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19)
제 777화
180화. 각자의 싸움(10)
진이 모트에 오르자 백색 차원문이 닫혔다. 이계 설원 곳곳에 혼돈의 검은 기운이 곰팡이처럼 피어 있었다.
“형님을 죽이면…… 흉신에게 권능이 환원된다고?”
“그래, 정확히는 형제에게 죽어야 발동되는 저주지.”
“그렇다면 예언자가 지금 디푸스를 소환할 이유가 없을 텐데. 이쪽 전투 상황을 몰랐기 때문인가?”
“그건 알 수 없지만, 예언자의 계획에 무언가 차질이 생긴 건 거의 확실해. 놈은 우리 아군들의 합공을 받으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는데, 갑자기 분노하면서 4기수를 소환하려 하더군. 나는 마침 4기수에 관한 정보를 네게 알려주러 이곳에 온 거고.”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모트는 벌써 리칼튼 성 내부로 향하는 새로운 차원문을 열었다.
[보오혹, 보오!]이내 차원문을 빠져나온 일행은, 일리나의 성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미쳤습니까!? 갑자기 가주와 연결을 끊어버리다니요! 이러면 가주께서 위험해지는 걸 모르지 않을……!]일리나가 말을 끊으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저쪽에 열린 백색 차원문을 본 것이다.
‘디푸스가 갑자기 가주와의 연결을 끊기에 혹, 흉신을 배신한 것인가 싶어 급히 소환했더니. 이런 낭패가……!’
그녀는 디푸스를 소환하며, 발레리아가 추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때문에 난데없이 진 일행이 성 내부에, 그것도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을 수 있는 거리에 나타난 걸 보며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형님이 연결을 끊었기 때문에 흉신이 위험해졌다?’
리칼튼 성으로 오자마자 뜻밖의 정보를 얻었다.
진은 일리나의 당황한 눈초리를 놓치지 않으며 즉시 그녀의 흉부로 검기를 쏘았다.
일리나는 가슴팍이 뚫리면서도 보호막을 펼쳤다.
“네가 기어이, 또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구나. 날 소환할 게 아니라, 저것들이 황야로 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할 수 없던 건가?”
그랬다면 결국 진은 디푸스를 베었을 테고, 저주가 발동되었을 것이다.
진의 검기에 일리나의 보호막이 무참히 찢어졌다.
일리나는 혼기로 디푸스를 들어 올리며 도망치려 했으나, 진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아악!]푹!
브라다만테가 막 뒤돌아선 일리나의 등을 찔렀다. 그대로 검신에 맺힌 오러를 폭발시키자 일리나의 몸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그러나 육신은 껍데기일 뿐, 실체는 혼기다.
흩어진 육편은 곧 검은 연기가 되어 성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일리나의 육신’뿐만이 아니라 리칼튼 성 자체가 예언자의 혼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룬칸델이 혼돈에 물들기 훨씬 이전부터 예언자는 이곳에서 혼기를 축적해왔으니.
이제 리칼튼이라는 지역은, 예언자 그 자체나 다름이 없었다.
[빌어먹을…… 이렇게 될 줄은 몰랐군요. 그래요, 내 실수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차라리 잘됐어요.]“으아아악!”
“살려, 살려 주십시오……!”
성 전체가 연기로 흩어지자 내성 곳곳에 갇혀 있던 포로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들은 평야에 있던 포로들과 달리 거신수의 열매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들을 가두고 있던 열매 또한 방금 예언자에게 환원된 까닭이었다.
마찬가지로 평야에 있던 거신수들 역시 혼기로 흩어져 진 일행이 서 있는 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어머니의 힘에 기대 우쭐대는 벌레들 비위 맞추는 거, 지긋지긋하던 차였거든요.]검은 폭풍.
리칼튼 성을 대신해 퍼진 거대한 혼기, 예언자의 실체에 그보다 어울리는 표현은 없을 것 같았다.
디푸스는 그 혼기 속 어딘가로 사라졌다.
상황을 살피던 진은 이내 결론을 내렸다.
“발레리아, 너는 시리스 님과 즉시 탈출해서 아군들과 합류해. 예언자는 내가 혼자 상대한다.”
“또 혼자 싸울 거면 동료들을, 임시 동맹을 뭐 하러 끌고 왔어?”
시리스가 말했다.
“두 분이나 다른 아군들에게 그냥 빠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전투는 제가 도맡을 테니, 나머진 포로를 구출하라는 뜻이죠.”
