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87)
제 666화
176화. 두 사람을 위한 운명(2)
“아버지를…….”
진은 제 잔에 술을 따르며 먼 하늘에 시선을 두었다.
아버지와 큰누이, 그리고 가문 최강의 전대 흑기사들로 이루어진 흑해 원정대를 떠올리자 내면에 진흙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간 진이 원정대를 찾으러 떠나지 않은 건 다름이 아니다.
세계제일검과 현시대 최강의 무인들이 전인미답, 흑해의 끝을 찾아 나섰다.
그들을 쫓는 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며, 티칸은. 아니, 인세는 현재 자신이 부재해도 괜찮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제드가 로사의 폭정에 저항하다 시론을 찾아 떠났고, 무명은 요나에 대한 일이 정리되는 대로 흑해로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했으나…….
진은 원정대의 소식이 인세로 전해지려면, 오로지 원정대의 일원이 직접 돌아오는 경우뿐이리라 직감하고 있었다.
“소타 사막에서 처음 만난 날, 당신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소.”
“존경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 굳이 정정하자면 경외에 더 가깝다네.”
“흑해에서 아버지께 패한 적이 있던 것이오?”
헤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군. 시론 경에게 맞서서 패배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나. 내가 시론 경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단 일검조차 나누지 못했다.”
“그때가 흑해에 들어서고 얼마나 지난 시점이오?”
“대략 십 년 정도 흘렀을 때였지. 나는 그 십 년 동안 마물뿐만이 아니라 나처럼 흑해를 찾아온 다른 수많은 무인들과도 생사결을 치렀었다. 나는 도피처로 흑해를 택했으나, 수련을 위해 찾아온 무인이 생각보다 정말 많더군. 내가 만난 것만 오백은 넘으니.”
“오백? 흑해를 수련장으로 택한 무인이 그렇게까지 많았소?”
“폐관수련장으로 더할 나위가 없잖나. 게다가 나도 흑해를 빠져나온 다음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시절, 흑해는 세인들에게 시론 경의 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시론은 젊은 시절부터 자주 검의 정원을 벗어나 흑해를 찾았다.
그가 실은 자신의 기사들과 흑해의 지도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은 여전히 극비지만, 그곳에서 오랜 시간 수련을 한 것은 세상 사람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현재, 말하자면 자네의 시대에는 아무도 시론 경에게 도전하지 않았지. 그러나 그 시절은 달랐다. 비궁주나 검황성주는 물론이고, 각 세력의 내로라하는 무인과 마법사들, 재야의 고수들까지 모두 시론 경과 검을 섞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어.”
이전 시대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진은 문득 헤도의 나이를 의식했다.
미친 듯이 대단한 근육이 가리고 있으나, 그는 시론과 비슷한 연배였다.
“낭만이 있는 시대였군.”
“이 시대의 무인이 듣기엔 그렇겠지. 하지만 시론 경에게 직접 도전했던 이들은, 그 시절 어디에서도 낭만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본인이 일평생을 바쳐 이룩한 업적이, 시론 경 앞에서는 한낱 잡기조차 되지 않았을 테니.”
수많은 거인들이 시론의 검에 흑해의 먼지가 되었다.
위명을 떨치던 이들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들보다 높은 경지에 있던 이들도.
“도전자 대부분은 싸움이 성립조차 되지 않았고, 그나마 유의미한 대결을 했다고 할 만한 자들도 절망에 빠져 폐인이 되거나 사라졌다네. 그중 끝까지 살아남아 기회를 엿보던 것이 바로 가주나 비궁주, 검황성주 같은 이들이지…… 검황성주를 위해 한잔 마셔도 좋을 것 같군.”
두 사람이 하늘로 잔을 들었다가 비웠다.
“당신도 거기에 포함되겠소.”
“나중에야 내가 그 격동의 시대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바깥 상황을 전혀 몰랐고, 내 도피처에 세계제일검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으니까. 내가 시론 경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간혹 흑해를 찾은 무인들이 나를 보고 그로 오해했기 때문이라네.”
“당신을 아버지로?”
“도전자들이 많이 찾아오긴 했으나, 흑해는 한없이 넓다. 게다가 툭하면 지형이 바뀌기까지 하니 시론 경을 만나기라도 한 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지. 오랜 시간 시론 경을 찾다가 흑해에서 그냥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았다.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해서.”
“그럴 것 같군.”
“자네는 아직 흑해를 혼자 가본 적이 없을 테지. 그 어두운 땅을 혼자 걷다 보면…… 보통의 경우는 미치기 마련이다. 도전자들은 흑해를 헤매다가 무엇이든 만나면 검을 뽑았다. 사람이든, 마물이든 가리지 않았어. 그런데 나는 당시 흑해를 찾은 이들 중 상당히 강했던 편이니, 시론 경으로 오해받기도 한 것이지.”
“그중 당신을 꺾은 사람이 있었소?”
“없었다. 아마 비궁주나 검황성주와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일 테지. 당시 나는 명백히 그들보다는 약했으니까.”
하늘이 내린 무골이라고는 하나, 헤도가 이룬 모든 성취는 순전히 독학이었다.
특별한 무골이라는 조건이 같으면서 대를 이어온 무학을 습득한 이들보다는 약할 수밖에.
헤도는 그때쯤 그런 사실을 본인이 가장 잘 알았다.
한없이 보잘것없는 육체를 가진 도전자들을 상대로 고전한 적이 몇 번 있던 것이다.
당시 헤도가 구사하던 검술은 야성적이며 파괴적이었으나, 깊이가 부족했다.
“다만, 도전자가 아닌 자들 중 나를 압도적으로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자들이 있었다.”
“전대 흑기사, 아버지의 기사들일 것 같군. 첫 번째는 바네사 경이고.”
