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20)
제 777화
180화. 각자의 싸움(11)
메리는 질끈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했다. 흐린 시야가 밝아지며 디푸스의 모습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윽……!”
디푸스의 상태를 살핀 메리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전신에 주먹만 한 구멍이 열댓 개나 있고 하반신은 완전히 반대로 꺾인 오라버니의 모습을 마주하니, 새삼 현실이었다.
지옥 그 자체인 현실이었다.
“이제야 정신이, 돌아오는군…….”
디푸스의 마른 눈동자에서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자신이 어쩌다 타락하게 되었는지, 타락한 후에 어떤 짓들을 저질렀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메리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정신이 돌아왔다고? 그러니 오라버니를 죽이지 말라고? 나더러 그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메리는 디푸스의 손에 꽂힌 단도와 그의 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조차 타락한 오라버니의 함정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오라버니가 돌아온 거면, 어떻게 해야……!’
저 단도를 뽑아 다시 오라버니를 찔러야 할지, 아니면 이야기를.
분명 유언이 될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메리…… 내 말 들어…… 지금 저주가 발동되면, 다 끝이야. 그리고…….”
너는 나처럼 지지 말고, 계속 씩씩하게 싸워라.
막내랑 같이.
겨우 뒷말을 이은 디푸스의 눈동자가 감겼다.
“오라버니!”
메리는 황급히 디푸스의 얼굴과 가슴팍에 귀를 대었다.
극히 미약한 숨결과 심장박동이 느껴졌고, 메리는 이내 결론을 내렸다.
‘일단 살려야 한다. 다시 죽이게 되더라도, 살려서 왜 그랬는지 이야기를 들어야만 해.’
디푸스에게 직접 이 모든 악몽의 이유를 듣지 못하면 앞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절망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임시 동맹의 함대가 퇴각을 준비하고 있었다.
‘신호탄! 어서 구출 신호를……!’
그러나 소지품 대부분은 독사와 함께 박살이 났다. 단도를 꺼낸 품속에선 가루가 된 피딱지와 모래만이 나왔다.
몇 번쯤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으나 아군들은 그녀의 외침을 전혀 듣지 못했다.
평소라면 목소리에 기운을 담아 온 전장을 쩌렁쩌렁 울릴 테지만, 지금 그녀는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로 지친 상태다.
그래도 어떻게든 디푸스를 업어서 이동해 보려던 메리는 몇 번쯤 그에게 손을 뻗다가 고개를 떨궜다.
발레리아 같은 마법사가 봉인을 하거나, 성왕 정도의 치유사가 직접 돕지 않는 한 디푸스를 살린 채로 이동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메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아군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때까지 디푸스의 숨이 끊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빌면서.
“명이 꽤 질기구나, 예언자.”
진이 말했다.
내성이 있던 쪽의 전장, 이제 진과 예언자의 전투는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크, 으아아…….]리칼튼 성 전체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거대했던 예언자의 실체는 온데간데없이, 온통 시퍼런 화염만이 가득한 모습.
진은 마지막으로 드문드문 곰팡이처럼 남은 혼기에 영원화를 지지는 중이었다.
남은 혼기 덩어리는 겨우 다섯 정도였다.
진이 그것들을 하나씩 푸른 칼날로 베어낼 때마다 예언자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제 정말 끝이 보이는군.”
넷, 하나의 혼기 덩어리가 더 사라졌다.
[그만, 머, 멈춰라!]“처음 네놈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오늘 같은 날만을 기다렸다.”
진의 분노를 대변하듯 사방에서 영원화가 태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모든 영원화는 아까까지 예언자의 실체였던 혼기였다.
셋, 둘, 마지막.
진이 하나 남은 혼기를 짓밟으며 두 눈을 부릅떴다.
“끝내주마.”
푹!
푸르게 일렁이는 칼날이 마지막 혼기를 내리찍었다.
그러자 혼기 덩어리가 유리처럼 깨지며 날카로운 파편이 튀었는데, 그 파편은 혼기가 아닌 다른 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영기?’
영기.
과거 독스는 리칼튼에서 예언자의 영기를 보곤 그가 진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 착각했었다.
진은 그때의 독스처럼 일순 당황했으나, 잠시뿐이었다.
영기와 혼돈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쯤은 진작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내가 어찌 영기를 다룰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 12기수. 거래를 하자! 지금 날 놓아주면, 앞으로 너를 위해.]“예언자.”
진은 예언자의 말을 끊으며 혼기에 꽂힌 칼날을 돌렸다.
“세상엔 결코 타락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너와 거래하지 않고, 나 또한 그중 하나야. 네가 영기를 다룰 수 있는 이유? 그야 뻔해. 솔더렛이 과거 헬루람을 축복한 적이 있겠지. 혹은 헬루람이 그의 권능을 갈취했거나.”
[으아아악! 거절한 걸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너는 나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을지언정, 소멸시킬 수는 없어! 그건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다!]실제로 예언자의 마지막 혼기 덩어리는 산산조각이 난 채 불타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진은 묵묵히 영원화를 증폭시켰다.
예언자가 말한 ‘소멸’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칼날에서부터 분명 선명한 감각이 전해지고 있었다. 영원화가 예언자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있는 감각이.
진이 걱정하는 건 오직 하나였다.
영원화가 놈의 생명력을 끝장내기 전에 디푸스가 사망하는 경우. 그게 아니라면 상황이 뒤집어질 일은 없었다.