시리스가 걱정스러운 듯 미간을 좁혔다. 실체를 드러낸 예언자의 힘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저런 형태의 적은 본 적도 없었다. 예언자는 생명체가 아니라 하나의 자연재해, 재앙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을 물리적으로 죽일 수 있는 재앙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알았어. 우린 빠져서 포로 구출과 아군 보호에 전념할게. 난데없는 혼기 때문에 길을 잃은 아군들도 있을 테니.”
특히 발레리아와 시리스는 기록 마법과 순간 이동을 보유하고 있으니, 실시간으로 상황을 전파하는 역할도 맡아야 했다.
두 사람이 떠나자 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온통 예언자의 혼기뿐이었다.
“변신은 끝난 거냐? 과연, 그간 룬칸델을 뒤에서 쥐락펴락 하던 놈이로군. 실체가 꽤 그럴싸한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네가 마녀 헬루람인 줄 알겠어.”
쉬이익-!
검은 연기가 뱀처럼 움직이며 진을 옭아맸다. 진은 일부러 피하지 않고 힘을 가늠해 보다가, 단숨에 기운을 터뜨려 혼기를 흩어버렸다.
[내가 어머니였다면, 당신은 나와 눈조차 마주칠 수 없답니다. 4기수와 빌어먹을 흉신 년도 말이죠.]한 번 감각을 익히니, 이런 식으로 예언자가 근처에 혼돈의 밧줄을 계속 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임시 동맹과 포로들을 처치하기 위해서일 터.
물론 진은 그렇게 둘 생각이 없었다.
“그래? 어쨌거나 미리 말해두자면 우리 싸움은 일대일이야, 예언자. 이제 애먼 사람들은 그만 괴롭혀. 어차피 흉신을 부르는 건 이제 물 건너간 것 같은데.”
[싫다면?]“내가 친히 도와줘야지.”
진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한 순간, 예언자는 돌연 리칼튼 전체를 아우르고 있던 자신의 감각이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그건, 징조다.
영검 궁극기 제1식
첫 번째 밤
진이 첫 번째 밤을 펼치자마자 리칼튼의 전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파괴력 때문이 아니라, 불안감을 느낀 예언자의 실체가 뒤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은 과거 라프라로사에서 겪었던 링링과의 마지막 전투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진은 링링의 아공간 속에서 바로 이 검을 통해 그를 압도했었다.
예언자라라고 해서 다를 이유가 없었다.
‘기생충처럼 인간의 절망이나 끌어모으는 괴물 따위가 이걸 견딜 만한 의지를 지니고 있을 리 없지.’
예언자의 실체를 천천히 둘러보는 진.
그저 검은 폭풍 같은 형태인 만큼 어디가 약점인지 알 수가 없다. 안개를 상대로 약점을 찾을 수 없듯이.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건 곧 검은 폭풍 전체가 타격 지점이라는 뜻이었다.
굳이 약점을 찾아야만 할 만큼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상대도 아니고 말이다.
스겅, 쓰악-!
영기를 머금은 검기가 예언자의 실체를 헤집어대는 모습이 이어졌다. 시커먼 검기가 예언자를 이룬 폭풍을 난자하고 있었다.
“어때, 이제 내게 집중할 생각이 드나?”
[네놈이……!]첫 번째 밤의 영기에 잠식되긴 했으나 예언자는 그 비대한 실체를 잘도 움직여댔다.
다만 진의 말대로 더 이상 아군과 포로 쪽으로는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모든 힘을 진에게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덕분에 아군들은 수월하게 포로들을 구출하고 있었다.
진은 평정을 잃지 않은 듯 말하고 있으나.
사실 극도로 깊은 증오에 미쳐버릴 것 같은 상태였다.
겨우 이딴 존재에게 휘둘려 가문이 타락했다는 사실을, 타락한 가문은 세상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체 어떻게 이해하라는 말인가.
괴물이 된 디푸스, 오늘 이곳에서 무참히 살해된 수많은 사람들.
그 모든 게 진으로부터 분노를 끌어냈다.
진은 저도 모르는 새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전장 전체를 뒤흔드는 자신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브라다만테의 위에 시퍼런 불이 맺혔다.
영원화, 결코 꺼지지 않는 불이 검은 폭풍에 뒤섞이기 시작하자 예언자는 쉴 새 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카아아악, 커아악!]“닥쳐라. 네가 저지른 짓들에 비하면, 이건 대가조차 되지 않는다.”
