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66)
제 888화
216화. 첫 황금함(3)
* * *
“……한 번 죽음을 경험했음에도, 어찌 이렇게 미련할 수 있는 것인지. 제 실수입니다, 그 다섯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을 페이텔의 무덤으로 보내야 했어요.”
태양의 무녀, 산나. 그녀는 페이텔을 붙잡으러 간 사제들의 최후를 확인한 후 후회하고 있었다.
기도를 통해 본 그들의 모습은 실로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자신과 다른 사제들의 영생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릇된 선택을 한 투자드가 특히 충격적이었다.
“페이텔을 잡기엔 그 다섯도 충분했소. 그들의 변수 대처가 나빴을 뿐.”
곁에 있던 사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역시 투자드 일당처럼 부활한 옛 강자로, 명왕족이었다.
“하지만 우리 형제들 또한 쉬누를 붙잡으려다 실패한 이력이 있으니, 그들을 너무 비웃을 수는 없겠군.”
“쉬누를 페이텔 따위와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쉬누 때도 제 판단이 틀렸었어요. 그때 루크 사제님을 더 빨리 쉬누에게 보냈다면, 놓치지 않았을 텐데.”
사제의 이름은 루크, 그는 한때 명왕족의 투신으로 추앙받던 인물이었다. 과거 쉬누가 진에게 말한 것처럼 태양신교의 사제 중엔 옛 명왕족이 포함되어 있었다.
“요즘 자책을 자주 하는군. 마음이 급한 것 같소, 무녀.”
“제가 기도를 통해 확인한 미래가 자꾸 어긋나고 있기 때문이에요. 백경을 비롯한 룬칸델의 강자들이 이 시기에 인세로 복귀를 한 건, 정말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시론이라는 인물이 계속 운명을 초월하고 있기 때문일 테지. 그로 인해 예정된 미래들이 자꾸 엇나가는 것이고.”
“맞습니다. 페이텔의 힘이 진 룬칸델 쪽으로 넘어간 것도 그런 것들의 연쇄 작용이죠. 그게 또 어떻게 작용할지…….”
산나는 요즘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목적은 태양신의 부활.
그걸 실현하기 위해선 지상과 지하 두 세계가 모두 적당한 시기에 멸망, 혹은 그에 가까운 피해를 받아야 한다.
또한 그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데, 지금 세상의 전반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것이다. 게다가 봉인에서 깨어나면 모든 것을 파괴하리라 예상한 엘로나는 순한 양처럼 구는 중이었다.
“하나 변수가 늘어난 만큼, 우리 사제들이 인세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기도 앞당겨지고 있지 않소.”
“그건 그렇습니다. 진마계의 전이가 끝나면, 루크 사제님과 다른 사제님들의 현현이 쉬워질 테죠.”
산나로서는 그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대목이었다. 지하와 지상의 전쟁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도, 산나는 사제들을 이용해 태양신교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율할 계획이었다.
사제들은 그럴 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바멀 연합, 루테로 연방, 킨젤로, 적명족, 진마계. 우리가 그중 어느 쪽과 가장 먼저 싸우게 될지 궁금한 마음이 드는군.”
“그들 중 가장 먼저 승기를 잡는 세력과 싸우게 될 겁니다. 당장은 기도의 응답이 흐려져서 알 수 없으나, 제 생각엔 진마계 쪽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 같군요.”
“아마 그럴 테지만, 나는 바멀 연합 쪽이 결국 태양신교의 숙원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 확신하오.”
“시론 룬칸델 때문인가요?”
“아니, 진 룬칸델. 그는 인간의 몸으로 명왕족 투왕이 되었고, 현 투신의 후계자가 된 인물이지. 게다가 솔더렛의 권능까지 가지고 있으니…… 그가 만약 이번 전쟁을 통해 완성이 된다면, 모든 세력이 그를 올려다보는 입장이 될 것이오. 우리 태양신교조차.”
“루크 사제께서 그렇게까지 평가할 정도라니, 놀랍긴 하군요.”
“물론, 그렇게 될 일이 없도록 우리가 잘 조절해야 할 테지. 그전까진 쉬누를 잡는 일과 다른 형제들을 더 깨우는 것에 집중하는 게 좋겠소.”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지플이 하루라도 빨리 마신석을 완성해야, 우리가 그것을 취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산나가 대답한 찰나, 별안간 루크가 흠칫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호오, 무녀. 느꼈소?”
“무엇 말씀입니까?”
“방금 인세 어딘가에…… 나와 같은 부류의 존재가 깨어났소. 우리 명왕족과는 미묘하게 기운이 다른 걸 보니, 진 룬칸델의 형제들은 아니로군.”
이내 루크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뒷말을 이었다.
“청명족…… 우리 명왕족의 선조, 그중에서도 투신이었던 존재인가.”
* * *
중간세계, 청명족의 옛 도시 닐롯.
아미르 비먼트는 막 유지 장치에서 빠져나온 엘티엇을 바라보았다.
“엘티엇, 나를 알아보겠소?”
“그대는…… 아이란. 나를 구한 자. 나와 형제들을 구한…….”
아이란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와 황실은 엘티엇과 청명족을 구한 적이 없다. 당시 그들에겐 그만한 힘이 없었으니까. 황실은 그저 봉인된 엘티엇과 청명족의 육신을 챙겼을 뿐이었다.
그리고 청명족 매몰자들을 적명족과 거래하는 일에 사용했고, 생체 골렘 마인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일에도 사용했으며.
봉인된 엘티엇에겐 그 긴 세월 동안 끊임없이 암시를 걸어왔다. 바로 자신들이 대봉인에 멸망할 뻔한 청명족을 구원한 존재들이라고 말이다.
