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3)
제 55화
19화. 연회(9)
실제로는 8성이지만, 대외적으로 비슈켈은 7성 기사라 알려져 있다. 현재의 진과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격차가 있는 것이다.
‘7성 기사와의 결투라.’
진으로선 횡재나 다름이 없다.
이기든, 지든. 웬만해선 자신의 평판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결투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에 선전하는 수준만 되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또한 이블리아노의 검술을 경험하는 건 그 자체로 공부가 된다. 전대 가주는 시론조차 인정한 강자였으니, 한 번쯤 겪어 보고 싶었다.
다만.
‘마르지엘라 이블리아노. 웃긴 아가씨군.’
진은 그녀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걸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명분처럼 앞세운 말은 다 거짓이고, 그저 흥미로운 싸움을 구경하는 게 그녀의 유일한 목적이리라.
아니면 오라버니를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는 걸 즐기고 있거나. 어느 쪽이든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비슈켈 경은 누이를 아주 아끼시나 보군요.”
진이 수호기사들이 있는 쪽으로 팔을 뻗으며 말했다. 수호기사 하나가 공손히 진의 손에 검을 올리고 물러났다.
우우웅!
마법등이 밝혀지듯, 곧장 검신이 오러로 빛나기 시작한다.
“……당연한 말을 묻는군, 진 공자.”
“나 또한 나의 누이를 아낍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하인들 입단속을 잘해 주시길.”
그래도 6성급 격투가인 부바르 가스톤을 ‘하인’이라 평하다니.
관객들이 과연 룬칸델은 룬칸델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는 대목이었다.
“방금 그대가 두들겨 팬 부바르 가스톤은 하인이 아니라 수행원이오. 혹 그가 뭔가 실수라도 저질렀소?”
비슈켈이 모른 척하며 설명을 요구했고, 진은 ‘부바르 가스톤’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뒤통수가 울렸다.
결코 흔한 이름이 아니다. 놈의 불경함 때문에 이름조차 묻지 않고 실컷 두들겨 팼건만, 부바르 가스톤이라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방금, 그 작자의 이름이 부바르 가스톤이라고 했습니까?”
“그렇소. 그는 몸이 불편한 내 동생을 돕기 위해 왔을 뿐, 본래 룬칸델의 연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예술가라오. 무슨 일이었든 악의는 없었을 테니, 공자께서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라오.”
예술가.
더 확인할 것도 없었다. 비슈켈이 데려온 부바르는 바로 자신이 찾던 변신술사가 확실했다.
아직 세상 사람들은 부바르 가스톤의 정체가 변신술사라는 걸 알지 못한다. 변신 범죄를 수사하고 있는 비먼트 특임대조차 현재까지는 작은 단서도 구하지 못해 헛물만 켜고 있었다.
때문에 비슈켈은 연회장에 올 때 부바르에게 간단한 변장만을 요구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가명을 쓸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애초에 아무도 부바르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변장도 굳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진이 회귀자라는 사실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까 정식 소개를 하도록 둘 걸 그랬군. 얼굴도 다른 데다 장소도 장소니, 설마 그놈이 부바르일 거란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알았다면 그 정도로 끝내진 않았을 텐데.’
폭풍성을 떠나자마자 자신을 암살하려는 일에 가담한 데다, 제 능력을 이용해 세상에 혼란만을 야기할 인간이다. 또한 함부로 자신을 처남이라 부른 놈이고.
죽여서 퇴비로 쓰는 것이 나은 놈이다.
만약 부바르가 비슈켈 이블리아노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진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꼬투리를 잡아 부바르를 죽였을 것이다.
‘부바르 가스톤과 비슈켈 이블리아노라.’
둘은 대체 무슨 관계지? 비슈켈은 부바르가 변신술사라는 걸 알고 있을까?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전생에서 부바르가 특임대에게 잡혔을 때, 소식지엔 이블리아노가가 연루되었다는 내용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부바르 개인의 단독 범죄라는 사실만 강조되었던 것이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기사를 읽었지만, 비슈켈이 부바르의 정체를 안다고 가정하면 꽤나 위화감이 드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보는 눈이 많고, 진과 비슈켈이 맞선 상황이 계속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좋습니다. 저도 결투를 명목으로 그를 두들겨 팼으니, 실수는 없던 것으로 하지요.”
