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82)
제 777화
193화. 무녀(1)
성국 반켈라.
룬칸델이 이야기의 탑에서 폭발이 있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엿새가 지났다. 지금까지 룬칸델과 바멀 연합은 카둔의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흐응, 카둔. 그 오만한 화룡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기긴 한 것 같구나. 엊그제 있던 연방의 통합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카둔은 원래 통합 회의 때마다 꼬박꼬박 참석해서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기로 유명했었지.”
탈라리스가 말했다.
그녀는 이미 엿새 전 밤에 의식을 차렸으나 당분간은 성국에 남아 계속 라니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 라니를 도와야 할 일도 있었다.
“어쩐지 지플이 카둔에게 문제가 생긴 걸 딱히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는 느낌도 듭니다. 물론, 그냥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멀쩡히 지내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럼, 우리 사위는 이제 내일 직접 현장으로 갈 생각인가?”
“예.”
“모트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 우리 딸도 함께 가야겠군?”
“그렇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이 되어야 할 텐데, 흐응…….”
탈라리스가 말끝을 흐렸다.
그간 셀 수 없이 많은 연애를 해온, 이 시대 최고의 연애 고수로서.
탈라리스는 직감적으로 진과 발레리아의 관계에 무언가 진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고 있었다. 때문에 진과 시리스의 혼사 문제는 깨어나자마자 탈라리스의 화두가 되었다.
‘발레리아 히스터. 분명 심히 매력적인 아이긴 하다만, 그간 단 한 번도 이성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던 진이 이렇게 넘어갈 줄이야.’
이성에 관심이 없기로, 시리스는 진보다 더했다.
탈라리스가 보기에 시리스는 진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다만 그 마음은 연애 감정에 국한되지 않았다.
친구로서, 무인으로서, 이성으로서. 시리스는 진에게 분명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적극적으로 표출하진 않았다.
‘차기 비궁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진이 비궁의 안주인이 되는 건 이제 틀린 일이기도 하고. 아니, 근데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비궁과 룬칸델도 연합이 된 마당에. 하여간 고지식해서는…….’
“탈라리스 님.”
“어, 응?”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그냥 조금 걱정이 되었다.”
“혹, 제가 이야기의 탑으로 가는 게 걱정되시는 겁니까?”
그 말에 탈라리스는 빤히 진을 쳐다보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쩌면 지금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지.”
“예?”
“때로는 잃는 게 싫어 더 가까워지지 않는 관계라는 것도 있으니 말이야……. 그것도 애틋한 재미가 있기는 해. 이 몸의 길고 화려했던 역사에도 몇, 그런 사람이 있었으니.”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잠시 옛 시절이 떠올라서 이야기가 샜구나. 후후, 문득 네 아비와 론이 보고 싶군. 검황지에 좀 가봐야겠다. 연합의 건조장 건설 현장도 살펴볼 겸.”
“탈라리스 님께서 살펴주신다면 일하는 이들에게 큰 영광이 될 겁니다.”
“그나저나 흑룡 오빠가 돌아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되었으니 아쉽겠구나. 성왕에게 도움을 받은지라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라니가 탈라리스에게 부탁한 건 ‘지토의 눈’에 대한 봉인을 돕는 일이었다.
“지토의 봉인을 유지하는 건 연합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사위, 내 생각에 언젠가 그 지토라는 마왕이 깨어나는 건 필연이다. 어쩌면, 엘로나 지플이 깨어나는 것도.”
“예, 모두 각오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들이 언제 깨어나든, 흉신 때처럼 세상이 멸망할 위기에 놓일 일은 없을 겁니다.”
“아주 든든하구나, 우리 사위. 콜론에서 목숨 걸고 오기를 부리던 그 소년을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거인이 되었어.”
“그때부터 언제나 비궁의 도움을 받아왔죠. 비궁과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벌써 몇 번은 죽었을 겁니다.”
“알면 잘해. 내게도, 시리스에게도.”
“그럼요, 잘하겠습니다. 부족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진이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탈라리스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거인이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눈치 없는 소년 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귀여웠다.
탈라리스의 눈에, 진은 여전히 순수한 아이였다. 그토록 많은 힘과 권력을 얻었음에도 진은 타락하지 않았고, 고독해지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네가 네 아비를 전부 닮지 않아 다행이다. 내일 떠나려면 준비할 게 많을 테니, 이만 가봐라.”
“알겠습니다, 탈라리스 님. 몸조리 잘 하고 계십시오.”
“다치지 말고, 내 딸아이와 모트를 다치게 만들어서도 안 되고. 그럼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물론입니다.”
진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탈라리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이렇게 말했다.
“뭐…… 애들 일은 애들이 알아서 해야지. 삼각관계라니, 흥미롭긴 하군. 아니지, 산드라 지플까지 끼면 사각인가? 아주 마성이로구만, 우리 사위.”
* * *
다음 날 이른 아침.
이야기의 탑으로 잠입하는 이들이 무명관으로 모였다. 진과 발레리아, 시리스, 요나와 오울이었다.
이제 진이 포함되면 그 일행은 대륙 어느 곳을 가도 위험을 느끼기 어려운 조합이 된다.
그러다 보니 적지의 심장을 찾아가는 일임에도 일행에겐 비장한 기운이 전혀 감돌지 않았다.
“히히, 막내야!”
