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79)
제 666화
173화. 검을 쫓다(5)
해저에서부터 붉은 기둥들이 치솟고 있었다. 묘지 거인들의 광선은 빽빽해서 피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두 사람은 하강하는 와중 적절히 마력과 오러를 뿌려 방향을 틀었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사람들처럼, 말을 더할 필요가 없었다. 진과 발레리아는 한 몸처럼 움직이며 서로의 안전을 챙겨 주었다.
진은 전생의 기억 덕에 그녀의 전투 방식을 대부분 알고 있으나 발레리아는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진 역시 발레리아와 함께 싸울 때면 그녀와 마찬가지로 신기한 기분이 되고는 했다.
‘나와 달리 스승은 이번 생의 나를 잘 모르는데도 매번 합이 잘 맞는군.’
‘진과 함께 싸우는 일은 늘 묘할 정도로 안정적이란 말이야…….’
정작 적들의 중심으로 향하는 두 사람에겐 아직 별반 타격이 없건만, 위쪽은 벌써 난리가 나고 있었다.
바멀 연합은 퀴칸텔이 잘 피하고 있는 덕에 피해를 받지 않았으나 지플, 킨젤로, 검의 정원의 추격대는 그 수가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작아서 그물을 빠져나가는 물고기와 그렇지 못한 물고기. 바멀 연합과 나머지 세력의 상태가 딱 그랬다. 퀴칸텔만이 등에 탄 이들의 엄호를 받으며 여유롭게 광선을 피하고 있었다.
각 세력의 실력자들이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묘지 거인의 힘은 상식을 한참 벗어났다.
만일 묘지 거인 하나하나가 초월적인 격까지 갖추고 있었다면, 진도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강해도 자아가 없는 병기는 한계가 있다.
후아아악-!
붉은 광선과 더불어, 사방에서 거목 같은 창들이 날아들었다. 그 크기와 무게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가장 먼저 닿은 창을 일부러 피하지 않고 시험 삼아 검으로 쳐 내자, 손목이 확 뻐근해졌다.
‘묵직하지만 변칙이나 깊이라고는 없는 공격들.’
일정 상황에 반응하는 기계처럼 단조로운 패턴의 반복.
다만 그 수가 많아 자연스레 투로가 복잡해질 뿐, 진은 무리 없이 놈들의 창을 쳐 내며 해저에 착지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지면에 닿자마자 이번에는 건물들에 달린 방어 장비들이 일제히 가동되며 진을 조준했다.
‘아멜라 경이 만든 것과 같은 자동 반응 마력포인가.’
마력포는 피아 식별을 하지 않았다. 묘지 거인들이 가리고 있어도 그냥 진이 있는 방향으로 포를 쏘아 댔다.
다만 포는 거울에 반사된 빛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포가 묘지 거인들의 몸에 튕기며 팅팅팅, 위력에 어울리지 않는 소음을 일으켰다.
대다수는 상공이나 바다의 벽으로 빠져나갔으나, 그럼에도 그 수가 너무 많아 진과 발레리아의 경로를 위협하는 포가 많았다.
‘이건 조금 피곤하겠군.’
그런 생각이 든 찰나.
발레리아가 은소나무 지팡이로 한 차례 바닥을 두들겼다. 그러자 홈을 타고 흐르는 물처럼 거대한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보호막이 아니군.”
“반사되는 포들의 흐름을 비틀 거야. 그러니 너는 묘지 거인을 부수는 일에만 집중해.”
마법진에서 뻗어진 마력이 허공에 룬 문자들을 새기기 시작했다. 천여 개에 달하는 룬 문자들은 각각 다섯 걸음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고정되었는데, 포들은 그 사이를 쉽사리 지나치지 못하고 걸리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걸린 포들은 절대로 두 사람에게 닿지 못했다. 포들은 두 사람이 움직이는 일정한 반경을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력의 크기는 포의 파괴력보다 훨씬 작은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마치 고수가 하수의 공격을 보다 작은 힘으로 흘리는 것과 같다. 보통 무인들의 싸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경우를, 발레리아는 마법으로 해내고 있었다.
‘룬티아 누님으로부터도 아마 이런 신기를 통해 살아남은 것이겠지.’
새삼 스승의 마법에 충격을 받는 진이었다.
“알았다.”
프즈즛-!
시그문드가 짙은 뇌기를 머금었다.
이어 진은 진력을 담아 앞을 가로막은 묘지 거인의 발목을 베었다. 칼날이 부드럽게 들어가지는 않았다.
베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신 둔탁한 굉음과 함께 발목 한 부분이 부서지며 파였는데, 진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마음먹고 휘두르면 베지 못할 건 아니지만…….’
그러려면 일검을 펼칠 때마다 고도로 집중해야 한다. 굳이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싸울 필요가 없었다.
파악!
칼날이 박힌 채 뇌기를 폭발시키자, 묘지 거인의 발목이 부서졌다. 진 정도의 무인이 베었다고 보기에는 다소 지저분한 형태였으나 효과는 확실했다.
“그오오옥……!”
발목이 터진 묘지 거인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중심을 잡으려는 찰나. 도약한 진이 놈의 몸을 타고 머리로 검을 찔러 넣었다.
그대로 머리통이 박살 나며 뇌기 섞인 파편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진은 전광석화처럼 하강하며 발레리아에게 날아든 창들을 쳐 냈다.
뇌신이 창을 짓밟아 으스러뜨리는 것 같았다. 진은 묘지 거인들에 비하면 미물처럼 보일 만큼 작았으나, 존재감은 거인 모두를 합쳐도 비교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버지였다면 굳이 집중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레 이놈들을 분해해 버리셨을 테지.’
