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55)
제 999화
235화. 지토(5)
그 순간에도 지토는 엘로나와의 접촉을 통해 계속해서 진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어떻게든 미세한 틈이라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대로 태양 가르기가 온전하게 다 펼쳐지면, 지토는 결코 무사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차라리 아율라 같은 놈과 싸우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 애초에 이런 힘은, 어지간한 불멸자들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지옥 전역이 잠시 진의 황금빛 기운으로 물든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지토가 가장 잘 알았다.
고통의 땅 전체를 마기 대신 다른 힘으로 채우는 일. 지토가 아는 한, 태양신 사후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불멸자는 셋을 넘지 않았다.
‘분명 진 룬칸델에게 나를 벨 수 있는 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대체 뭐지? 필멸자가 이런 힘을 갖는 걸, 정말 마녀가 허락한 건가?’
하나 지금은 충격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충분히 신을 삼키고도 남을 거대한 금빛 늪이 열리고 있었다. 늪을 빠져나와 살아남으려면, 내내 아껴온 수단과 진기를 전부 꺼내야 했다.
[아쉽지만 넌 포기다, 진 룬칸델. 오르갈만 살려서 미래를 내다봐야겠어.]지토의 실체가 빠르게 선명해졌다.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마기가 폭발하며 몰려드는 황금빛 기운을 밀어냈다. 그는 먼저 진이 아니라 엘로나를 노리고 있었다.
이런 검을 펼치려면 적어도 고통을 나눠 받는 진과 엘로나의 ‘공명’은 분명 해제되었으리라는 판단이었다.
“큭!”
지토의 예상대로 엘로나는 바로 정신 공격에 반응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지토는 그대로 엘로나를 인질 삼아 잠시 진의 공격을 유예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엘로나는 이제 막 자신이 가장 빛나던 시절의 기억을 되찾은 상태다. 정신 공격으로 떠오르는 어두운 과거는 그 기억 덕에 전처럼 엘로나를 강하게 흔들지 못했다.
지토가 내리친 주먹에 엘로나가 서 있던 땅이 폭발하며 내려앉았다. 엘로나는 무사히 진의 뒤로 몸을 빼냈다.
‘아……!’
고개를 들어 전방을 바라보자마자, 엘로나는 일순 고통도 잊은 채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거대한 황금빛 고리가 지토를 휘감고 있었다. 지토는 고리 바깥으로 나오고자 발버둥 치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고리 바깥으로 보랏빛 충격파가 번지며 굉음이 일었다.
이어 진이 검을 회수하며 재차 지토를 향해 휘두르자 똑같은 고리가 하나 더 형성되었다.
그렇게 총 네 개의 고리가 지토를 묶었다. 고리들은 서로 교차하며 지토의 사방을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때때로 고리 바깥으로 팔이나 다리가 튀어나오기는 했다. 그때마다 근처를 빛내는 중인 황금 기운이 몰려들어 돌출된 지토의 육신을 갉아먹었다.
‘이건…… 테마르가 사용하던 태양 가르기와 다르다.’
엘로나는 그가 태양 가르기를 사용하던 모습을 기억해내고 있었다. 지금 진이 펼친 검은 속성만 같을 뿐, 테마르의 검과는 전혀 형태가 달랐다.
진은 그로부터 태양 가르기를 직접 계승한 게 아니다. 케이탐의 그림 속 세계에서 얼핏 본 검을 재현하려는 것이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엘로나가 보기에 지금 진의 검이 테마르보다 떨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욱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지토는 고리를 빠져나오지 못해 계속 몸부림을 치는 중이니 말이다.
“후우……!”
진이 거친 숨을 토하며 검을 거두었다. 용암처럼 뜨거워진 온몸에서 쉴 새 없이 땀과 피가 증발하고 있었다.
“살짝 아슬아슬하오.”
“놈을 베기 위한 힘이?”
“그렇소. 놓치지 않도록 제압해두는 건 성공했으나, 체력 소모가 크기는 했던 모양이군.”
“저 때문이군요.”
“그건 틀린 생각이오. 경이 오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런 기회를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테니. 고통을 좀 나눈 정도로 이 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값싼 대가라고 할 수 있지.”
진이 엘로나와 눈을 맞췄다.
“나는 지금부터 놈을 베는 것에 내 모든 의지를 쏟을 것이오. 아마 검을 쥔 이래 가장 긴 일검이 될 것 같군.”
천 년 전 전성기의 테마르가 펼친 태양 가르기는 형식만 본다면 극한의 쾌검에 가깝다.
진도 처음엔 그 방식을 따라 지토를 베려고 했었다. 그러나 막상 실전에서 마주한 지토라는 거악의 실체는, 결코 한순간에 벨 수 없는 존재였다.
마치 과거 시론이 검의 정원으로 돌아온 자신에게 떨군 일검처럼, 극도로 무거운 둔검을 써야 옳다는 판단이 든 것이다. 일부러 케이탐의 그림에 없던 고리까지 형성한 까닭이었다.
“경의 말은, 그사이 일어난 모든 변수는 제가 감당해주길 바란다는 뜻이죠?”
고개를 끄덕이는 진.
“맞소, 엘로나 지플. 우린 꽤 말이 잘 통하는군.”
“지금은 나도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드는군요. 경과 함께 저 어두운 괴물을 쓰러뜨리고 나면, 나는 약속대로 과거를 마주하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보아하니 지금도 무언가 떠오른 기억들이 있는 것 같소.”
“내가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을 수 있던 유일한 시기의 기억들이죠. 당신이라면, 우리 가주가 나 같은 경험을 하지 않게 해줄 것 같군요.”
엘로나가 진에게 주먹을 뻗었다. 진은 피식 웃으며 그녀와 가볍게 주먹을 맞부딪혔다.
