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7)
제 99화
32화. 코스모스의 각축장(9)
두 사람이 잠시 움직임을 멈춘 가운데, 객석에선 끊임없이 환호성이 울렸다. 갑작스레 뒤집힌 전세에 속이 타는 이도, 도박에 희망을 되찾은 이도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다.
그 함성에 묻혀 진의 목소리는 객석까지 전해지지 않았고, 계속 눈을 마주치고 선 두 사람.
봐주지 마라.
그 말을 들은 순간, 단테가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그래……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군. 내가 그대를 봐주고 있다고 말이야.’
어떤 상황에서든, 상대를 베는 걸 망설이는 순간부터 전사의 검은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건 적을 앞두고서는 한심한 일이며, 적수를 맞설 때엔 더없이 무례한 것.
하이란의 비기를 펼치느냐, 펼치지 않느냐는 애초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인정한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보다 부끄러운 일이 또 있단 말인가.’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
그렇게 하지 못한 채 경기가 끝나면, 패배도 승리도 의미가 없다.
“그대에게 추한 모습을 보였소. 다시 시작하지.”
단테가 부드럽게 칼날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서로 칼을 부딪쳐 존중을 표하자는 의미. 진이 가만히 칼을 맞대자 부드러운 마찰음이 일었다.
놀랍게도 그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기묘한 감각을 경험했다.
함성 소리가 절벽으로 떨어진 메아리처럼 작아지고, 사위가 어두워지며, 마치 이 공간에 남은 건 서로뿐이라는 착각.
어느 한쪽이 쓰러질 때까지 싸우는 게 이토록 즐거운 순간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입 밖으로 꺼내 이 감각을 공유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은 적수를 만난 검객들이 흔히들 경험하는, 예언 같은 환영에 빠져들었었다는 사실을.
“그럼 다시 시작하지.”
후.
우.
동시에 한 번씩 숨을 고른 두 사람.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뒤섞이기 시작한 두 자루의 검. 존중의 표시로 검을 맞댔을 때완 다르게, 다시금 칼날에서 불꽃이 튀고 있었다.
파공음과 폭음, 마찰음과 파열음 속에서 파편처럼 검광이 쏟아졌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모습은 거짓이었다는 듯, 단테는 경기가 시작되고 그 어떤 순간보다도 격렬하게 검을 휘둘렀고.
진 역시 괴성을 지르며 남은 힘을 모두 폭발시키는 모습.
격돌.
충격파 때문에 뒤섞인 피와 모래가 돌조각처럼 단단해져 사방으로 튀는 동안, 함성 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오히려 열광해서 소리를 질러야 할 순간에 이토록 객석이 조용해지는 이유는.
압도당했기 때문이었다. 관객들의 눈에 싸우는 소년들의 모습은 마치 거인처럼 보였고, 한순간도 놓치기 아까워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아쉬울 지경이었다.
각축장이 열리기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지금껏 이런 광경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천박한 잔혹극을 보러 이곳을 찾은 이들은, 오늘 진짜배기 무인들의 명승부를 구경하는 축복을 얻은 셈.
도박 따윈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물론, 경기가 끝나고 이 감동이 지나간 후에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검을 쥔 소년들의 싸움에 경탄할 뿐.
‘어쩌면 나 또한 단테를 얕보고 있던 건지 모르겠군. 분명 지쳤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어디서 이런 격렬한 힘이……!’
그렇게 생각한 진의 입술에 핏물이 번지고 있었다. 단테의 공격을 받아치느라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고 있던 것이다.
검술에 대한 감각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 준 재능이나.
체력과 완력은 더없이 평범하게. 아니, 오히려 평균조차 되지 않는 수준으로 태어난 이 왜소한 남자는 그간.
대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한 것일까? 무인으로서 치명적인 단점을 극복하기까지, 몇 번이나 깊은 좌절과 절망에 무릎 꿇었을까.
죽도록 노력해 본 자는 타인의 노력을 알아볼 수 있다. 진 역시 전생에 룬칸델로서는 불구나 다름없는 몸으로, 고작 1성이라는 벽을 허물고자 하루하루 스스로를 지옥 속에 빠쳐본 것이다.
그래서 단테의 지난날들이 보였다.
그가 어두운 훈련장 한가운데 웅크린 모습이, 거울로 작고 마른 자신의 몸을 보며 절규하는 모습이, 몇 번이나 생사를 넘나들며 스스로 채찍질을 하는 모습이.
그리고 그 모든 순간, 단 한 번도 검을 손에서 놓지 않았을 모습이.
마치 전생의 자신과도 같았던.
그러나 전생의 자신과 달리 끝내 실패하지 않은 그 모습이…….
‘나를 울고 싶게 만드는군.’
단테의 목소리가 그토록 걸걸한 것은.
천형이나 다름없는 열등을 극복하고자 평생 악을 쓴 결과물이었다.
부르르.
전율이 일었다.
그 마경을 헤맨 끝에 하이란의 차기 가주가 되기까지. 또한 지금도 매일 어제보다 더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은.
단지 검이라는 무기에 매료되었기 때문에.
그게 아니면 제국의 대귀족으로 태어났어도 삶은 단지 지루한 연극에 불과하기 때문에.
단테는 그런 사람이었다.
‘진 룬칸델. 룬칸델의 열셋째.’
검격에 온몸이 출렁이는 동안, 단테도 진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대는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났다.’
세상 모든 무인이 꿈꾸는 룬칸델이라는 혈통, 그 혈통의 축복이 진하게 이어진 육체. 거기에 열다섯에 이미 5성에 다다라, 열여섯인 지금은 자신과 대등하게 검을 맞대 증명하고 있는.
재능 중의 재능까지.
‘그럼에도 그대에게선.’