불현듯 떠오른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잠시 미간이 좁혀졌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있는 모양이군. 이쪽은 매 순간 목숨을 걸어야 하거든.”
“좀 더 집중하도록 하지.”
사실 발레리아가 마력포의 궤적을 모두 비틀어 놨듯, 진 역시 그녀가 절대 다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었다. 묘지 거인에 한한다면 얼마든지.
발레리아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 괜히 한 말이다. 진은 이제 그녀가 자신에게 실없는 말도 한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기분 좋은 전투.
상황과 별개로 두 사람은 매 순간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공방에 마음이 경쾌해지고 있었다. 진이 검을 휘두르면 묘지 거인의 어딘가가 부서졌고, 발레리아가 마법을 펼치면 놈들의 공격이 어긋났다.
묘지 거인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즐겁게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벌써 열 기 이상의 묘지 거인이 파괴되었다. 그 와중에도 새로 형성되는 묘지 거인이 있었는데, 다행히 두 사람이 처리하는 속도보다 빠르지는 않았다.
또한 점점 새로운 묘지 거인이 등장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진은 일정한 수에 다다르면 더 생성되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진.”
“왜?”
“본래 이런 병기들은 수호 대상이 사라지면 가동하지 않아.”
“이 무덤 어딘가에 잊힌 신의 유해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신 그 자체가 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
“살아있는 옛 룬칸델로 추정되는 인물이 신일 수도 있다?”
“지금 기록 마법을 펼칠 새가 없으니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확인할 수 없어. 기록을 살펴본다 할지라도 지금 내 경지로 알 수 있는 영역이 많지는 않을걸. 그리고, 녀석들의 움직임이 단순해도 너무 단순한 것 같은데.”
발레리아의 말에 진은 문득 묘지 거인들의 움직임이 기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꼭 어떤 목적성이 있는 것처럼.
“네 말을 듣고 보니, 묘지 거인들이 단지 침입자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만 움직이는 것 같지가 않군.”
하나하나가 너무 거대하기도 하고, 아군 피해를 염려해 되는 대로 부수던 탓에 방금까지는 인식하지 못했다.
“놈들이 펼치는 진의 형태가, 우리를 포위하려는 형세가 아니다, 발레리아. 크기 때문에 자연스레 우리가 압박을 당하는 모양이었을 뿐.”
진과 발레리아는 묘지 거인들의 다리 사이를 지나치며 놈들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선, 모든 묘지 거인이 진과 발레리아를 공격하고 있지 않았다. 어떤 묘지 거인은 가만히 멈춘 채 바닥을 응시했고, 또 다른 거인은 땅을 파내고 있었다.
고장 난 게 아니라면, 땅을 파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는군.”
“지하를 탐색 중인 묘지 거인들은 다른 거인들보다 더 정교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진, 내 예상이 맞다면. 이건 고대의 봉인 해제법이다. 이곳 어딘가에 파묻힌 봉인의 핵을 찾으려는 것이지.”
“핵을 찾은 다음엔?”
“모든 묘지 거인들의 힘이 핵으로 연결될 거고, 봉인은 풀려나겠지. 애초에 검이 그토록 오랜 시간 비행을 한 것도, 핵이 숨겨진 곳을 찾는 과정이었을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저놈들을 다 부수는 순간 봉인된 존재가 깨어나지 못한다는 의미로군.”
발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은 네가 해.”
봉인에서 깨어나는 건 신, 혹은 신적인 존재로 추정되는 옛 룬칸델.
그가 누구든 두 사람에게 호의를 보이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적대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혹은 그저 적대적인 걸 넘어, 파들러처럼 원한과 증오로 똘똘 뭉쳐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깨우자.”
그러나 진은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당장 묘지 거인을 다 부숴 버리면 자신과 일행은 안전해질 테지만, 옛 룬칸델의 역사 한 조각은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방어 일변도로 태세를 전환했다. 묘지 거인들은 계속 공격을 했으나, 두 사람이 반격하지 않자 차츰 강도를 줄여 갔다.
이내 십여 분이 흘렀을 때, 묘지 거인들은 더 이상 둘을 공격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상공을 향한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묘지 거인들이 주군과 아리아를 공격하지 않고 있소. 주군이 뭔가 단서를 찾은 결과일 테지. 우린 계속 잘 피하고 막으면 될 것 같소!”
덕분에 상공은 더욱 아수라장이 되었으나, 동료들에겐 그다지 영향이 없었다.
애초에 바멀 연합은 묘지 거인들이 깨어난 후 단 한 번도 반격을 하지 않았다.
반면 지플과 킨젤로, 검의 정원은 줄곧 응전했으니 묘지 거인들은 어느 순간부터 퀴칸텔 무리를 적으로 인식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붉은 광선을 피하느라 진땀을 뺀 건, 단지 인식된 적들을 공격해야 하는 경로에 동료들이 겹쳐 있기 때문일 뿐.
“하마터면 천 년 만에 깨어나는 조상께 큰 실례를 저지를 뻔했군.”
그렇게 십여 분이 흐르자, 한 묘지 거인이 안광을 번뜩이며 진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진과 발레리아의 바로 앞쪽에 있는 묘지 거인이었다.
“그오오오옥!”
그 묘지 거인이 괴성을 내지르자 다른 거인들도 안광을 빛내며 몸을 떨었는데, 그건 봉인의 핵에 힘을 주입하기 위한 과정인 듯 보였다.
첫 번째로 포효한 묘지 거인이 마침내 해저 아래를 휘젓던 두 손을 꺼내 들었다.
그 손에는 작은 태양처럼 빛나는 구체가 들려 있었고, 진과 발레리아는 묘지 거인들의 힘이 일제히 그곳으로 집중되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
“부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게 깨어나기를 기도하지,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