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27)
제 888화
209화. 테마르의 일곱 번째 무덤 – 케이탐의 그림(1)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안에 수호자가 있다니?”
[그렇다네. 본래 무덤으로 쓰고자 그린 그림이니,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그림 속에 아공간이 있는 것도, 안에 수호자가 있는 것도, 그 수호자란 놈들의 전투력이 화가 마음대로라는 것도 전혀 당연하지 않아. 수호자들이 얼마나 강한데?”
[정확한 무위는 기억이 안 나네. 아까도 말했듯이 그림이 훼손되면서 내 기억에도 문제가 생겼거든. 다만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밖에는.]“설마 창성급 전투력을 가진 수호자도 있다는 거요?”
[아마 그건 아닐걸세. 개연성이 어긋나는 일이라고 할까…… 당시 테마르의 사람이었던 이들 중, 그보다 강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야.]“나는?”
[물론 자네와 테마르가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는 점은 잘 안다네. 헛, 그렇다면 내가 자네의 전성기를 그려뒀을 수도 있겠군.]“내 전성기라면 지금 꼬마랑 내가 같이 덤벼도 승산이 없다고.”
“진짜냐? 그 정도라고? 너도 전성기에 근접했다며?”
“근접과 완전은 다르거든. 큭큭, 그 시절 이 무라칸 님은 말이다. 일단 창성이 아니면 죽일 수가 없어요, 죽일 수가. 센 녀석들이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그중 창성이 없으면 일단 못 죽이는 거야.”
“허풍 같은데.”
“아니꼬우면 너도 창성하든가. 하긴, 꼬마 네가 뭘 알겠냐. 창성이 되어봤어야 알지? 캬캬캬.”
하마터면 진은 주먹을 뻗을 뻔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그린 모든 것은 오로지 그림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네. 안에 전성기의 무라칸이 있든, 그보다도 더 강한 무언가가 있든 밖으로 나오는 건 불가능하지.]그림을 현실로 꺼내는 게 가능했다면 케이탐이 중하위계 신으로 취급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네들이 내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면, 그 시간 동안엔 그곳이 곧 자네들의 현실이다. 수호자들의 공격에 자네들은 상처를 입을 수 있어. 따라서, 그들을 이기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네.]“즉, 케이탐 님의 말씀대로라면…… 그림 안엔 천 년 전의 역사가 담겨 있으나 그 외엔 다른 보상이 없고, 측정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군요.”
케이탐이 민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과 무라칸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걸 거절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천 년 전의 온전한 역사 한 조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이었다.
게다가 그림은 ‘갑자기’ 오염이 시작되었으며, 케이탐은 그 이유가 역사 조작일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말했다.
마녀 헬루람, 혹은 로키아 가네스토.
진은 이번 일이 왠지 그들과 연관이 있으리라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그들 중 하나가 범인이라면, 이제 와서 갑자기 케이탐 님의 그림을 훼손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모르겠군. 그림에 묘사된 역사를 내가 알면 안 되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시기가 있었을 텐데. 내가 케이탐 님을 도울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던 때라든가.’
용의자들이 그림을 훼손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야 알 수 있을 터였다.
“케이탐 님,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일에 혹 안전장치는 없습니까? 바로 탈출할 수 있는 수단이라든가.”
[그림의 제어권을 잃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만일 자네들이 안에서 훼손된 그림들을 처리하다 보면 다시 제어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사실상 그림 복원 요청이구만?”
[그렇게 생각해도 할 말은 없네, 무라칸. 하지만 난 진심으로 자네들이 그 시절의 이야기를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해. 애초에 자네들이 아니면 들어갈 수조차 없지. 영기를 다룰 수 있어야만 진입할 수 있으니까. 작품이 복원되는 건 그냥 내 바람일 뿐이야. 자네들이 천 년 전 일을 무사히 살피고 돌아와도 내 그림은 복원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아, 농담을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나. 그런데, 진짜 미안하긴 한가?”
[물론이네.]“정말이지?”
[그렇다니까!]“그럼 내가 어떤 보상을 요구해도 수락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나?”
[음, 미안한 건 사실이지만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또 이성이 조금 풀릴 것 같군. 크르르르…….]“케이탐 님이 우리 생각해서 들어가 보라고 하신 건데 무슨 보상이 더 필요하냐, 무라칸. 어쩌면 천 년 전에 대한 중요 단서를 찾을 수도 있어. 그게 가장 큰 보상이지. 너도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일 테니까.”
“아냐, 아냐. 그래도 어쩌면 우리 덕분에 그림도 복원될 수 있잖아. 난 이 화가신 양반한테 하나 꼭 받아야 할 게 있어.”
[그만 짜증 나게 하고 말해보게. 뭔가?]“춘화집을 그려주쇼. 화가신이 직접 그린 춘화집, 캬…… 기가 막히네. 르엣 때문에 망가진 눈을 고칠 수 있게 되겠어.”
“내가 기가 막힌다, 무라칸. 신께 그런 걸 요구해?”
[좋아, 그려주지. 진, 너도 내게 부탁할 그림이 있다면 이야기해라.]“말씀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크크, 그럼 꼬마 몫까지 내가.”
“그냥 다녀와서 생각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뭐든 춘화집보다는 더 가치가 있는 걸로.”
“하여간 내가 잘되는 꼴은 볼 수가 없지? 쳇. 어릴 땐 이 꼬마 놈도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었는데.”
“지금 바로 그림 속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케이탐 님.”
사실상 안전장치가 전혀 없음에도 진은 부담스럽거나 두렵지 않았다.