또한 황실의 적이 바로 청명족의 적이라는 암시도 함께였다.
“그렇소. 애석하게도 그대의 형제들은 조금밖에 살릴 수 없었으나…… 지금이라도 그대가 깨어난 걸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
“……어째서 나의 형제들보다, 찢어 죽여야 할 붉은 놈들의 냄새가 가득한 것이오? 하찮은 마족들의 비린내도 나는군.”
그 말에 아이란은 한 번 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건, 엘티엇이 기억만 잃었을 뿐 그 시절처럼 여전히 끔찍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엘로나 지플처럼 말이다.
“그대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소, 엘티엇. 그리고 지금은 적명족과 마족이 득세한 시대이기도 하지. 일어나시오, 형제들을 만나러 갑시다. 가서 내 모두 천천히 설명을 해주겠소.”
엘티엇은 몽롱한 시선을 한 채 아이란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 * *
1803년 12월 30일.
그간 룬칸델은 전이 균열을 처리하고, 황금함의 완성에 전력을 기울이는 나날을 보냈다.
“이제 오늘 밤이로군.”
아율라의 강림제가 완성되는 것도, 바멀 연합이 첫 황금함을 거머쥐게 되는 것도. 모두 오늘 밤에 들려올 소식이었다.
‘그리고 마계의 전이가 시작되는 것도 오늘인가.’
현재 휴페스터엔 약 오십여 개의 균열이 형성된 상태였다.
진과 루나, 룬티아를 포함해 균열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자들의 활약도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시아텔로 같은 최중요 지역의 균열은 모두 제거했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국왕님, 균열 지역 대피는 모두 완벽하게 끝난 게 맞습니까?”
“예, 진 공자.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키우던 가축과 반려동물들까지 모두 이전 완료입니다. 대피하지 못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전 지역 발레리아 양이 직접 기록 마법으로 확인했죠.”
무명과 칠색조가 파악한 바, 루테로 연방엔 바멀 연합보다 몇 배나 많은 전이 균열이 남은 상태였다.
“다행이군요.”
“지플에 남은 균열이 그들과 진마계의 소통 창구가 되지만 않는다면, 전쟁을 꽤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을 겁니다.”
만일 지플이 진마계와 연합하지 못한다면, 그들로서는 최악의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연방 곳곳에서 적명족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진마계까지 가세하면 지플이라 할지라도 답이 없을 터.
‘지플과 진마계가 연합을 한다면, 그 중심엔 반드시 산나가 있을 거다.’
진은 태양신교, 그중에서도 쉬누를 고전하게 만들었다는 사제들을 떠올렸다.
‘쉬누는 명왕족의 선조들…… 그중에서도 투신으로 보이는 자도 태양신교의 사제가 된 걸 확인했다고 했어. 쉬누쯤 되는 신을 그렇게까지 몰아붙이려면 이번에 만난 투자드 일당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명왕족이 포함됐다는 건 거짓이 아닐 거다.’
라프라로사에 갇힌 자신의 형제들보다 태양신교가 된 과거의 명왕족들이 세상에 모습을 먼저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옛 투신으로 추정되는 태양신교 사제와 엘로나 지플. 마계가 그 둘과 산나의 능력, 마신석이 부담스러워 지플과 임시 동맹 같은 걸 맺는다면, 상황은 단번에 역전이다. 불리한 건 우리가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페이텔을 확보한 건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그를 찾지 못했다면 해가 넘어간 다음에도 첫 황금함은 완성되지 못했을 터.
“슬슬 성국으로 가봐야겠군요. 저와 무라칸만 다녀오겠습니다.”
성국 외 지역에 전이 균열이 훨씬 많은 상황이지만, 진은 바멀 연합의 총수로서 아율라의 현현을 직접 확인하고, 성국의 신민들을 직접 격려해줄 필요가 있었다.
“다녀오십시오, 공자. 행여 균열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성국으로 통신을 요청하겠습니다.”
진과 무라칸이 붉은부엉이를 타고 성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격변은 밤부터 시작이 되었다.
{[국왕, 휴페스터의 균열로부터 진마계의 마족과 건물들이 소환되기 시작했습니다.]}
밤 10시, 르엣이 티칸에 통신을 넣었다. 룬칸델의 기수와 기사들은 이미 각 균열로 출격하는 중이었다.
“즉시 진 공자께 알리고, 티칸 내 초인들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티칸의 초인들은 휴페스터가 아닌 제국으로 보내주십시오. 제국 전 수도 인근에 갑자기 새로운 균열이 생겼고, 그곳에서 바로 마족들이 소환되는 중이라 합니다.]}
제국도 당연히 균열 지역의 민간인을 모두 대피시킨 상태였다. 그러나 예고도 없이 생긴 새로운 균열이 문제였다.
{[곧 소궁주가 그곳으로 모트를 보낼…….]}
르엣이 거기까지 말한 찰나 제국으로부터 새로운 통신이 들어왔다.
단테의 하이란 제2성이 아닌, ‘황금함’으로부터 온 통신이었다.
{크하하! 제국은 너무 걱정 마시오!}
“콰울 박사……?”
{나와 페이텔 님이 지금 막 황금함을 몰고 하이란 2성에 도착한 상태요. 모든 점검이 끝났고, 현재 황금함의 상태는 아주 완벽해. 벌써 균열에서 나온 마족 천여 놈을 함포 한 방에 가루로 만들었지. 그러니 소궁주가 도착하거든, 수도 말고 다른 쪽을 가라고 하시오. 수도는 검황과 우리가 지킬 것이니!}
제국 수도 인근의 균열을 빠져나온 마족들은, 대부분 그토록 궁금해하던 인세의 풍경을 눈에 담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