“그렇다네. 그간은 우연히 시론 경에게 도전하려던 자들을 만났다가 결투를 했는데, 바네사는 목적을 가지고 나를 찾아왔었다.”
-가주를 사칭한 죄는 크다.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았든.
-뭐냐, 너는?
-그러나 네가 그보다 뛰어난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면, 한 번은 살아서 가주를 뵐 수 있을 것이다.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헤도가 그때 바네사와 나눈 대화를 설명해 주자,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당신을 영입하려고 했던 것 같소, 탑지기. 바네사 경은 당신의 실력을 점검하고, 말이 통하면 아버지께 데려갔을 것이오.”
“그랬을 테지.”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헤도는 흑해에선 시론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만큼 명성을 떨치고 있던 것이다. 실로 특이한 경우였다.
게다가 그때 만약 영입되었다면, 헤도는 지플의 집사가 아니라 룬칸델의 흑기사가 되었을 터.
“바네사에겐 십여 분도 버티지 못하고 패배했다. 그런 충격은 처음이었지.”
“왠지 내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오.”
“그리고 개처럼 도망을 쳤다네. 내게서 도망치던 마물들처럼, 온갖 추태를 보이며.”
“당신이 그러는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소.”
“다시 생각해 보게. 단 한 번도 교육받지 못한 채 열다섯부터 흑해를 벗어난 적 없는 인간의 형태가 어떠했을지.”
그러자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었다.
“……짐승, 혹은 마물 같은 상태일 것 같군.”
언제나 구김 하나 없는 셔츠와 정장에 점잖은 언행을 사용하는 지금의 헤도와, 그때의 헤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괴성을 지르며 도망쳤지. 손에 잡히는 모든 걸 집어던졌고, 똥오줌을 지리기도 했어. 부끄럽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네. 그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소?”
“흑해를 내가 바네사보다 조금 더 잘 알았기에 도망은 성공했다네. 숨어서 회복에 전념하는데,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나를 괴롭게 만들더군. 치욕과 패배감. 그 평범한 감정을 그때가 되어서야 처음 깨달은 것이네. 복수심과 더불어서 말이야.”
그날부터 헤도는 바네사를 이기기 위해 단련에 매진했다.
사실 흑해에서 생존하는 것 자체가 단련이니, 생활이 특별히 달라지지는 않았으나 목표가 생긴 것이다.
“더 강한 마물을 찾으러 평소보다 깊은 지역을 찾았고, 그곳을 방황하는 도전자들과도 싸우며 또 몇 년이 흘렀다. 내가 베일이라고 불렀던 검은…….”
헤도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가 베일이라 부르던 장검의 본래 이름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제 산드라의 권속이 된 진짜 베일은, 그 검을 ‘샤칸’이라고 불렀다.
헤도는 베일로부터 샤칸을 회수하지 않았다.
산드라가 한마디 명령만 내리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만, 샤칸이 없으면 베일은 제대로 된 힘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얻은 것이지. 샤칸을 갖고 있던 건 혼돈의 힘을 사용하는 내단 마물이었다. 왜 옛 룬칸델 십대기사의 검이 그놈에게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지.”
“흠흠, 그야 베일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소. 잠깐 기다리시오, 마침 술도 다 떨어졌군.”
진이 식당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술을 가져왔다.
“봉인되기 전에 흑해에서 옛 십대기사들과 전투를 하다가 잃어버렸다고 하오. 검을 잃어버린 게 봉인에 결정적이었고. 내단 마물은 아마 우연히 습득했을 테지.”
꼴꼴꼴…… 다시 술잔이 채워졌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들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소. 검은, 반드시 마음에 드는 것으로 새로 만들어 주겠소. 내 셋째 누이가 곧 휴페스터에서 굉장한 대장장이를 데려올 것이오. 빈 브랑슈라는 인물이지.”
“처음 듣는 이름이로군.”
“피콘 민체의 화신이니 기대해도 좋소. 그래서, 검을 얻은 다음엔 다시 바네사 경에게 도전했소?”
“다시 도전했는데도 이길 수가 없더군. 심지어 바네사보다 더 강한 힘을 갖게 되었는데도. 그 후로도 세 번을 더 싸운 후에야 겨우 한 번을 이겼다네. 만나기 위해 찾을 때마다 대략 1년이 소요되었으니, 나는 몇 년간 시론 경과 그의 기사들을 쫓아다니며 계속 습격한 셈이지.”
“바네사 경 말고 다른 기사들과도 싸운 것이오?”
“흑해에 있던 거의 모든 흑기사와 싸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용케 살아남았군.”
“시론 경이 나를 귀여운 들짐승 정도로 여겼으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지.”
“귀여운 들짐승이라 하였소?”
“온통 검고 어두운 땅과 황폐한 풍경, 마물밖에 없는 끔찍한 땅에서…… 나는 예를 갖출 필요가 없는 도전자였다. 시론 경은 그 땅까지 찾아와 도전하러 온 인간들을 늘 진지하게 받아 주었으나, 나는 길고양이 대하듯 했었다네.”
진은 헤도와 길고양이의 이미지를 동시에 떠올렸는데, 당연히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길고양이라. 그럴 수가 있나?”
“그때 나는 단순한 힘의 크기만으로는, 이미 10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마냥 하찮게 여기던 시론 경이 흑해에서 죽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게다가 백경과 그 시절 흑기사들까지 모두 함께 있을 테니, 자네 아버지를 걱정하는 것은 그만두도록 하게.”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처음 시론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진은 저도 모르게 조금 풀이 죽은 상태로 대화를 이어오고 있었다.
헤도는 그걸 알아보고 그를 배려해 준 것이었다.
“고맙소. 그런데 탑지기, 그때 왜 아버지의 기사가 되지 않은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