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02)
제 666화
156화. 혼돈 정화(7)
* * *
벌써 라프라로사에 들어서고 보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눈을 뜬 진은 자신이 대체 몇 번째 기절에서 깨어난 것인지 세어보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그래도 이번엔 좀 개운한 기분으로 깨어났군.’
쓰러지기 직전 1할의 힘을 되찾은 덕이다.
실제로 진은 단지 기분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가볍다는 사실을 느꼈다. 되찾은 오러가 자연스럽게 전신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진 형제가 또 깨어났어.”
“마지막 순간 힘을 일부 되찾은 것 같더니, 확실히 회복이 빠르네!”
형제들이 다가와 명왕족 전통 과자 ‘칵토’와 물을 건넸다.
“이번엔 얼마나 흘렀습니까?”
“다섯 시간?”
“오. 힘을 조금이라도 되찾은 덕인가, 얼마 안 지났군요. 그런데, 놈에게 어떻게 당해서 기절한 것인지가 잘 기억나지 않는데…….”
“혼돈에게 당해 쓰러진 것이 아니다, 진 형제.”
반이 들어서자 명왕족들이 일어서서 절도 있게 예를 갖췄다.
그들은 본래도 반에게 늘 예를 갖춰왔으나, 저번에 혼쭐이 난 이후로는 그야말로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진 형제가 정신을 잃은 것은 놈의 공격이 아니라 투신 공명 때문이다.”
반의 설명에 의하면, 진이 기절한 이유는 일종의 ‘과부하’ 현상이었다. 그녀의 힘을 진이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형제가 쓰러지기 직전, 갑자기 내 기운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형제와 공명하더군.”
투신 공명이 시작된 것도, 얼마 안 가 공명이 반조차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증폭된 것도.
모두 그녀의 의도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전에는 이런 경우가 없었습니까?”
“없었다. 애초에 형제는 광심장이 생긴 후에도 투신 공명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었어.”
“예, 그랬던 게 저도 기억이 납니다.”
진의 광심장은 첫 번째 라프라로사 수련 때 반의 피를 수혈받으며 형성되었다.
이후 자연스레 몇 번쯤 투신 공명을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다른 형제들과 달리 진의 광심장은 반의 힘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해봤지.”
“광심장이 있어도, 제 육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형제들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나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었어. 보라스 역시 그렇게 유추했었고. 그런데 오늘 투신 공명이 뜻하지 않게 벌어진 것을 보니,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는 확신이 들더군.”
“어떤……?”
“그릇에 빗대자면, 형제는 언제나 가득 찬 상태였던 거다. 그래서 내 힘이 더해질 여지가 없던 거지.”
“그럴 수 있겠군요.”
“게다가 근본적으로 육체가 다르기까지 하니, 투신 형제의 힘에 공명할 수 없던 거지!”
보라스가 둘 사이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는 새로운 발견을 한 연구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잔뜩 흥분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진 형제는 힘을 모조리 잃었으니, 여지가 생긴 것이야. 껄껄!”
“보라스 형제, 그럼 육체는?”
“그 부분이 특히 흥미롭다네, 진 형제.”
텁, 꾹꾹!
보라스가 진의 몸 곳곳을 손가락으로 빠르게 눌렀다.
“글리엑의 아공간에서 혼돈에 잠식되었을 때, 투신혈이 저항하는 걸 느꼈다고 했지? 그때, 투신 형제의 피가 생존을 위해 진 형제의 몸에 변화를 일으킨 게 분명해.”
“흠.”
“말하자면, 진화인 셈이지! 그리고 형제의 공명은 우리 종족 특유의 방식과는 전혀 달라. 명왕족 투신과 명왕족 전사들의 공명이 아니라, 명왕족 투신과 진 룬칸델의 공명이라고 봐야 해.”
“무슨 차이가 있는 겁니까?”
“전설의 무공을 완성할 수 있는 단서가 발견되었다는 뜻이지…….”
“전설의 무공?”
어째 보라스의 말이 약간 사기꾼 같이 들렸으나, 강렬한 호기심이 동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껄껄, 진 형제는 투신합일이라는 걸 들어보았나?”
“처음 듣습니다.”
“지금의 투신 형제 이전에 존재했던 또 다른 투신. 위대한 명왕족의 대전사 나나 형제께서는…… 그 아들, 카카에게 모든 힘을 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네. 투신합일을 통해서.”
그 대목에서 구투왕 ‘바바’가 자랑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바는 명왕족 대전사 나나의 후손이었다.
“나나 형제 역시 다른 형제들에겐 그 힘을 줄 수 없었어. 일반적인 투신 공명만 가능했지. 아무튼, 나나 형제의 아들 카카 형제는 나나 형제의 힘을 모두 받아 다음 투신이 되었어.”
그런 식으로 힘의 전승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면, 지금 투신은 반이 아니라 바바여야 할 것이다.
나나와 카카는 명왕족의 역사에서도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명왕족의 입장에서 ‘고대의 전설’에 속했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건국신화나 영웅일대기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고로 내 생각엔, 투신 형제와 진 형제 또한 위대한 선조 형제들과 같은 무공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거든.”
