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29)
제 999화
231화. 각오(3)
* * *
제국, 구 수도 하이란 제2성.
대균열은 드락카뿐만이 아니라 인세 거대 세력들의 주요 거점 전부에 열리고 있었다. 현재 이곳은 루나와 룬티아가 단테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다행히 민간 피해가 커지기 전에 끝장을 낼 수 있었네, 언니.”
룬티아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진마계의 균열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속에서 본격적으로 마족들이 소환되기도 전에, 모든 균열을 완벽하게 파괴한 상태였다.
균열이 열렸던 자리마다 붉은 검기와 형제성의 거대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특히 붉은 검기는 아직도 처음처럼 진하게 이글거리며 일대에 퍼진 마기와 마족들의 시체를 집어삼키는 모습이었다.
“언니, 혹시 무리한 건 아니지? 횟수 제한 때문에 붉은 검기를 많이 쓰면 지치곤 했었잖아.”
룬티아가 루나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사실 지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어쩐지 수심이 짙은 분위기였다.
“아니, 지치진 않았어.”
“그럼?”
“……가슴이 답답해서.”
루나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녀는 전투를 하는 내내 불길한 직감에 휩싸인 상태였다.
“막내가 신경 쓰이는 거지?”
“그래…… 이번만큼은 막내가 이겨낼 수 없는 강적일 것 같다.”
실제로 루나는 어렴풋이 파엘리토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엘로나가 그의 힘을 읽었듯이 말이다.
그 힘은 한없이 어둡고 거대하다. 마치 원정대 시절 겪었던 흑해의 왕들처럼.
“언니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뭔가를 느낀 모양이군. 알겠어, 여긴 나한테 맡기고 언니는 성국으로 가.”
룬티아가 먼 하늘에 새로 열리기 시작한 대균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루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긴 내가 계속 맡는다. 지원은 네가 가.”
단호한 목소리.
물론 루나는 그 누구보다도 진을 걱정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막내를 도우러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소가주는 제국을 지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따라서 지원을 가더라도 둘 중 그 명령을 혼자서도 더 잘 수행해낼 수 있는 인물이 제국에 남는 게 옳고, 그건 분명 루나였다.
룬티아는 토를 달지 않았다. 기수들이 룬칸델의 법도를 모를 리는 없었다.
“알겠어. 그럼 나는 지금 즉시 본대로 복귀한 후 소궁주랑 연계할게. 내 자리를 대신할 사람도 한 명 골라서 여기로 보내고.”
루나가 크란텔을 높이 치켜들었다. 하늘을 물들인 붉은 검기들이 소용돌이치며 크란텔의 검신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 룬티아, 부탁한다. 나도 이쪽이 정리되는 대로 넘어가마.”
* * *
성왕성.
금빛 보호막이 성왕성을 감싸고 있었다. 라니와 신관들이 파엘리토가 파괴한 아율라의 기운을 모아 형성한 보호막이었다.
“하아, 하……!”
성왕 라니는 성왕성 지하 최하층, 반켈라 영원창고의 철문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신성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샛노란 신성력과 탈라리스가 쳐둔 만빙의 한기가 최하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철문을 뚫고 바깥으로 나오려는 지토의 기운을 막기 위해서였다. 본래 종이 한 장도 들어가지 않는 철문 틈 사이로 스멀스멀 자줏빛 마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기를 발산하는 건 영원창고의 가장 깊은 곳에 봉인된 지토의 눈이다.
‘……내가 혼자서 버티는 건 한계가 있다. 비궁주께서 빠지시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건가, 그 괴물의 눈은.’
탈라리스는 파엘리토가 침공을 시작하자마자 바깥으로 나간 상태였다. 처음엔 대결계를 쳐 파엘리토의 진격을 조금이라도 저지하려 했고, 지금은 비델루체를 막아야 했다.
콰아앙……! 크드드득!
별안간 성 바깥에서부터 묵직한 폭음과 진동이 전해졌다. 적들이 벌써 성왕성의 보호막을 뚫었다는 뜻, 라니는 이를 악물었다. 입술 사이로 한 줄기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벌써!? 안돼, 너무 빨라!’
