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96)
제 444화
138화. 백야의 탑지기(3)
폭풍 같은 검기가 망령대원들의 보호막을 긁어댔다.
망령대원들은 설마 헤도가 이렇게까지 자신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싸울 줄 몰랐다.
‘헤도가 협조나 합공을 해주길 바란 건 아니지만, 이건 완전히 적들을 대하는 태도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안광을 희번덕이며 다시 베일을 휘두르는 헤도는 계속 망령대의 안전을 보장할 생각이 없는 눈치였다.
무라칸이 펼친 검은 장막 아래로 번개가 친 듯 번쩍, 섬광이 번졌다. 조슈아의 흑검 카이너가 쏟아내고 있는 빛이었다.
룬칸델 제6결전기, 전광.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저 어마어마한 육체에 타격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이 되었다.
최소 결전기와 비기, 혹은 어떤 깨달음으로 얻은 붉은 검기 같은 특수한 공격이 아니라면 오히려 허점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카이너에 응축되어 있던 오러가 폭발하며 깨진 흑요석처럼 날카로운 파편을 퍼뜨렸다.
수천 개의 파편들은 뇌기가 분출될 때처럼 강렬한 소음을 일으켰고, 조각마다 머금고 있는 눈부신 빛이 놀랍도록 빠르게 꺼졌다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카이너가 변화무쌍한 궤적을 남기며 헤도에게로 쇄도했다. 난반사된 빛처럼 불규칙하게 퍼진 검기들이 일순 헤도의 거구를 가렸다.
‘결전기 전광의 형태를 알고 있다. 바르톤 비체나가 그랬던 것처럼.’
눈으로 헤도의 움직임을 추적하던 진이 생각한 것처럼, 그는 이미 룬칸델의 결전기를 여러 차례 경험한 바가 있었다. 그렇기에 능숙하게 전광의 진행 경로를 예측해 보법을 밟았다.
헤도가 발을 뗄 때마다 땅이 울리고 귀가 먹먹해졌다. 단지 회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와중에도 기운을 펼쳐 룬칸델들을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파치직-!
전광이 와해되며 다시금 헤도의 거구가 드러났다.
비록 대부분 피하거나 흘렸다곤 하나 가문 2기수의 결전기를 받아내고도 생채기 하나 없는 모습에 일행은 이제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모두 냉정을 되찾은 것이다. 그들은 룬칸델의 기수와 흑기사였다. 상황이 얼마나 절망스럽든, 검가의 최전선에 선 이들은 늘 돌파구를 찾아내고는 했다.
다음은 디푸스의 검이었다.
천장에 닿을 듯이 길어진 대검 볼가르의 검신이 낙하하고 있었다. 제3결전기, 이름 그대로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무수한 검기가 헤도의 영역을 잠식하는 모습.
헤도의 몸이 흐릿해졌다.
전광이 그랬듯 유성우에 가려 흐려진 것이 아니었다. 단지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유성우가 쏟아지는 지점을 탈출했을 뿐.
소리를 초월하는 속도.
헤도가 서 있던 자리에서부터 충격파가 번지며 날카로운 폭발음이 일었다. 다음 순간 헤도가 서 있는 곳은, 무라칸의 날개 아래.
진의 바로 앞이었다.
갑작스레 눈앞에 벽이 생긴 듯했다.
디푸스는 유성우를 허공에 뿌린 셈이 되었으나 함부로 오러를 회수할 수 없어 한 박자 늦게 자세를 다잡았고, 제인은 헤도의 속도를 쫓지 못했다.
[꼬마!]무라칸이 매처럼 하강해 진을 지키려 했으나, 이미 헤도는 바닥까지 늘어뜨린 장검을 진을 향해 올려치고 있었다.
피하기엔 늦었다.
“그건 조금 위험한 느낌을 주는 검이로군, 12기수.”
“큭!”
