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6)
제 66화
23화. 귀검 카시미르(2)
카시미르는 어차피 진 일행이 티칸에 온 목적이나 다름이 없는 인물이다. 그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도 고민하던 문제였다.
그런데 이렇게 뜬금없이 제 발로 찾아오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다.
‘뭐지?’
진과 무라칸이 자연스레 길리의 앞으로 나섰다.
문가에 기댄 채 어깨를 으쓱하는 카시미르. 허리춤에 찬 긴 곡검이 인상적이다. ‘귀검’이라는 이명이 생기기까지 수백 명의 강자를 벤 물건이었다.
“아, 이런. 혹시 내가 휴식에 방해가 되었나?”
무라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진은 왜 카시미르가 이곳을 찾아왔는지를 생각했다.
‘아킨에서의 일 때문일 리는 없다. 수비대장이 우리 위치를 알려 준 모양이군. 여관 주인이 인장을 보고 수비대장에게 연락했을 거고.’
그렇다면 왜?
그들은 티칸에 도착하고 이제 막 두어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딱히 사건을 일으키지도 않고 조용히 휴가를 보내는 중.
아직 카시미르가 관심을 보일만한 이유 따윈 단 하나도 없다.
불현듯 유리아가 떠올랐다.
‘설마? 유리아가 무라칸이 변신한 모습을 알리사에게 알렸고, 변신은 용의 권능이라는 걸 알고 있던 알리사는 그걸 카시미르에게 보고한 건가?’
그렇다고 확신한 진이 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시작했다.
‘그저 꼬맹이에 불과한 유리아의 말만 듣고 우릴 용이라고 가정할 정도라면, 그건 카시미르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수비대장은 아마 측근으로서 그런 사항을 알고 있었겠지.’
그리 나쁘지 않은 상황인 것 같았다.
‘복도 바깥에 무장한 기사들을 세워 둔 것은, 우릴 겁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혹시라도 용과 전투하게 될 걸 염려해 대비 차원에서 데려온 거야.’
그게 아니라면 굳이 바깥에 세울 필요가 없다. 겁을 주고 싶었다면 모두 방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진은 또한, 카시미르가 숙소에 있는 사람을 모두 대피시킨 것도 같은 맥락에서 벌인 일이라고 파악했다.
‘아마 이 숙소뿐만이 아니라 인근 양민을 모두 대피시켰겠지. 자신의 접근으로 인해 용이 분노하면 일대가 쑥대밭이 되는 건 한순간이니까.’
여기까지 생각하는 데 몇 초 걸리지 않았다. 티칸에서 겪은 일이 너무 적은 덕이었다.
진은 카시미르가 이만하면 괜찮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다. 무라칸이 용이라는 확신이 없을 텐데도 기사를 동원했고, 양민들을 대피시켰으니 말이다.
그러나 딱 하나, 카시미르가 실수한 부분이 있었다.
“안녕 못 하겠다, 이 새끼야. 너 왜 반말이냐? 나 알아?”
“무, 뭣?”
“어처구니가 없네. 허리에 검 차고 떨거지들 좀 끌고 다니니까 세상이 아주 쉽게 보이지?”
바로 인사를 반말로 했다는 부분이었다.
이어서 무라칸이 육두문자를 속사하며 으르렁대자, 카시미르의 눈빛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용들은 대개 성질이 좋지 않다는 건 세상 곳곳에 널리 퍼진 속설.
카시미르 본인도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어째서 반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비록 ‘폐황자’라 할지라도 비먼트의 순혈 황족이었던 기억 때문일까?
어쨌거나 무라칸은, 그 성질 더러운 용들 사이에서도 유별난 편이다.
“뭔데 다짜고짜 찾아와서 좋은 기분 망쳐 놓고 있어. 묻잖아, 미물아. 나 아냐고. 대답해.”
“모… 르는데.”
그렇게 대답한 카시미르는 잘생긴 얼굴이 팍 일그러진 모습이다. 여러모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무라칸이 용이라고 확신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카시미르쯤 되는 인물이 이런 모욕을 겪고도 농장 허수아비처럼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 네 주둥이엔 금덩이라도 박혀 있는 거냐? 끝까지 말이 짧네, 이 미물 놈이. 이리, 이리 와. 하여간 자기가 뭐 되는 줄 아는 놈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두 번이나 강조해서 이리 오라고 말한 주제에, 무라칸은 오히려 자기가 성큼성큼 카시미르에게 걸어가고 있었다.