오히려 요나는 오랜만에 막내와 ‘마실’을 나간다는 마음에 잔뜩 들뜬 모습을 보였다.
일행은 온통 요나가 좋아하는 사람들뿐이다. 진과 오울은 말할 것도 없고, 요나는 발레리아와 시리스에게도 상당히 호감을 품고 있었다.
애초에 발레리아는 무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시리스는 몇 번이나 진을 구한 비궁의 소궁주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요나의 기분은 최고였다. 발소리 하나 없이 방방 뛰며 이 사람 저 사람의 어깨에 오르는 요나는 거의 새처럼 보였다.
“누님은 여전히 움직임을 읽기가 어렵네요.”
“오오! 이제 읽을 수는 있다는 거네?”
“제가 많이 자랐다 보니.”
“그럼 이제 막내를 단독으로 죽일 수 있는 암살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다. 무명 전체가 다 덤벼도 될까 싶기도 하고?”
“오, 요나야. 가만히 좀 있거라, 정신이 사납구나.”
“죽을래요?”
“음, 그래……. 내가 가만히 있으마.”
“히힛, 농담이에요. 겁먹으시긴. 그리고 걱정하지도 마세요, 작전 지역에 가면 공기처럼 변할 거니까. 간 김에 그냥 지플 친구들 목을 몇 따도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요나야, 그러면 안 된다. 우린 오늘 암살이 아니라 조사를 위해 가는 것이다.”
“그럼요, 저도 이제 바보가 아니라서 그 정도는 알거든요. 안 그래, 발레리아?”
“그런 것 같아요.”
“그럼 내가 옛날엔 바보였다는 거야? 너도 죽을래?”
“살려주세요.”
“좋아, 살려주지.”
시리스는 귀여운 무언가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경향이 있는데, 그 때문인지 요나의 바보 같은 언행에서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 세상에 요나를 귀엽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시리스는 그중 하나였다.
“소궁주! 뭘 그리 쳐다봐? 히.”
“그냥 봤어요.”
차마 귀여워서라는 뒷말은 붙이지 못한 시리스였다.
“그냥!?”
“시리스 님, 슬슬 출발하시죠.”
“응.”
시리스가 모트를 소환했다.
[보오옹.]“모트의 차원 이동이 끝나면, 우린 이야기의 탑과 30리 정도 떨어진 테이아 평원에 도착할 겁니다. 도착 직후 무명왕께서 전체 은신 작업을 끝낸 후, 탑으로 접근하겠습니다.”
진이 말했다.
타인을 은신시키는 능력은 요나보다도 오울이 훨씬 우월했다. 그렇기에 과거 소타 사막에서 로사가 진 일행과 지플 몰래 그들을 지켜볼 수 있던 것이다.
“가장 좋은 경우의 수는, 도착 후 무사히 접근해서 기록만 살펴보고 빠지는 겁니다. 설령 발각되더라도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지면 즉시 탈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적지 한복판, 그것도 이야기의 탑에서 전투를 치르는 건 진이 있다 할지라도 미친 짓이다. 일단 탈출한 후 다음을 생각하는 게 옳았다.
“히, 들키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막내야. 30리 바깥, 그것도 차원 이동을 통한 침투에도 발각될 정도면 우리 오울 님은 은퇴해야지. 그런 게 무슨 무명왕이겠어?”
“요나야…….”
“죽을래요?”
“허허, 그냥 불러보았단다. 가자꾸나.”
못 본 새에 오울은 더욱 요나 바보 같은 느낌이 되어 있었다. 오울은 그 사실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았고, 진은 그 모습이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
일행이 모트의 등으로 올랐다.
백색의 차원문이 열리고, 한참 이계 설원을 달리자 일행은 순식간에 테이아 평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테이아 평원?”
“모트, 잘 찾아온 거 맞아?”
진과 시리스가 동시에 말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테이아 평원은, 그들이 알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평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거칠게 조각나고 부서진 땅. 그리고 곳곳에는, 마치 불처럼 보이는 짙은 혼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모트는 분명 테이아 평원을 똑바로 찾아왔다.
그렇다면 이 어두운 풍경이 뜻하는 바는 단 하나뿐이다.
“……전투의 흔적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군. 이 혼기는, 아마 켈리악 지플이 퍼뜨렸을 겁니다.”
켈리악의 폭주가 사실로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모트는 혼기에 기침을 하며 이계 설원으로 몸을 숨겼고, 진은 영기로 장막을 펼쳐 일행을 보호했다.
기껏 무명왕 오울을 데려왔으나 제대로 은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야가 좋지 않아 탑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대응할지 잠시 고민하려는 찰나.
일행은 저 앞에서부터 한 어두운 기운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혼기에 검게 물든 한 인간이었다.
그는, 일행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켈리악 지플, 지플의 가주.
그가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일행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켈리악 지플……!?”
[아아아아!]심지어 켈리악은 다짜고짜 일행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진은 앞으로 나서며 단 일검에 그를 반으로 베어버렸다.
켈리악은 입자로 변하며 어디론가 흩어졌다. 진짜 켈리악 지플이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이내 다시 주위를 살피자.
방금 흩어진 놈과 똑같은 모습을 한 수많은 켈리악 지플들이 일행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뭔가 단단히 잘못되긴 한 것 같군.”
진은 더 이상 당황하지 않고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