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80)
제 666화
174화. 베일의 착각(1)
묘지 거인들의 힘이 주입되자 봉인의 핵이 한층 더 강한 빛을 내뿜었다.
상공으로 치솟은 빛은 세상 모든 바다의 중심이라도 되는 기둥처럼 보였다. 내내 붉은 광선에 시달리던 이들은 이조차 공격의 한 형태인 줄 잠시 착각했으나, 봉인에서 쏟아진 건 그저 아름다운 빛이었다.
원통 형태로 파인 해저 밑바닥은 물론이고, 영기와 바닷물, 전투로 인해 얼룩덜룩해진 온 하늘이 그 빛에 물들고 있었다.
묘지 거인들의 공격이 멈췄고, 어지럽던 풍경이 일시에 정화되자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경건한 마음이 되었다.
진은 긴장을 놓지 않고 핵 쪽을 주시했다.
지켜보는 진의 얼굴이 점차 충격으로 물들어 갔다.
“……발레리아.”
“응, 나도 느끼고 있어.”
핵에 연결된 묘지 거인들의 기운이 끝없이 증폭되고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끝에 빛을 머금은 식물들이 몸을 일으키듯이.
두 사람은 당연히 봉인을 개방하는 일에 묘지 거인들의 힘이 모두 소모되리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이다.
묘지 거인들이 더 강해진다고 해도 자아가 없다면, 진의 입장에선 그저 보다 단단한 병기일 뿐이다.
하지만 진은 왠지 그뿐이 아닐 것 같았다.
묘지 거인들이 창과 방패를 내려두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마치 종교 의식을 행하는 신도들처럼 말이다.
자아가 없는 병기가 할 법한 행위가 아니었다.
이내 사방으로 퍼진 빛이 일시에 귀결되며, 봉인이 열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봉인이 깨어지는 사이, 발레리아는 기록 창을 열고 있었다.
베일.
헤도가 갖고 있던 검의 주인이자, 옛 룬칸델의 인물로 추정된 인물. 그가 묘지 거인들의 경배를 받으며 천 년 동안 이어진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베일 룬칸델…….”
굳이 기록 창을 더 살펴볼 것도 없이, 진과 발레리아는 바로 그가 ‘잊힌 신’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잊힌 신이면서 옛 룬칸델의 일원이었던 인물.
그는 진과 엇비슷한 체구였고, 인간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온몸에 은은한 금빛이 흘렀으며 눈동자는 십자 형태였고, 몸 곳곳에 룬 문자와 이음새가 보였다.
등에는 희고 거대한 두 날개가 있었고, 머리 위에는 빛나는 고리가 떠 있기도 했다. 종교 신화에서 흔히 천사라 표현되는 모습과 거의 유사한 형태.
어느새 해저 중앙에 꽂혀 있던 검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검신 양옆으로 솟은 열 개의 작은 칼날들이, 그 검의 본래 주인과 형태가 바로 이것임을 알렸다.
“룬칸델의 가장 나중에 난 자식, 진 룬칸델이 선조를 뵙습니다.”
진이 예를 갖추며 말했다.
십 대 기사 중 인간이 아닌 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간 조작된 역사 때문에 용들도 그를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일이 깨어난 직후부터, 상공에 있던 퀴칸텔은 그에 대한 기억이 빠르게 돌아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베일……! 태양의 피조물!’
천 년 전 퀴칸텔이 베일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었다. ‘태양의 피조물’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았으나, 그는 여러모로 독특한 존재였다.
베일은 십 대 기사가 되고도 룬칸델이 아니라 한 개인, 그것도 테마르가 아닌 인물에게 충성을 맹세한 유일한 인물이었으니까.
“퀴칸텔 님, 아무래도 주군께서 옛 룬칸델을 깨운 것 같습니다. 저 빛나는 존재는…….”
[이제 기억이 났다, 빌어먹을. 베일, 저 녀석인 줄 알았다면 이번 무덤을 여는 게 아니었는데. 게다가 저 모습은, 금제가 모조리 해제된 상태로군.]“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라가…… 없으니까. 일단 내려가서 진에게 베일에 대한 걸 알려야…… 큭!]당황한 퀴칸텔이 횡설수설하자 동료들은 불안한 마음에 휩싸였다.
별안간 상공 전체에 수백 개의 금빛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마법진들은 순식간에 모든 세력을 조준하며 무언가를 쏠 기세였는데, 마법보다는 권능에 가까웠다.
모두, 동작을 멈춰.
베일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퍼졌다.
퀴칸텔은 이를 악물며 하강을 멈췄으나, 베일을 잘 모르는 나머지 세력들은 그의 말을 어기는 모습을 보였다.
치이이잉-!
움직인 이들에게 마법진에서 쏟아진 금빛 광선이 쏘아졌다. 베일의 광선은 3세력의 함선과 용들을 종잇장처럼 찢어 버리는 괴력을 보였다.
‘……저게 내 검의 옛 주인이란 말인가?’
헤도도 바짝 신경을 곤두세웠다. 검을 맞대 보지도 않았건만, 저자로부터 과연 산드라를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하물며 지금 자신은 검조차 없는 상태였다.
진과 발레리아의 등 뒤에도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진 룬칸델이라고?]진이 고개를 돌려 등 뒤의 마법진을 살폈다.
“그렇습니다, 베일 룬칸델 경.”
[사라는 어디에 있나?]“당신이 봉인된 동안, 천 년이 흘렀습니다.”
