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76)
제 888화
218화. 쓰러뜨리면 더 강한 놈이 오는 구조(6)
* * *
진마계, 검마성.
파엘리토는 잔뜩 부상을 당한 채 소환된 사키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키엘 그로쉬에, 그 이름은 지금껏 진마계에서 지략과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녀는 천한 가문이던 그로쉬에가를 마계 30대 귀족으로 만들었으며, 끝내는 지토에게 직접 축복을 받고 총서기관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사키엘이 하필이면 그토록 중대한 첫 번째 대전이를 망친 것이다. 지토의 살점까지 잃은 채.
“……면목이 없습니다.”
“사키엘, 곧 지토 님께서 검마성을 찾으실 것이다.”
“어떤 처분이든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네가 벌을 받는다 하여 해결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네 직속 상관인 나 역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키엘은 파엘리토의 말에 무거운 죄책감을 느꼈다.
파엘리토는 지금 사키엘의 잘못으로 인해 불똥이 튀는 게 싫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상관으로서 대신 책임을 지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너는 지토 님이 오시거든 아무 변명도 말고 가만히 있도록.”
“하지만 파엘리토 님.”
“시간이 없으니 내 말을 들어라.”
파엘리토가 대답하자마자 별안간 두 사람 앞에 보랏빛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 속에선 지토와 한 마족이 함께 등장했다.
지토는 아율라와 전투를 치를 때에 비해 육신이 반밖에 형성되지 않은 모습이었고, 그 옆에 선 마족은 보통의 마족들과 달리 녹색 뿔과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아, 이 등신 같은 새끼들. 내가 꼭 이렇게 직접 행차를 해야겠어?]뻑, 짜악-!
지토는 소환진을 빠져나오자마자 대뜸 파엘리토의 뺨을 후려갈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마족은 그 모습을 보며 킬킬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그쪽에 저를 보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토 님. 파엘리토가 직접 갔다면 모를까, 사키엘 같은 천출 뜨내기를 갖다가 이토록 중한 일에 선봉을 맡기다니요.”
“라갈…… 지토 님 앞에서 그 무슨 불경한 언행이냐? 조용히 있어라.”
“아이고 무서워. 지토 님도 괜찮다고 하시는데 네놈이 뭐라고 이래라저래라냐?”
라갈, 그는 얼마 전까지 대장군이었으나 최근 왕이 된 마족이었다.
“왕의 칭호를 받더니 이제 내가 두렵지 않은 모양이지.”
빡!
지토가 또 한 번 파엘리토의 턱에 주먹을 꽂았다. 파엘리토는 휘청이다가 겨우 자세를 잡았다.
[너야말로 이제 내가 안 무섭냐? 어떻게, 어떻게 네놈들이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나 얼마 전에 평화한테 처맞아서 상태 안 좋은 걸 모르니? 내 귀한 살점을 말이야. 그렇게 써도 되느냐고?]“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지토 님. 저를 지토 님의 육신으로 치환하면 그보다 더 많은 피와 살점이 될 테니, 사키엘을 용서해주십시오.”
[나 이런 눈물겨운 종류의 불편한 고통 싫어하는 거 알면서 이러는 거지? 평화한테도 그것 때문에 막판에 조질 뻔했다고. 아, 이거 언제 극복하지…….]“지토 님, 허락해주신다면 이 라갈이 사키엘을 처분하겠습니다.”
[너도 나 믿고 파엘리토한테 너무 까불고 그러지 마라, 라갈. 이번에 네놈이 잘 해내긴 했는데, 그래도 파엘리토는 파엘리토야. 그러다 파엘리토가 수틀려서 내 뒤통수치고 너 족치면 어떻게 할래, 감당이 되겠어?]“알겠습니다. 하지만 지토 님 덕분에 저도 많이 강해졌습니다.”
