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58)
제 555화
147화. 흑해의 왕, 글리엑(3)
론의 뒷모습이 가쁜 호흡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떨리는 두 다리와 처음보다도 더 야윈 몸, 짙어진 패왕검의 잿빛 문양은 그의 몸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렸다.
“론 경!”
론은 돌아보지 않고 다시 라시드를 휘둘러 검풍을 퍼뜨렸다. 회색의 칼바람이 떨어지는 글리엑의 검과 창들을 더디게 만들었다.
진을 지키러 글리엑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론이 전부가 아니었다.
루얀, 아퀴타 하이란, 에롤 라이먼, 벨 알테미로, 프란츠.
하이란의 다섯 검성 또한 론의 옆에 서서 글리엑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들 역시 혼돈의 광풍이 몰아치자 남은 기운을 모조리 폭발시켜 론이 진에게 닿을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론의 옆에 선 검성들은 미동이 없었다. 론을 위해 길을 연 후, 그들은 선 채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이, 검성들의 진짜 마지막이었다.
‘검성들께서……!’
프스스, 휘이이이…….
부서지고 깨진, 어찌 이렇게 될 때까지 싸울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검성들의 몸이 재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칼날에 가슴이 도려지는 것 같았다. 내내 이어진 긴 싸움이 작별이라 생각했건만, 검성들은 기어이 최후의 최후까지도 하이란과 하이란을 위하는 사람들에게 전부를 바쳤다.
검성들이 휘날려 사라지자 론 홀로 최전방을 지키는 형상이 되었다.
모두가 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그의 얼굴이 어떤지를 알지 못했다.
눈가의 깊은 주름 사이로 눈물과 땀, 피가 뒤섞여 흐르고 공허하게 벌어진 입에서는, 슬픔을 간신히 억누르느라 흐느끼는 소리가 바람처럼 새어 나오는 그의 얼굴을.
검황성은 흔적도 없이 부서졌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보다도 소중한 손자는, 삶의 이유와 같던 손자는 저 괴물에게 잡아먹혔다.
끝내.
론 하이란, 그가 평생 지키고 사랑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살아서 닿을 수 없는 저 먼 곳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곳으로.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절망은 인간에게 슬퍼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글리엑은 그의 슬픔 따윈 관심도 없다는 듯 사방으로 수백 개의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중 대부분이 진이 있는 쪽을 향했다.
카아아, 아아……!
포효를 내지르는 론의 악에 받친 쉰 목소리는, 약질로 태어난 설움과 절망에 거칠어진 단테의 목소리를 닮아 있었다.
복수는 요원했다.
그는 지쳤고, 새로이 나타난 적은 너무나 거대하다.
글리엑을 무시하고 지플과 배신자들을 상대로 마지막 투혼을 펼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이 자리에 서서 싸우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이대로 끝장나면 죽어서도 손자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직은 지켜야 할 것이 남아 있기에, 손자가 그 무엇보다도 좋아하던 벗이 그를 위해 싸웠기에.
어른으로서 그를 살려서 보내야만 했다. 은혜를 갚지는 못하더라도 이 삭막해진 땅에서 죽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라시드의 잿빛 광휘가 진해졌다.
론은 홀로 진에게 떨어지는 글리엑의 칼날 7할 이상을 쳐내고 있었다. 나머지는 스탐과 흑기사들, 그리고 진이 직접 막아냈다.
‘아직도 저런 힘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 아직도……!’
켈리악 지플, 그는 멀리서 맹수처럼 날뛰는 론을 보며 또 한 번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끝나야 하는데 끝나지 않는,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는, 멈춰야 하는데 멈추지 않는.
론이 글리엑을 상대로 분전해주는 건 이제 켈리악에게도 분명 이득인 일이나, 지플의 일원들은 하이란의 기사에게 계속 기가 꺾이고 있었다. 켈리악도, 옥타비아도 론과 검성들로부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껴온 것이다.
