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33)
제 999화
232화. 각성(2)
황금빛 기운이 진의 몸을 휘감았다.
눈이 멀어 버릴 듯 환한 빛, 파엘리토는 한 손으로 앞을 가리며 이를 악물었다. 신성한 기운에 마기가 굳고 있었다.
“성왕……!”
파엘리토는 그대로 검을 더 밀어 라니를 찌르려 시도했다. 그러나 검은 진의 심장에 단단히 고정되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진이 오른손으로 그 칼날을 붙잡고 있었다.
‘이미 죽었다고 해야 할 놈이, 이게 도대체 무슨 힘인가!’
헤도조차 완력으로 압도한 파엘리토건만, 지금 칼날을 붙잡은 진의 손아귀를 떨쳐 낼 수가 없었다. 표정이 일그러질 정도로 힘을 끌어올려도 바스칼라는 미동하지 않았다.
방금 전 손가락과 돌처럼 굳은 살점이 떨어졌던 진의 오른팔은 금빛 기운에 휩싸여 본래의 형태를 찾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절단된 왼팔과 다른 환부들도 같은 모습으로 재생되는 중이었다. 감겼던 눈동자는 다시 단단한 빛을 품었고, 재처럼 차갑던 몸엔 뜨거운 생기가 들어찼다. 심장을 타고 흐르던 시커먼 피도 빠르게 잦아들고 있었다.
진은, 부활하고 있는 것 같았다.
파엘리토는 그 끔찍한 사실에 몸서리치며 계속 바스칼라를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양손으로 손잡이를 쥐고 당기고, 진의 얼굴과 가슴에 주먹을 내지르고, 그의 목을 물어뜯었다.
“크아아아아!”
그러나 진에겐 전혀 타격이 없었다. 오히려 주먹과 이빨이 으스러지는 고통을 느끼는 건 파엘리토였다.
쓰드드득……!
이내 진이 몸에 꽂힌 바스칼라를 뽑아냈다. 그 과정에 파엘리토는 수차례 마기를 폭발시켰으나 자신만 검과 함께 튕겨질 뿐이었다.
땅바닥에 처박힌 파엘리토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바닥에서 한 걸음쯤 뜬 채로, 무표정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진이 보였다. 그는 모든 상처가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말끔하게 회복된 모습이었다.
온 하늘이 그로부터 발산되는 황금빛 기운에 물들어 있었다. 어딜 쳐다보아도 눈부시게 두려운 풍경뿐, 파엘리토는 공격에 대비해 황급히 자세를 다잡았다.
그러나 진은 그에게 바로 검을 뻗을 생각이 없었다. 한순간에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진, 미안해요. 나와 성국이 할 수 있는 건…… 그대의 소멸을 유예하는 것뿐입니다.”
라니가 쓰러지듯 주저앉으며 말했다. 진은 뒤돌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쁜 호흡을 내쉬는 라니의 몸이 점점 연해지고 있었다. 곧 완전히 투명해져서 사라질 것 같았다.
진을 완벽하게 부활시킬 수는 없다.
라니는 그 사실이 미안하고 분해서 눈물을 흘렸다. 아율라가 남은 진기를 모조리 보내 주었건만, 성국 전체가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건만 진을 되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라니 역시 이제 곧 소멸을 맞이할 터였다.
“그거면 충분해. 그러니, 싸움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라니는 그럴 수 없다고, 이게 작별이라고 대답하려 했으나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대신 그녀가 있던 자리엔 본래 존재할 수 없는 한 덩이의 빛이 남아 있었다.
그건 라니를 이곳으로 보낸 아율라조차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진은 한동안 그 빛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파엘리토는 진이 괴로워하는 중이라 생각했다. 또 눈앞에서 친인을 잃은 고통에 좌절하고 있으리라고.