“고맙소. 그럼 이제 우리도 시작하면 되겠군. 잘 부탁하오, 진 공자.”
“한 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수호기사가 비슈켈에게 검을 갖다 주자 결투가 시작되었다.
진은 머릿속에 떠오른 온갖 의문을 일단 깨끗이 지워 버렸다. 부바르의 이름을 듣고 난 뒤 행동에 변화가 생기거나, 둘 사이를 의심하는 걸 드러내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지플에 이어 이블리아노가의 뒷조사도 시작하게 생겼군. 특히 이 비슈켈 이블리아노라는 자.’
챙!
첫 합에 느낄 수 있다.
‘알려진 것과 달리 7성이 아니다.’
그건 직감이었다. 비슈켈은 당연히 진을 상대로 전력을 쏟지 않지만, 칼날이 흐르는 궤적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드 숙부와 비교해도 좋을 만큼 깊이가 있는 검술이라고 해야 할까.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검을 맞부딪친 순간부터 진은 비슈켈이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경꾼 중에도 첫 공방에 그 사실을 파악한 자들이 몇 있었다.
“저 친구, 최근 큰 성취를 얻었나 보군. 움직임이 깊어졌어.”
“과연, 이블리아노가의 희망이라 불릴 만해.”
두 사람의 결투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표정이 사뭇 진중했다.
어디까지나 자극적인 미스 매치에 불과하지만, 이블리아노가의 기둥과 룬칸델의 신성이 펼치는 각 가문의 검술을 감상할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샤악!
채찍처럼 움직인 비슈켈의 칼날이 진의 어깨를 스쳤다. 깊진 않았으나 팍 튀어 오른 핏방울이 결투장 바닥에 흩어졌다.
진은 후속타를 피하려다 또 한 번 허벅지를 베였다. 비슈켈의 검이 그리는 기묘한 궤적은 현재의 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역시, 금방 진 공자가 밀리기 시작하는군. 이블리아노 검술이 지랄 같은 건 내가 제일 잘 알지.”
“격차가 너무 커. 7성과 5성이니 어쩔 수 없지. 흐음, 그래도 몇 합이라도 받아내는 걸 대단하다고 봐야…….”
이블리아노가의 검술은 교활하고 변칙적이다. 한 번 그 더러운 검술에 시달려 본 사람들은, 웬만해선 이블리아노와의 싸움을 피할 정도였다.
“음, 다들 잘 모르는군. 룬칸델이란 작자들은 이럴 때 더 빛을 발하는 법이다.”
이블리아노의 검을 교활한 뱀에 빗댄다면, 룬칸델의 검은 달리는 무소와 같다. 뿔이 깨지는 한이 있어도 박치기를 멈추지 않는.
룬칸델의 검술은 본인보다 강한 적을 상대하기에 특화되어 있다. 다만, 룬칸델은 늘 강자의 입장에 있기에 그 효율을 다 끌어낼 일이 별로 없을 뿐.
허벅지와 어깨에서 피가 솟구치는데도 진의 검은 맹렬한 공세만을 취한다. 방어에 할애하는 궤적이 적어질수록 감각은 더 날카로워지고, 선택은 더 과감해진다.
지금 진이 비슈켈의 검에 가슴팍을 베이면서도 한 발자국 더 전진해서, 그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는 것처럼.
“훌륭하군요, 진 공자!”
아슬아슬하게 진의 검을 피한 비슈켈이 소리쳤다. 자신보다 까마득히 낮은 성취의 소년을 상대하고 있지만, 룬칸델 특유의 야성적인 검술에 솜털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큽.”
가슴팍에 20센티미터 가량의 절상을 입으며 펼친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진이 낮은 신음을 뱉었다. 어깨나 허벅지와는 달리 전투력을 치명적으로 떨어뜨리는 부상이다.
뼈와 장기에 손상이 없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백랑족을 상대한 날이 떠오르는군.’
