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68)
제 555화
148화. 검황(1)
* * *
흑해, 5왕의 땅.
시론의 원정대와 키알은 벌써 열두 시간이 넘도록 사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오즈도크는 완전히 혼절한 채 전투의 여파에 밀려 전장 저 멀리까지 튕겨 나간 상태였고, 키알은 끊임없이 괴성을 지르며 혼돈의 기운을 뿌려댔다.
키알이 쏟아내는 혼돈은 글리엑의 기운과는 차원이 달랐다. 놈은 글리엑과 달리 이미 오래전 완전히 깨어나 온전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아아, 하……!
루나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키알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도끼검 크란텔에 몸을 의지한 채였고, 전대 흑기사들의 엄호를 받고 있었다.
“조금만……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말고 잠시라도 체력을 회복하시오, 1기수.”
그렇게 대답한 바네사 올슨의 목소리에도 가쁜 호흡이 묻어났다. 부서진 갑옷 사이로 드러난 전대 흑기사들의 육체 곳곳에 멍처럼 밴 검은 혼돈이 보였다.
시론이 없었다면, 그들은 이미 전멸했을 것이다. 하나하나가 지상 최강의 기사나 다름이 없음에도.
‘아버지는 이런 것들과 홀로 싸워오셨던 것인가.’
싸움이 시작된 후, 루나는 자신이 대체 몇 번이나 경악에 휩싸였는지 셀 수도 없었다.
시론에게 미리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막상 실제 전투에 돌입하니 내내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심지어 시론을 제외한, 원정대의 모든 공격은 지금껏 키알에게 단 한 번도 유효한 타격을 주지 못했다. 루나와 전대 흑기사들의 역할은 오로지 시론을 엄호하는 것뿐이었다.
‘그조차 우리가 아버지를 보호하는 건지, 그 반대인지 헷갈릴 정도지만.’
키알에 맞서고 있는 아버지의 등으로부터.
루나는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제껏 단 한 차례도 겪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시론은 다급해지는 마음을 다스리며 전투에 임하는 중이고,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하필이면 이 시점에 흑해도 아닌 인세에서 글리엑이 깨어났기 때문이었다. 시론은 현시점의 인세에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키알을 마주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시론은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회군했을 것이다.
글리엑을 막을 수 없다는 건 곧, 가문 또한 멸문된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었다.
킨젤로라는 변수가 있기는 하나, 그들이 인세의 재앙을 막으러 나설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 같았다.
시론은 글리엑을 결국 룬칸델과 지플, 그리고 제국과 비궁을 비롯한 나머지 세력들이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악이었다. 그러나 키알을 앞에 두고 빠지는 건 불가능했으며, 설령 가능하다 할지라도 회군 이후에 벌어질 문제들은 그조차 감당이 어려운 수준이었다.
[마음이 급한 모양이군…… 시론 룬칸델.]키알의 눈동자들이 초승달처럼 가늘어졌다. 놈은 시론의 심정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아직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있나 보군.”
후우우웅-!
폭풍이 몰아치듯, 시론의 검으로 창성의 오러가 모여들었다.
마음이 급한 것은 시론뿐만이 아니었다.
키알 또한 시론의 힘이 과거 상대했을 때보다도 더 강해졌다는 사실에 버거운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괴물.
흑해의 왕을 겪어본 인간들은 하나같이 그들을 괴물로 인식했으나, 키알 또한 시론을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리사다에 모인 오러가 폭발하려는 순간.
키알은 인세에서부터, 여유를 꾸민 미소를 지울 수밖에 없는 일이 발생했음을 느꼈다. 시론 역시 동작을 멈추며 눈동자가 커졌다.
‘이건……!’
전투가 시작되려는 찰나 글리엑이 깨어난 것을 느꼈듯.
시론과 키알은 인세에 새로운 창성기사가 나타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 먼 아공간까지 그 기운을 전파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현한 창성의 빛밖에 없었다.
루나와 전대 흑기사들은 그 빛을 느끼지 못했다.
‘론 하이란, 그자다!’
탈라리스나 로사, 그리고 그가 아는 다른 초인들의 기운이 아니었다. 하이란가 특유의 정도가 깃든, 찬란한 속성을 띤 기운이 바로 앞에 있는 듯 진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한데 그 창성의 빛에서는 왜인지, 하이란 정도正道의 기운뿐만이 아니라 미약한 영기가 함께 느껴졌다.
‘어째서 영기가 함께…… 설마, 막내가 뭔가 도움을 준 것인가? 하이란의 정도에 솔더렛의 기운이 묻을 이유는 없을 터인데.’
속단할 수 없고, 당장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로써 시론은 인세의 상황을 짐작하게 되었다.
‘흑해의 왕이 깨어난 것은 제국의 땅이고, 론 하이란은 그에 맞서다 벽을 넘었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시론이 아는 론 하이란이라는 인물은 계기가 있으면 분명 창성에 닿을 수 있는 기사였다. 스마리온처럼 마성화에 빠질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여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제 키알과의 싸움에서 시론이 주저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론이 창성에 닿았다고 해서 혼돈의 다섯 번째 왕을 무조건 토벌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세계에 피해가 전혀 없이 토벌이 종료되는 건 더더욱 아닐 테지만.