[아유, 귀여워. 귀여워서 그냥 짓밟아 터뜨리고 싶네, 우리 라갈. 넌 귀여워서 말대답을 해도 내가 좀 봐주는 거야. 파엘리토가 그랬으면 얄짤없어.]“죄송합니다.”
네놈이 잘 해냈다.
그 말은 휴페스터 외 지역의 전이를 뜻했다. 라갈은 루테로 연합 쪽 침공을 맡았는데, 대승이라 할 만한 전적을 올리고 돌아온 상태였다.
[뭐, 네놈이 지금 파엘리토한테 큰소리 뻥뻥 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해. 그 엘로나 지플을 불구로 만들 뻔했으니.]그 말에 파엘리토의 눈동자가 커졌다.
엘로나 지플은 현재 시론과 더불어 명백한 인세의 두 정점. 그중 한 사람을 상대로 라갈 따위가 성과를 올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예, 지토 님.”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무엇이냐?]“사랑…….”
“그리고 평화인 것 같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그 둘은 잘 활용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고통의 재료가 되지. 내가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 건 말이다, 바로 즐거움 없는 손해다.]파엘리토와 사키엘이 고개를 숙였다.
[네놈들이 내 귀한 살점을 사용해서 뭔가 인세가 한층 고통스러워졌다면, 아름다워졌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오히려 칭찬을 받아야 할 일이지. 그런데 이번엔 대체 뭐냐? 진 룬칸델하고 무라칸한테 낚여서 그냥 살점만 소모하고 얻은 게 아무것도 없잖아.]“죄송합니다.”
[나 말이야, 봉인에서 풀려나자마자 요즘 계속 약해지기만 하고 있어. 눈깔도 아직 못 찾았는데, 살점이 이런 식으로 나가면 곤란해. 앞으로는 조심해, 알아들었어? 에잇, 짜증 나. 돌아가자, 라갈.]그 말에 파엘리토와 사키엘, 라갈 세 사람의 눈동자가 동시에 커졌다.
“……지토 님. 제게 다른 처벌은 내리지 않으시는 겁니까?”
[좀 전에 맞았잖아? 대신 이렇게 넘어가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간 네놈들이 해온 게 있으니 봐준 거야.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고.]라갈은 아쉬운 마음에 표정을 구겼다.
[라갈, 불만이 많아 보이는군.]“아닙니다.”
[너 애들이 뭐라고 부르냐?]“예?”
[파엘리토는 다들 검마라고 부르잖아. 넌 뭐라고 불러?]“독왕 정도로 불립니다. 아니면 독의 라갈, 독에서 태어난 자, 독의 화신…….”
[독왕 빼면 다 조잡하군. 그냥 너도 독마해. 오늘부터 너는 독마다. 독마 라갈 펀, 어감 좋군. 엘로나를 잡을 뻔했으니 그 정도로 불려도 괜찮겠지.]“허…… 감사합니다!”
‘마’라는 칭호는 지금껏 오로지 파엘리토에게만 허락이 되었다. 마계에서 창을 가장 잘 쓰는 이도 창마라 불리지 못했고, 도끼를 가장 잘 쓰는 이도 부마라 불리지 못했다. 진마계제일검이라는 파엘리토의 격을 인정하는 불문율이었던 것이다.
사키엘은 생각 없어 보이는 지토의 언행에 뜻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번 일을 통해 파엘리토와 사키엘은 여전히 이전과 같은 지위로 다른 마족들 위에 군림할 수 있었고, 내심 파엘리토의 독주를 불편해하던 라갈 또한 만족스러운 보상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파엘리토.]“예.”
[오르갈이 이미 죽은 몸이어도 상관없다. 지상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되거든, 어떻게든 오르갈을 붙잡아서 내게 데려와. 그리고 앞으로 나는 전이 균열을 해상과 루테로 연방 쪽에 집중시킬 거니까, 몇 군데라도 너와 사키엘이 책임지고 제대로 자리를 잡아.]“반드시 그리 하겠습니다.”
