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5)
제 99화
32화. 코스모스의 각축장(7)
다음 날 치러진 진의 경기는 단테의 그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헬리아의 마왕인지 뭔지, 거창한 이름으로 소개된 상대를 베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단 7초.
다시 한 번 관객석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베라딘이 주도해 열광을 이끌어 내는 광경 역시 그대로 재현되었다.
“올해 각축장 우승 후보는 저 둘이로군.”
“저 진 그레이라는 소년도 대단하지만, 룬칸델 예비 기수한테는 어렵겠지…… 자넨 누구한테 걸 건가? 진 그레이? 아니면 폴 믹.”
“난 여전히 폴 믹에게 걸 생각일세. 엊그제 폴 믹의 경기를 보자마자 본가에 연락해 현금을 전부 끌어왔다고. 자네도 폴 믹에게 걸게. 룬칸델이야, 룬칸델. 검으로 룬칸델을 대체 누가 꺾는단 말인가?”
“흐음, 그건 그렇지…….”
진 또한 엄청난 실력을 보여 줬지만.
귀족 관객들은 이미 단테를 룬칸델 예비 기수라 확정하고 있었다. 더 이상 소문이 아닌 셈. 때문에 대부분의 판돈이 단테에게 몰리는 와중, 진을 선택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덕분에 나머지 참가자들은 자연스레 들러리가 되는 분위기. 본래 흥행을 주도해야 했던 전년도 강자 등의 베테랑들도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저 꼬마 놈들 때문에 올해는 돈 좀 만지기가 쉽지 않겠어.”
각축장엔 단순히 살인을 즐기기 위해 참가한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즐길 만큼 즐긴 베테랑들이 원하는 건 돈이다.
그리고 우승 상금인 금화 천 개보다도, 주최 측에서 진행하는 도박의 배당금을 받아 내는 게 훨씬 중요했다.
“그냥 승자전 시작되기 전에 애들 모아서 확 묻어 버릴까? 베테랑들끼리 똘똘 뭉치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판돈이 몰리는 인물일수록 배당금이 높아지는 구조인 만큼, 베테랑들에겐 진과 단테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아서라, 애꾸눈 해적단 녀석들 개박살 난 거 못 봤어? 이번 각축장은 그냥 그 꼬마 놈들 무대야. 목숨 보전하고 싶으면 적당히 물러나야 한다고.”
“망할…….”
베테랑 참가자들조차 분위기가 이 모양이니, 다른 참가자들은 끼리끼리 합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냥 우린 승자전 시작될 때 서로서로 적당히만 하자고. 그래야 내년에 다시 이 바닥에서 벌어먹고 살지 않겠어? 피라미들 잡아먹는 맛도 계속 느끼고 말이야.”
베테랑들의 선택은 승부 조작.
경기가 시작되면 서로 죽이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승패를 갈라 판돈을 나눠 먹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안내역은 이 모든 상황을 코스모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하, 그것들이 작당을 했단 말이지. 경기를 대충하고 판돈만 나눠 먹기로…….”
“어떻게 할까요? 경기가 미적지근해지면 내년 흥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음!
코스모스가 검지로 금니를 만지작대며 고개를 저었다.
“승자전 대진표 싹 수정해. 무조건 폴 믹과 진 그레이가 결승에서 만나는 그림을 만들어. 애매하게 16강 같은 데서 못 만나도록 말이야.”
“괜찮겠습니까?”
“쇼에서 가장 중요한 건 관객들이 원하는 걸 보여 주는 거야. 이번엔 잔혹극보다 그걸 더 원하니 어쩔 수 없지. 대신 판돈은 더 못 걸게 막아 두고, 나머지 녀석들 배당률을 대폭 상승시켜.”
“그럼 승자전에서 진 그레이와 폴 믹을 만나는 놈들은 누구로 정할까요?”
“애꾸눈 해적단 녀석들로 붙여. 다른 베테랑 참가자들은 죽게 만들면 안 돼. 내년에도 써먹어야 되니까.”
“애꾸눈 죠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가면 반발이 꽤 심할 텐데요.”
그러자 코스모스가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이 멍청아! 폴 믹이 진 룬칸델이라면, 그것들이 대회 끝나고 숨이나 붙어 있을 수 있겠냐? 폴 믹을 건드린 순간부터 애꾸눈 해적단은 이미 끝났다고. 그러니 신경 쓸 것 없어.”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 * *
승자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물론 조작된 경기인 만큼, 전년도만큼 자극적이고 잔혹한 경기는 거의 펼쳐지지 않았다.
베테랑들은 서로 뼈나 몇 군데씩 부러뜨리고 대충 경기를 마무리해 미적지근한 경기를 펼치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관객들 사이에선 야유가 터져 나왔다.
다들 짜고 치는 판이라는 걸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관람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관객은 아무도 없었다. 이토록 재미없는 경기들을 견디다 보면, 결국 진과 단테의 결승을 볼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대신 진이나 단테가 애꾸눈 해적단을 상대로 승자전을 치를 때면.
“오오오!”
“폴 믹, 폴 믹!”
그들이 별다른 걸 보여 주지 않아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일부러 상대를 잔인하게 죽이며 끔찍한 장면을 연출하지 않아도 말이다.
두 사람의 경기는 대부분 1합, 혹은 2합에 끝났다. 64강부터 4강전까지. 진과 단테가 겪은 경기 전부가 그랬다.
그리고 마침내 대망의 결승전.
“오늘이 드디어 두 사람이 붙는 날이군.”
관객 전원이 상기된 얼굴로 두 사람이 등장하길 기다리고 있었고, 특히 베라딘은 밤새 가슴이 떨려 한숨도 못잔 채 객석으로 나온 상태였다.
