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72)
제 444화
132화. 몰살, 그리고 이상한…….(7)
털썩, 미도르가 앞으로 쓰러졌다. 이제 지플 측에 남은 인원은 뮤론과 산드라, 그리고 일곱 명의 원로가 전부였다.
“마탑주……!”
“미도르 경!”
원로들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이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제는 숨겨진 비밀 병기도, 믿을 만한 수단도 남지 않았다.
뒤가 없었다. 맞서 싸워도, 싸우지 않아도 죽음이라는 미래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것이 옳은 일이건만, 원로들은 도무지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검은 투구 너머 안광을 빛내고 있는 진을 보고만 있어도 공포심에 온몸이 짓눌리는 듯했다.
단지 기분이 아니었다. 실제로 진이 방출하고 있는 기운을 견디느라 원로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뮤론 지플.’
진이 뮤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때야 뮤론은 정신을 되찾은 듯했다. 두려움에 의미 없이 중얼거리던 말을 멈췄고, 눈동자는 초점을 찾았다.
‘네 역겨운 상판을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진이 그렇게 생각하며 분노를 다스렸다. 뮤론이 콜론에서 저지른 악행들을 떠올리니 절로 이가 갈렸으나 그건 놈에게 절대로 보여줘선 안 될 모습이었다.
뮤론이 성대를 끊어둔 홍인들의 일상은 여전히 침묵으로 가득했다. 죽은 가족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킥…….
뮤론이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참, 창피한 모습을 보여버렸군. 두들겨 맞아 겁먹은 개처럼 질질 짜고 굳어버렸었잖아.]방금까지 공포에 질려 울고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뮤론의 눈동자는 어느새 광기에 젖은 모습이었다.
[이렇게까지 대단한 무인이 되어 있을 줄 몰랐다, 진 룬칸델. 그때는 네놈들이 다 같이 덤벼도 날 상대할 수 없었는데 말이야.]진은 계속 대답하지 않고 한 걸음씩 뮤론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과거 뮤론이 했던 한 가지 말을 떠올리며 말이다.
-날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진 룬칸델, 너도 투구에 가려서 보이진 않지만…… 꽤 괜찮은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은데. 넌 나와 같은 부류야. 싸움을 좋아하지.
콜론에서 한창 전투를 하던 중 뮤론이 내뱉은 말.
‘그때 그렇게 말했던 건 뮤론, 네놈이 나를 내려다보고 인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진은 그때부터 이미 뮤론 지플이라는 인간을 통찰하고 있었다.
순혈 지플이면서 매일 술독에 빠져 살고, ‘마탑의 광인’이라 불리다가 좌천되고,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행위로 자신을 표현한 인물.
그 모든 행동은 ‘열등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지플의 가주가 될 수 없다는 실망감, 더 나은 형제들에게 느낀 모멸과 질투, 자신은 진짜배기로서 위명을 떨칠 수 없다는 씁쓸한 확신.
위명을 올릴 수 없다면 악명으로 빛나고 싶다.
그것이 뮤론이라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었다. 열등감을 남들로부터 감추고, 자신으로부터 표출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인정 욕구의 괴물.
뮤론 지플을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말은 없었다. 그렇기에 뮤론은 늘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회자되길 바랐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타인을 ‘인정해주고자’ 했다.
타인을 인정하면, 그건 바로 자신의 덕목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상대가 멋지고 훌륭할수록 그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빛나는 인간을 인정해줄 때의 자신이야말로 가장 대단하고 짜릿한 모습으로 느껴졌으니까.
모두가 무시하는 미도르를 인정해서 어릴 적부터 그의 맹목적인 신임을 얻은 것도, 진에게 넌 나와 같은 부류야, 라고 말한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었다.
[자, 이제 날 죽일 건가? 아니면 고문? 산 채로 요리해서 네놈이 살려준 홍인 벌레들에게 먹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징벌이겠군.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라, 이번에도 승자는 네놈이니…….]그 모든 것은 뮤론에게 형벌이 될 수 없었다.
아무리 잔인하게 죽여도, 아무리 괴롭게 고문해도 뮤론은 결국 혼자만의 승리를 거머쥘 것이다.
자신이 끝내 진의 마음을 지배해냈다고 생각할 것이다. 진이 자신을 증오하도록 통제했다고 믿을 것이다.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일부러 정신이 돌아온 뮤론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 티카라고 했던가. 우리 쇼를 망쳤던 그 쥐새끼 같은 계집은 살아 있나? 그것만 아니었어도 그 상황이 조금 더 풍부해졌…….]뮤론이 말을 멈췄다.
초점을 되찾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눈동자는 급격히 떨리기 시작했고 말이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그냥 지나쳤기 때문이었다.
진이 자신을.
[……어딜 가는 거냐, 진 룬칸델?]어차피 이제 지플은 죽음의 가치를 잃었다.
부활이라는 수단이 있는 이상, 대부분의 상황에서 죽음은 지플을 두렵게 만들 수가 없었다.
특히 뮤론 같은 부류는 더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진은 그에게 가장 효과적인 형벌을 골랐다.
자존심.
볼품없는 자기 자신을 겹겹이 치장하고 있던 거짓을 벗겨내는 것.
[어딜 가는 거냐, 대답해라아아아!]뮤론을 열 걸음쯤 지나친 뒤 피식, 터져 나오는 실소를 참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뮤론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채 미친 사람처럼 악을 써댔다.
[멈춰, 멈춰, 멈추란 말이다!]치이잉!
뮤론의 눈동자에 시퍼런 불꽃이 맺혔다.
콜론에서도 사용했던 지플의 비전 마법, 청화의 마안.
