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6)
제 99화
32화. 코스모스의 각축장(8)
한 걸음 앞으로.
진도 단테의 움직임에 맞춰 거리를 좁혔다. 이어 단테가 또다시 한 걸음, 진이 한 걸음. 신중하게 서로의 공격권을 탐색하는 두 사람.
‘생각보다 긴장되는걸. 앞으로 다섯 걸음쯤 더 들어오면, 단테의 공격이 시작되겠…….’
흠칫!
진이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단테의 공격이 예상보다 빨리 시작되리라는 강렬한 직감에 멈춘 것이다.
‘왼쪽? 오른쪽?’
눈동자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그리고 다시 중앙에 초점을 맞췄을 땐.
단테가 보이질 않았다.
쉬익!
그리고 곧장 귓가로 전해지는 익숙한 바람소리.
“큽!”
검이 허공을 가르며 떨어지는 소리였다. 화들짝 놀란 진이 브라다만테를 치켜들자, 어느덧 검과 함께 몸을 내던진 단테가 씨익 미소를 짓고 있었다.
챙!
검신을 타고 전해지는 충격이 상당했다. 마치 칼날 근처에서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 착각이 들 지경.
그러나 그 묵직한 공격 속엔 분명 깨진 흑요석처럼 예리한 기운 또한 가득 담겨 있었다.
허리와 하체 힘이 조금만 부족했다면 아마 곧장 자세가 무너졌을 것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진이 침착하게 보법을 밟아 단테의 우측으로 몸을 빼냈다.
“혹시나 싶어 한번 던져 봤는데. 역시, 그대에겐 안 통하는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단테. 진은 대답 대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내 생각보다 더 빠른데……?’
하마터면 첫 합에 경기가 끝날 뻔했다. 등허리가 오싹해진 와중, 단테는 여유로운 표정.
‘이 정도면 알리사 님의 최고 속도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그분과 100번이 넘는 대련이 아니었다면, 이건 못 막았어. 이게 무슨 탐색전이야, 미친놈이. 단숨에 끝내려고 했구만.’
조금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본인 또한 눈부시게 성장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또한.
‘이게 만약 단테의 최고 속도라면, 아직 가능성은 충분해.’
그런 확신이 들었다. 대신, 단테가 이 이상의 속도로 공격할 수 있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생각도 함께였다.
이번엔 진이 검을 뻗으려는 찰나.
우우웅!
단테의 칼날에 한층 더 진한 오러가 씌워졌다.
“속도로 누를 수 없다면, 힘으로 해야겠지.”
바라던 바다!
그렇게 대답할 시간은 없었다. 단테가 다시 검을 뻗기 시작한 데다, 진은 한 박자 늦게 힘을 끌어올리는 입장이기 때문이었다.
쾅! 콰광! 쾅!
검과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폭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예기가 아니라 거대한 둔기 두 자루가 뒤섞이는 것 같았다.
“오오……!”
“이게 정말 애들 싸움이란 말이야?”
객석 곳곳에서 감탄이 쏟아졌다. 다들 명승부가 펼쳐지리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초장부터 이렇게까지 흥미진진하게 흘러갈 줄은 몰랐던 것이다.
특히 베라딘은 두 손이 흥건해진 것도 모른 채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처음엔 진이 완전히 밀리는 기세였으나.
매 초가 지나기 무섭게, 단테의 템포를 따라가는 진. 공방이 20합에 이르자 두 사람은 비등비등하게 싸우는 듯 보였다.
‘아까 그게 최고 속도였다!’
제대로 검을 섞어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애초에 단테가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 할지라도. 열아홉에 비먼트 특임대 2조 출신보다 더 뛰어난 힘과 속도를 갖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진이 할 일은.
버티는 것이다.
‘단테는 꼭 필요한 순간에만 속도를 올리면서 체력을 안배하고 있어. 나는 그 템포만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단테가 지칠 때까지.