“자네들이 보기엔 누가 이길 것 같나? 두 사람 중 말이야.”
베라딘이 호위로 데려온 기사들에게 물었다.
“폴 믹입니다.”
“저도 계속 경기를 지켜본 바, 폴 믹의 검술이 더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흐음, 그래?”
“도련님은 어느 쪽에 거셨습니까?”
“난… 진한테 걸었는데. 금화 10만 정도…….”
“어, 얼마라고요?”
“10만.”
“너무 많이 거셨습니다. 만약 진 그레이가 승리하면, 코스모스가 과연 배당금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배당률이 3배인데. 일개 해적 따위가 그만한 돈을 갖고 있을 것 같진 않군요.”
“아니, 생각보다 꽤 큰 해적단이더라고. 30만 금화쯤은 지급할 수 있을 거야. 저놈들 소유의 섬을 몇 개 판다면 말이야. 오오, 시작인가 보다!”
경기장 한가운데로 코스모스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오오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신사. 그리고 숙녀 여러분! 오늘도 반갑습니다, 이 해적왕 코스모스, 결승에 앞서 성원해 주신 여러분께 우선 크나큰 감사를 전하겠습니다!”
넙죽! 관객들에게 절하는 코스모스.
“와아아아!”
그를 보고 이렇게 함성을 내지르는 관객도 많았지만.
“넌 꺼지고 빨리 소년들을 데려와!”
“맞아! 빨리 결승전이나 진행시켜, 이 해적 새끼야!”
욕설을 내뱉는 관객들도 태반이었다.
코스모스로선 다소 씁쓸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본래 결승이 진행될 때쯤이면 이 자극적인 쇼를 주최해 준 자신에게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지기 때문.
‘이 망할 귀족 새끼들. 각축장만 한 쇼는 어디서도 구경할 수 없다며 엄지를 치켜세워 줄 땐 언제고… 내년부턴 입장료를 대폭 올리든가 해야지, 에잉!’
코스모스가 언짢은 기색을 숨기며 일어섰다.
“예, 예! 알겠습니다. 폴 믹과 진 그레이. 두 사람의 경기를 한시라도 빨리 지켜보고 싶으시겠죠…… 그럼 한번 다 같이 불러 볼까요? 포오오올-!”
“믹!”
“믹! 폴 믹!”
진보다는 단테의 인기가 압도적이었다. 그가 룬칸델로 소문이 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
이내 단테가 경기장으로 나서자 거의 광분해서 악을 쓰는 관객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자, 그 상대는! 무명의 소년 검객, 진 그레이!”
이어서 진이 경기장으로 나오자.
함성이 한층 낮아졌다. 대신, 돌연 두 손을 모은 채 기도에 들어서는 이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모두 ‘3배’라는 배당률 하나만 보고,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을 모두 끌어 온 도박 중독자들이었다.
굳이 단테가 룬칸델 예비 기수라는 소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당연히 단테가 진을 이길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단테는 지금껏 모든 경기에서 ‘검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을 보여 준 반면, 진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 쪽에 건 사람들은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진 그레이! 가자아!”
돌연 벌떡 일어선 베라딘이 핏발 선 눈으로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가자아아아!”
진에게 돈을 건 다른 관객들 역시 베라딘을 따라 악을 써 댔다.
‘대체 어딜 가자는 거야, 미친놈들.’
물론 진은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차분히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진은, 은근히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승리에 인생을 건 도박꾼들 때문이 아니라, 과연 단테를 상대로 자신이 승리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말이다.
진 룬칸델과 단테 하이란.
마주 선 두 사람의 표정이 고요했다. 다른 경기를 할 때와 다르게, 서로 서른 걸음쯤 일부러 거리를 둔 모습.
한 걸음만 더 들어서면 서로의 공격권이었다. 단지 서 있기만 할 뿐인데도,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관객석도 서서히 조용해지는 와중, 코스모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 참, 제 각축장에서 이런 풍경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군요. 이거 꼭 명문가의 무투 대회를 구경하는 기분입니다…… 그럼, 결승전을! 시이이작하겠습니다!”
부우우우-!
해적들이 나팔을 불자 코스모스가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진과 단테가 느릿느릿 검을 뽑았다.
동시에 오러를 머금은 두 사람의 검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는군…….’
진은 평소처럼 선뜻 선공을 펼칠 수 없었다.
검을 직접 맞대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단테의 검은, 분명 자신보다 한 수 앞선다는 것을.
단테를 처음 본 순간부터 계속 인지하고 있던 점이다.
그러나 단테 역시 섣불리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는데, 진이 자신보다 뛰어난 검술을 보유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상하게 그대에게선 위화감이 느껴진단 말이지. 왠지 모르게 께름칙한 느낌이 들어.’
7성을 목전에 두게 된 후.
6성 이하를 상대하며 이런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단테는 고민하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 속전속결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탐색전을 펼친 다음 서서히 압박해서 끝낼 것인가.
애초에 패배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단테 역시 자신이 진에게 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 위화감은 그대가 나를 상대함에 있어 뭔가 준비한 게 있으리라는 막연한 마음 때문이겠지. 그러니 서서히 압박해서 끝내는 게 낫겠어.’
돌다리를 두드리고 건넌다는 심정으로, 결정을 끝낸 단테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속전속결로 끝내기 위해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대신 말이다.
그 대목에서, 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우선 날 조심스레 상대하기로 결정했군. 그건 곧 방금 내가 너를 꺾을 가능성이 1할쯤 올라갔다는 의미다.’
그리고 진은 이미 단테를 이길 수 있는 계획 한 가지를 세워 둔 상태였다.
따라서 진 역시, 패배 따윈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