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33)
제 555화
145화. 전조(3)
하얀 돌을 내어주는 순간, 하이란의 전쟁은 의미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하얀 돌만 넘기면 그만인 전쟁이었다면, 진은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이상 싸움이 커지면 나의 권한으로는 같은 제안을 다시 할 수는 없소. 나는 그저 불필요한 죽음을 최소화하고 싶을 뿐.”
“지플과 내가 각자의 친구들에게 지원을 온 이상, 이 전쟁은 이제 제국과 하이란의 싸움이라고만은 말하기 어려울 것이오. 불필요한 죽음? 룬칸델과 지플 사이에 그런 것이 있던가. 어차피 언젠가는 한쪽이 완전히 끝장날 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 않소?”
결국 라라마쿠아는 협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후회하게 될 거요.”
“이야기 끝났으니, 대열로 돌아가시오. 괜히 내 원한을 살 사족을 덧붙이지 말고.”
사실, 진이 정말로 자신이 있어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나가는 건 아니었다.
지플과의 전면전은 진으로서도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부담을 넘어 아직은 전혀 답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위험한 전개였다.
그럼에도 진이 물러서지 않은 건 다름이 아니다.
‘지플이 먼저 룬칸델과의 전면전을 이야기할 정도라…… 하얀 돌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군.’
하얀 돌.
친구의 가문과 긍지를 훼손시키고 있는 그 저주스러운 물건이, 정말 지플이 룬칸델과의 전면전을 불사하더라도 획득해야 하는 물건이라면.
절대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 진은 물러서지 않고 싶어서 물러서지 않은 게 아니라, 그럴 수 없기에 버틴 것일 뿐이었다,
더는 검황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얀 돌이 그만한 가치를 지닌 물건일 경우, 지플은 분명 그걸 이용해 한 단계 더 도약할 테니까. 그리고 지플을 저지하는 건 룬칸델의 가장 큰 사명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믿는 구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어머니와 가문의 최정예들도 분명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황제는 하얀 돌의 존재를 세상에 까발렸고, 지플은 양산함을 공개하면서까지 지원군을 보냈다.
이토록 거대한 사건에 룬칸델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을 리는 없었다.
‘어머니는 아직 하얀 돌의 가치를 판단하지 못했을 테니, 우선 관망하기로 했을 거다. 그러나 지플이 전력을 다해 나서는 모습을 보이면, 가문도 제대로 나설 것이다. 반드시.’
탈라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직은 관망자로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으나, 그녀 또한 하얀 돌이 어떤 형태로든 세상을 크게 위협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순간 함께 싸울 터였다.
론과 단테가 하얀 돌을 배수의 진으로 사용하지만 않는다면 그녀의 검은 지플을 향할 것이다.
‘의식을 잃은 론 경은 몰라도, 단테라면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설령 녀석이 극단적인 마음을 품더라도, 내가 막아내면 돼. 그것만 막으면 탈라리스 님이 검황성을 압박할 일은 없다.’
론의 상태는 전방으로 오는 길에 하이란의 기사들에게 전해 들었다.
단테가 어떤 심정으로 깨어나지 못하는 론을 여전히 검황성에 모시고 있었을지를 생각하니 한 번 더 마음이 아려왔다.
‘베라딘.’
동시에 또 다른 친구가 떠올랐다.
‘너도 단테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정신이 온전한 상황이라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진은 부디, 바르톤 살해 임무 때처럼 베라딘이 전쟁 인형이 되어 하이란을 치는 일만은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건 모두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니 말이다.
라라마쿠아가 홱 돌아서며 본모습으로 변신했다.
그녀가 다시 상공에 자리를 잡자마자 전투가 재개되었다.
방금까지의 짧은 소강상태는 모두 거짓이었다는 듯 순식간에 전장이 비명과 폭음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대부분이 지플의 마법사와 용들이 내지르는 비명이었고, 그들의 함대가 부서지며 번지는 폭음이었다.
