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91)
제 444화
137화. 모두 좋은 계획들을 갖고 있었으나(3)
한 박자 늦게 하늘을 뒤돌아본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런 미친…….”
반사적으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지플의 깃발 아래 소속되지 않았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백 척이 넘는 거대 함선은 어둡고 드넓은 새벽하늘에 가득 찬 종양처럼 보였다.
함선들이 별들을 가리고 있어 깨끗한 밤하늘 특유의 부드러움은 온데간데없이, 음울한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할 부분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환상 결계 때문에 가까워 보였으나, 실제로는 일행과 함대의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는 것.
둘째는 불빛을 밝히고 있는 함선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함선들은 구동되지 않은 채 단지 하늘에 정박한 상태였다.
몇 초쯤, 세 사람은 홀린 듯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거울.’
진은 곧장 콜론의 신물을 떠올렸다.
‘저 많은 함선을 구동시키려면 최소 7, 8성급 이상의 마법사가 수만 명은 필요하다. 함선의 힘을 최대로 끌어내려면 그 이상이고.’
무한한 마력을 제공하는 아티팩트, 거울이 있다면 그렇게 많은 마법사는 필요하지 않을 터.
예비 기수 시절, 콜론에서 거울을 얻어두지 않았다면 지금 함선을 보며 훨씬 큰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거울이 아니어도 생체 골렘과 마신석이라는 수단들이 남아 있었다. 죽은 이들을 되살려 양산함을 운용하게 만드는 건 이미 가이파 군도에서 확인된 바였다.
물론 아직 지플의 마신석은 완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까?
‘마신석이 완성되고, 양산함들이 본격적으로 운용될 때. 정육면체까지 같이 사용된다면…….’
룬칸델은, 아니. 세계는 끝이다.
마신석의 완성 시점이 언제일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신석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탈출에 더 신경 써야겠군. 그리고…… 함선 설계도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설계도가 있어야 양산함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함선의 약점은 무엇인지, 제작에 필요한 최중요 자원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설계도였다.
‘또한 산드라 지플의 오른팔과 시공간 장치 역시 설계도와 공유되는 지점들이 있을 거다. 전부 마신석의 힘을 이용하고 있을 테니, 연구에도 도움이 될 거다.’
마신석의 핵심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니, 새삼 이곳이 지플의 본진이라는 긴장감에 몸과 정신이 각성하는 듯했다.
무라칸이 거칠게 침을 뱉었다.
“퉷! 하여간 미친 지플 놈들, 언제 저런 걸 만들어서 짱박아 둔 거야? 얼추 백 척이라, 백 척…… 음, 숨결 한 번에 하나씩이니까 백 번이면 어떻게 되기는 하겠네.”
내용과 달리 말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묻어났다. 이번만큼은 무라칸도 제대로 충격을 받은 것이다.
“빌어먹을.”
디푸스가 씹어뱉듯 입을 열었다.
함대를 본 순간,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문이…… 지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단 한 번도 믿어 의심한 적이 없었다. 언젠가는 룬칸델이 지플을 넘어서 세계의 진정한 패자가 되는 날이 오리라고.
그러나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비행 함대를 마주하고 있으니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심지어 함대는 이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었다. 소타 사막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도 함대를 숨겨두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룬칸델로 태어나 비로소 오늘에서야 적의 실체를 본 기분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래도 금방 좌절감을 밀어내며 정신을 붙잡았다. 한 가지 사실이 떠오른 덕이었다.
‘지플은 저런 함대를 갖고도 룬칸델을. 아버지의 룬칸델을 치지 못했다.’
진은 시론에게 직접 들어 알고 있지만, 디푸스 또한 언젠가부터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아버지, 시론 룬칸델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버지는 어떤 식으로든 머지않은 미래에 가문에서 사라지실 거다…… 그렇게 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백에 대비해야 한다. 어머니가 조슈아를 편애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테지, 납득할 수는 없지만.’
디푸스의 시선이 진에게 닿았다. 가만히 서 있는 진에게서 검의 정원을 쑥대밭으로 만들던 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마검.
옛 룬칸델의 유산.
지플의 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힘을 되찾아야 했다.
‘막내의 힘과 능력이 절실하다.’
마검뿐인가, 방금은 솔더렛의 권능을 이용해 단숨에 2마탑의 결계와 방어 마법을 파괴했으며 명왕검도 있었다.
하루빨리 가문을 정화해야 했다.
결심한 듯, 디푸스가 뒤돌아섰다.
“그래, 막내 네 말대로…… 내가 가문을 위해 목숨을 거는 건 고작 결계 때문이 아니겠군.”
“오, 디푸스. 지금 당장 한 몸 불살라서 저것들 다 부술 생각이냐?”
“저 비행 함선들을 부수고 산화하는 게 근본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자원적인 타격도 무의미하진 않겠지만, 설계도를 확보하는 게 먼저겠군요. 우리도 따라 만들든지, 약점을 파악하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앞으로 싸움이라도 될 것 같으니 말입니다.”