뚜렷한 희망이 생겼다. 게다가 론의 검 덕분에 글리엑이 소멸한다면, 자신의 사명도 한 가지가 줄어드는 셈이었다.
‘그가 글리엑을 막는 것에 성공하면, 반드시 감사를 전해야겠군.’
씨익, 이번엔 시론이 미소를 지었다.
“계속 웃고 있는 게 좋지 않겠나? 키알. 그렇게 쉽게 속내를 드러내서는, 무언가의 왕이라 불릴 자격이 없을 것 같군.”
루나는 그 순간, 아버지의 검이 안정을 되찾고 있음을 깨달았으며……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싸움은 원정대의 승리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 * *
생사의 갈림길에서 이렇게까지 불안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숨이 멎고,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진은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어째서 그럴 수 있었는지는 그 자신도 알지 못했으나, 사실 이유는 하나였다.
새로이 ‘반신’의 영역에 들어선 위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진에게 가호를 내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허공에 떠 있는 창성의 빛이 천천히 론의 가슴께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그만이 볼 수 있는 빛을 흩뿌렸고, 그만이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무언가를 말했으며, 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의미를 밝혔다.
죽음을 극복한 시점에, 론은 한 차례 운명을 거슬렀다. 오롯이 본인의 의지만으로.
따라서 그가 가진 순수한 힘의 크기는 이미 그때 창성과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패왕검을 펼친 채 그토록 오랜 전투를 치를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론의 정신은 급격히 무너지고 말았다.
슬픔과 혼돈에 매몰되어 심마에 종속되었었다.
그 결과 그는 옛 귀신대장 스마리온 프로치와 마찬가지로 괴물이 되어갔으나.
진을 만난 덕분에 심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창성의 힘을 갖게 된 자들은 모두가 그렇게 괴물이 될 위기에 놓이게 되며, 반신이 된 후에도 그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병처럼 언제나 남아 있는 것이다.
반신이라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인간인 이상 그 힘을 온전히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만일 두 사람이 이 아공간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론은 결코 창성에 다다르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론의 마성화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따라서 그 마성화에 마지막 박차를 가한 것은 글리엑이며, 론이 선을 넘지 않도록 최후까지 저지해낸 것은 진이었다.
론이 가슴 앞에 멈춘 창성의 빛으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 같았다. 두 손으로 움켜쥐자 손가락 사이로 빛이 흐르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론에게 마지막 깨달음을 일러주고 있었다.
이어 론은 손으로 그 빛의 한 덩이를 부드럽게 떠냈고, 몸을 숙여 쓰러진 진에게 그 빛이 흘러들도록 만들었다.
고요한 수면 위에 파문이 일듯, 창성의 빛이 흩어지며 진에게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 한 덩이의 빛은 고스란히 진에게 흡수될 수 없었다. 그중 진에게 흡수될 수 있는 힘은 1할이 채 되지 않았다.
나머지 기운은, 어디론가 흩어져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론은 그것이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정도 대가로 진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론에게 남은 창성의 빛과 진에게 흘러들어간 기운이 각각 두 사람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검게 변한 론의 룬동자가 본래의 빛깔을 되찾았고, 진의 환부에서 쏟아지는 피는 붉게 변하며 잦아들었다.
그리고 아공간이 진동하고 있었다.
글리엑이 진노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그토록 경계했던 끔찍한 솔더렛의 그림자가 아니라, 한낱 인간이 일을 망치고 있는 것인지, 글리엑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저 인간이 이곳으로 들어오는 건 허락한 적도 없지 않았던가.
바깥에 그대로 있었다면, 자신들과 같은 혼돈의 왕에 근접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글리엑은 반드시 그럴 것이라 생각했었다. 론이 완벽하게 심마에 종속되었다고 판단했었으니 말이다.
두 사람에게 창성의 빛이 모두 스며들었다.
후우…….
그러자 진의 입술 사이로 숨결이 빠져나왔다.
죽음의 어둡고 습한 숨이 아니라,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며 내뱉는 것처럼 더없이 맑고 깨끗한 숨이었다.
상처가 모두 아물었다. 창성의 빛은 근본적으로 누메루스의 유산과 다르므로 내상까지 다 치유되지는 않았으나, 진은 몸이 무척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영기에 섞여 기운을 강화하던 혼돈도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따라서 무위도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으나 전혀 상관이 없었다. 론을 상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한 힘이었으니까.
몸 곳곳에 반점처럼 검게 남은 혼돈의 흔적이 조금 있기는 했으나 그 역시 당장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진은 자신이 치유되는 순간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론의 설명을 들을 필요 없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진.”
진은 론이 뻗은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 전까지 진이 직접 볼 수는 없던 창성의 빛이 론의 몸에 은은한 광휘를 일으키고 있었다.
“론 경.”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에게 시선을 맞췄다.
마치 오랫동안 함께 등을 맡기며 싸워온 전우들이 그렇듯, 서로의 내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기분이었다.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결국 괴물이 되어 단테를 내 손으로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슬픔과 괴로움조차도 느끼지 못했을 테지.”
그 말에 진의 동공이 커졌다.
론이 아직 단테가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