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73)
제 444화
133화. 선택의 시간들(1)
지플 마탑의 본대와 본가의 지원군이 도착했을 때, 가이파 군도에 남아있는 사람은 고작 열다섯이 전부였다.
지플에 다섯, 비먼트에 다섯, 킨젤로에 다섯.
나머지는 모두 뷔고와 그의 기사들, 프로치 남매가 죽인 것이다.
이미 전력과 전의를 모두 상실한 3세력의 일원들이 룬칸델과 프로치 남매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뷔고는 그 과정에 산드라 지플을 생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무라칸과 진이 그냥 돌아갔는데’ 자신이 그녀를 생포해서는 안 된다는, 아주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그건 가문의 수호신과, 비록 대외적 위계는 자신보다 아래여도 실질적 서열은 훨씬 높은 기수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뷔고 룬칸델이라고 했던가? 꺄하하, 날 잡고 싶어 분명 욕심이 났을 텐데, 꽤 똑똑한 판단을 내렸지.”
산드라가 키득거리며 앞에 놓인 과실주를 들이켰다.
그녀는 함선 코젝의 선장실 안에 있었다. 구출지원대로 편성된 다른 순혈 지플들은 그녀가 선장실을 차지하자 자연스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생포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뷔고는 오늘 죽었을 테니까. 흐음, 그렇게 됐으면 우리 진 씨가 슬퍼했으려나? 그다지 친하지 않은 듯 보이기는 했는데.”
“후우.”
산드라의 건너편에 앉은 노인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플의 2등 집사장으로 ‘헤도’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인물이었다.
헤도는 세계제일 마법명가의 집사장이라는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근육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비대한 근육들이 꿈틀대는 모양새가 그의 몹시 언짢은 기분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가씨, 진 룬칸델이 떠난 다음에라도 제대로 반격을 하셨어야 합니다.”
“그런가?”
마냥 신이 난 듯 생글거리는 산드라의 태도에 헤도는 속이 다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뷔고는 몰라도, 프로치 남매는 죽으면 우리 진 씨가 확실히 슬퍼했을 거라구, 헤도. 그 정도는 생각해야지. 나랑 진 씨는 사랑하는 사이란 말이야.”
머리를 짚는 헤도.
산드라가 단단히 미친 아가씨라는 건 옛적부터 이미 누구보다도 잘 알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랑이라니? 연애라니?
‘심지어 상대는 하필 룬칸델의 12기수, 이 무슨 하늘의 장난인가.’
이제껏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갑자기 진을 사랑하기로 한 이유가 무엇이든, 산드라는 앞으로도 절대 그 마음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헤도가 그간 봐온 산드라 지플은 그런 인물이었다. 완전히 맛이 간 꼬마, 끔찍할 만큼 타협이 안 되는 인간!
평범한 사랑 놀음, 한때의 연애 감정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심란한 마음을 억누르는 게 어려웠다.
“……그리고 아가씨, 그 손. 정말 그대로 내버려둘 겁니까?”
“응.”
“회복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왜 내버려두겠다는 겁니까?”
“앞으로 난 매일 잘린 오른팔을 볼 때마다 그이와의 만남을 기념할 수 있잖아.”
“아가씨는 오른손잡이십니다. 모든 것을 평생 오른손 위주로 해오셨…….”
“앞으론 왼손으로 먹으면 되지.”
“분명, 불편할, 겁니다. 아주, 많이.”
분노를 다스리느라 말이 뚝뚝 끊길 지경이었다.
“꺄하핫, 괜찮아. 사랑을 위해서라면!”
치익!
헤도가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쭈우욱 빨아들이자 한 개비가 도화선처럼 통째로 타버렸고 파아, 내뱉으니 구름 같은 연기가 선장실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렇게 다섯 개비를 순식간에 없애버리고 나서야 소리치고 악을 쓰고 싶은 마음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헤도가 머리를 빗어넘기며 산드라와 눈을 맞췄다.