진이 단테를 꺾기 위해 준비한 계획은 아주 단순명료했다. 자신이 단테보다 더 나은 유일한 장점 한 가지를 앞세우는 것.
체력.
‘처음 내 방을 찾아왔을 때부터 느꼈다. 단테는 꽤 충격적인 실력을 갖고 있지만, 체력이 다소 약해.’
만약 단테의 체력이 실력만큼 뛰어났다면 애초에 각축장의 밤을 지새우는 동안, 진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올해로 열아홉이지만 겉보기엔 열셋, 넷을 겨우 지났을 것 같은 외형. 열아홉 소년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유난히 작은 몸.
그게 바로 단테의 약점이었다. 부족한 완력은 오러를 이용해 상승시킬 수 있으나, 지구력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반면 진은 어떤가.
축복 그 자체인 룬칸델의 강인한 육체. 완력은 물론, 지구력과 면역, 탄력마저도 흔히들 말하는 ‘무골’을 한참 상회했다.
진은 단테가 없었더라도 승자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각축장의 밤을 모두 버틸 수 있었겠지만.
단테는 아니었다.
‘관건은 단테가 얼마나 빨리 깨닫느냐다. 내가 자신보다 체력이 뛰어나다는 걸.’
단테의 체력이 좋지 않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룬칸델인 진의 기준에서일 뿐이다. 그 역시 타고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날마다 피땀을 흘렸고, 범인은 감히 상상조차 못 할 만큼 치열한 훈련을 이어 왔다.
때문에 단테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자신이 눈앞의 열여섯 소년보다 명백히 부족한 점이 한 가지 있다는 것을.
“잘 버티는군! 숨겨 둔 게 있다면 미리 다 꺼내는 게 좋을 것이오. 이제부턴 더 빨리 몰아붙일 것이니.”
“내가 숨겨 둔 거 다 꺼내면 너 우울해져, 인마.”
“농담도 수준급이군. 그런 점도 마음에 들어.”
샤악!
단테의 칼날이 진의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깊지 않은 상처지만 처음으로 피가 튀었고, 진은 이를 악물었다.
아슬아슬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조금만 더 깊게 들어왔어도 치명상이었을 테니까.
‘옅은 부상을 여러 개 내어 주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다.’
문제는 매번 치명상을 피해야 한다는 점. 한 번 더 템포가 올라갔으니 단테의 체력이 떨어지는 시기도 앞당겨지지만, 진 역시 상처가 많아질수록 빨리 지칠 수밖에 없었다.
피를 흘린다는 건 곧 체력이 저하된다는 뜻이니 말이다.
‘반면 단테가 지치기 전까지, 내가 녀석에게 부상을 입히는 건 어렵다.’
그래도 버티기만 성공하면 이길 수 있다는 마음에 이를 악물었다. 이 정도 속도를 유지한다면, 진은 단테가 결코 한 시간 이상 싸움을 이어 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놈도 승부수를 띄울 때가 올 거야.’
단테는 바보가 아니다.
지금은 비록 진이 밀리기만 하는 듯 보여 단테도 여유를 갖고 있지만. 그 정도로 숙련된 인물이 끝까지 진의 계획을 모를 리 만무했다.
결국 단테도 진의 방어 태세를 깨뜨릴 만한 방도를 한 가지쯤은 꺼낼 수밖에 없는 셈. 그 한 번을 무사히 넘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깻죽지에 상처가 또 하나.
그리고 종베기를 막다가 손등을 베였고, 그 순간엔 진도 아찔해서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이내 진이 이빨로 코트 소매를 찢어 손등을 감싸자,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단테.
“다 됐다, 끝장을 내 버려!”
“조금만 더 몰아붙여, 폴 믹!”
그때쯤 단테에게 돈을 건 관객들이 모두 기립해서 악을 써 댔다. 그들이 보기엔 진이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으니, 이제 끝날 때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단테는 깨닫고 있었다.