그건 예비 기수였던 그때도 진을 어쩌지 못한 마법이었다. 테스의 진짜 푸른 불꽃에 밀려 곧장 사그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뮤론은 진이 테스를 소환한 걸 보며 이렇게 생각했었다. 정녕 저 핏덩이가 테스의 선택을 받아 시대를 거머쥘 마법사가 된단 말인가, 이 뮤론도 감히 꿈꾸지 못하는 최고의 마법사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머릿속에서 무언가 펑, 터지는 것만 같았다. 뒷골을 찌르는 수치심과 열등감에 당장이라도 죽어버리고 싶었다.
치이이익……!
뮤론의 시선을 따라, 진의 등에 청화의 마안이 푸른 불길을 일으켰다.
그러나 마안의 불꽃은 영기 갑옷에 자그마한 그을음 하나 남기지 못하고 계속 힘없이 꺼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영기 갑옷은 강화된 브라다만테의 일부고, 브라다만테엔 테스의 일부가 담겨 있다.
따라서 뮤론의 마안 따윈 진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어둠계 마법을 제외하면,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절기임에도 불구하고.
[타, 죽어, 타 죽어라, 아니면 날 죽여……! 멈추라고!]열등감의 민낯이란 이토록 추한 것이다.
이 상황을, 뮤론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다 낯부끄러워 눈을 뜨지 못할 지경이었다. 방금까지 이어졌던 난리에 다들 혼이 나간 와중에도 뮤론의 추함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는 부끄러움을 넘어 애잔함과 동정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 끔찍한 초라함에 절로 혀를 차고 있었다.
푸시싯, 쉬잇……!
끝내 뮤론이 펼친 청화의 마안은 진의 영기 갑옷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마력이 바닥날 때까지, 역류가 시작될 때까지 퍼부었는데도.
산발을 한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뮤론은 눈의 실핏줄이 다 터진 채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붉어진 시야에 보이는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위엄을 드러내고 있는 흑룡.
그리고 무라칸을 경외하고, 위시하고 있는 황실의 대원들과 몇 안 남은 지플의 원로들, 킨젤로의 수인들, 룬칸델의 기사들이 보였다.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그냥 지나쳐간 사내의 강철 같은 뒷모습이 보였다.
그게 뮤론에겐 하나의 상징처럼 다가왔다. 4대 세력 모두가 진을 우러러보고 있는 듯한…….
‘네놈은 시대를…… 이미, 거머쥐었단 말이냐……!’
카학!
별안간 뮤론이 피를 토하며 허리를 꺾었다. 마력 역류가 시작된 것이다.
커헉, 꺽, 핏덩이가 쉴 새 없이 목구멍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칵, 나, 날…… 꺼억, 큭, 돌아보란…… 말이다. 허헉, 무시하지 마, 우월한…… 척, 고상한 척, 컥, 그렇게……! 커헉!]푹!
뮤론은 무언가 차갑고 날카로운 것이 자신의 등을 관통하는 감각을 느꼈다.
단검이었다. 이제 막 회복을 끝낸 산드라 지플이 내지른.
“아이, 진짜! 어쩜 이렇게 질척거릴 수가 있어? 뮤론 오라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애인한테!”
산드라가 단검을 뽑으며 말했다.
뮤론은 산드라가 자신을 찌른 것에 충격을 받지 않았다. 이제 곧 숨이 멎을 걸 알면서도, 산드라가 아니라 계속 진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제발 날 쳐다봐라.
진 룬칸델, 날 인정해줘라. 그건 네게 어려운 일이 아니잖나…….
이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그렇게 소리칠 수 없었다.
뮤론은 그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과 굴욕 속에서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진은 그의 숨이 완전히 멎은 걸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산드라는 단검에 묻은 제 오라버니의 피를 휙휙 털어내며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미안해요, 진 룬칸델. 우리 오라버니가 좀 그렇죠? 그나저나 우리의 기념비적인 첫 데이트를 방해한 서자 놈도 제 손으로 죽이고 싶었는데, 제 몫을 가로채면 어떻게 해요?”
“……너는 진짜로 미친 것 같군. 방금 죽은 네 오라버니와 달리.”
“아무리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지만 지킬 건 지켜야 한다구요. 다음부터는 이러지 않기.”
이어 산드라가 잘려나가 허전해진 오른팔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오른팔이라…….”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속으로 혼자 계산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딱 적당한 것 같아요.”
“뭐가 적당하다는 거지?”
“내 모든 걸 가져가기엔 아직 너무 이른 감이 있거든요. 오른팔 정도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군요. 우린 이제 연애 첫날이니까.”
오싹, 소름이 돋았다.
“잘 쓰도록 하지. 좋은 곳에.”
“그러도록 하세요. 그런데 우리, 다음엔 언제 만날 수 있나요?”
“글쎄, 되도록 볼 일 없으면 하는군.”
“부부는 자주 만나야죠.”
무의미한 대화를 이어갈 필요는 없었다.
진은 그녀의 마지막 말을 무시하며 라타와 페이에게 시선을 줬고, 뷔고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프로치 남매는 즉시 명령을 받기 위해 진에게 붙었고, 뷔고는 움찔하며 눈치를 살폈다.
혹시 막내가 무라칸이 당장 꺼지라고 말한 걸 잊었느냐며, 왜 아직 여기 서 있냐고 타박을 할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라타 경, 페이. 뒷정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비먼트와 킨젤로에 각각 다섯 정도의 목격자만 남기고 모두 사살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주군.”
“예!”
“그리고 뷔고 형님.”
“어, 어. 막내야.”
“혹시 모르니 형님께서도 손을 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뷔고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이 자신의 위엄을 깎지 않는 선에서 부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돌아가거든 검의 정원에서 한 번 뵙도록 하죠.”
진이 무라칸의 등에 올라타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