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74)
제 444화
133화. 선택의 시간들(2)
독스 맥로란이 본 것은 수많은 인간들이었다. 정확히는 수많은 인간으로 형성된 일종의 ‘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높이가 족히 십여 걸음은 될 것 같았다.
탑을 이루고 있는 인간들은 기괴하게 구겨지고 접혀 커다란 벽돌 같은 모습이었다.
독스는 그간 피와 뼈와 살이 난자하는 수많은 전장을 경험했으나, 이렇게 인간으로 쌓아진 탑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흡…….
독스가 반사적으로 숨을 참았다. 끔찍한 시취와 부패의 독기에 폐가 썩어버릴 것 같았다. 또한 구역질이 나서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살아있다.’
일그러져 탑의 벽돌이 된 인간들.
그들은 모두 살아있었다.
벽돌의 형태를 이루기 위해 허리가 반대로 완전히 꺾이고, 목이 비틀리고, 온몸이 네모나게 구겨졌는데도 숨이 붙어 있었다.
씨익, 씩, 곳곳에서 탑의 인간들이 간신히 숨을 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호흡할 때마다 탑은 조금씩 부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눈동자.
수많은 눈동자들이 끔뻑거리고 있었다. 그저 초점 없이 눈꺼풀만 닫았다 여는 눈동자들도, 꼭 어떤 의도를 가진 듯 시선을 옮기는 눈동자들도 있었다.
후자는 모두 독스를 쳐다보려고 애쓰는 모양새였다.
‘고대의 어둠계 마법의 일종인가? 아니면 강신降神을 위한 의식? 어느 쪽이든…….’
휴페스터에서는, 룬칸델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물론 이곳은 ‘사형장’이었다. 탑이 된 인간들은 아마 대부분 중범죄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럼에도 이런 일은 없어야 했다.
독스는 죄수들이 어떻게 죽든 상관하지 않고 싶으나, 이건 무와 투쟁을 숭상하는 땅을 더럽히는 일이었다.
-회복되는 즉시 휴페스터 남부 지방의 도시 리칼튼, 그곳으로 향해라. 그리고 리칼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진상을 조사해와.
12기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흑기사인 나조차 리칼튼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12기수는 나보다 문서 접근 권한이 떨어지는데, 이곳을 무슨 수로 알아낸 것이지?’
12기수는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정보력을 갖고 있다.
당연히 그런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실제로는 티칸의 정보력이 아니라 엠마가 알려준 이야기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에 가깝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건 별로 중요치 않은 문제다. 독스가 생각하는 정말 중요한 문제는, ‘가문 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였다.
‘그리고 이 시설을 소유한 자와, 그자의 목적.’
가주, 가주 대행, 흑검회장, 최상위 기수.
이만한 규모의 시설을 아무도 모르게 가질 수 있는 건 그 정도가 전부였다. 시론과 루나는 애초에 논외고, 흑검회장은 최근 입지를 잃었다.
‘흑검회장의 소유였다면 원로회의 누군가는 이 시설을 폭로해 실리를 챙겼을 것이다.’
남은 건 가주 대행과 최상위 기수들.
‘로사 경과 2기수의 작품일 가능성이 가장 높아…….’
3, 4기수는 이런 짓을 할 위인이 되지 못했다. 룬티아는 얼마 전까지 세상사를 다 포기한 사람처럼 지냈고, 디푸스는 메리 때문에라도 할 수가 없었다.
반면 로사와 조슈아는 달랐다. 무엇보다 리칼튼은 조슈아에게 귀속된 땅이었다.
‘1기수가 왕좌를 포기한 후, 로사 경은 가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2기수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과정에 1기수의 주변인들을 모두 죽이고, 포섭한 건 흑기사들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였다.