“……그래요, 좋습니다. 다 알겠단 말입니다. 그런데 기술 유출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진 룬칸델이 가져간 아가씨의 오른팔은 물론이고, 시공간 장치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전자는 아직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산드라가 일반 회복이 아닌, 시간의 권능을 이용한 초재생만 시도해도 봉인된 오른팔은 다시 돌아올 테니까.
‘하지만 아가씨는 회복 가능한 시간이 초과될 때까지 팔을 돌리지 않을 거다.’
후자, ‘시공간 장치’에는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장치가 되어있기는 하나.
헤도는 그런 기술을 그다지 믿지 않는 부류였다. 확실한 방지책을 마련해뒀으니, 절대 유출될 리 없다고 떠들어대던 원로와 기술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응, 그렇지. 하지만 헤도.”
“말씀하십시오, 아가씨.”
“그렇게라도 해야 내 애인이 우리 가문하고 경쟁, 아니. 경쟁 비슷한 것이라도 하지 않겠어?”
산드라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뒷말을 이었다.
“우리 진 씨와 우리 가문은 말 그대로 계란과 바위 정도의 격차가 있잖아. 엄청나게 단단한 계란이라 해도. 그러니까 그 정도는 기회를 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아아, 그런 깊은 뜻이 있으셨군요.”
포기했다는 듯 헤도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산드라는 그 모습이 재밌다는 듯 한참 동안 웃음을 터뜨렸다.
“헤도는 나 이해해줄 거지?”
이윽고 웃음을 멈춘 산드라가 헤도를 보며 말했다. 헤도는 잠시 뜸을 들이다 이렇게 대답했고 말이다.
“……예, 물론입니다. 일단 가주께는 제가 최대한 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헤도밖에 없다구. 흐흐.”
* * *
수인들의 땅, 킨젤로의 본회.
“크아아악! 끄아아악! 괴롭다, 너무 괴로워! 미쳐버릴 것 같다고! 끼아악!”
부바르 가스톤은 벌써 며칠째 고통을 호소하며 악을 쓰고 있었다. 몸을 비틀고, 돼지 멱 따는 듯한 비명을 내지를 때마다 기묘하게 부푼 뱃살이 출렁거렸다.
“진정제 더 가져와, 어서!”
“차라리 날 죽여어어어!”
간신히 부바르를 붙잡고 있는 의료진과 수인들은 진땀을 쏟았다.
베락트와 마르지엘라, 차가운 조가 멀찍이 떨어져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대업이 코앞이건만. 어찌 이렇게까지 악재가 겹치는지……!”
조가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닥쳐라, 조. 안 그래도 답답해 죽겠는데 네놈의 짜증나는 목소릴 들으니 더 기분이 불쾌해졌다.”
“죄송합니다, 베락트 님.”
“닥치라고 하였다. 한 마디도 하지 말라고. 잡아먹히고 싶지 않으면.”
조는 속으로 욕설을 한가득 내뱉으며 홱 고개를 돌려버렸다.
악재.
조의 말대로 최근 킨젤로는 악재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검황성 테러 당시엔 단장이 예상보다 너무 많은 힘을 사용한 탓에 앓아누웠고, 그것도 모자라 제피린이 혼자 마음대로 날뛰어 또 한 번 단장의 몸에 무리가 갔다.
그리고 이번엔 부바르였다.
비록 마르지엘라 정도를 제외하면 킨젤로에서도 거의 모두가 혐오하긴 하지만, 부바르 가스톤은 분명 대업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부바르가 저렇게까지 괴로워하고 있는 이유는 아멜라와의 ‘융합’ 때문이었다.
융합이 해제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기에 부바르의 영혼과 혼돈에 타격이 있던 것이다.
단장이 멀쩡한 상태라면 금방 다스려줬겠지만, 지금은 진정제를 놓는 게 고작이었다.
