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34)
제 555화
145화. 전조(4)
뮤론과 미도르가 죽었는데도 동요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33척으로 이루어진 비행 함대가 붉은빛을 일으키고 있었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강력한 마력이 하늘을 찢어버릴 기세로 공명음을 일으켰다.
‘황제와 라라마쿠아가 그토록 자신하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단테가 선봉대를 물리쳤고, 바멀 연합과 용기사, 검성들이 첫 번째 지원군을 압살했다.
그렇게 얻은 서전과 중반전의 대승이 무색해졌다. 검황성 진영이 아직 건재하다곤 하나 60인이 넘는 망령대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령 부활한 망령대가 살아 있을 때보다 부족한 실력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마력의 크기는 하나하나가 최소 9성에 육박하고, 그로 인해 구동되는 함선은 앞선 지원군들이 운용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성능을 낼 터.
붉은 함대의 함선들이 선두를 아가리처럼 벌리며 주포를 꺼내고 있었다.
“엔야, 정신 바짝 붙잡아라. 거울의 마력은 무한이다. 이론상으로는 저런 것들 수천 명이 와도 감당할 수 있어. 보호막 강도를 높이는 거야, 눈 떠, 눈 뜨고 호흡해…….”
베리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엔야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입과 코에서 피가 흘렀고, 몸은 바들바들 떨렸다.
엔야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할 수 있어, 큭, 크흑! 해냅니다!”
막아아아-!
진이 온 힘을 다해 소리치자마자 함선들이 포를 뿜었다.
코젝의 황금빛 주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망령대 마법 특유의 붉은 기운이 섞인 33문의 주포는 순식간에 검황성을 끝장내고도 남을 것 같았다.
첫 번째 포격이 쏘아진 순간, 검황성이 무너지지 않은 것은 엔야 덕분이었다.
그녀는 거울을 통제하는 것에 성공했고, 무한에 가까운 마력이 부여된 용화차단막은 포격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자, 잘했어, 잘했다, 엔야!”
베리스조차 대견한 마음에 엔야를 안아주었다.
‘하지만 끝이다, 한 번 더 거울을 통제하려 했다간…… 내 꼴이 나겠어.’
품에서 느껴지는 엔야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경련과 심각한 출혈에 베리스의 옷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허억, 헉! 허!”
엔야도 계속 거울을 사용하면 자신이 죽거나, 두 번 다시는 마법을 쓸 수 없게 되리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시 거울을 붙잡았다.
“엔야, 이 이상은 안 된다.”
“내가, 하지, 않으면…….”
너무 많은 사람이 죽는다.
그 마음이 엔야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검황성을 위해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엔야와 일면식도 없는 남이었으나 그녀는 그들을 구하느라 목숨을 거는 일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양산함들은 코젝처럼 빠르게 주포를 재장전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으나, 그들의 공격 수단은 함대의 포격만이 아니었다.
적색심연.
망령대의 연환 마법이 하늘과 지상에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플의 적을 말살하라…….] [가주께서 하얀 돌을 원하신다. 죽이고, 찾아라……!]망령대들의 음울한 목소리가 퍼졌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목소리를 내었고, 약 같은 것에 취한 사람처럼 다소 어눌한 말투였다.
‘적색심연의 밀도도 내 기억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런 요소들에서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모두 다 똑같은 목소리와 되살아난 망자 특유의 공명음, 원본에 비해 떨어지는 마법.
소환된 망령대와 과거 진이 겪어온 망령대들은 분명 격차가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진이 이전에 겪은 적색심연에 비하면 조금 떨어지는 것일 뿐, 일반적인 기준에선 그야말로 대마법이었다.
핏빛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붉은 마력이 칼과 사슬로 변해 지상을 난타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용화차단막에 가로막혔으나, 엔야도 계속 타격을 받고 있었다.
무라칸도 영기로 장막을 펼쳐 지상을 보호했고, 퀴칸텔도 포효를 내지르며 시간의 권능을 뿌렸다.
그러나 마력이 너무 거대했다.
적색심연과 더불어 하늘 곳곳에서 각종 공격형 마법도 쏟아지고 있었다.
지옥풍, 화염옥, 빙렬검 등의 원소 마법들이 난사되며 용화차단막을 깨뜨리는 모습.
용기사와 검성들이 반격을 시도하고 있으나 쉽지 않았다. 하이란의 결전기들은 적들에게 닿기 전에 셀 수 없이 많은 마법에 부딪혀 상쇄되었고, 겨우 접근하더라도 순간적으로 집중되는 공격에 밀려나기 일쑤였다.
용화차단막이 깨진 틈으로 망령대의 마법이 스미고 있었다.
그 마법은 황제군과 검황성군을 구분하지 않았다. 때문에 바멀 연합의 보호를 받는 검황성군보다 오히려 황제군이 더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 미친놈들아, 우린 아군……!”
“크아악!”
비명과 폭음으로 끓어오르는 거대한 죽음의 솥.
전장은 다시 그렇게 변하고 있었고, 진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어머니는…… 아직 참전할 생각이 없다.’
아직 로사와 룬칸델은 모습을 보일 기미가 없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하얀 돌이 파괴되거나, 약탈되기 직전. 혹은 검황성이 완전히 무너져 더 이상 반격할 수 없을 때 나타날 계획일 것이다.’
진과 달리, 룬칸델의 목적은 검황성 구출이 아니었다.
‘하얀 돌’이었다. 룬칸델로서는 지플이 그 돌로 이익을 취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차라리 어느 쪽도 하얀 돌을 얻지 못하고 파괴되는 쪽이 룬칸델에겐 최고의 결과였다. 지플은 그 돌의 용처를 확실히 아는 반면, 룬칸델은 그렇지 못하니 말이다.