비슈켈을 상대하는 건 그때처럼 답이 없다. 룬칸델 특유의 뛰어난 신체 능력과 터프한 검술로도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지만.
진은 오랜만에 가슴이 뛸 만큼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비슈켈이 봐주고 있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와 그럭저럭 그림이 나오게 싸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
지금은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8성도 다 같은 8성이 아니고, 5성도 다 같은 5성이 아니다.
룬칸델에 존재하는 모든 5성 생도를 이 자리에 갖다 놓아도 비슈켈을 상대로 이만한 그림을 보여 줄 순 없었다. 그가 얼마나 많이 봐주고 있든 말이다.
심지어 진은 능력을 두 가지나 봉인한 채 싸우고 있는 셈.
‘점점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도 비슈켈의 다음 공격을 읽을 수 있을 것 같군.’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진은 슬슬 결투의 대미를 장식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한 순간, 문득 루나와 했던 심안 수련의 묘리가 깨쳐지고 있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진의 자세가 바뀌었다.
눈을 감은 채 검을 몸 가운데 수직으로 놓은 자세. 예식에나 어울릴 것 같은 폼이고, 사람들은 진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비슈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속으로 진을 칭찬하고는 처음으로 검에 진한 오러를 덧씌웠다. 그걸로 진의 검을 부러뜨리며 결투를 끝낼 심산이었다.
그게 진이 보여 준 근성에 어울리는 화답이리라 생각했다.
“좋은 승부였소, 진 공자.”
파앗!
마지막 일격은 봐주지 않고 질렀다. 8성 기사의 오러로 이글거리는 검신이, 비슈켈의 몸과 함께 수평으로 나아갔다.
“오오!”
그것이 이블리아노의 여러 비기 중 최고 수준의 기술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감탄성을 뱉었다.
빛처럼 빠른 속도로 전진하는 검과 몸. 훌륭하게 싸워 준 룬칸델 막내 공자에게 전하는 비슈켈의 예우였다.
챙그렁!
비슈켈이 기술을 펼친 것과 거의 동시에, 수직으로 서 있던 진의 검이 산산조각 부서졌다.
검을 부수고 나아간 이블리아노의 비기는 진의 목덜미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정지시키지 않았다면, 그대로 목을 베었을 것이다.
그리고 진은 의식을 잃은 듯, 2초쯤 서 있다 제자리에 쓰러졌다.
“승자는 비슈켈 경입니다!”
사회자가 결과를 알리자마자 대기하던 의료진들이 뛰쳐나왔다. 관객들이 긴장한 눈초리로 그들의 분위기를 살폈고, 잠시 후 의료진은 목숨에 지장이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짝짝짝!
멋진 승부에 대한 박수가 이어졌다. 특히 무인들은 마지막에 보여준 비슈켈의 비기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비슈켈과 몇몇 특출한 무인들은 진이 쓰러지기 직전에, 이변이 벌어질 뻔한 사실을 알고 있다.
‘마지막에 그건… 대체 뭐였지? 설마 나와 대련하는 동안, 일순 심검의 경지를 깨우쳤다는 말인가?’
분명 진의 검을 완전히 부쉈다. 그러나 검이 깨진 순간,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자신의 턱을 아래에서 위로 관통하는 감각이 있었다.
그건 비슈켈의 공격이 0.1초가 늦어졌을 때의 결과를 직감해서 느낀 감각이었다.
진이 0.1초만 더 빠르게 반응했다면 자신도 성치 못했을 것이다. 수직으로 서 있던 검이 자신의 턱을 꿰뚫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미 의식을 반쯤 잃은 진은 비슈켈처럼 상대를 죽이기 전에 투로를 멈추지 못했을 거고.
물론, 그 0.1초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고수들의 영역이지만 말이다.
‘진 룬칸델. 무서운 녀석이다.’
어쩌면, 차후 킨젤로가 본격적으로 대업을 시작할 때 위협이 될지도 모를 만큼.
‘다른 형제들을 제치고 가주가 되기엔 너무 어리다는 게 다행이로군.’
비슈켈이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납검하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