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81)
제 666화
174화. 베일의 착각(2)
베일에게는 원래도 은은한 금빛이 흘렀는데, 지금 산드라를 쳐다보는 십자 형태의 눈동자는 밝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뭐? 사라 경이라고?’
진이 미간을 좁히며 베일과 산드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발레리아도 상황을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게도 산드라와 사라는 닮지 않았다.
애초에 사라는 순혈 룬칸델 특유의 검은 머리, 산드라는 지플의 백발인 데다 체구는 물론이고 눈빛, 태도, 분위기 등. 성별이 같다는 점을 제외하면 두 사람은 어느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었다.
그런데도 베일은 계속 산드라를 사라라고 부르고 있었다.
[보고 싶었다, 사라!]“꺼져 이 괴물!”
[어서 사라져라, 너희더러 사라가 꺼지라고 하잖아.]“꺼지라고!”
산드라는 베일에게, 베일은 진과 발레리아에게 말했다. 이 웃지 못할 상황에 가장 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단연 헤도였다.
“젠장할!”
헤도는 권기를 추진력 삼아 하강 속도를 높였으나, 산드라 역시 베일이 일으킨 인력에 가속되고 있었다.
산드라는 그 인력을 벗어나 진 쪽으로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베일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산드라가 베일에게 닿기 직전, 진과 발레리아가 앞으로 쇄도하며 검과 지팡이를 휘둘렀다. 베일이 산드라를 사라로 착각하고 있다지만, 어쨌거나 저 미친놈의 손에 동맹의 일원이 들어가는 건 일단 막아야 했다.
산드라가 사라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베일이 어떻게 돌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물론 발레리아로서는 꺼림칙한 일이었다. 지플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살리는 일에 자신이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미안하군, 아리아.”
“필요한 일이니 어쩔 수 없지. 네가 미안할 일은 아니야.”
하지만 베일은 손에서 발산하는 인력과 날개로 풍압을 일으켜 순식간에 산드라의 착지 지점을 바꾸었다.
복잡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베일을 향해 진이 무턱대고 큰 기술을 남발할 수도 없었다. 산드라와 헤도가 휘말리면 역효과였다.
어쩔 수 없이 진과 발레리아는 한발 물러서 다음 상황을 준비했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산드라가 반 불사의 몸을 가진 생체 골렘이니 인질극에 적합하지는 않다는 사실이었다.
[사라, 사라 룬칸델!]이내 베일은 낭만 소설에서 종종 나오곤 하는 표현인 ‘왕자님 안기’로 산드라를 받으며 함빡 미소를 지었는데, 한쪽 날개를 세차게 휘두르기도 했다.
주먹을 내지르듯이, 기어이 자신을 쫓아온 헤도를 향해.
쩌엉-!
“아가, 앀!”
날개에 가격 당한 헤도가 영기와 바닷물로 이루어진 벽으로 튕겨 나갔다. 그 충격에 벽에서 폭포처럼 검은 해수가 쏟아졌다.
‘저 거대한 사내가 이토록 볼품없이 튕겨 나가는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그러나 헤도나 되기에 저 날개에 맞고도 튕기는 정도에 그친 것이다. 헤도 수준의 강체를 보유하지 못한 무인이라면 즉사하거나 온몸이 으스러졌을 터.
다시 진과 발레리아가 베일에게 달려들었다. 베일은 신줏단지를 모시듯 산드라를 소중히 안고 있느라 검을 사용하지 못하고 날개로만 응전했다.
겉보기엔 마냥 부드러운 느낌이건만, 베일의 날개는 묘지 거인의 외피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강도를 자랑했다.
“왜 자꾸 아가씨를 다른 사람으로 부르는 것이냐, 이 미친놈이!”
헤도가 해수 벽에서 빠져나오며 소리쳤다. 비대하게 부푼 근육에 상의가 다 찢어졌고, 두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진한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늘 품격 있는 모습과 태도를 유지하던 헤도는 이번 무덤행에서 벌써 여러 번 망가지고 있었다.
“나도 묻고 싶던 말이로군, 베일 경. 당신이 안고 있는 그 여자는 사라 경이 아닙니다. 정신을 차리시는 게 좋겠군요.”