또한 룬칸델이 직접 개입하는 순간 전면전의 위험이 커진다. 그렇기에 로사는 진이 하이란을 종용해 하얀 돌을 파괴하게 만드는 결과를 바라고 있었다.
따라서 룬칸델이 등장하는 것은 검황성 진영이 완전히 무너지고 밀리는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계속 막아내느냐.
아니면 검황성이 심대한 피해를 입더라도, 바멀 연합의 힘을 아끼고 룬칸델이 나타나도록 만드느냐…….
진은 전자를 택했다.
결코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검황성이 무너지고, 기사 수천 명 정도가 죽더라도 룬칸델이 나서도록 만드는 게 지금 상황에선 더 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진은 친구와 친구의 사람들을, 그들의 목숨을 그렇게 담보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걸 어리고 무딘 마음이라며 비웃을 테지만, 그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확신했다.
말하자면 진은 친구와 사람을 위한, 로사는 룬칸델을 위한 선택을 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룬칸델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왔다면, 바멀 연합이 아니라 12기수로서 룬칸델의 깃발을 들었다.’
왜 이것이 옳은 선택인지는 언제나처럼, 증명하면 된다.
‘명왕군림검은 안 된다.’
명왕군림검이라면, 60인이 넘는 망령대의 보호막을 뚫고 함대를 박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왕군림검을 펼치면 ‘다음’이 없었다.
진은 바멀 연합의 총사령관으로서 이 전쟁의 처음과 끝을 모두 지켜보며 판단과 명령을 내려야 했다.
지플과 룬칸델, 그 어떤 세력이 난리를 치더라도 하이란의 불꽃을 지켜주어야 했다.
오직 진만이 그들과 달리 하얀 돌이 아니라 하이란의 생존을 바라고 있으니 말이다.
진이 눈을 부릅뜨며 슈리를 불렀다. 단테를 검황성에 옮긴 채 전장을 휘젓고 있던 슈리는 쏜살같이 진의 곁을 찾아왔다.
“성벽으로!”
[먀먀!]슈리가 전속으로 내달리자 망령대의 마법이 진에게 집중적으로 조준되기 시작했다. 용화차단막은 이미 절반 이상이 파괴되어 진을 보호할 수 없었다.
“주군을 보호하라!”
[꼬마를 도와!]발카스와 프로치 남매를 비롯한 바멀 연합의 무인들이 진 쪽으로 달려들어 길을 열고, 마법을 쳐냈다.
진도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고, 슈리도 포효를 내지르며 눈으로 광선을 쏘았다.
적들이 내지른 몇 개의 공격 마법과 광선이 슈리를 직격하기도 했으나, 불사의 저주를 뚫지는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엔야는 계속 거울을 통제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엔야! 멈춰, 죽는다고!”
“하, 하아, 사람들이 계속 죽……!”
“진 공자가 오고 있다, 네가 잘못되면 공자의 마음이 위태로워져. 그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될 수도 있다! 네가 원하는 게 그거냐!”
베리스의 그런 말들이 아니었다면, 엔야는 결국 한 번 더 용화차단막을 강화시키고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결국 거울을 내려둔 엔야는, 눈물과 피로 얼룩진 얼굴로 악을 내질렀다.
“너무…… 나쁜 사람들이에요. 제국과 지플엔 온통 개자식밖에 없는 것 같, 카하아악!”
“컥!”
엔야와 베리스가 서 있던 땅에 마력으로 빚어진 붉은 창이 내리꽂혔다.
첫 번째는 다행히 성벽만 무너뜨렸으나, 곧바로 이어진 두 번째 창은 그녀들을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그 순간 슈리가 성벽을 뛰어올랐고, 진은 두 사람에게 떨어진 붉은 창을 베어냈다.
“진 공자……!”
진이 기수 코트를 벗어 엔야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엔야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 강철 같은 뒷모습 너머 성벽 아래, 하이란 기사들의 시체가 쌓여 있기 때문이었다.
엔야는 진만큼 강하지 않았다. 그 많은 죽음을 직시하는 것 자체가 끔찍한 고통이었다.
“잘 해냈다, 엔야, 그리고 베리스. 내가 너였다면 이보다 부족했을 거다.”
그 말을 듣자마자 엔야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진은 바닥에 놓인 거울을 주웠다.
“베리스, 슈리를 타. 엔야를 데리고 치유사들을 찾아가고, 단테에게 전해. 우린 그 하얀 돌을 잘 모르지만, 절대로 그 빌어먹을 물건을 사용할 생각 따윈 하지 말라고.”
단테는 진의 우려와 달리 하얀 돌의 사용법을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단테는 전쟁이 심화될수록, 어떤 어두운 목소리가 자신에게 속삭이는 것을 똑똑히 듣고 있었다.
그건 하얀 돌의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면.
거울을 얻을 때에도, 지플은 수많은 콜론의 원주민들을 짓밟으며 오직 힘만을 탐했었다.
이제 진이 그때 지플이 끝내 놓친 그 힘으로, 놈들을 짓밟을 차례였다.
진의 발아래에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카아아아앙……!
그리고 역류계 마법 특유의 날카로운 회전음이 번지며, 역천의 구가 하늘로 떠오르는 모습이 이어졌다.
달이 코앞에 뜬 것 같은 형상이었다. 진이 가진 마력의 한계치를 아득히 넘어선 역천은, 적색심연의 마력을 흡수하며 눈을 껌뻑일 때마다 거대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무한의 마력을 품은 역천이다. 네놈들의 마력이 거대하다 한들, 이 앞에서도 과시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