자신은 마신석을 사용하고도 쉽사리 지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순수한 힘의 크기라면 자신이 한참 우위에 있으나 의미가 없었다.
비록 론이 조금 더 글리엑과 가까웠다고는 하지만, 켈리악은 그 자리에 있던 게 자신이었다 할지라도 그보다 빨리 지상에 닿지 못했으리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또한 그가 론이었다면, 켈리악은 진을 구하러 글리엑에게 뛰어드는 대신 어떻게든 지플과의 싸움을 이어갔을 터였다. 그게 다 함께 멸망하는 파국의 지름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마신석의 완성이라는 목적이 있는 지플과 달리 하이란과 진 사이에 있는 것은 신의와 의리가 전부일 뿐이다.
설령 자신이 진을 구하는 선택을 했다면, 그건 신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차후 지플과 협상을 하기 위함이었을 터.
‘어쨌거나 자네의 그 고지식한 면모 덕분에 일단은 한시름 놓을 수 있겠군. 부디 버텨주게, 우리와 룬칸델이 제대로 합류할 수 있을 때까지.’
켈리악이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2형을 형성하며 지상을 노려보았다. 마신석의 힘이 섞이지 않은, 그의 순수한 불꽃이 혼돈을 걷어내고 있었다.
로사와 룬칸델, 그리고 옥타비아와 망령대마저도 뒤편 지상에서 진을 구하고자 길을 여는 중이었다. 로사는 저 멀리 보이는 옥타비아와 망령대의 무방비한 뒷모습을 보고도 공격을 명령하지 않았다.
힘을 합칠 때인 것이다.
‘론 경이 막아주고 계셔도, 이대로라면 동료들이 다 죽는 건 시간문제다.’
공격은 시작부터 계속 자신에게 집중되고 있으니, 동료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떠나야 했다.
하지만 위치를 바꾸는 건 도박이었다. 자신이 자리를 이탈한다고 해서, 글리엑이 이쪽을 완전히 방치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대신 움직이기 전에 한 번 시험을 해보았다. 일부러 브라다만테의 영기를 더욱 강화시켜 글리엑의 반응을 살피기로 한 것이다.
[솔……더렛……!]글리엑은 진의 영기가 증폭되자마자 더 사납게 공격해오는 모습을 보였다.
“무라칸!”
“어!”
“내가 놈의 시선을 끈다, 너는 테스랑 나머지 동료들을 지켜. 탈라리스 님의 회복이 끝날 때까지!”
“빌어먹을, 알았다!”
진이 전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하자 론과 흑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다행히 글리엑은 즉각적으로 시선을 바꾸었다. 혼돈의 검과 창들이 죄다 진이 움직이는 쪽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잘했다, 진. 내 잠시 감상에 빠져 네 동료들을 생각하지 못했군.”
론의 말에 진은 목구멍으로 울컥 뜨거운 무언가가 치미는 걸 느꼈다.
“론 경, 그런 말씀 마십시오. 그보다 경의 몸이.”
“네놈 살리기 전까지는 절대로 죽지 않아. 저 괴물조차 질려버릴 만큼, 끈질기게 버텨낼 것이다.”
쿠그르르륵-! 처엉!
기사들의 일곱 자루 검이 쉴 새 없이 글리엑의 무기들과 맞부딪쳤다. 2차전 초반 때처럼 론의 검풍이 모두를 보조하는 형상이었고, 이대로라면 무사히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잠시뿐이었다.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솔더렛!]온전치 못한 상태로 깨어났기에, 글리엑은 현재 진을 계약자가 아니라 솔더렛 그 자체라고 인식하는 모양이었다.
“컥!”
동시에 다섯 자루의 검을 받아낸 론이 허리를 꺾으며 검은 핏덩이를 토해냈다.
진과 스탐, 흑기사들이 그의 빈틈을 급히 받쳐주었으나 균형이 흐트러졌다.
글리엑의 공격 수단은 수백 개의 검과 창에 국한되지 않았다. 론이 일순 중심을 놓치자마자, 별안간 글리엑으로부터 엄청난 인력이 발생되고 있었다.