킨젤로는 아멜라를 회유하기 위해 자신들이 그 어떤 세력보다도 ‘혼돈’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어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기에 킨젤로의 최고 전사들은 가이파 군도를 갈 때 부바르가 가진 혼돈의 일부를 가지고 갔다. 그의 조각품을 이용한 방법을 통해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멜라는 혼돈이 서로 융합될 수 있고, 그로 인한 증폭으로 더욱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매우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랜 시간 동안 홀로 찾아 헤맨 혼돈의 단서를 얻은 것만 같았다. 아멜라는 그때부터 아예 다른 세력과는 협상을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부바르의 혼돈을 통해 누군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내 사람이 되면, 혼돈에 대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알려주겠노라고…… 그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믿음이 갔었다.
“단장이 그 성치 않은 몸으로 직접 아멜라라는 인간에게 메시지까지 전했소. 협상이 끝난 다음엔 그래도 귀찮게 한 대가는 받아야겠다며 우리 전사들을 죽여야겠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그것까지 감내하기로 하였지.”
까드드득, 까득, 화가 나서 미치겠다는 듯 베락트는 계속 이를 갈았다.
반대편 치료실에선 가이파 군도에서 살아 돌아온 다섯 명의 백랑족, 적호족 전사들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아멜라는 사망했고, 전사들은 몰살당했으며, 살아남은 것들은 똥오줌도 못 가릴 만큼 미쳤고, 부바르는 저 모양이 되었소! 우린 건진 게 아무것도 없는 걸 넘어, 극심한 타격만 입었다고.”
그 모든 악재의 중심에, 진 룬칸델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게 좋을지. 베락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듣던 마르지엘라도 드물게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베락트 아저씨. 저도 사실 진 경이 이렇게까지 비협조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어요.”
“……내게 미안할 것은 없소, 마르지엘라! 다만 너무 답답하기에 이야기를 하는 것이오. 단장이 계속 위험해지고 있으니…… 뭔가 변화가 필요하지 않겠소?”
베락트가 앞에 놓인 지도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지도엔 여러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킨젤로와 룬칸델, 지플, 비먼트를 상징하는 말들이 어지러이 늘어져 있었다. 작전 지도인 것이다.
베락트가 지도 위, 말들이 모인 지점을 가리키며 뒷말을 이었다.
“만약, 여기서도 진 룬칸델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또 훼방을 놓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오?”
그곳은 진이 가이파 군도에서 예상한, ‘아멜라보다 더 큰 건’이 걸려 있는 위치였다.
“그때는…….”
마르지엘라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때는,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도록 할게요. 베락트 아저씨. 진 경이 과연 우리와 함께하기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말이에요.”
“맞소, 그렇게 고민할 필요는 있지.”
“부디 진 경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으면 좋겠네요. 계속 방해한다면, 정말로 적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죠.”
“흠흠!”
마르지엘라가 이렇게까지 차분하게 나올 줄은 몰랐기에, 베락트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민망한 마음을 드러냈다.
사실 마르지엘라가 무조건 자기 말이 맞다며 불쾌하게 우겼어도 베락트로서는 달리 도리가 없던 것이다.
“뭐, 아마 모르긴 할 거요. 알았다면 아멜라가 아니라 거길 먼저 찾아갔을 테니까.”
“그건 그래요, 베락트 아저씨.”
“그나저나 우리 부단장이 저 꼴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쉽군…… 부바르가 저토록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무척 좋아했을 텐데 말이오.”
“맞아요, 무척 좋아했을 거예요. 하지만 베락트 아저씨도 아시죠? 부바르 씨는 우리의 친구랍니다.”
* * *
한편.
룬칸델의 흑기사, 독스 맥로란은 휴페스터 남부 지방의 리칼튼에 잠입해 진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리칼튼의 사형장 지하를 확인하고 있다가, 한 가지 이상하고도 끔찍한 현상을 발견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