카시미르가 엉겁결에 뒷걸음질을 치는 모습이야말로 이 해프닝의 백미. 그때쯤 되자 진은 허허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무라칸, 참아, 참아. 에이, 참으라니까.”
진이 부드럽게 무라칸을 막아섰다. 우뚝 멈춘 무라칸의 두 눈동자가 희번덕이고 있었다. 말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카시미르의 턱을 몇 번이고 돌려버렸을 것이다.
무라칸이 이토록 화가 난 이유는 세 가지다.
불쌍한 딸기파이가 위협을 느꼈다는 사실이 8할, 휴식을 방해받은 게 1할, 반말이 1할.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른 카시미르가 헛기침을 해 댔다.
“흠, 흠! 미안합니다. 제가 건방졌군요. 기분 나쁘게 할 의도는 아니었으니, 귀공들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귀검 카시미르 경.”
“어, 나를 압니까?”
“모를 리가 있습니까. 안 그래도 티칸에서 경을 만나고 싶었습니다만.”
무라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부드러운 진의 태도.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카시미르가 무라칸의 희번덕이는 시선을 애써 피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음, 아마 고양이 때문이겠지요?”
멍하게 풀려 있던 카시미르의 눈빛이 예기를 되찾았다. 진이 먼저 고양이 얘기를 꺼내니 정신을 되찾은 것이다.
“공자는 성함이?”
“진 룬칸델입니다.”
주저 없이 본명을 말했다. 뒤쪽에 있던 길리는 반사적으로 벌어진 입을 틀어막았고, 무라칸도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다른 사람이 룬칸델의 예비 기수를 알아보는 경우는 어쩔 수 없으나, 예비 기수가 스스로 정체를 밝히는 건 금기 중의 금기였다.
물론 누구보다도 놀란 건 카시미르였다.
“얼마 전 우리 가문 연회에 참석하셨다면 미리 인사를 나눴을 텐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카시미르 경.”
잠시 굳어 있던 카시미르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진 룬칸델이라… 이미 저 남자가 용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놓고, 거침없이 본명을 말하는군. 룬칸델이 용과 어울리는 경우가 있었나?’
적어도 카시미르의 기억 속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용은 예로부터 신과 계약한 마법사나 특수한 이능을 다루는 자들과만 관계를 맺었다.
‘저 경박한 남자는 명백히 용이다. 뒷골목 양아치처럼 상스러운 말씨를 구사하지만, 일순 느껴진 위압감이 어마어마했어.’
일행을 살피는 카시미르의 시선이 자연스레 길리에게 닿았다.
‘게다가 저 여자는 길리 맥로란이 아닌가.’
폐황자가 되기 전 카시미르는, 비먼트 황궁을 찾아온 맥로란가 사람들을 본 적이 있었다.
길리는 기억하지 못했으나, 카시미르는 소녀시절의 길리가 연무장에서 보여 준 클로의 가공할 위력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의심할 필요가 없다. 눈앞의 꼬마는 룬칸델이다. 다만 진이 용과 함께 있는 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군요, 카시미르 경. 앉으시죠.”
카시미르가 복도에 세워 둔 병력을 돌려보냈다. 그의 입장에선 지극히 위험한 행동이지만, 방금까지 용에게 반말한 결례를 만회하기 위한 판단이었다.
무라칸은 상당히 못마땅한 기색이었으나.
이미 길리는 진의 판단을 존중하고 테이블 위에 새 잔을 하나 올려 두었다. 무라칸도 분위기를 따라야 하는 입장이었다.
쪼르륵.
진이 카시미르의 잔에 포도주를 채웠다.
“진 공자. 공자께서 용과 함께하는 사실을 가문에서도 알고 있습니까? 룬칸델이 용과 함께하는 건 상상도 못해 본 일입니다만.”
“가문에서는 모릅니다.”
“목숨이 걸린 큰 비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시는군요.”