[좋아, 난 이만 돌아가서 좀 놀아야겠다. 오르갈에 대해 마녀랑 할 얘기도 좀 있고. 에휴, 지상은 아직 제대로 나가보지도 못했는데 뭐가 이렇게 바쁘냐.]이내 지토와 라갈이 소환진을 통해 검마성을 떠났다.
“부상을 치료하는 대로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라, 사키엘. 나는 남은 봉마벽을 허물고 있을 것이니, 그때까지 실수 없이 잘 해내도록.”
“감사합니다, 파엘리토 님.”
“네가 도착할 때쯤엔 이미 해상 주둔지에 마왕 일곱이 소환되어 있을 거다. 따라서 바멀 연합이나 다른 인세의 세력이 이번처럼 해상 주둔지를 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왕들을 통해 내륙 진출을 계속 시도하고 있겠습니다. 성국은 어떻게 할까요?”
“지토 님의 눈을 찾는 건 내가 직접 하겠다. 그때까진 성국을 치는 일에 절대로 병력을 투입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플렉 칼루가를 죽인 백경의 붉은 검…… 영상을 보니 다행히 아직 완전하지는 않더군.”
“완전하지 않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횟수에 반드시 제한이 있다는 뜻이다. 창성에 오르기 전엔 아껴서 쓸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그자가 지토 님을 만나기 전에, 반드시 그 힘을 모두 소진시켜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왕들을 계속 지상으로 올릴 테니, 백경이 그들을 계속 홀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그 힘만 다 소진시키면 왕들의 죽음과 소멸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붉은 힘을 다 잃으면, 그자는 아무런 위협도 될 수 없을 것이다.”
혹은, 그걸 넘어 오히려 인세의 위협이 될 수도 있겠지.
파엘리토는 그렇게 뒷말을 이으며 미소를 지었다.
* * *
루테로 마법 연방, 이야기의 탑.
베라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엘로나를 올려다보았다. 엘로나는 부유한 채 눈을 감고 있었는데, 탑의 힘이 그녀를 치유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몸에 밴 라갈의 독기가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었다.
“라갈 펀, 그런 이름이라고 했습니까. 엘로나 님을 이렇게 만든 게.”
“예, 가주. 진마계의 왕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라갈이 엘로나를 수세에 몰 수 있던 건 다름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 바멀 연합이 상대했던 드렉 혼과 비슷한 부류였다. 라갈의 독 능력은 대량 학살에 특화되어 있고, 엘로나는 그로부터 연방의 시민들을 지키느라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엘로나는 평범한 인간 천만 명을 즉사시키고도 남을 독을 오롯이 홀로 감당했다. 그럼에도 루테로 연방의 시민이 약 십만 명 가까이 죽음을 맞이했으나, 그녀가 없었다면 최소 그 백 배는 죽음을 맞이했을 터였다.
같은 시각에 지플의 다른 초인들은 타 지역의 균열을 정리하고 있었고, 지플은 현재 바멀 연합처럼 초장거리 통신과 공간 도약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초인이 해당 전장을 정리하더라도 엘로나를 지원하러 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시민들이 죽었어야 한다. 그랬다면 라갈은 살아 돌아가지 못했을 거고, 엘로나 역시 이토록 다치지 않았을 터였다. 순수하게 정면으로 붙었을 때, 라갈은 결코 엘로나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게 더 적은 죽음을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베라딘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엘로나가 들으면 거북해할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베티, 알마티아, 쿤.”
이름이 부여된 세 명의 생체 골렘.
그들은 현재 지플의 다른 수뇌부와 비슷한 수준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신석에 대해선 베라딘과 엘로나에 이어 세 번째 권한을 보유한 상태였다.
“예, 가주.”
“말씀하십시오.”
“라갈 펀, 그 마족의 이름을 마신석에 각인시켜라. 마신석이 적절한 수준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가장 먼저 그자의 삶을 수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