받아치기는 했으나 마검 비기 업화를 위해 오러와 마력을 집중시키던 터라, 제대로 된 힘을 낼 수 없었다. 디푸스가 함부로 유성우에 쓴 오러를 회수하지 않은 것처럼 역류의 위험이 있었다.
영기 갑옷을 발동시켜 충격을 완화시켰는데도 헤도와 검을 맞부딪치자 전신의 뼈마디가 작열하는 고통이 일었다.
후속타로 이어진 참격도 올려치기였다. 진은 옆으로 몸을 틀어 그 검을 피할 수 있었고, 그사이 당도한 무라칸이 헤도의 몸통에 숨결을 토했다.
하지만 헤도는 어렵지 않게 검은 숨결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이번에도 그 숨결은 헤도의 뒤에 있던 망령대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중 한 사람은 결국 육두문자를 내뱉었지만 장내 곳곳이 터지고 부서지는 굉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팔랑…….
진의 복면이 반으로 갈라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헤도의 두 번째 올려치기는 애초부터 진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복면을 벗기려는 목적이었다.
그는 잠시 진의 얼굴을 살피며 이렇게 말했다.
“참 잘생기기는 했군. 아가씨가 오른팔을 포기하면서까지 기념할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복잡한 심정이 담긴 ‘아가씨가 오른팔을’ 부터는 낮게 웅얼거려 잘 들리지 않았다.
“싸우다 말고 무슨 헛소리냐!”
조슈아가 핏발 선 눈으로 소리쳤다. 그가 헤도 쪽으로 돌진한 궤적에 잔상이 남았고, 흑검 카이너는 제4결전기 낙화를 펼칠 오러가 준비되어 있었다.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마음에 발끈해서 마구잡이로 돌진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막내가 마검 비기를 펼칠 수 있는 시간을.
조금 위험한 느낌을 주는 검. 조슈아는 헤도가 방금 한 말을 주목하고 있었다.
진이 업화로 단 한 번만 빈틈을 만들어주면, 자신과 다른 룬칸델들, 무라칸이 헤도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을 터였다.
끝장을 내지는 못하더라도 부상을 입히고 도주로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일 그래도 역부족이라면 그 힘을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조슈아는 그런 생각으로 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디푸스와 제인도 비슷한 마음으로 헤도를 향해 달렸다.
‘막내가 업화를 펼치면 전력을 쏟는다……!’
그러나 망령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업화의 위력을 경험하지 못했으나 룬칸델들이 어떤 계획으로 움직이는지는 뻔히 알아볼 수 있었다.
콰아아아-!
무라칸은 헤도와 망령대들을 향해 숨결과 영기 송곳을 난사했다. 송곳은 이제 천장뿐만이 아니라 바닥에서도 치솟아댔고, 공기 중에 퍼진 오러는 계속 결전기로 치환되며 헤도를 압박했다.
난무하는 결전기의 현란한 빛들에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지경이었다. 진만이 무라칸의 보호를 받으며 다시금 업화를 준비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
마력과 오러를 갈무리하며, 진은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헤도라면, 전투를 이런 식으로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분하지만.
벌써 두 번쯤, 헤도는 분명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냈었다. 어쩌면 죽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묘하게 적극적이지 않은 느낌이란 말이지. 대체 왜?’
지금도 헤도는 충분히 저지선을 뚫을 수 있었다.
단지 여흥을 즐기거나 싸움 그 자체를 향유하려는 의도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싸웠을 테고, 생사혈전의 긴장감을 숭배하는 부류라면 자신들은 부족한 상대였다.
행동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근거가 따르는 법이다.
그리고 상대의 목적을 알고, 이용할 수 있다면. 싸움은 반드시 수월해지기 마련이었다.
‘날 죽이지 않고 생포해서 마신석의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그것도 앞뒤가 맞지 않아. 그저 강자의 변덕인 건가?’