“방금 카시미르 경도 병력을 물렸으니까요. 여차하면 오늘 대화 결과에 따라 카시미르 경을 묻어 버리면 그만이고요.”
진이 농담조로 말하자 카시미르가 어색하게 웃었다.
“유리아 녀석한테 먹인 얼음과자가 모자랐나 보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좋은 걸 사 줬을 텐데요. 알리사도, 카시미르 경도. 유리아를 몹시 신뢰하는 모양이죠? 아이의 이야기에 이토록 귀를 기울이신 걸 보니.”
“……진 공자께서도 어려운 비밀을 말씀해 주셨으니, 나도 말하겠습니다. 그 애는 내 딸입니다. 믿지 못할 이유가 없죠.”
카시미르도 체격이 좋은 편이지만, 알리사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 하지만 가만히 상상해 보니 의외로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진이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카시미르에게 딸이 있다는 건 전생에서도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다.
게다가.
“그리고 제 딸은 ‘아즈 밀’의 계약자입니다.”
“아즈 밀이라면.”
“예, ‘눈동자의 신’, 아즈 밀이 맞습니다.”
알리사와 카시미르가 딸의 ‘목격담’을 왜 그토록 신뢰했는지, 한순간에 이해가 되었다.
눈동자의 신과 계약한 존재가 절대로 현상이나 사물을 ‘잘못’ 볼 리 없는 것이다. 착시 따윈 있을 수 없는 일.
“이 정도면 공자께서 용과 어울린다는 비밀과 얼추 격이 맞으리라 생각되는군요.”
아즈 밀의 계약자가 내 딸이다.
그걸 밝히는 건 크나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아즈 밀의 계약자는 모든 사물과 현상을 똑바로 바라보는 ‘절대안’뿐만이 아니라 ‘예지안’도 지니고 있으니까.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아즈 밀의 계약자를 찾곤 했다. 미래의 불안감을 떨칠 수 있다는 믿음과 욕망으로 말이다.
그래서일까. 아즈 밀의 계약자들은 이용만 당하다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지플과 비먼트의 황족들이 극성이었다. 그들이 아즈 밀의 계약자들을 ‘어떤 식으로든’ 곁에 두려고 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잠깐, 미물. 아까 그 꼬마가 아즈 밀의 계약자라면 용은 어디에 있어? 이 동네에 용의 흔적이나 기운은 전혀 없었다. 아즈 밀의 용들은 계약자를 끔찍이 아끼기로 소문난 족속인데.”
흥미가 생긴 듯, 기운을 한층 누그러뜨린 무라칸도 테이블에 앉았다. 진은 직감적으로 카시미르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깨달았다.
‘용 인형’을 안고 있던 유리아의 모습이 떠오르며 말이다.
‘모종의 이유로 유리아의 수호룡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에, 이렇게 다급하게 찾아온 것이군.’
카시미르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유리아의 수호룡은 1년 전에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비먼트나 지플이 납치한 것 같습니다만, 심증일 뿐입니다.”
“세상에 납치 따윌 당하는 멍청한 용이 어디 있어, 말이 되는 소…….”
말을 끊은 무라칸의 동공이 커졌다.
“잠깐. 1년이나 됐다고? 네 딸은… 다섯 살쯤 됐지?”
“예.”
카시미르가 고개를 푹 떨궜다. 소중한 친구를 잃고, 친구를 본떠 만든 인형만 안고 있는 딸아이를 떠올리니 참담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건, 카시미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문제였다.
“그럼 네 딸은 계속 미래를 보고 있다는 뜻이잖아! 그렇게 어린 계약자는 용의 제어가 없으면 권능을 통제할 수 없다. 이런 미친, 내 변신을 본 것도 미래에 포함되어 있던 게 분명하군.”
“예? 유리아가 계속 미래를 보고 있다고요?”
“인간들은 잘 모르겠지만. 미래를 목격하는 정신적 부담은 용에게도 버거운 일이다. 지금은 네 딸이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어려서 느끼지 못할 뿐이지.”
“그, 그게 무슨.”
“이대로라면 네 딸은 곧 미쳐서 폐인이 돼. 한두 살 정도만 더 먹어도 슬슬 피로감을 느낄 거고, 그때부턴 눈덩이야. 걷잡을 수 없어지지. 어서 그 용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