‘12기수가 선택 의식에서 바리사다를 골랐을 때, 가주 대행과 2기수가 저주에 능한 마법사들과 접촉한 정황이 있었다는 이야길 해준 선배님도 계셨었지. 단지 정황일 뿐이었다곤 하지만.’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선배가 그 이야길 한 후 얼마 안 가 임무 중 부상을 당해 은퇴를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순진했다. 그건 결코 일반적인 부상이 아니었을 터, 독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2기수에게 돌아가야 한다. 직접 이곳이 정말 그의 것인지를 확인하고, 가주께 보고를…….’
독스가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가하하학, 하하하학-!
돌연 인간 탑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퍼졌다. 탑의 벽돌이 된 인간들이 내는 목소리였다. 독스는 클로를 꺼낼 준비를 하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아하하하!”
이어 여인의 폭소가 들려왔다. 독스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이 시설의 관리자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도각, 도각.
여인이 인간 탑들 사이를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예언자였다.
“자아, 어리석은 침입자를 위한 문제 하나.”
예언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짙은 그림자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체구가 그리 크지 않고 상당히 젊은 느낌이었다.
“여기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독스는 대답하지 않고 여인을 노려보았다. 무방비하게 느껴지는데도, 어째서인지. 그쪽으로 클로를 뻗을 수가 없었다. 맹수를 만난 초식동물처럼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룬칸델의 흑기사가.
“이 멍청한 자식!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로군요. 그렇다면 다음 문제!”
손바닥을 펴는 예언자.
후우웅……!
그 위로 검은 기운이 뭉쳤다. 솔더렛의 힘, 영기가 예언자의 손바닥을 타고 퍼지고 있었다.
“여긴 누구의 것일까?”
예언자는 씨익 미소를 지었고, 독스는 둔기로 뒤통수를 가격당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영기를 보니, 예언자가 조슈아보다는 진과 가까운 존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솔더렛의 계약자, 진 룬칸델의 권속이랍니다. 그러니 룬칸델의 흑기사께서는, 허락 없이 이곳을 찾아온 대가를 치러야겠어요.”
“……나는 12기수의 명을 받아 이곳에 왔다.”
“아하하,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 주인이 또 짓궂은 장난을 친 모양이로군. 어쨌거나 그냥 보내줄 수는 없어요. 얌전히 사로잡히도록 해. 주인에게 확인해보도록 하지. 저항하면 죽일 거야.”
가하학, 하하하학! 인간 탑들이 예언자에게 맞장구를 치듯 웃음을 터뜨렸다.
몸이 평소와 같지 않았다.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어서 진에게 진 빚을 정리하기 위해 리칼튼을 찾은 것이다.
‘지금 상태로 싸워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탈출해야 한다.
판단을 내리자마자 뒤로 돌아섰다. 예언자는 독스가 몸을 움직이자마자 실망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쯧, 이러면 재미가 없잖아.”
예언자가 손을 뻗자 보랏빛 광선이 쏘아졌다. 독스는 자신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그 보랏빛 광선을 보자마자 흑왕산채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이 힘은, 제피린. 그 괴물이 사용한 것과 거의 유사하다!’
오싹, 등허리가 서늘해졌다. 무인으로 살며 그날처럼 허무한 패배를 맞이한 적은 없던 것이다.
재차 보랏빛 광선들이 독스의 온몸을 파고들었다. 대부분은 피하거나 쳐낼 수 있었으나, 몇 줄기는 놓치고 말았다.
하필 놓친 광선들의 위치가 좋지 않았다. 심장과 목, 확정된 죽음.
어째서인지 죽음이 목전에 다다르자 떠오르는 얼굴은, 룬칸델의 전우들이 아니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부르려는 찰나.
“독스, 정신 차려라!”
콰가각-!
누군가 독스의 심장과 목으로 날아든 광선을 쳐내고 있었다.
* * *
“……이상입니다, 폐하.”
황성.
라츠가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황제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그토록 많은 인원을 가이파 군도로 보냈건만, 돌아온 것은 라츠를 포함해 진이 일부러 증인으로 남긴 다섯 명이 고작이었다.