진동이 빠르게 격해지고 있었다. 흔들리는 지축 때문에 일순 철문의 틈이 벌어지자 그 사이로 마기가 요동을 쳐댔다.
바깥은, 라니가 지금 느끼는 것보다도 훨씬 상황이 좋지 않았다.
“어머 어머, 얘들 좀 봐. 아율라의 보호막 찌꺼기를 모아서 이 비델루체를 저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야? 꿈도 크다, 꿈도 커.”
치아아아악-!
비델루체의 손아귀에서 두터운 자줏빛 광선이 쏘아지고 있었다. 그녀가 가볍게 손을 뻗을 때마다 성왕성 보호막에 거대한 금이 일었다.
파괴의 비델루체.
진마계에서 그녀는 파괴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비델루체는 보호막의 깨진 부분으로 돌진하는 부하들조차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광선을 쏘아댔다. 마족군은 비델루체의 손에 아군이 죽는 걸 보고도 주저 없이 계속 보호막을 파고들었다.
거리엔 신민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 지하 방공호나 성왕성 내부로 미리 대피한 상태였다.
성기사들은 스스로 장벽이 되어 성왕성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탈라리스가 비델루체를 노려보았다.
탈라리스의 얼굴엔 전혀 여유가 없었다. 이미 내내 지토의 기운을 막느라, 대결계를 치느라 너무 많은 힘을 소진한 것이다.
“거기, 네가 비궁주겠지? 잘 됐다. 지토 님의 육신만 되찾으려 했는데 만빙도 챙겨갈 수 있겠어.”
“자신감이 넘치는군. 그런데 말이야, 마족. 우리 비궁은, 바멀 연합은 이런 순간을 견디지 못한 적이 없다. 긴장하고 들어오는 게 좋을 게야.”
“아하핫, 그래? 우리 파엘리토와 싸우는 놈들을 믿는 모양인데, 걔들은 이제 곧 뒤져. 승부는 사실상 이미 끝났고. 어디 보자…… 그래, 저쯤이 좋겠다.”
비델루체가 입맛을 다시며 탈라리스의 왼편 저 멀리에 떨어진 땅을 내려다보았다. 그 아래엔 방공호 중 하나가 위치하고 있었다.
이어 방공호로 자줏빛 광선이 떨어진 순간, 탈라리스가 몸을 던지며 새하얀 검기를 쏘았다. 검기가 광선을 양단한 순간, 어느새 비델루체는 탈라리스의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큭!”
비델루체의 주먹이 만빙과 맞부딪혔다.
“하, 좀 아쉽네? 네가 미리 지치지만 않았어도 꽤 재밌는 싸움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맛이 너무 떨어지겠어.”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나 먹고 사는 지하 놈들이 맛을 논할 수나 있겠느냐? 헛소리 집어치우고 뺨에 흐르는 피나 닦도록.”
비델루체가 흠칫하며 자신의 오른뺨을 매만졌다. 냉기에 차가워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오오…… 대체 언제!? 전혀 감각이 없었는데. 한 세대 전 지상 최강자 중 하나였다더니, 허명은 아니었구나?”
피를 닦아내자 곧바로 상처가 아물었다. 그 순간 처음 비델루체가 노린 방공호 쪽 땅이 폭발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그런데 너도 저기 숨어있던 인간들을 지켜준 건 아니거든. 방금 폭발로, 한 천 마리 조금 덜 되게 죽은 것 같지?”
탈라리스의 눈가가 움찔했다. 비델루체는 벌써 땅 아래 있는 방공호의 위치를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탈라리스는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성기사들은 전원 성내로 들어가서 성왕을 지켜라.”
신민들을 지키면서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또한 성기사들은 비델루체에게 전혀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아율라께서 경과 함께하실 겁니다, 비궁주.”
