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0)
제 77화
24화. 두 운명을 비틀다(3)
이내 무라칸이 대략적인 사정을 설명하자 퀴칸텔이 두 눈을 껌뻑였다.
[……심각한 사안인 건 확실하군. 일단 자리를 옮기지, 무라칸. 여기서 조금만 가면 섬이 하나 있다. 날 따라와라.]퀴칸텔이 무라칸을 앞질러 날아가기 시작했다. 무라칸은 곧바로 따라가지 않고 잠시 진과 대화를 나눴다.
[후우, 너나 나나 하마터면 죽을 뻔했군. 꼬마, 괜찮냐? 검 개방을 그렇게 성공시킬 줄은 몰랐다.]“그때처럼 영기 폭주가 일어날 것 같진 않은데, 온몸이 다 부서질 것 같다. 너야말로 괜찮냐? 옛 애인한테 난데없이 두들겨 맞는 게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닐 텐데.”
[원래 올타의 용들은 스스로가 유별나게 고귀한 줄 아는 놈들이라, 조금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도 다들 저런 식이다. 그걸 모르지 않고 만났었으니 내가 감수해야 할 문제겠지.]“조금은 화낼 줄 알았는데, 의외네.”
[원래 더 어른이 참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넌 앞으로 한 10년은 참을 필요 없겠어. 아무튼, 헛걸음은 아니라 다행이로군. 오자마자 납치범을 찾았단 말이지. 뷰렛타라…….]풍룡 뷰렛타에 대해선 룬칸델 연회 때 이미 무라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안드레이 지플이 문전박대를 당한 당일이었다.
무라칸에 의하면, 뷰렛타는 자신보다 조금 더 어리고. 바람의 신 멜자이어의 용들 중에선 세 번째로 위상이 높은 용이었다.
[어쩌면 뷰렛타뿐만이 아니라 바람의 신까지 연루된 문제일 수도 있겠어. 구린내가 진동을 하는군. 슬슬 따라가 보자고.]퀴칸텔을 따라잡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녀는 은근히 지친 무라칸의 속도에 맞춰 비행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처음부터 그를 진짜로 죽일 생각은 없던 모양이었다.
두 용이 착지한 곳은 비먼트 인근 해역의 한 무인도였다. 지상으로 내려서자마자 용들이 인간으로 변신했다.
진은 변신한 퀴칸텔을 보고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 브레스를 쏘아 대던 광룡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이 낯설었다.
“여긴 무인도야. 아까 바다에선 자칫하면 다른 용들이 우리 얘길 들을 수도 있었으니까.”
퀴칸텔은 지룡 라부스와 운티엘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듯 보였다. 혹은 그들을 자신과 동급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무라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퀴칸텔은 어째서인지 더 말하지 않고 한동안 무라칸을 쳐다보기만 했다. 노려보는 건지, 빤히 보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운 눈빛이었다.
무라칸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는 모습.
‘뭐야, 내가 잠시 비켜 줘야 되는 분위기인가?’
진이 그렇게 생각한 찰나 무라칸이 침묵을 깼다.
“우리 서로 묘하게 쳐다보기나 하자고 여기 온 거 아니잖아. 뷰렛타가 라트리를 정확히 언제 데려간 것인지나 설명해 줘.”
퀴칸텔이 아랫입술을 한 번 질끈 깨물고 한숨을 내쉬었다
“뷰렛타가 라트리를 데려간 건 1년 전이야.”
카시미르가 말한 행방불명 시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용언 마법을 알려 주겠다고 꼬여 냈단 말이지…… 죄질이 안 좋군.”
“그런데 무라칸. 어째서 뷰렛타가 라트리에게 해코지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진짜로 용언 마법을 전수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퀴칸텔, 현재 아즈 밀의 계약자는 권능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어려.”
“뭐? 그럼 수호룡이 없으면 위험할 때잖아.”
“뷰렛타도 그걸 모르지 않을 거야. 설령 몰랐다고 하더라도 라트리가 이야길 했겠지. 용언 마법은 나중에 더 배울 테니, 일단은 돌려보내 주라고 말이야.”
“흠, 확실히 이상하군. 아즈 밀의 계약자를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한참 전에 라트리를 돌려보냈어야 할 텐데.”