좌절을 밀어낸 다음엔 특유의 근성이 디푸스의 심장에서 요동쳐댔다. 이제는 형제들이 아니라, 이를 악물고 지플로부터 투쟁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게 곧 가주 자리를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나, 불필요한 싸움은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어 보였다.
‘따라 만든다…….’
진은 디푸스가 방금 한 말에서 그 부분을 곱씹었다.
그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생각은 아니다. 생체 골렘은 몰라도, 시공간 장치와 비행 함선은 가능하다면 무조건 제작하는 게 좋은 물건들이었다.
그 모든 건 마법 공학과 연구에 근거하는 만큼, 룬칸델과 휴페스터는 루테로 마법 연방을 조금도 따라갈 수가 없기에 큰 기대를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불현듯.
진은 라프라로사를 떠나기 직전 즈음, 형제 탄텔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우리의 시간이 멈춘 이후, 절대로 그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여긴 우리가 살던 라프라로사를 그대로 재현해놨지만, 사실은 일종의 저승 같은 곳이지.
-그럼 오히려 바깥이 더 궁금할 수도 있지 않나?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나, 형제. 또한 추억해봐야 그곳엔 우리가 사랑했던 형제들이 아무도 없지. 다만! 나는 투신 형제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뭔데?
-바깥은 벌써 반만년이나 흘렀으니, 어쩌면 우릴 꺼내줄 수 있는 마법이나 장치가 개발됐을지도 모른다더라고. 그래서 말인데, 괜찮다면. 형제가 좀 알아봐 줬으면 해.
그 대화가 떠오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우린 타 종족처럼 마법사라는 개념이 없었어, 흐흐. 대신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이들은 모두 대장장이가 되었다, 나처럼.
오투왕 보라스가 진에게 새 ‘어금니’를 심어주며 했던 말.
당시 진은 어금니를 통해 ‘기억 전송 마법’을 겪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명왕족이 이룩한 마법 문명은 현재와 비교해도 뛰어난 구석이 있던 것이다.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잠입복 아래로 단단한 광심장이 만져졌다. 광심장은 투신 반의 피로 형성한 것이지만, 사람의 몸에 이식하는 게 아니라면 다른 형태로도 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예술가가 난데없이 강렬한 영감의 바다에 노출된 듯.
진의 머릿속엔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명왕족의 기술력을 통해, 광심장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비행 함선을 만들 수 있다면.’
그저 허황된 꿈에 불과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형제들을 직접 만나봐야겠어, 세 번째 라프라로사행을 준비해야겠군. 그리고 형제들을, 다시 이 세상으로 꺼낼 수 있는 방법도…….’
검은빛 부르기의 수호자 형태가 아닌, 진짜 형제들을 다시 살아있는 세계로 불러내는 것.
그건 처음 라프라로사를 다녀온 이후부터 쭉 진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다. 그것만이 그간 형제들에게 받은 것을 되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었고, 또한 형제로서 함께하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이었다.
‘정육면체의 원리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나, 부활한 망자도 소환하는 물건이다. 제대로 연구하고 분석해보면, 형제들을 다시 부르는 일에도 도움이 될지도 몰라.’
지플의 첨단 기술과 백여 척으로 이루어진 비행 함대를 보고도, 이런 진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문득 감사해지는 진이었다.
“다시 조슈아를 따라가도록 하죠. 결계를 무시할 수 있는 수단이 있던 것처럼, 놈은 설계도의 위치도 정확히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도 결계를 이렇게 뚫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테니, 빠르게 도착할수록 놈의 허를 찌르는 셈일 것 같군요.”
은밀하고 빠르게, 백야의 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백야의 탑은 뒤에 떠 있는 함대와 달리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하얀 밤, 그런 이름에 꼭 어울리는 모습을 한 탑.
한참을 달려 꽤 가까워졌는데도, 어째서인지 일행은 백야의 탑 근처에 추가적인 경계 마법이나 결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진은 당연히 탑 근처에 추가 함정과 마법이 존재하리라 생각했다.
그중엔 영검으로도 마냥 쉽게 해제할 수 없는 종류도 포함되어 있을 줄 알았건만, 탑과 고작 몇 백 걸음이 떨어진 거리까지 닿아도 아무것도 발동하지 않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아까 그 결계가 전부였다고?”
“꼭 누군가 일부러 결계와 경계 마법이 발동되는 걸 다 차단해놓은 것 같군요. 경계를 서는 마법사들도 보이지 않고, 순찰자조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꼬마 놈이 결계를 푼 이후부터, 이상하리만치 허술한 느낌이기는 했지. 흠.”
“……설마, 함정인가?”
디푸스의 말에 진의 눈동자가 가늘어졌고, 그 순간.
우르르, 콰가가강……!
일행이 서 있는 자리가 진동하며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이 난 것처럼.
그건 일행의 발밑에서 어떤 함정이 발동되었거나, 결계가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백야의 탑 일대가 전부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행은 이게 무엇에서 비롯된 진동인지, 즉각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오러……!?’
엄청난 규모의 전투가 펼쳐졌을 때, 혹은. 초월적인 무인들이 과격하게 기운을 드러낼 때 일어나곤 하는 현상.
진원지는, 백야의 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