어째서 이렇게까지 절박함이 느껴지는 걸까. 무인들의 천상이라 불러도 좋을 세계에서 태어났건만, 왜 평생 천상을 멀리서 구경하기만 하던 사람처럼.
절박하고 필사적인가.
‘왜 모든 걸 다 갖고 태어난 그대의 검에 그런 진한 마음이 스며 있는가. 그대가 막내이기 때문에 왕권이 한없이 요원하기 때문인가? 아니, 그대는 순서 따위에 연연하는 작은 인물이 아니야.’
단지 최고가 되고 싶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대 역시 나와 같은 절망에 몸서리를 치던 날이 많기 때문인가. 심지어 그런 날들이 나보다도 더 많았다는 말인가.
‘그대는 무엇인가, 진 룬칸델. 아니, 무엇이어도 상관은 없다. 오늘은.’
내 지난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날이니.
검을 쥔 손아귀에 재차 힘을 싣자.
투득.
손뼈에 실금이 그어지는 게 느껴졌다. 일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고통이 일었지만, 단테는 아랑곳 않고 미소를 지었다.
그저적…….
검을 놀릴 때마다 손뼈에 생긴 균열이 벌어졌으나 단테의 몸가짐엔 변화가 없었다. 이어서 어깨, 흉부, 허리, 심지어 땅을 딛고 있는 발바닥까지도.
곧 부서질 듯 위태롭게 덜컥거리기 시작했지만.
단테는 나약한 제 육신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건, 그냥 좋아서 싸우고 있을 뿐이니까.’
그러나 미소 짓고 있는 표정과는 별개로, 팽팽한 전세가 진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단테의 몸이…… 부서지고 있어?’
살보다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진하게 검을 맞대고 있는 진이 그 사실을 모를 수는 없었다.
다시 승기를 잡은 순간.
진은 기쁨이 아니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왜 아직도 하이란의 비기를 쓰지 않는 거냐……! 내가 모르는 다른 수가 있는 것이냐?’
아니다.
이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한 단테는 사력을 다한 맹수였다. 두 눈은 아직도 형형한 투기로 빛나고 있지만, 이번에야말로 정말 지친 것이다.
단순히 지친 것을 넘어, 완벽한 탈력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분명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넌 더 이상 날 베는 것에 망설이지도 않았어. 그런데도 왜.’
이젠 진이 선택할 차례였다.
벨 것인가, 베지 않을 것인가.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내가 검을 거두는 건, 너에 대한 모독일 터.’
챙겅-!
진이 횡으로 내지른 일격에, 단테의 몸이 흔들렸다. 중심을 잃은 순간 아슬아슬하게 지탱되던 몸속 뼈 몇 개가 부러졌고,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진의 움직임을 좇기 전에.
이미 브라다만테는 두 번째 검광을 흩날리고 있었다.
다행이게도.
칼날에 한껏 망설임이 스몄다.
‘빌어먹을 놈이! 대체 왜!’
이를 악물며 단테의 가슴팍으로 쇄도하던 칼날의 궤적을 돌리는 진.
억지로 궤적을 비틀어 발생한 반동 때문에, 손아귀에 힘이 풀렸다.
진의 손을 벗어난 브라다만테가 흙바닥으로 날아갔고, 단테의 검은 그 순간 진의 목덜미를 겨눴다.
겨눈 것처럼 보였다. 힘이 다해 쓰러지는 순간, 쥐여 있는 검이 몸을 따라 흐느적거렸기 때문에.
두 번째 공격이 이어질 때, 단테는 이미 의식을 잃었다.
털썩!
흙바닥에 쓰러진 단테.
그리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미친 듯이 눈동자를 깜빡이며 그를 내려다보는 진.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흘렀다.
그때쯤엔 관객들조차 잠시 숨을 멈췄고, 진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승리감은커녕, 설명할 수 없이 복잡한 감정에 온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건 단테가 죽지 않았길 바라는 마음. 그러나 죽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차마 몸을 숙여 확인하기가 두려운 마음.
본능적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단테의 맥을 짚었으나, 두근대는 제 심장 박동에 눌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서 의사를 불러야……!’
입을 열어 당장 의사를 부르라고, 누구든 치료가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도와주라고 소리치려는 순간.
또 다른 소년 하나가 객석에서 경기장으로 몸을 던졌다.
“도련님!”
그리고 소년의 뒤를 따르는 호위 무사들.
베라딘 지플, 미친 듯이 경기장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그의 두 손이 초록빛 마력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경기가 중반에 이르렀을 무렵부터, 치유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행여 이곳에서 두 사람 중 하나를 잃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베라딘……!”
“걱정 마라, 살릴 테니까!”
단테 앞에 무릎을 꿇은 베라딘이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두 가지에 이어.
베라딘은 동시에 세 가지의 치유 마법을 읊는 엄청난 능력을 선보였으나, 진은 단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주문을 외우는 베라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10초도 지나지 않았건만 얼마나 많은 마력을 끌어오고 있는 것인지, 베라딘의 온몸에서 비 오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지간한 중상도 단숨에 회복시킬 수 있는 치유 마법이 펼쳐지고 있건만, 도무지 눈을 뜨지 못하는 단테.
진과 베라딘, 두 사람 다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는 와중.
베라딘이 마력을 거두며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마법으로 치유시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내장이 다 뒤틀렸고.
뼈는 단 하나도 성한 게 없다. 심지어 망가진 몸속에서 오러가 폭주하고 있어, 베라딘이 아니라 성왕 미클란이 기적을 부려도 재생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진.”
돌연 베라딘이 진의 이름을 속삭여 불렀다.
“단테는.”
“잘 들어. 이건 우리 셋만의 비밀인 거다.”
뒷말을 이은 베라딘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