다소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지기는 했으나, 진이 투신합일을 겪은 건 불과 다섯 시간 전이다.
게다가 반 역시 보라스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있었다.
‘만약 내가 반 형제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도 훈련장에서 늘어지게 한잠을 자는 중인 혼돈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뿐인가, 인세에선 말 그대로 진의 적수를 찾아보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풀릴 리는 없다.
“그게 정말 실현 가능한 무공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 같군요. 그에 대해 전해진 바는 없습니까?”
“딱히? 하지만 투신 형제가 공명을 제어하지 못하고, 진 형제가 기절한 것부터가 부작용이지.”
“그건 그렇군요.”
“준비하게, 진 형제. 바로 훈련장으로 가도록 하지.”
반이 진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혼돈과 곧장 재대결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투신합일에 대한 여러 시도를 하기 위해 훈련장으로 가자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투신 형제.”
한창 기분 좋게 자고 있던 혼돈은, 쓰러졌던 진이 겨우 다섯 시간 만에 명왕족 형제들과 우르르 훈련장으로 몰려들자 벌떡 일어서며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다.
비록 이전 싸움에서 이기긴 했으나, 혼돈의 입장에선 1할의 오러를 빼앗겼으니 진에게 더욱 적대적인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반은 눈길 한 번으로 혼돈의 기를 팍 죽여놓았다.
“저쪽 구석으로 가서 잠을 자든, 혼자 놀든. 네게 남은 시간을 알아서 보내도록.”
[낑, 키잉…….]터덜터덜 구석으로 가는 혼돈의 뒷모습을 보며, 진은 또 한 번 놈이 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 나쁜 놈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애초에 헬루람과 글리엑으로부터 형성되어서 내 힘을 다 빼앗아간 놈이다. 빌어먹을, 자꾸 놈의 심리가 격하게 공감되는군.’
놈은 불쌍한 척을 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실제로 혼돈은 구석에 쭈그려 앉은 채 상당히 애처로운 눈동자로 진과 명왕족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 것이다. 특히 아까 전엔 난데없이 진이 투신의 힘을 받아 강해져서 자신을 위협했으니,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진은 가까스로 혼돈의 시선을 외면하며 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잠시 후 진의 광심장에 광채가 서렸다. 하나 다른 형제들의 광심장은 그대로였다.
“보라스 형제의 예상대로군. 확실히, 이건 나와 진 형제만의 공명이다. 나는 지금 투신 공명을 일으키지 않았어.”
“진짜 그러네! 우리 심장은 빛이 안 나잖아? 투신 형제와 진 형제의 심장만 번쩍번쩍하는군.”
명왕족들이 신기한 듯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진도 다시금 전신에 차오르는 반의 힘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되찾은 1할의 힘보다 몇 배는 될 것 같은 기운이다. 혼돈에게 비장의 수가 없다면, 당장이라도 끝장을 낼 수 있을 것 같군.’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아까처럼 혼돈의 공격과 관계없이, 투신합일의 부작용으로 갑자기 기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반은, 뭔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상하군. 어째서 훈련장에서만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지? 병상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말이지.”
“훈련장에 와서 투신 형제가 뭔가를 발동시킨 게 아니었습니까?”
“아니,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까 형제와 저것이 싸울 때의 감각을 돌이켜보려는 찰나 공명이 시작되었어.”
[키잉, 키이이이. 킹킹.]그 순간 혼돈이 반에게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 애절한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진은 직감적으로, 놈과 투신합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반은 진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으나, 혼돈의 울음소리가 거슬렸다.
“일투왕, 이투왕 형제. 저것이 생각보다 훈련에 방해가 되는군.”
“즉시 제2훈련장으로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발티록과 루모라는 즉시 험상궂은 얼굴로 혼돈에게 다가갔다.
“감히 투신 형제의 훈련을 방해해?”
“진 형제의 힘을 네놈이 갖고 있지만 않았어도, 즉결 처분감이다! 따라와라.”
혼돈은 겁에 질린 채 그들의 인솔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진은 힘없이 훈련장 바깥으로 나서는 혼돈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제발 자신의 직감이 틀렸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 젠장.’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은 혼돈이 훈련장을 떠나자마자 자신과 반 사이의 공명이 풀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반도 마찬가지였고.
“투신 형제, 아무래도.”
“……나도 느꼈다, 진 형제. 일투왕, 이투왕 형제는 놈을 다시 데려오라.”
이내 두 투왕이 다시 혼돈을 훈련장으로 데려오자, 다시금 진의 광심장에 강렬한 빛이 맺혔다.
“허.”
“이게 어찌 된 일이야? 투신 형제와 진 형제의 공명이, 혼돈과 관련이 있는 건가!?”
지켜보던 명왕족들이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고, 보라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투신합일은, 혼돈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나……!”
그리고 혼돈은, 처음처럼 아주 약삭빠르게.
또다시 자신이 저들에게 가치를 지니게 되었음을 깨닫고,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놈이.”
이어진 반의 한 마디에 낑낑거리며 시선을 돌렸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