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2)
제 55화
19화. 연회(8)
부우욱! 부욱!
진이 부바르의 손아귀에 있던 시집을 빼서 가로세로로 찢었다. 꽤 두꺼운 책이 얇은 천처럼 무참히 찢겨나갔다.
“손님은 아무래도 좀 맞아야겠군요.”
“에……?”
부바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당최 진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바로 ‘모르겠다는’ 그 표정.
진은 그것 때문에 더 화가 끓었다.
‘누님의 이름을 함부로 거론한 것도 모자라, 처남이 어째?’
연회장이 아니었다면 즉시 혀를 뽑았을 것이다.
부바르의 언행은 단지 루나 룬칸델이라는 개인을 모욕한 것에 그치지 않고, 룬칸델 전부를 얕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비먼트 황족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물론 부바르는 룬칸델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지 지독하게 눈치가 없었을 뿐이지만.
“하하, 처, 처남. 헙, 아니지. 공자! 갑자기 왜 이러시는!”
또 처남이라고 헛소리를 해 대는 부바르에게, 하마터면 즉시 주먹을 날릴 뻔했다. 잠시 눈을 감고 화를 가라앉힌 진이 손을 들어 수호기사들을 불렀다.
“이자를 결투장으로 끌고 가라.”
“예, 막내 도련님.”
철컥, 철컥! 연회장 가장자리에 서 있던 수호기사 둘이 부바르의 어깨를 붙잡았다. 부바르는 그때까지도 진이 분노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 농담이 문제였나? 대체 뭐야, 그렇다고 사람을 이렇게 무안하게 만들어? 이 쓰레기 같은 자식이!’
부바르는 다소 놀라운 정신세계의 소유자였다.
또한 예의나 교양과는 실로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아마 ‘변신술’이라는 고유한 능력이 없었다면 진즉 저잣거리에서 살해되었을 것이다.
소란이 일자 이목이 집중되었다. 사람들은 진이 첫 결투 상대로(그들 대부분은 시리스와 진의 결투를 모른다) 고른 남자를 보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공자! 이러지 마시오! 나는 그저 사랑을 표현했을 뿐이잖소? 누구에게나 사랑을 표현할 권리가 있는 것이오!”
끌고 가는 내내 부바르가 소리쳤지만 진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가치가 있는 말이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악! 진 공자! 대체 손님을 이렇게 접대하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오? 놔주시오!”
결투장이 가까워 오자 부바르는 도축장에 끌려온 가축이 된 기분이었다.
‘빌어먹을! 5년 전 지플 추종자들이 이 자식을 죽였어야 해!’
5년 전, 진이 폭풍성을 떠나던 날. 지플의 극렬 추종자들은 수호기사로 변장한 후, 진을 암살하려고 시도했었다.
그들을 변신시켜 준 장본인이 바로 이 부바르 가스톤이다. 그는 킨젤로 소속이지만, 지플 추종자들에게도 종종 도움을 주었다.
세상에 혼란을 야기할 만한 일이라면 상대가 누구든 도움을 주는 게 그의 성격이다. 물론 자신이 위험해지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때 암살자들을 변신시킨 게 나라는 사실을 이놈이 알 리 없는데,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제 누이를 예쁘다고 말해줘도 지랄이야!’
진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일이다. 변신을 청한 이들도 계획에 실패하고 살해당했다고 전해 들었으니까.
“결투는 맨손 격투로 진행하겠다.”
결투장에 들어서기 직전, 진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바르가 대답이 없자 수호기사들이 그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강제로 끄덕이게 만들었다.
‘부, 부바르!?’
그리고 막 마르지엘라와 연회장 구경을 끝내고 돌아온 비슈켈은, 이 광경을 보자마자 뒷목을 잡았다.
“오라버니, 이게 무슨 일이죠? 와아! 결투에요. 부바르 씨와 진 공자가 결투를 하나 봐요!”
“저 멍청한 놈이……!”
그새를 못 참고 사고를 쳤군!
분명 자신이 없는 틈을 타 진에게 접근해 루나를 소개시켜 달라거나, 그분을 사랑한다며 헛소리를 늘어놓았을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진과 부바르가 싸울 이유는 없으니까.