진이 영검 궁극기로 예언자를 묶어둔 덕에 아군은 벌써 7할에 가까운 포로들을 구출한 상태였다.
예언자는 본래 그 포로들을 제물로 사용해 진과 맞설 계획이었으나, 첫 번째 밤에 너무 빨리 잠식된 게 문제였다.
하나 포로를 사용했더라도 예언자는 간신히 도망치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예언자도 이제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베다 보니 알겠군, 네놈은 이곳 리칼튼 그 자체였어. 오늘, 이 땅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진은 흔들리는 예언자의 실체 곳곳에 악귀처럼 검을 찔러 넣었다.
마구잡이로 튀는 혼돈의 파편은 움켜쥐어서 으깨고, 크게 떨어진 덩어리들은 짓밟고 찢었다.
영원화가 붙지 않아 재생하려는 쪽이 보이면 더 악독하게 불을 질렀다.
맹수가 안개를 찢어발기고 있다면 바로 이런 형상일 것이다.
아군들조차 진의 귀기 서린 모습에 부르르 몸을 떨 지경이었다.
복수.
진은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복수를 하고 있었다.
때때로 예언자는 무의미한 반격을 시도했으나 단 한 번도 진을 위협하지 못했다.
예언자가 소멸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포로 구출이 끝날 때까지, 진이 그를 끝장낼 생각이 없다는 것.
또한 예언자가 그나마 기대하고 있는 바도 하나뿐이었다.
‘지금이라도 흉신이 온다면 12기수도 물러날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놈이…… 디푸스를 죽이게 만들어야.’
그러나 진은 그 속을 훤히 꿰뚫은 채 비웃음을 흘렸다.
“저주가 아직 유효한 모양이군. 얼굴이라 할 만한 게 없지만, 왠지 네놈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군. 네놈이 기대할 만한 것도 그것밖에 남지 않았을 거고.”
진은 미친 듯 예언자를 도륙하는 동안에도 계속 디푸스의 위치를 확인해왔다.
죽어가는 디푸스의 기운은 진조차 찾기 어려울 만큼 미약한 상태였다. 말 그대로 숨만 붙어있는 것이다.
디푸스는 진이 첫 번째 밤을 펼친 그 순간에 외성 쪽으로 날아가 땅에 처박힌 상태였다.
그쪽은 한참 전에 포로 구출이 끝난 데다 지형 붕괴가 심각해, 아군들이 수색에 포함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내성에서 진의 공격을 받아내던 메리가, 지플의 포격이 시작되며 튕겨 나간 지점이기도 했다.
즉, 지금 디푸스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건 메리였다.
“하아, 하.”
그녀는 막 의식을 되찾은 채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검게 물든 흙더미 어딘가에서 너무나 익숙한 신음이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내 메리의 눈에 온몸이 부러지고 꺾여 만신창이가 된 채 쓰러진 사람의 형상이 들어왔다.
메리는 시야가 흐릿해진 탓에 그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디푸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누워 있어도, 지금 메리의 눈에는 똑같이 흐리게 보일 것이다.
그런데도 메리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 흐린 모습조차 마냥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디푸스 오라버니…….”
디푸스는 대답하지 않고 가쁜 숨만 내쉬었다.
메리는 몇 번쯤 더 그의 이름을 부르다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늘 사고는, 내가 쳤는데. 이건 아니야, 정말.”
한동안 메리는 고개를 떨군 채 웃고, 흐느끼고, 그를 부둥켜안았다. 뺨을 비비기도, 머리를 쓸어 넘겨주기도 했다.
그리곤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가 품에서 단도를 꺼냈다.
그녀의 애검 독사는 이미 내성에서 부서지고 말았다.
디푸스의 목에 겨눠진 단도가 떨리고 있었다.
“이제 그만하자…… 오라버니.”
몇 번이나 멈칫하던 메리는, 간신히 각오를 되새기며 단도를 내리쳤다.
선명하게 전해졌다. 오라버니의 살갗과 뼈를 찌르는 감각이.
하지만 메리는 곧 단도가 오라버니의 목이 아니라 손바닥을 뚫은 사실을 알아보았다. 디푸스가 손을 들어 막은 것이다.
그는, 얼굴로 자신의 피와 동생의 눈물이 떨어지는 걸 느끼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메리…… 네가 날 죽이면, 저주가 완성돼…….”
“……뭐라고?”
“어차피, 난 죽어……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막내를.”
퍼엉-! 펑!
전장 곳곳에서 포로 구출이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쏘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