무라칸과 더불어, 다섯 검성의 힘이 특히 도드라졌다.
그들은 단테와 달리 강체를 지니고 있는 만큼, 비기를 난사하며 적들의 숨통을 끊었다.
천공일섬을 비롯해 연이어 퍼지는 비기들이 밤하늘을 눈부시게 빛냈고, 때때로 진의 뇌기가 위엄을 드러냈다.
황제군의 지상군도 더는 포위망을 좁혀오지 못했다. 아멜라의 포격 지원도 끊이질 않았고, 측후방에선 여전히 발카스와 프로치 남매를 비롯한 진의 동료들이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투의 서전과 중반전은 그렇게 검황성 진영의 승리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하이란을 위해 싸우는 이들은 들뜨지 않았다. 오히려 전세가 좋아질수록 더욱 굳은 각오로 다음 싸움을 준비했다.
이대로 끝날 리는 없었다.
지플의 첫 번째 지원군들은 이제 확연히 규모가 줄었다. 양산함은 고작 다섯 척 남짓 남았을 뿐이고, 마법사와 용들도 대부분 전사했다. 그조차 수 분 이내에 모두 운명을 달리할 것 같았다.
수장격인 청룡 라라마쿠아도 한쪽 날개를 잃은 채 간신히 포효를 내지르는 모습이었다.
‘이쯤이면…… 된 것 같군.’
라라마쿠아가 생각했다. 황제군도, 하이란을 위해 모인 기사들도 알지 못하는 사안이 하나 있었다.
이런 사태를 대비해, 지플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술과 고대 어둠계 마법을 접목시켜 한 가지 수단을 강구해 놓았다는 사실이었다.
별안간 라라마쿠아에게서 흐르는 피가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그리 크지도, 밝게 도드라지지도 않는 데다 순식간에 그려졌기에 난전 속에서 그것이 형성되는 순간을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과 동료들도 마법진이 완성되고 몇 초가 지나서야 알아보았다.
‘저건 뭐야?’
‘피의 마법진……!?’
무라칸은 마법진을 인지한 즉시 라라마쿠아에게 숨결을 토했다.
시커먼 숨결이 그녀의 심장을 꿰뚫었고, 마법진을 그린 피 또한 그 힘에 흩어졌으나.
피는 곧 다시 모여 마법진의 형태를 유지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피의 마법진을 형성한 것은, 라라마쿠아뿐만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지플의 다른 용들과 지휘관급 마법사들도 피로 똑같은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그들의 마법진이 촉매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내내 전장 곳곳에서 쉴 새 없이 피어나고 있던.
키이이이익……!
피의 마법진들이 공명하며 기묘한 쇳소리를 일으켰다.
공중 타격이 가능한 검황성 진영의 기사들이 계속 마법진을 공격했으나, 마법진은 찢어져도 계속 다시 형태를 유지하며 합쳐지는 모습이었다.
이내 결합된 마법진은, 정육면체와 같은 형태를 취했다.
‘정육면체?’
불현듯, 진은 가이파 군도를 떠올렸다.
미도르 엘너가 뮤론 지플을 소환할 때 사용한 아티팩트도 저처럼 완벽한 정육면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설마.’
시공간 장치.
‘아티팩트가 아니라, 마법으로도 소환이 가능했던 건가……!’
커헉!
라라마쿠아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그녀의 죽음으로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위험하다고 소리칠 필요는 없었다. 상공의 아군들도 이미 무언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채고 물러나고 있었다.
마법진이 검붉은 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꼭 어떤 불길한 날의 태양처럼 보이는 그 빛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차원문을 형성했다.
가장 먼저 차원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코젝과 거의 유사한 형태의 함선이었다.
즈즈즈즛……!
함선이 빠져나오며 주변 공간이 왜곡되었다.
엄청난 척력이 아직 상공에 남아 있는 시체와 피를 빨아들이며 기묘한 소음을 자아냈다.