당연히 글리엑이 혼돈의 힘으로 잡아당기려는 것은 진이었다.
스탐이 기운을 폭발시키며 반발력을 일으켰으나, 진이 허공으로 끌려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글리엑의 시선을 따라 진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뒤늦게 그 모습을 확인한 테스가 숨결을 토했다.
청화에 담긴 중압의 힘이 글리엑의 인력을 짓누르지 않았다면, 진은 그대로 글리엑의 눈앞까지 끌려갔을 것이다. 다행히 중간 정도에 멈춘 상태로, 진은 글리엑과 눈을 맞췄다.
불안정하게 떨리는 그 눈동자는 끝을 알 수 없는 공동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와중, 진은 정신을 집중하며 검을 쥐었다.
단테.
친구를 집어삼킨 괴물. 단신으로 세기의 강자들을 압도하는 무력에 대한 두려움을, 그보다 깊고 어두운 증오가 앞서고 있었다.
[이제, 보니.]씨익.
글리엑의 입이 초승달처럼 찢어졌다.
[솔더렛, 네놈, 도, 힘을 잃은…… 모양이지.]“개 같은 괴물 새끼, 단테를 어떻게 한 거냐.”
[대단, 한, 인간……이었지. 어쩐지…… 솔더렛, 너의 계약자였나.]“뭐……?”
[네 목소리를, 흉내 내지 못했다면, 더, 번거로웠을 것이다…….]무언가에 머리를 맞은 듯, 뒷골이 당기며 날카로운 이명이 울렸다.
자세한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단테는 혼돈의 봉인 속에서 글리엑과 싸우다가 모종의 상황에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속았다는 사실을.
“……그럼 단테는 어떻게 됐지? 아직 그 봉인 속에 있는 것이냐?”
간신히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꾸,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군…… 솔더렛. 이상하구나, 네놈이, 가장, 잘 알 텐데.]“모른다.”
[소멸.]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소멸하였다.]“개소리.”
[이제…… 네, 차례다.]“테스!”
글리엑이 움직이려는 찰나, 진이 테스의 이름을 소리치며 그에게 의지를 보냈다. 중압을 거두라고 말이다.
‘론 경이 공격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야 한다.’
론이 자신을 구하러 뛰어들게 만드는 건 전투에서 한 번 더 손해를 보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더 깊이 들어가도, 한 번은 테스가 꺼내줄 수 있다. 내내 방어만 했으니, 한 번이라도 공격을 성공시켜야 한다.’
팽팽한 줄이 끊어지듯, 중압이 거둬지자 진의 몸이 다시 글리엑에게 날아들었다. 수백 자루의 거대한 칼날이 검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스쳐도 사지가 잘릴 것만 같았다. 진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글리엑의 눈동자에 닿았고, 그대로 검을 찔러 넣었다.
푹……!
하지만 글리엑은 눈동자를 정통으로 찔리고도 달리 타격을 받지 않는 눈치였다.
“카악!”
오히려 타격을 받은 쪽은 진이었다. 눈을 찌르자마자 글리엑의 검 한 자루가 진의 가슴팍을 베어버린 것이다.
영기 갑옷이 깨지지는 않았으나 온몸의 뼈마디가 다 부서질 듯 덜컥대며 진동했다.
글리엑은 추락하는 진을 한 번 더 베려고 했으나, 진의 바람대로 론이 이미 그의 품을 파고들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피를 토해낸 순간, 진은.
글리엑의 검이 자신을 친 순간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검이 몸에 닿기 전에 느끼기에, 분명 영기 갑옷이 깨지고도 남을 위력이었다.’
진을 베기 직전.
누군가 잡아당긴 듯, 일순 글리엑의 칼끝이 멈추었던 것이다.
‘설마.’
두근, 두근, 두근!
가슴이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그 순간 글리엑을 주저하게 만든 것이, 어쩌면 단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