“푸흐흐……! 아율라, 그 끔찍한 불멸자가 네 죽음을 유예하고자 스스로를 저버린 모양이구나. 그런데도 넌 또 지키지 못했다. 너 때문에 지토 님조차 꺼리는 한 불멸자와 그의 분신 격인 벌레가 함께 최후를 맞이했어. 네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냐? 아율라가 권능을 모두 포기할 만큼!”
진에겐 악의에 받친 파엘리토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는 집중하고 있었다. 라니를 대신해 남은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자신이 그것을 언제 또 마주했었는지를.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검황성.’
검황성전 당시 글리엑이 자신과 론을 집어삼켰던 아공간.
진은 그곳에서도 이 빛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바로 마성에 빠진 론 하이란이 그를 벤 순간에. 그가, 기어이 혼돈을 극복하고 창성의 영역에 도달한 순간에.
당시 진은 그 빛을 마주하기만 했을 뿐, 창성이 아니기에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 단지 론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그 빛을 일부 나누어줬다는 사실만 인지했었다.
선명하다.
그때와 달리 지금 진은 창성의 빛을 두 눈으로 또렷이 응시할 수 있었다. 그 빛을 가리고 있던 벽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창성의 빛…….’
전생에서부터 수도 없이 상상해 왔다.
창성에 도달하는 순간을, 그 힘으로 아버지처럼 세상의 정점에 우뚝 서는 순간을, 진은 매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간 상상한 만큼 큰 감격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창성이 되었다 한들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진에게 창성은 무인으로서의 최종적인 도달점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었다.
그의 삶을, 사람들을, 세상을 위협하는 미친놈들을 모두 끝장내고 안온한 나날로 들어서는 일.
그리하여 회귀자로서 세상에 가진 모든 부채감을 털어 내고, 전생에서부터 이어온 긴 투쟁에 마침표를 찍는 결말.
창성은 그걸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오랜만에 큰 산을 하나 넘었다. 진은 라니가 있던 자리에 남은 빛을 그대로 둔 채 다시 몸을 돌렸다.
파엘리토는 그때야 알아보았다.
“아…… 네놈. 네놈이…… 나와…… 같은 영역에. 다, 단지 아율라의 기운을 받아 얻은 일시적인 힘이…… 아니란 말이냐?”
“아율라께서 라니를 통해 내 소멸을 유예하신 것은 맞다. 그러나 내가 죽음에 이르자마자 각성했다는 사실은, 아율라께서도 모르셨던 것 같군.”
운명, 파엘리토는 그 단어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녕 회귀자라는 운명은…… 다른 모든 운명의 우위에 있는 것인가? 그걸 감히 필멸자가, 그것도 인간이 가졌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파엘리토로서는 결코 진을 이길 수 없었다. 파엘리토에게 주어진 운명은, 분명 그보다 격이 낮을 것이기에.
억울했다.
내내 단 한 번도 위기에 빠진 적 없이 진 일행을 압도하고, 몇 번이나 그 목숨을 거둘 수 있었건만.
운명의 격차가 패배를 강제하는 것 같았다. 네가 아무리 강해도, 무슨 짓을 해도 진 룬칸델을 쓰러뜨릴 수는 없다고 운명이 말하는 것 같았다. 설령 진이 패배를 인정하고 무릎을 꿇는다 한들 운명은 그걸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진은 그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랬을 것이다.”
“……뭐라고?”
“이 세상에 계속 태양신이 존재했다면, 혹은 네놈들이 내내 주장한 고통의 질서가 세상에 적용된 상태였다면. 네가 나를 꺾을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겠지. 그건 질서에 어긋나는 일이니까.”
천천히 파엘리토에게 다가가는 진.
“그러나 지금 네가 밟고 있는 땅은 그런 끔찍한 세계가 아니다, 파엘리토.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 어디에서든 이변이 일어날 수 있고, 언제든 결과는 바뀔 수 있다. 그게 우리가 아는 세상이고, 우리가 아는 질서다.”
“닥쳐!”
콰앙-!
파엘리토가 달려들어 바스칼라를 내리쳤다. 진은 검을 쳐내며 손쉽게 그의 자세를 무너뜨렸다.