‘나보다 체력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판단해, 일부러 시간을 끌었군. 그리고 이제야 알겠어. 그대도 가명이었군……!’
진 룬칸델.
룬칸델이 아니라면, 진의 몸은 단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구력을 지니고 있었다.
허벅지나 어깨, 손등을 벤 것은 둘째 치더라도. 진이 일반적인 육신의 소유자였다면 이미 검격이 뒤섞이는 동안 발생한 충격파에 온몸이 너덜너덜해져야만 했다.
단테가 입모양으로만 진의 진짜 이름을 말하자, 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걸 이제 알았냐?’
후욱, 후우…….
진은 막 단테의 호흡이 거칠어진 걸 느끼던 참이었다. 진도 처음과 호흡이 같지는 않았으나, 단테보다는 여유가 있었다.
“이제 슬슬 내가 때릴 차례가 온 것 같군.”
관객들의 열기와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워 가는 가운데.
이번엔 진이 단테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진에게 돈을 건 관객들은 벌떡 일어서 이렇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가자아! 가자아아아!”
경기 내내 움츠러든 채 방어만 급급했던 진이 돌연 반격을 개시한 순간, 단테는 복기를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젠장, 초반부터 전력으로 밀어붙여 끝냈어야 했다!’
답을 내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진과 맞서고 느낀 그 ‘위화감’ 때문에 신중을 가하지만 않았다면, 단테는 이미 승리를 거머쥐었을 것이다.
‘그럼 그 위화감은 대체 뭐였지? 함부로 덤비면 위험할 거라는 직감에 온몸이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건만.’
단테는 당분간 절대로 깨닫지 못할 영역.
그를 뒤덮었던 그 강렬한 위화감은, 진이 봉인해 둔 두 가지 힘. 영기와 마법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들을 모두 사용한 진은 현재의 단테가 결코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
이를테면 ‘강자’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였다.
쾅! 쾅!
진이 힘껏 브라다만테를 휘둘러 압박을 시작하자, 단테가 주춤하며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진의 동작은 단 한 가지.
매일.
일만 번을 연습한 의지의 종베기. 이제 삼천 번을 처음과 같이 휘두를 수 있는.
‘진 룬칸델, 괴물이로군. 아직 이만한 힘이 남아 있었나……! 게다가 이렇게 단순한 검이 어찌 이리 무겁단 말인가.’
오직 종베기만 이어지고 있으나, 단테는 쉽사리 진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브라다만테가 한 번 떨어질 때마다 벽에 짓눌리는 기분이 들어, 도무지 보법을 밟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몇 분쯤 종베기를 쳐 내다가 볼썽사나운 패배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선택해야 했다.
‘하이란의…… 비기를.’
펼쳐야 하는 것인가.
아직 가문 결전기를 하나도 전수받지 못한 진에 비해, 단테는 이미 하이란의 비기 몇 가지를 전수받은 상태였다.
그가 지닌 비기는 하나같이 이 전세를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위력. 게다가 지금 남은 체력으로도 어렵지 않게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단테가 고민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그대를 죽이고 싶지 않다.’
비기를 꺼내면 자신이 진을 죽이게 될 거라는 확신.
그게 단테를 망설이게 만들고 있었다. 알고 지낸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단테에게 진은 벌써 꽤 많은 의미를 갖게 된 인물이었으니까.
목숨을 구해 준 은인. 오랜만에 만난 적수. 하이란이 언젠가 넘어서야 할 거대한 산, 룬칸델의 막내아들.
혹은 친구.
복잡한 마음에 시시각각 단테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사이, 진은 그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날 죽이고 싶지 않아서 우물쭈물하고 있군. 그게 아니라면 승부수를 띄워도 아까 띄웠어야 정상이지.’
척.
일순 검을 거둔 진이 단테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난 진 룬칸델이다. 그러니 봐주지 마라, 단테 하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