[사라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어.]“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사라! 그녀가 죽었다면, 나는 온 세상을 멸할 것이다!]난데없는 이야기에 진은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베일의 광기 어린 말이 결코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라가 죽었을 리 없지…… 내가 이상한 말을 했군. 안내해라, 진 룬칸델. 그녀를 만나러 가야겠다.]“경은 혼돈에 물들지도 않았고 다른 십 대 기사들과 달리 살아 있으며, 기억 또한 온전합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사라를 만나러 가자니까 왜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거냐?]“사라 경은 전사하셨습니다, 천 년 전 당신이 활동하던 시대에.”
[닥쳐! 거기 붉은 머리 여자, 네가 안내해라. 저놈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는군. 한 번만 더 사라가 죽었다고 해 봐, 모가지를 비틀어 줄 테니.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나마 그녀가 사랑하는 성을 갖고 있으니 한 번 봐준 것이야.]발레리아는 진과 눈을 맞췄다.
그녀 또한 봉인에서 깨어난 존재가 설마 이런 미친놈일 줄은 알지 못했다.
[오, 그러고 보니 너는 집사장을 닮았군. 르엣의 후손이냐? 너도 사라의 위치를 모른다면, 르엣이 있는 곳으로라도 안내를 해라. 그 녀석이라면 알고 있을 테니까.]그 말을 듣자마자, 진은 자신이 ‘기록 속 르엣’이 아니라 살아 있는 르엣을 만난 적이 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제가 이곳을 나가면, 르엣 님은 다시 혼자가 되는 겁니까? 전 르엣 님에 대한 기억을 잊게 되고……?
-[기록 장치에서 본 모습만 기억이 날 겁니다. 저에 관해서는. 하지만 진 경, 어차피 저는 사실상 죽어 잊힌 사람입니다. 제 고독을 달래 주는 일 따위보다, 바깥의 살아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입니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반드시.
세 번째 무덤에서 본 그 대화가 기억난 것이다. 베일이 가진 기억은, 옅어진 역사 조작을 해제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발레리아가 무언가 대답하려는 찰나, 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우선 르엣 님을 만나 보도록 하죠.”
진은 르엣을 만나 그녀를 그 어두운 공간에서 꺼내 주고, 발레리아를 통해 기억을 찾을 수 있도록 돕기로 약속했었다.
베일의 힘을 빌린다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라가 죽었다고 말한 놈과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난 르엣의 후손에게 물었어. 자, 말해 봐. 붉은 머리, 르엣은 어디에 있지?]“그오오! 그오오!”
“그오!”
무릎 꿇고 있는 묘지 거인들이 어서 대답하라는 듯 추임새를 넣었다.
“음…… 르엣 님도 사라 경의 위치를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발레리아가 대답하자마자 베일의 눈동자에 살기가 깃들었다.
[너,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거짓말을 하는 인간 특유의 더러운 냄새가 나.]“무슨 거짓말?”
[너도 사라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결국 발레리아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사라 경이 전사한 건 사실이고, 당신은 당신을 천 년 만에 깨워 준 우리에게 행패를 부리고 있어요. 내가 언제 사라 경이 살아 있다고 말했죠? 그거야말로 거짓말인데.”
[이제는 너랑도 말 안 해, 르엣의 후손.]치잉-!
두 사람의 등 뒤에 펼쳐진 마법진에서 금빛 광선이 쏘아졌다. 진은 재빠르게 발레리아를 안으며 광선을 피했는데, 베일은 그사이 날아들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베일 경, 저는 사라 경께 직접 업화를 전수받았습니다. 경이 저를 공격하는 걸, 과연 사라 경이 좋아하실까요?”
시그문드로 베일의 공격을 쳐낸 진이 검을 바꾸며 말했다. 진이 시퍼런 불꽃을 일으키며 업화를 펼치려는 기색을 보이자, 베일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사라가 죽었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네게 검을 전수했지? 룬 문자의 형태를 보니 분명 사라의 검이 맞군.]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사라 룬칸델에게 미친놈.
진은 어쩐지, 그에게서 일순 헤도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아낀다는 사실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헤도 역시 산드라가 죽는다면, 저렇게 복수귀가 되어 온 세상을 부수겠다는 말을 할 것 같았다.
‘제압이 가능한 상대가 아니다.’
자신과 엇비슷한 수준, 혹은 그 이상의 무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옛 십 대 기사이자 신적인 존재.
심지어 그는 벌써 말 몇 마디를 한 것만으로 르엣에 대한 역사 조작을 일부 해제했으며,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너도 파들러처럼, 사라를 독차지하려고 계략을 꾸민 모양이지?]“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나는 다 알아. 약한 척하면서 사라를 빼앗아 간 그 나쁜 놈도 이참에 죽여야겠다.]“파들러 경도 천 년 전 전사했습니다.”
[그래? 그럼 지금 저 멀리에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이 청뇌의 기운은 무엇이냐? 거짓말쟁이야.]감각을 끌어 올리니 정말로 파들러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칼드란 설원에서처럼, 또 그가 소환되는 모양.
진은 저건 진짜 파들러가 아니라, 예언자가 그의 영혼을 혼돈으로 물들여 소환한 존재라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어차피 들어 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후후, 놈을 죽이고 다시 사라를 되찾겠어…….]베일이 말을 끝낸 순간, 기절해 있던 산드라가 번쩍 눈을 떴다.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해저의 상황을 보곤 이렇게 소리쳤다.
“저 괴물은 뭐야, 진 씨가 위험해!”
“아가씨, 아가씨?”
그러고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폴짝 몸을 던졌다. 헤도는 한 차례 한숨을 삼키곤 곧장 산드라를 따라 퀴칸텔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진 씨, 내가 구해 주러 가요!”
“아가씨, 구해 줘도 소용없을 겁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제가 12기수를 반드시 죽일 것이니!”
“산드라!?”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는 와중, 진과 발레리아는 베일이 멍한 눈으로 추락하는 산드라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
베일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라……!? 사라, 그래. 여기야!]산드라를 향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