그 다섯조차 모두 성치 못한 몸으로 돌아왔다. 라츠 역시 사지의 힘줄이 끊겨 이제는 특임대 조장으로서 살아갈 수 없었다. 일반적인 거동조차 불가능해졌으니 말이다.
진과 달리, 프로치 남매는 그리 원한이 없더라도 적이라면 최대한 비참하게 만드는 일에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대용병 아멜라가 죽은 게 아쉽긴 하지만…… 후후, 꽤나 수확이 많군.”
라츠의 보고가 끝나자 황제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황제가 말하는 ‘수확’이란 다름이 아니었다.
우선은 지플의 생체 골렘과 마신석.
‘지플의 생체 골렘 기술은 과연 우리의 마인화보다 뛰어난 효능을 가졌군. 계약자가 아닌데도 신의 권능을 이용하는 정도라니.’
부르르, 전율에 몸이 떨렸다. 세계제일가, 지플이 가진 힘은 늘 이렇게 황제에게 경외감을 품어주고는 했다.
“마신석이라, 뮤론 지플은 필시 그 마신석이라는 물건을 이용해 부활했을 테지!”
황제가 일어서며 감탄하듯 말했다.
진이 예비 기수일 때부터, 아니. 정확히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 사물의 이름이 무엇인지가 얼마나 궁금했던가, 그 대단한 지플이 그토록 염원해온 돌의 이름이!
“예, 폐하. 정황상 산드라 지플의 초재생과, 뮤론의 부활은 마신석에 의한 현상인 듯 보였습니다.”
“필시 대가가 따르기는 할 터. 또한 마인화보다 분명 강하나, 아직 대량 생산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황제가 생각하는 두 번째 수확은 진과 무라칸에 대한 정보였다.
“진 룬칸델.”
황제가 진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비록 첫 만남이 실망스럽긴 했으나, 황제는 진이 가진 저력마저 무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언젠가 최고 권력자들의 싸움에서 ‘우정’ 따윌 찾는 인간은 자연스레 도태되리라는 확신이 있었으나.
방금 라츠에게 보고받은 진과 무라칸의 무위는, 어쩌면 장차 ‘시론’과 같은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박한 가능성이긴 하지만 말이다.
‘시론 룬칸델이나 백경 같은 부류들 특유의 자신감인가? 지플에 대한 모든 내용이 내게 보고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라츠를 굳이 살려서 보낸 이유가 무엇인가, 진 룬칸델.’
도발인가?
아니면, 이따위 정보는 그리 중요치도 않다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황제는 진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느낌에 불쾌감이 치밀었다.
피식, 이내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는 황제.
‘뭐…… 어차피 내 불쾌감 따윈, 곧 그대가 느낄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황제의 입가에 비소가 걸렸다.
검황성.
더디게 복구되고 있는 하이란의 본가가, 다시 한 번 무너질 때. 진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문득 궁금해진 것이다.
하이란은 검황성 테러 사건 이후 홀로 떨어진 섬처럼 고립된 상태였다.
지플은 하이란을 끊임없이 압박했고, 황실은 그들을 막아주지 않았으며, 그 어느 때보다 검황의 위엄이 필요한 순간이건만 론은 날이 갈수록 대외 활동을 줄여가고 있었다.
이대로 하이란이 몰락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마저 돌았고, 황제는 그 소문을 현실로 만들 의지가 있었다.
“그 강철 같은 사내가 과연 우정을 얼마나 소중히 지킬지, 기대가 되는군.”
황제는 혼잣말하며 생각을 정리했으나, 그는 지플이 최근 하이란을 필요 이상으로 강력하게 압박하는 이유가 바로 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라츠.”
“예, 폐하.”
“새 임무를 내리겠다. 몸이 변화하는 즉시, 론 경의 동향을 살펴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