비슈켈이 뿌득 이를 갈았다. 하여간 변신술만 아니었다면, 살려 둘 가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놈이었다. 킨젤로의 대업을 완수하면 반드시 저놈을 직접 찢어 죽이리라.
“후우, 일단 우리도 따라가 봐야겠구나, 마르지엘라.”
“좋아요, 오라버니! 부바르 씨가 싸우는 모습은 저도 전부터 보고 싶었어요.”
한편 무라칸을 안은 채 그들을 지켜보던 시리스도 결투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따가 분위기 봐서 한 번 더 결투를 신청하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왜 진이 저놈이랑 싸우는 건데?’
그녀로서는 짜증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시 붙으면 꺾을 수 있다고 기대하던 건 아니지만, 연회가 끝날 때까지 진과 계속 결투를 펼치는 게 그녀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오! 이번 연회는 참석하길 정말 잘한 것 같군요. 이렇게 지근거리에서 비궁의 후계까지 만나 볼 수 있을 줄이야! 반갑습니다, 시리스 엔도르마 님 맞죠? 저는 베라딘 지…….”
“저리 꺼져요.”
“아, 옛.”
괜히 아는 척을 했다가 욕을 들어 먹은 베라딘이 시무룩한 얼굴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나저나 그 고양이 조심하세요. 제 얼굴을 할퀸 적이 있는 놈입니다, 하하. 아주 사나운 녀석이죠.”
시리스는 자꾸 아는 척을 하는 백발 샌님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결투장으로 들어섰다. 그가 지플의 기대주라는 걸 알았어도 아마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결투장은 어제 진과 시리스가 붙었을 때와 달리 열기로 가득했다.
내로라하는 무인들의 결투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구경꾼들은 목이 터져라 환호와 야유를 내뱉고 있었다.
본래 결투를 하려면 사회자에게 말하고 대기 순번을 받아야 하지만, 진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진이 들어서자 결투장이 일순 조용해졌다.
수호기사가 사회자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진의 결투를 알렸다.
“다음은 이번 연회의 주인공! 룬칸델의 떠오르는 신성, 진 도련님의 결투가 있겠습니다!”
와아아!
진이 몸을 풀며 원형 결투장 한가운데로 올라 부바르를 가리켰다.
“올라와라.”
사람들은 부바르가 누군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바르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누구든, 룬칸델 연회장에 올 수 있을 정도면 상당한 실력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은둔 고수인가?”
“이블리아노가의 수행원 자격으로 왔다던데. 그래도 심상치 않은 인물임은 틀림없겠지.”
이젠 부바르도 물러설 수가 없었고, 분노가 차오른 상태였다.
오는 내내 자신의 무고함을 항변했건만, 저 어린놈의 새끼는 끝까지 자신을 무시하고 모욕했다. 실력 발휘를 할 시간이었다.
“좋소! 결투에 응하겠소. 후회하지 마시오!”
부바르가 결투장으로 올라 진과 마주섰다.
“룬칸델의 진 공자. 결투에 앞서 정식으로 소개해 주시오.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소. 내 이름은 부…….”
“닥쳐라. 네놈의 하찮은 이름 따윈 알고 싶지도 않다. 시작하지.”
사회자가 시작을 알리기도 전에 진이 먼저 달려들었다. 관객들은 진의 태도를 보고 부바르가 대단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쿽!”
기습을 전혀 예상치 못한 부바르가 광대뼈를 얻어맞고 뒷걸음질을 쳤다. 눈물이 핑 돌며 반사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부바르도 마냥 무지렁이는 아니다. 그 또한 알려진 바는 없지만, 6성급 무인이었다.
“이익!”
부웅!
그 육중하게 살이 오른 몸으로 휘둘렀다곤 믿을 수 없이 빠른 주먹이다. 보기에는 꽤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부바르의 주먹이 형형한 오러로 뒤덮여있었다.
매서운 반격. 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먹을 피했다.
척 보기에도 오러의 파괴력은 부바르가 앞섰다. 관객들은 부바르가 ‘생각보다 약해서’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진보다 성취가 높다는 점에 무게를 두었다.
“진 공자가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골랐군.”