깊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헤도에게 덤벼든 형제들이 계속 튕겨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업화가 완성되었다.
검신에 담긴 청화는 한층 더 짙어졌고, 영기 갑옷이 해제되며 진하게 빛나는 룬 문자들이 불꽃을 일으키고 있었다.
순식간에, 진은 불이 되었다.
그로부터 번진 불이 해일처럼 번져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청화는 내부를 통째로 잠식했는데도 아군들은 덮치지 않았다.
‘이게 12기수가 이룬 성취라고? 검의 정원을 홀로 반파한 힘이 바로 이것인가……!’
망령대들은 즉시 공격을 거두고 방어에 모든 마력을 집중시켰다. 몸 상태가 최고라 할지라도 네 사람의 망령대는 진의 업화를 온전히 막아낼 수 없었다.
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러날 곳 없이 사방이 막다른 벽이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룬칸델들과 무라칸까지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헤도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전원 최소 전투가 불가할 정도의 치명상. 혹은 사망이다!’
이미 헤도가 오기 전부터 조슈아 일행과 격전을 치른 탓에 망령대는 상당한 체력적 부담을 안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룬칸델과 헤도의 공격을 동시에 받아내고 있었으니, 제아무리 망령대라 할지라도 생존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군.’
밀려드는 청화를 걷어내며, 헤도는 처음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다른 기수들과 흑기사의 검은 그가 알던 룬칸델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었고, 소문만 무성하던 무라칸의 무위 또한 아직까지는 기대 이하였다.
반면 진의 마검 비기는 그가 보기에도 눈부신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다만 헤도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진의 마검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뭐, 이대로 계속 잘 성장하기만 한다면. 우리 막장 아가씨를 감당할 정도는 되겠군. 그마저도 아가씨가 지플이 아니고, 12기수가 룬칸델이 아니라는 가정이 덧붙여졌을 때의 이야기지만.’
헤도는 문득 씁쓸해졌다.
산드라의 사랑이 결실을 맺을 일은 없었다. 결국 진과 그의 가문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와 다르지 않으니, 어쩌면.
지금 자신이 진의 숨통을 끊어놓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이 마신석의 재료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런 싸움에서 명예롭게 죽게 해주는 게 아가씨를 위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해지려는 찰나, 망령대들의 외침이 헤도의 신경을 긁었다.
“헤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겁니까!”
헤도는 처음부터 그들을 도와줄 계획이 없었다.
모조리 죽게 내버려둬야 옥타비아 지플에게 제대로 경고가 될 터였다.
“날 왜 부르나? 차라리 적들에게 목숨을 구걸…… 음!”
화아아악-!
어느새 달려든 진이 헤도의 얼굴로 검을 내질렀다.
“백야의 탑지기, 당신은 분명 적이라도 경의를 표해야 마땅한 무인이오. 그러나 여유가 지나치시군.”
가로막히긴 했으나 기름이 끼얹어진 듯, 업화의 불꽃이 장검 베일을 타고 흘러 헤도의 몸으로 옮겨붙고 있었다.
순식간에 상체가 온통 청화에 물들었는데도 헤도는 고통스러운 기색 없이 진을 내려다보았다.
얼핏 보기엔 청화에 불타면서도 전혀 타격이 없는 듯했으나 진은 좌절하지 않았다.
업화의 위력과 룬칸델의 저력은 이게 전부가 아니니 말이다.
“12기수,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군.”
“제안?”
“혹시 이곳에서 챙긴 것이 있다면, 놓고 가게. 그리하면 자네를 일단 살려주도록 하겠네.”
이곳에서 챙긴 것.
그게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명확했다.
함선 설계도였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미 설계도가 털렸다고?’
황당한 마음을 억누르며 대답을 고르려는 순간.
진을 휘감고 있는 업화의 화염 속에서, 툭.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슈아에게 받은 열쇠였다.
헤도는 일순 말문이 막힌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떨어진 열쇠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