그 말에 베일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산드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포획된 맹수처럼 마구 손발을 휘둘러 베일의 얼굴과 가슴팍을 때리고 있었다. 물론 그럴수록 오히려 다치는 쪽은 산드라였고, 베일은 그녀의 공격을 막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조금 달라졌군……. 키도 커졌고.]“조금이라고?”
베일의 무심한 목소리에 진은 또 한 번 어이가 없어졌다.
[성격도 나빠진 데다 힘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약해졌어. 사라, 그간 무슨 일을 겪은 거냐? 그리고 멈춰, 네 주먹이 까지고 있잖아. 마음 아프게. 바로 재생되긴 하는군. 너한테 초재생 능력이 있었던가?]“놔라, 놔. 이 괴물 놈. 감히 내 남편을 죽이려 들어?”
[남편? 남편이 누군데?]“우리 진 씨!”
베일이 진을 노려보았다.
[전쟁이 끝나면, 파들러랑 결혼할까 고민 중이라고 말하지 않았었어?]“자꾸 무슨 헛소리야! 난 사라인지 몰라인지가 아니거든?”
[파들러, 그 역겨운 놈보다는 저 녀석이 더 나아 보이기는 해. 차라리 잘됐군, 마침 파들러도 여길 찾아온 모양이니 이 자리에서 끝장을 내버려야겠어.]“난 사라 룬칸델이 아니고, 산드라 지플이야. 그리고 진 씨가 멋있기는 하지. 너도 그건 알아보는군.”
[그런데 쟤는 네 먼 후손인데, 그래도 되는 사이가 아니지 않아?]“맞아, 맞아. 우린 서로 숙적 가문에서 태어나 비극적인 사랑을 하고 있지……. 그래서 더 짜릿해.”
어느 순간부터 산드라와 베일은 대화 비슷한 것을 주고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미친 사람들끼리는 통하는 구석이 있는 모양.
[어쨌거나 다 괜찮아, 사라. 넌 내가 기억하는 것과 모습이 변했고, 오른팔도 잃었으며 약해졌지만…… 이제는 내가 널 지켜줄게. 네가 나를 지켜줬듯이.]“나를 지켜주겠다고?”
[그래, 사라 룬칸델. 내 목숨과 영혼과 권능은 오로지 너를 위해 존재한다.]쾅쾅쾅쾅!
별안간 포탄이 터진 듯 사방에서 굉음이 일었다. 놀랍게도 그건 묘지 거인들이 ‘박수’를 치느라 나는 소리였다.
지금껏 진과 헤도, 발레리아는 물론이고 산드라 본인까지 베일에게 자신은 사라가 아님을 밝혔다. 심지어 산드라는 자신이 천 년 전에도 룬칸델의 원수였던 지플의 자녀라는 사실도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베일 경은 산드라를 계속 사라 경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 이유가 과연 베일이 천 년 만에 깨어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일까?
왠지, 진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베일 경은 가진 힘에 비해 말투나 행동이 어딘가 유아적인 느낌을 준다.’
어린애들, 아니. 사람은 종종 너무 큰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현실을 비틀고는 한다.
가령 연인이나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그들이 계속 살아 있다고 믿는 경우.
진은 베일의 현 상태가 그와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했다. 이를테면 베일은 지금, 산드라를 사라라고 ‘인식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별 미친…….”
이를 악문 헤도가 씹어뱉듯 말했다.
“탑지기, 아무래도 베일 경은 산드라를 계속 사라 경으로 인식할 것 같소.”
헤도의 분노는 이제 진을 향하지 않았다.
“아가씨를 구해야 한다. 이제 검 따윈 되찾지 못해도 상관없어, 지금부터 아가씨를 구하는 일에 최대한 협조해라, 12기수.”
“물론 그렇게 할 것이오, 탑지기. 하나…… 지금 베일 경과 전투를 치르는 건 오히려 산드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될지도 모르오.”
진이 하늘을 가리켰다.
영기와 각 세력의 기운으로 어지럽게 물들었던 하늘이, 점점 푸르게 뒤덮여가고 있었다. 청뇌, 파들러의 힘이었다.