‘개연성 때문에 창성은 없을 거라고 했으니, 지금의 나와 무라칸이 상대하지 못할 적은 없다. 전성기 무라칸이 존재할 수 있다는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그림이다. 진짜 창성과는 다를 수밖에 없어.’
힘의 크기가 같다고 하여 그림이 창성과 동일한 전투력을 가질 리는 없었다. 아무리 생동감이 넘쳐도 그림은 그림, 분명 한계가 존재할 터였다.
만일 현실의 창성과 똑같은 존재를, 그것도 마음대로 묘사할 수 있었다면. 케이탐의 그림은 테마르의 마지막 무덤이 되었을 터였다. 그런 수호자들이 있는데 이장 따위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알았다. 옥스, 텔펜!]옥스와 텔펜이 옆으로 다가왔다. 옥스는 그림걸이에 반투명한 테를 둘렀고, 텔펜은 입에서 연필을 꺼내 케이탐에게 쥐여주었다. 연필은 케이탐의 손에 닿자마자 필기구가 아니라 창처럼 보일 만큼 커다래졌다.
[그림으로 진입하는 통로를 그릴 거다. 다들 죽은 듯이 가만히 있어야 해. 극도로 집중해야 하는 일이니까. 특히 무라칸, 아까처럼 갑자기 문을 열면 이 새끼야 내가 작업 중에 미쳐, 안 미쳐? 생각하니 또 열 받네.]“거, 알았…….”
[닥치라고 했잖아아악!]이번엔 무라칸과 더불어 진도 다소 어이가 없었으나 조용히 있었다. 케이탐은 벌써 검은 그림 위로 거대한 연필을 휘두르고 있었다. 광기에 찬 눈동자가 형형하게 희번덕였다. 무라칸은 제 머리에 검지를 빙빙 돌렸고, 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연필이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검은 그림에 하얗고 동그란 원이 형성되고 있었다. 잠시 후, 하얀 원 안으로 한 풍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숲? 아니, 산인가?’
원이 작기 때문에 풍경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으나 온통 푸르른 나무라는 건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치 구름 위에서 작은 틈을 통해 숲이나 산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얼핏 보기에도 규모가 대단한 건 확실했다.
뚝, 뚝.
바닥에 케이탐의 땀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다 됐다는 듯 풀썩 주저앉아 이마를 훔쳤다.
[후우, 겨우 열었다. 하마터면 못 할 뻔했지.]“무덤이라기엔 나무가 많은 듯 보이는군요. 거대한 산맥의 일부처럼 보이는데, 저곳 어딘가에 무덤이 있는 겁니까?”
[아마 그렇겠지? 빌어먹을, 내 작품이 무슨 풍경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 참담한 심정을 어찌 풀어야 할지 모르겠군. 너희가 가서 보고 알려다오. 복원까지 된다면 춘화집을 백 권도 넘게 그려주마. 제발! 신이시여! 해답을 주십시오!]이보쇼, 신은 당신이잖아. 그나저나 백 권!?
진은 당연히 무라칸이 그렇게 소리치면서 호들갑을 떨 줄 알았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귀를 막으려 했으나, 무라칸은 원 안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충격을 받은 듯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무라칸?”
“저긴…… 내, 산맥이잖아…….”
“……네 산맥?”
“그래, 내 산맥, 내 집. 저 나무들만 봐도 알 수 있어…… 무라칸 산맥이다, 확실해.”
무라칸 산.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높은 산, 그 이름은 당연히 산의 주인이었던 무라칸으로부터 유래했다.
그리고 지금, 무라칸은 잊고 있던 그 시절의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무라칸 산이 ‘산’이 아니라 휴페스터 전체를 달리던 ‘산맥’이던 때의 기억들이. 그때 무라칸 산맥은 휴페스터의 척추라 불렸고, 무라칸은 그 산맥의 유일한 지배자였었다.
“무라칸 산이 원래 산맥이었다는 말이지.”
“그래…… 지금 남아 있는 산은 그때 다 부서지고 겨우 남은 것이지. 그 정상에 있는 폭풍성도…… 크윽!”
별안간 무라칸이 이마를 부여잡으며 허리를 꺾었다.
“무라칸, 괜찮은 거냐?”
“괜찮아. 망할, 그 시절 기억만 떠오르면 두통이 찾아오는군. 저토록 거대했던 내 산맥을 어떻게 지금껏 잊고 살았는지 모르겠군. 미텔에 중심부가 있고, 휴페스터 전역을 아울렀었다고. 최남단부터 최북단까지.”
“……그렇게 거대한 산맥이 휴페스터에 존재했었다고?”
“그래. 그 산맥을 내 허락 없이 지날 수 있는 용은 아무도 없었다.”
천 년이 지났어도 그 정도로 거대한 산맥이라면 이야기가 남았어야 하나.
무라칸 산맥에 대한 내용은 역사서에 단 한 줄도 기록되지 않았고, 구전된 이야기조차 없었다.
그저 룬칸델에 한 가지 오랜 전설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천 년 전 흑룡 무라칸이 초대 가주 테마르 룬칸델에게 패배한 뒤, 그에게 폭풍성을 내어주고 긴 잠에 빠졌다고.
진은 직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케이탐 님이 그림에 담았다는 천 년 전의 이야기란 아마 무라칸과 테마르. 두 사람에 대한 진실일 것 같군…….’
무라칸이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봐, 케이탐 양반. 이제 어떻게 들어가면 되는데.”
[머리부터 들이밀면 발을 헛디딘 것처럼 쑤욱 빠질 거다. 벌써 옛날 기억을 조금 되찾은 모양이군.]“조금이 아니라 모조리 되찾아서 돌아와야겠어. 춘화집 백 권 잊지 말고 기다리쇼. 가자, 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