[보오오!]“진!”
백색 차원문이 열리며 다시 한번 시리스와 발레리아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전장에 남은 아군들을 찾다가 급히 진에게 온 것이었다.
구슬 때문이었다.
발레리아는 과거 진이 조슈아의 별장에서 얻은 구슬, ‘헬루람의 기록 장치’를 전장에 가져온 상태였다. 칼드란 설원에 가기 전 발레리아는 예언자가 그 구슬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작전에서 구슬을 더 확실히 알아보려 했고, 지금 막 분석을 끝낸 참이었다.
발레리아가 품에서 구슬을 꺼내 진에게 내밀자 영원화에 저항하던 예언자의 기운이 급속히 불안정해졌다.
발레리아가 진에게 내민 구슬은 별장에서 처음 얻었을 때와 달리 자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 어머니. 그걸 어떻게 네놈들이……!]예언자로서는 지금 구슬이 튀어나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녀는 조슈아가 영기 구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걸 과거 진에게 빼앗겼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조슈아가 추락하고 타락한 다음에도 예언자에게 구슬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실직고하면, 어떤 취급을 받을지 뻔하니 말이다.
“진, 영검으로 이걸 파괴해.”
발레리아가 밝혀낸 구슬의 정체는 봉인된 헬루람과 인세의 연결고리였다.
이 연결고리가 남아 있는 한 예언자의 육신이 사라지더라도, 영혼이 다시 구슬 속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예언자가 진에게 ‘나를 소멸시킬 순 없다’고 말한 이유였다.
진이 구슬을 받아 들었다.
[내놓아라! 감히 너희가 파괴해선 안 될 물건이다!]“우린 곧바로 디푸스를 찾으러 가야 한다. 지금 그는 저주를 막기 위해 겨우 목숨을 붙잡고 있어.”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버티고 있다고, 형님이? 저주를 막기 위해서.”
“아무래도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아. 그저 변덕일 리는 없을 테니.”
“……알았어.”
다시 백색 차원문이 열렸고, 진은 자줏빛 영기 구슬을 으깰 듯 움켜쥐었다.
[안 돼, 제발. 어머니, 어머니!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곧 진은 구슬을 허공으로 던지며 영검 1식, 영혼 베기를 펼쳤다.
[아, 아아! 어머니!]파각……!
구슬은 단 일격에 산산조각 부서졌다.
핏방울처럼 자줏빛 파편이 튀었고, 마침내 진의 두 눈에 예언자가 소멸하는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오오오-!
영원화에 잠식된 혼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소멸하고 있었다. 더 이상 예언자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고, 그 순간 진은.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직감에 휩싸였다.
지금 막, 전장 어딘가에서 죽음에 저항하고 있던 디푸스의 마지막 숨이 꺼졌다는 직감이 칼처럼 마음을 찌르고 있었다.
디푸스가 가졌던 흉신의 권능은 결국 로사에게 환원되지 못했다.
다만 디푸스가 사망하자마자 그에게 남아 있던 흉신의 권능이 폭주하고 있었다. 디푸스의 몸 위로 거대한 검은 구체가 떠오르는 중이었다.
그 구체를 이룬 혼기는 이전처럼 디푸스를 강화하거나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혼돈에 감염시키지 않았다.
그저 엄청난 폭발을 일으킬 뿐이었다. 수백 개의 화산이 한꺼번에 터진 듯, 구체에서 쉴 새 없이 혼기가 터지고 있었다.
진은 곧장 구체를 따라 외성으로 달렸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퇴각하는 아군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갈 터였다.
외성에 다다른 진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메리였다. 그녀는 디푸스의 시체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숨을 헐떡였다.
“오라버니를…… 살려서 데려가야, 아…….”
누군가 입김을 분 민들레씨처럼.
디푸스의 시신이 입자로 흩어지고 있었다.
메리는 무심히 흩어지는 입자로 손을 뻗다가 혼절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앞으로 백색 차원문과 강철문이 열리며 발레리아 일행과 오르갈이 나타났다.
오르갈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진의 예상대로 그는 지금껏 흉신을 방해했던 것이다.
[진, 이제 너와 나만 남아서 폭발을 막다가 탈출하면 작전은 성공이다.]진이 구체에서 삐져나온 한 덩이의 혼기를 반대쪽 하늘로 쳐냈다. 하나하나가 함대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위력이었다.
발레리아는 그사이 디푸스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그의 기록을 살폈다.
추후 진과 메리에게 알려줄 만한 기록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이었다.
모트가 메리를 삼켰다.
시리스와 발레리아는 말없이 함대 근처로 향하는 백색 차원문 앞에 섰다. 진은 그들에게 어서 가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발레리아, 베라딘에게 전해. 아군 구출이 끝나면 신호탄 대신 구체 위쪽으로 코젝의 주포를 쏘라고. 폭발 때문에 신호탄은 안 보일 것 같군.”
“그래, 무사히 돌아와.”
이내 모트가 사라지자 진과 오르갈은 구체가 된 흉신의 권능을 향해 몸을 던졌다.
코젝의 주포가 구체의 위를 지난 건 그로부터 십여 분이 지난 다음이었다.
진은 강철문을 넘어가기 전, 잠시 디푸스가 사라진 땅을 돌아보았다.
그가 마지막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면, 기어이 예언자가 소멸할 때까지 죽음에 저항하지 못했다면.
이번 작전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