? 오빠가 제일 잘 알아야 할 것 같은 문제인데 말이지. 이 힘이 왜 인세를 어지럽히는 건지, 어디에 근간을 두는 것인지. 아는 것 없어?”
모두의 시선이 무라칸에게로 향했다. 그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 모습이었다.
“몰라. 기억에서 사라진 건지. 원래 모르던 건지도 모르겠고. 꼴도 보기 싫지만…… 아무래도 내 누이를 만나서 한 번 물어볼 만한 문제인 것 같군.”
끙! 무라칸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며 뒷말을 이었다.
“꼬마, 흑왕단장인가 뭔가를 만나기 전에 그 말종에게 잠깐 들러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