‘더 강해졌군. 혼돈의 힘을 더 정제하게 되었거나, 옛 경지를 되찾았거나.’
그사이 파들러에게도 변화가 생긴 모양이었다. 검의 정원에서 처음 전투를 치렀을 때보다 더 정순하고 강인한 기운이 뻗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라이오넬과 스탐, 추가된 흑선과 혼돈룡들까지 있군.’
베일과 더불어 저들까지 상대하는 건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특히 베일의 전력은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나, 강해진 파들러보다도 위라는 건 확실했다.
게다가 지금은 검의 정원을 홀로 쳐들어갔을 때와 달리 지켜야 할 동료들이 있었다.
헤도도 분노가 치솟는 마음과 별개로, 상황을 냉정하게 보기 시작했다.
“……자네 말이 맞다, 12기수.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지?”
“베일 경이 산드라를 사라 경으로 인식하는 게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하, 저 미친놈이 산드라 아가씨를 위해 싸워줄 것이라 생각하나?”
“당신이라면 어떨 것 같소, 탑지기.”
“뭐?”
“당신이라면 산드라를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싸우지 않겠소?”
“이런 상황에서라면, 아가씨를 데리고 탈출할 궁리를 세우겠지. 놈이 아가씨를 데리고 탈출하면…….”
헤도가 말을 멈췄다.
갑자기 베일의 기운이 한없이 증폭되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십자 눈은 보다 날카로워졌고, 형태가 변한 검은 마치 인간이 아니라 신의 무구처럼 거대한 빛을 일으키고 있었다.
헤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라면 이 상황에서 산드라를 데리고 탈출을 하는 게 옳았다. 그러나 베일은, 그런 선택을 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저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강하다는 확신이 있는 것이다.
“……설마, 긴장할 필요조차 없다는 건가?”
“그런 것 같소.”
[진 룬칸델. 이번에야말로 그대를 끝장…….]차원문을 완전히 빠져나온 파들러도 헤도처럼 말을 멈췄다. 그는 진을 보자마자 복수를 실현할 생각에 잠시 눈을 빛냈다가, 묘지 거인과 베일을 보고는 얼굴을 구겼다.
[……베일? 네놈이 왜 여기에.] [겁도 없이 나를 찾아왔구나, 파들러.]베일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파들러는 그를 보자마자 눈에 띄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그렇게까지 약해져서는, 정말이지 예나 지금이나 겁이 없어…… 네놈은.]진은 파들러가 전보다 강해졌다고 느꼈으나, 베일은 오히려 그가 약해졌다고 인식했다.
죽일 듯 파들러를 노려보던 베일이 고개를 내려 산드라를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악귀 같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한없이 인자한 얼굴을 한 채였다.
[사라, 오늘은 내가 파들러와 똘마니들을 죽여도 괜찮을까?]산드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대답했다.
“어, 박살을 내든 죽이든 알아서 하고. 나를 계속 이렇게 안은 채로 싸우면 불편할 텐데, 날 진 씨한테 좀 보내줄래?”
[그 말은 맞아. 약해졌어도 너를 안은 채로 찢기에는 무리겠어. 흠…… 저 녀석이라면 난전 속에서 충분히 너를 보호할 수 있을 것 같군. 그렇게 할게.]“그래, 그래.”
[진 룬칸델, 사라를 잘 부탁한다. 싸움이 끝났을 때 그녀에게 작은 생채기라도 하나 남아 있다면, 그때는 너도 내 손에 죽어.]“야, 진 씨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이제 금지야.”
[알았어, 사라. 이렇게 정정할게. 그때는 너도 내 손에 많이 다쳐, 알겠냐? 진 룬칸델.]“그것도 안 돼. 콱, 이게 계속 진 씨한테 못된 말을 하네.”
[칫, 차라리 파들러를 감싸고돌 때가 더 나았을지도 모를 지경이군. 그때는 너도 아주 피곤해질 거다, 진 룬칸델!]베일이 산드라를 진에게 넘기고 날아오르자, 일행은 잠시 그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