“게다가 저 뚱보는 격투술이 주력인 것 같은데. 깨지면 망신일 텐데, 어째서?”
관객들의 평가대로 부바르는 꽤 괜찮은 격투술을 구사했다. 이곳이 룬칸델의 연회장이 아니라 평범한 결투장이었다면, 상당히 주목받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반면 진은 검을 쓰는 기사다. 오러조차 부바르가 앞서니, 사람들이 진의 약세를 점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빡!
이어지는 부바르의 훅이 진의 턱에 내리꽂혔다. 진이 딛고 있는 두 다리가 살짝 풀리는 게 느껴졌고, 부바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 실력으로, 감히 이 부바르 님을 건드려? 질질 짜며 빌게 만들어 주마, 애송이.’
하지만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컥?”
잠시 휘청거리다 쓰러져야 할 진이, 어느새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다시 주먹을 뻗었기 때문이었다.
‘턱을 정확히 때렸는데, 대체 어떻게?’
분명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도 느꼈다.
그건 연기였다. 룬칸델의 축복받은 육체는 턱이 돌아가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부바르가 룬칸델과 싸워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이토록 방심하진 않았을 것이다.
쩌엉!
진의 손바닥이 부바르의 안면을 가격하자 묵직한 타격음이 일었다. 코가 반쯤 주저앉았고 찍, 핏줄기가 튀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상대가 무너질수록 더욱 자비가 없어지는 것이 룬칸델의 가장 기본적인 전투 형태다.
빡! 파악! 빡, 빡!
부러진 콧대에 한 번 더, 좌측 광대, 우측 늑골, 명치. 오러로 빛나는 진의 두 주먹이 부바르를 다져 대고 있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발차기까지 더해지기 시작하자, 부바르는 단 몇 초 만에 피범벅이 되어 결투장 곳곳을 부표처럼 떠다니는 신세였다.
“끝났군.”
“방심시킨 후 속전속결이라. 강자를 상대할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지.”
관객들은 진의 검술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웠으나, 충분한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진이 추구하는 싸움을 확인할 수 있던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진 공자는 싸움에 있어 쓸데없는 오기를 부리는 부류가 아니다. 상대가 자신보다 더 강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수를 찾아 해결하는군.’
5성과 6성이 붙었을 때 5성이 이기는 결과는 종종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진처럼 5성이 압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말 그대로 구타. 부바르는 첫 정타 이후 손 한 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한 채 끌려 다니며 두들겨 맞는 게 전부였다.
‘이제 슬슬 그만 팰까. 하여간 난 마음 약한 게 탈이야.’
아닌 게 아니라 다른 룬칸델이었다면, 부바르가 ‘처남’ 하고 말한 순간 사지를 찢어 놓았을 것이다. 설령 연회장이라 할지라도.
“후우.”
진이 주먹에 묻은 피를 바닥에 털며 숨을 골랐다. 쓰러진 부바르는 겨우 움찔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홱 돌아서서 나가려는 순간, 관객석에서 한 여인이 소리를 질렀다.
“비슈켈 오라버니! 나는 진 공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요. 승부는 아까 나지 않았나요? 이미 투기가 꺾인 상대를 이토록 무참히 짓밟다니요!”
“마, 마르지엘라?”
비슈켈이 기겁을 하며 동생을 쳐다보았다.
“진 공자께서 약자를 상대로 너무하셨습니다. 저기 쓰러진 분은 우리의 친구잖아요.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예요? 오라버니, 이 동생은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부바르 가스톤. 그 역겨운 놈은 진보다 약자도 아닐뿐더러, 우리의 친구는 더더욱 아니다…….
비슈켈은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으나 하나뿐인 여동생의 ‘실망스럽다’는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
“……나더러 진 공자와 결투를 하라는 것이냐?”
“네, 오라버니께서 진 공자에게 한 수 가르침을 주셨으면 해요. 방금 진 공자가 보여 준 것보다 좀 더 명예로운 방식으로 말이에요.”
“오, 화끈한 아가씨로군!”
“비슈켈! 누이의 청을 들어주시게. 허허, 재미있는 대결이 되겠어.”
결국 비슈켈은 마르지엘라와 관객들에게 등 떠밀려 결투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