양산함이 존재하기 이전, 유일한 함선이었던 코젝은 그 성능이 탑승자에 따라 달라진다고 알려졌다.
양산함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비행 함선은 탑승자의 마력에 따라 그저 이동 수단에 불과할 수도, 가공할 전쟁 병기가 될 수도 있었다.
앞서 파괴된 지플의 양산함들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함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마법사들이 동력을 구동하고 있었다. 굳이 싸워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함선을 휘감고 있는 마력의 밀도가 전혀 다른 것이다.
마력을 읽지 못하는 기사들조차 느낄 수 있을 만큼 온몸이 저릿저릿한 밀도였다.
‘망령대로군.’
지원군이 더 온다는 것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어둠계 마법을 통한 소환은 그저 그 시간을 앞당겼을 뿐이며, 망령대의 등장 또한 처음부터 인지하고 있었으니 그리 충격적인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진이 일순 헛웃음을 내뱉은 것은, 그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차원문을 빠져나온 양산함은 삼십 척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모든 양산함은 망령대들이 운용하고 있었다.
‘대체 놈들은 망령대를 몇이나 보유하고 있는 거야……!?’
예비 기수 시절, 진이 베라딘의 섬에서 최초로 마주한 망령대는 모두 열다섯이었다.
그때 진은 망령대의 연환 마법이 어색한 점을 미루어보아 그 수가 적어도 스물은 넘으리라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눈앞의 함선은 삼십 척이 넘고, 그 하나하나가 최소 망령대 2인 이상의 마력으로 구동되고 있었다.
단순 계산으로도 육십 이상에 육박한다는 뜻인데, 그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불가능한 수치였다.
만일 그 정도 수치의 망령대를 줄곧 유지해왔다면 지플은 시론의 시대가 오기 전에 룬칸델을 얼마든지 끝장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설은 두 가지였다.
‘최근 들어서 기존을 한참 초월하는 수련법을 발명해 망령대의 숫자를 급격히 늘렸거나…….’
망자들을 살려냈거나.
지플이 마신석을 통해 인간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건, 이미 오래전 안드레이 지플과 일전을 벌일 때 증명된 바였다.
진은 후자일 것이라 상정했다.
‘가이파 군도에서 뮤론 지플과 함께 부활한 마법사들…… 그때와 똑같군. 규모와 질이 다를 뿐.’
크하하하!
첫 번째로 나타난 함선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도르 엘너와 뮤론 지플의 목소리였다.
[악연은 악연이구나, 여기도 네놈들이 있다니……!] [두 번이나 지옥을 거슬러 돌아왔다, 이 뮤론 지……!]진과 무라칸은 그들이 말을 끝내기 전에 동시에 광속 찌르기를 펼치고 숨결을 토했다.
룬칸델의 비기와 흑룡의 전력이 담긴 숨결은 그대로 보호막을 찢어버리며 미도르와 뮤론이 서 있는 함선의 선두를 박살내는 모습이었다.
그토록 허무하게 미도르와 뮤론은 각각 두 번째, 세 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진과 무라칸의 힘이 선두를 휩쓴 후, 함선 선두에는 그들의 발목만이 남아 있었다.
[무슨 바퀴벌레도 아니고, 저것들은 죽여도 계속 나오네. 별 시답잖은 꼴만 보여주고 사라질 거면서.]무라칸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나 그와 진은 알고 있었다. 지플의 머저리 형제가 죽은 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함선의 망령대들이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선두에 자리하고 있지만 뮤론과 미도르는 그들의 지휘관이 아니었다.
망령대들은 그들이 가장 저급한 실력을 가졌으나, 단지 켈리악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축낼 뿐인 버러지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죽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었다.
때문에 망령대들은 선두의 함대가 파손되고, 뮤론과 미도르가 죽었음에도 묵묵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저것들은…… 확실히 버겁겠는데.’
진이 이를 악물며 생각했다.
부디, 부활한 망령대들이 그가 처음 겪었던 진짜배기들만은 못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