퀴칸텔이 미간을 좁혔다.
사실 그녀에게 아즈 밀의 계약자가 위험한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녀가 수호해야 할 대상은 ‘엔야’지 아즈 밀의 계약자가 아니니까.
하지만 퀴칸텔은 뷰렛타가 엔야에게도 관심을 보인 적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런데 넌 뷰렛타가 라트리를 데려간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라트리를 데려갈 때, 뷰렛타가 잠깐 비먼트에 들렀었어. 라트리를 내게 소개시킨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은 엔야를 보기 위해서였지.”
“엔야가 누군데.”
무라칸이 모른 척 물어보자, 퀴칸텔은 의외로 순순히 올타의 계약자라고 밝혔다.
“아무튼, 뷰렛타는 약간 노골적으로 엔야를 직접 만나고 싶어 했어. 몇 번이나 거절했는데, 불쾌할 만큼 집요하게 달라붙더군.”
“네 성격에 그렇게 달라붙는 걸 가만히 내버려 뒀어? 얌전히 거절만 했단 말이지. 뭐야, 퀴칸텔. 너도 이제 지플을 두려워하는 거냐?”
“후, 지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어쩔 수가 없었어. 이미 엔야가 계약자라는 게 비먼트 상부에 밝혀진 상황이었고, 그놈들 중엔 안드레이 지플과 유착 관계인 놈들도 많지.”
반면 엔야의 신분은 마법 아카데미 장학생이다.
행여 퀴칸텔이 불쾌하다는 이유로 뷰렛타와 싸움을 벌였다간, 아카데미에 있는 지플 끄나풀들이 엔야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었다.
“……내가 성질대로 했다가 엔야가 난처해지면, 수호룡으로서 실격이니까. 아무튼 라트리 이야길 들으니, 그때 뷰렛타가 엔야에게 접근하려던 것도 뭔가 불순한 의도가 있던 것 같군.”
“허, 너는 방금 내 계약자까지 해하려고 했으면서.”
“네 등에 인간이 있는 줄 몰랐다고. 솔더렛의 계약자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까지는 안 했을 거야.”
“그러시겠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라칸.”
“말해, 꼬마.”
“엔야의 경우야 이미 비먼트 상부에 계약 사실이 밝혀졌다지만, 아즈 밀의 계약자는 아직 세상에 알려진 바가 없잖아.”
진은 일부러 유리아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아직 퀴칸텔을 그렇게까지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어떻게 라트리에게 접근한 걸까? 지금껏 돌려보내지 않는 걸 보니, 아즈 밀 계약자의 존재는 분명 알고 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심지어 계약자가 어리다는 사실까지도.”
“그것도 그렇군. 흠… 내가 천 년 동안 잠든 사이, 혹시 계약자를 탐지하는 마법 같은 것도 생겼나?”
그러자 퀴칸텔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마법이 생겼을 리 없잖아.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약자가 직접 권능을 발현하기 전엔 그 누구도 계약 사실을 알아볼 수 없어.”
“혹시 모르는 일이야. 지플 놈들, 인정하긴 싫지만 대단한 족속인 건 사실이니까.”
“설령 그런 마법이 있다 해도, 계약자를 찾아내서 놈들이 무슨 이득을…….”
“크게 두 가지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통제 바깥에 있는 계약자는 위험 요소니까, 미리 제거할 수 있고. 또, 계약자가 죽으면 해당 신과 지플이 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셈이죠.”
진이 대신 대답하자 퀴칸텔이 고개를 돌렸다.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이미 놈들은 대단한 권력을 쥐고 있잖아? 계약자 한둘쯤 큰 위협도 되지 않을 텐데.”
“용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인간들의 권력욕은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계약자 한둘이 모여 여럿이 되면, 충분히 위협이 될 수도 있고요.”
퀴칸텔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이미 세계의 정점에 있는 가문이, 굳이 그렇게까지 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무라칸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있어. 지플의 탐욕은 내가 제일 잘 알지. 그럼 이렇게 가정하자고. 첫째, 놈들은 계약자를 탐지하는 수단이 있다. 둘째, 지플이 아닌 계약자들을 제거하려고 한다.”
“잠깐.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생각할 필요 있어? 그냥 뷰렛타를 만나서 물어보면 되는 문제잖아.”