“큭!”
“지금 내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없겠지. 네놈들은 지금 네놈들 스스로를 속박하고자 악을 쓰고 있는 거다. 그게 지토가 질서에 집착하는 이유란 말이다. 놈은 투쟁하지 않고 안전하게 고통을 즐기고 싶을 테니.”
“닥치라고!”
허억!
파엘리토가 헛숨을 내뱉었다. 진의 검을 막다가 예상치 못한 충격에 몸이 진동하고 있었다. 재차 날아든 검이 이마를 스쳤고,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상완을 베였다.
갑작스러운 역습에 파엘리토는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검에 하늘을 찢고 땅을 가르던 검마의 위엄은 다 거짓이었던 듯이.
그건 진이 창성이 된 까닭만이 아니다.
심마가 파엘리토를 집어삼켰기 때문이었다. 만일 파엘리토가 처음부터 이런 상태였다면, 진 일행은 어렵지 않게 그를 제압했을 것이다.
“파엘리토 벨가시움,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파엘리토는 대답할 여유조차 없었다. 검을 뻗는 동안, 진은 파엘리토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창성의 통찰력 덕에 어렴풋이, 그 속에 담긴 파엘리토의 과거가 보이는 듯했다. 지토에게 세뇌되기 전 저항군을 이끌던 파엘리토의 모습이.
“너는 분명 투쟁하는 사람이었다. 나와 달리 회귀자로서의 부채감 같은 게 없이도, 세상을 위해 투쟁하는 자였다. 그때의 넌 진마계에서 가장 빛나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 빛을 따라 모인 사람들이 셀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파엘리토에게 진은 존경심을 느꼈다.
동질감이 일었고, 함께 싸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서로 알게 된 시간이 짧더라도 얼마든지 등을 맡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악을 쓰는 괴물은 그 사람이 아니다.
“크아아아……!”
“나는 지금 그때의 너를 느꼈으나, 너를 용서할 수는 없다.”
스악-!
브라다만테가 파엘리토의 왼팔을 지나갔다. 파엘리토의 왼팔은 땅으로 떨어지며 입자로 분해되어 흩어졌다.
희미하게나마 그에게 창성의 감각이 남은 덕이었다. 그조차 없었다면 왼팔이 아니라 목이 떨어졌을 것이다.
파엘리토는 아까 전 진이 자신에게 당한 것처럼 쉴 새 없이 어딘가에 처박히며 핏물을 토해 냈다.
때때로 바스칼라에 깃든 마신들의 권능이 진의 앞을 가로막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역병과 저주도 진을 위협할 수 없었다.
바스칼라에 차단되었던 영기가 돌아온 것이다.
창성이 된 후 황금빛으로 변한 오러 사이로 영기의 어둠이 번지고 있었다. 파엘리토는 어디로든 빛과 어둠을 피해 움직이고 싶었으나, 사방이 사각이었다.
“너는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 세뇌는 면죄부가 될 수 없어. 네가 아무리 빛나는 존재였어도, 수십억에 달하는 네 동족들을 지토로부터 구한 적이 있어도. 결국 괴물이 되었다면 나 같은 자를 만나 베이는 것이다.”
파엘리토는 난데없이 등 뒤에 벽이 닿는 감각을 느꼈다. 영기 장막이 거대한 관처럼 그의 뒷걸음질을 가로막고 있었다.
인세는 오늘 이후 영원히 파엘리토가 저지른 학살과 파괴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의 위대한 과거가 그의 죄를 미화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토가 죽으면, 어쩌면 지하 세계엔 파엘리토를 기리는 사람들이 생길지도 몰랐다. 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파엘리토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바스칼라를 바닥에 꽂아 둔 채, 한 검은 구슬을 움켜쥐고 있었다.
‘……혼기?’
진은 그 구슬을 형성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곧바로 알아보았다. 그건, 켈리악이 파엘리토에게 준 구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