-설령 눈앞에서 신민들이 학살당하는 걸 보더라도, 반드시 비궁주님의 지휘를 따르세요. 우리 중 그분보다 전황을 냉철히 볼 수 있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기사들은 라니의 명을 떠올리며 성내로 들어섰다. 신민들의 죽음을 외면해야만 하는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라니를 지키며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비델루체는 그 짧은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도 방공호를 두 개 더 터뜨렸다. 여유롭게 신민들을 학살하며 탈라리스를 압박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이지. 인간들 죽이는 건 그렇게 재밌지 않은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싸우는 네 얼굴을 감상하는 게 상당한 쾌감이거든. 그러니까 더 열심히 연기를 해줘, 짜릿해 아주!”
비델루체의 주먹을 막을 때마다 내상이 터질 것 같았다. 지친 탈라리스는 거의 모든 면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었다.
무라칸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후우우웅……!
“칫, 벌써 따라왔어?”
비델루체는 돌연 사방이 캄캄해지는 걸 느끼곤 보호막을 둘렀다. 암흑도래, 어둠 속에서 해일처럼 일어난 영기가 비델루체를 덮치고 있었다.
[탈라리스, 괜찮냐?]“아직은.”
[저 마족 놈 부하들 처리하면서 오느라 좀 늦었다.]“진과 검황은?”
무라칸은 대답하지 않았다. 탈라리스는 수호룡이 위기에 빠진 계약자를 두고 다른 사람들을 구하러 왔다는 게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건 수호룡이 품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각오였다.
[너도 느끼고 있었지? 사방에서 더 몰려오고 있다, 마족 놈들이. 내가 지켜줄 테니 넌 공격에만 집중해. 어떻게든 파고들어서 끝장을 내라.]탈라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라칸이 왔어도 비델루체의 숨통을 끊는 건 그녀의 몫이었다.
비델루체는 암흑도래의 어둠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와 다시 광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줏빛 광선이 그 손바닥을 떠난 순간, 무라칸은 포효를 내지르며 영기를 최대로 발산해야만 했다.
카아아아아-!
암흑도래가 급격히 팽창하며 성왕성으로 쇄도하는 기운을 가로막았다. 섬이라 불러도 좋을 거대한 두 힘, 영기와 마기가 서로를 밀어내며 굉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금 암흑도래를 두들기는 힘은 비델루체의 광선이 아니었다.
‘파엘리토, 놈의 검기가 여기까지……!’
세 번째 천멸참, 파엘리토의 검기였다.
무라칸이 비델루체를 쫓기 시작한 후, 파엘리토 또한 진과 단테를 벨리엄 평원 바깥까지 밀어내며 성왕성에 더욱 가까워진 것이다.
물론 가까워졌다 한들 창성이 아니고는 결코 검기를 쏘아 닿을 거리는 아니었다.
잠시 후 두 힘이 퍼뜨린 충격이 잦아들었다. 무라칸과 탈라리스는 정면에 난 암흑도래의 균열 너머 저 멀리에 시선을 두었다.
그로쉬에 성 공략전 당시 사키엘이 펼친 죽음의 벽과 유사한 반구가 있었다. 진과 단테가 그 속에서 파엘리토에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어딜 보는 거야, 얘들아. 천멸참이 아무리 충격적이어도 나를 이렇게 무시하면 안 되지.”
비델루체는 잔뜩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파괴력 하나만큼은 나도 검마류에 그렇게 뒤지지 않거든. 마음 상했으니 그냥 빨리 끝내버리자고.”
이내 비델루체가 뻗은 일격은, 겹겹이 펼쳐진 영기 장막을 뚫고 나아가 그대로 성왕성에 직격했다.
그 일격에 지상에 드러난 성왕성의 건물은 모조리 입자가 되었다. 라니가 최하층의 영원창고에 있지 않았다면, 반드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녀를 지키려고 성왕성으로 진입하던 성기사는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명을 달리했다.
무라칸과 탈라리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성왕성이 무너지고 성기사들이 전멸한 충격 때문이 아니었다. 비델루체 같은 강자를 앞에 두고 등을 보이는 건 자살행위니까.
그런데도 그들이 돌아본 것은, 무너진 성왕성 아래에서부터 급격히 솟구치기 시작한 지토의 기운 때문이었다.
지토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눈이, 마침내 봉인에서 풀려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