[크으으으, 카아아아아!]지토의 몸부림이 계속 격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옭아맨 고리는 견고하게 고정된 채 한 뼘도 움직이지 않았다. 충격파만이 고리를 빠져나와 전장 곳곳에 폭발을 일으킬 뿐이었다.
진은 다시 정신을 집중한 채 말이 없었다.
이제 그의 시야에는 오로지 지토만이 보였다. 그의 내면은 지토를 베기 위한 의지만으로 한 점도 남김없이 차올랐고, 육체는 오로지 지토를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지금의 진이라면, 평범한 인간에게도 얼마든지 살해당할 수 있다. 오로지 지토에게 집중된 그의 육신과 내면은 다른 외부 타격에 아무런 저항력이 없었다.
이제 엘로나가 진을 지켜줄 때였다.
어쩔 수 없이 지토의 기운과 접촉하는 순간마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지만, 엘로나는 지팡이를 그러쥐었다.
[크…… 내가 이대로 끝날 것 같냐?]지토가 중앙을 두른 고리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진은 이제 검을 움직이고 있었다. 파공음조차 없이, 그저 천천히 가라앉는 빙하처럼 아래로 기우는 칼날.
한없이 느리게 흐르는 빛.
지토는 검의 궤도를 따라 자신의 눈앞에 형성된 빛을 올려다보았다.
받아내는 수밖에 없다. 혹은 빛이 몸에 닿기 전에 진을 무너뜨려야 했다. 그가 태양 가르기를 완성하지 못하도록.
[카아아악!]지토가 붙잡은 고리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고리를 붙잡은 두 손이 쉴 새 없이 분해되고 재생되기를 반복하며 보랏빛 재를 휘날렸다.
조금씩, 고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지토가 빠져나올 수 있을 만큼 벌어지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 안에 진의 검이 지토의 머리에 먼저 닿을 것이다.
그러나 지토의 목적은 고리 바깥으로 나가는 게 아니었다.
‘됐다!’
다시 굳게 닫혀 있는 심연의 하늘을 열려는 속셈이었다. 그는 지금껏 심연이 열리는 걸 경계해 왔으나, 이번만큼은 심연을 이용해야 했다. 지토는 고리가 뒤틀린 틈 너머로 팔을 뻗었다.
우지지직-! 이내 그가 주먹을 움켜쥐자 하늘이 일그러지며 다시 심연이 드러났다.
지토는 우악스럽게 그 속으로 팔을 밀어 넣었다. 팔이 심연 속으로 들어간 순간엔 지토조차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 이제껏 고통은 쾌락이라고 부르짖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괴로운 비명이었다.
[커허억, 칵……!]지토는 한동안 그곳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 보였다. 사람이 상자 속을 뒤적거리듯이 말이다.
엘로나는 지토의 팔을 향해 마력을 퍼부었으나, 지금 그녀가 가진 의지로는 지토에게 제대로 본질적인 타격을 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마력을 더 증폭시킬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오히려 진의 검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았다.
‘무언가를 꺼내려는 것 같은데…… 저건!?’
지토의 팔이 다시 심연 밑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창백한 빛을 내는 한 구체가 들려 있었다. 크기는 소형함 정도지만 엘로나는 구체가 품고 있는 힘을 느끼며 두 눈을 부릅떴다.
인공태양.
진마계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기관이 심연을 건너 지토의 손아귀에 놓인 모습이었다. 그건 지토가 아껴둔 마지막 한 수였다.
[크흐흣, 진 룬칸델. 이번엔 정말로 위험했다…… 하지만 이게 터지면 너희 둘 다 끝장이다.]지토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그의 팔이 입자로 흩어지며 사방으로 빛이 번졌는데, 지토를 옭아맨 진의 고리는 오히려 보호막이 되었다.
인공태양의 힘 대부분은 진과 엘로나 쪽으로 폭발하고 있었다. 지토는 고리를 이용해 폭발을 버티며 실실 웃음을 흘렸다.
진이 태양 가르기를 펼친 순간 진마계 전역에 잠시 황금빛 기운이 번졌듯, 이번엔 진마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태양이 파괴되었으니 이제 진마계엔 한동안 빛이 존재할 수 없었다.
[어차피 난 오르갈 레밀리아스만 있어도 돼! 괜히 과욕을 부리다 정말로 조져질 뻔했군, 지긋지긋했어. 이제 안녕이다, 진!]진은 폭음에 섞인 지토의 먼 목소리를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충격에 내면이 어지러워진 것도, 태양 가르기를 완성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승리가 더욱 확실해졌으니 검을 놓치지만 않으면 된다는 판단이었다.
“엄청 긴장했는데, 이게 마지막 변수라는 말이죠?”
엘로나가 마력으로 진의 앞쪽으로 이어진 폭발을 틀어막으며 말했다.
지토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엘로나가 어느 정도 인공태양의 폭발을 막아내는 건 예상했으나, 설마 이토록 간단하게 감당할 줄은 몰랐다.
그녀가 폭발을 완벽하게 막아내는 덕에 진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은 채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칼날은 이제 지토의 눈앞에 다가선 상태였다.
[이걸…… 어떻게 막고 있냐? 전혀 힘들지 않은 거냐?]“의지가 필요하지 않은 일이니까요. 당신처럼 초월적인 존재들을 멸하는 게 아니라, 그저 강하기만 한 힘을 막는 건…… 내게도 쓸모 있는 면이 있었다고 해두죠. 내가 가진 힘은, 바로 이런 순간을, 이런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난 그 사실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어요.”
화아아아……!
엘로나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폭발한 인공태양의 힘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열기 시작했다.
진은 그 길을 따라 검의 궤적을 완성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