“순진한 소리 좀 그만해라, 퀴칸텔. 네가 납치범이라면, 순순히 대화에 응하겠어? 정신 똑바로 차려. 내가 볼 때는 그 엔야라는 꼬맹이도 위험한 것 같으니까.”
엔야는 위험한 것 같은 상황이 아니라, 확실히 위험했다.
몇 년 뒤, 엔야는 지플에게 살해당할 것이고 소식지에 기사 한 줄 실리지 않을 것이다. 대신 순혈 지플이 새로운 올타의 계약자가 되어, 온 세상의 소식지를 도배할 터였다.
회귀자인 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전생에서 겪은 역사가 그러했으니 말이다.
“내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있으니, 엔야는 위험하지 않아. 그 아이가 다 성장할 때까지, 그 누구도 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답답한 소리 말고, 정신 차려요! 그대로 두면 엔야는 죽습니다.
목구멍까지 그런 말이 차오른 찰나, 무라칸이 대신 목소리를 높여 주었다.
“퀴칸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네가 365일 24시간 엔야 옆에만 붙어 있을 수도 없을 거 아니냐. 그냥 비먼트를 떠. 아카데미에 있으면 엔야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지플로 보고될 거다.”
“그 아이는 태어나서 비먼트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어. 게다가 가족들도 모두 비먼트에 있지. 불확실하고 희박한 위험 때문에 엔야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라는 거냐?”
“삶도 목숨이 붙어 있어야 누리는 거니까. 어디까지나 이건 옛정을 생각한 조언이야. 선택은 네 자유지, 뭐.”
“음…… 퀴칸텔 님, 잠깐 제 얘기를 들어 주세요.”
퀴칸텔이 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와 무라칸은 지금부터 라트리를 찾을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죠. 그런데 만약 라트리가 감금, 혹은 부상당한 상태로 발견되고, 제가 그 사실을 퀴칸텔 님께 알린다면. 그때는 어쩌실 겁니까?”
“그때는.”
퀴칸텔이 이를 악물었다.
“엔야를 피신시켜야겠지.”
“그렇다면 미리 피신시키십시오. 이미 사건이 벌어진 다음엔, 아무리 빨라도 늦습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해 주시길.”
“꼬마 말이 맞다, 퀴칸텔. 일단 올타의 계약자와 그 가족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뷰렛타가 쓰레기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만나보고 판단해서 알려 줄 테니.”
더 이상 퀴칸텔도 자존심을 세울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말은 틀린 점이 하나도 없는 데다, 진심으로 엔야를 걱정하는 마음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정작 수호룡인 나보다도 엔야의 안전에 민감한 것 같군…… 반성해야겠어.’
후우.
한숨을 내쉰 퀴칸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렇게 하지. 그리고 나도 너흴 돕겠다.”
“아, 됐어, 됐어. 그냥 우리끼리 처리할게. 내가 암만 약해졌어도 그깟 풍룡 하나 어쩌지 못할까 봐 그러냐? 뷰렛타, 그 새낀 이제 뒤졌어.”
“……뷰렛타를 무슨 수로 만날 건데?”
“무슨 수로 만나긴. 널 부른 것처럼 기운을 방출해서 부르면 되지.”
“지플에 지금 용이 몇이나 있는 줄은 알고 하는 소리야? 게다가 룬칸델 꼬마를 데리고 지플 본진을 찾아가겠다고?”
진과 무라칸이 동시에 화들짝 놀라 퀴칸텔을 쳐다보았다.
“뭘 놀라? 꼬마에게서 테마르 녀석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더군. 설마 내가 그 정도도 몰라볼 줄 알았어?”
“음… 퀴칸텔. 여전히 입은 무거운 편이지?”
“테마르에겐 나도 지킬 의리가 남아 있어. 녀석의 먼 후손과 함께 있으니, 옛 생각이 나는군.”
테마르와 무라칸, 퀴칸텔은 곧잘 뭉쳐 다니던 사이였다. 무라칸과 퀴칸텔이 연애를 하던 시절에 말이다.
“무튼, 뷰렛타는 내가 불러 주마. 엔야 때문에라도 내 부름엔 쉽게 응할 테니, 이후엔 너희들이 알아서 놈을 캐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