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academy's Prodigy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검신 (4)
아마 에르나스 본인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추구하는 게,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이라는 것을… 그 정도로 심하게 상처받았다는 것을,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격을 통합하면서, 자기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보다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시에 페르펙티오에 대해서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페르펙티오라는 아버지가 정말로 특이한 성격의 남자였다는 것을… 그냥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이제 완전히 이해한 상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응어리진 게 풀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울부짖고 싶었다.
“그런가.”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서, 페르펙티오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나와 함께하는 편이 좋았던 건가.”
페르펙티오가 눈을 감았다.
어쩌면 눈을 감고 상상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냥 내 곁에 두는 게 정답이었겠군. 아카데미로 보내지도 말고, 유스레흐트를 건네주지도 말고… 내 보좌역으로 육성하는 게 최선이었던 건가.”
만약 페르펙티오가 그렇게 했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에르나스는 그래듀에이트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페르펙티오 곁에 머물렀을 것이다.
유일한 후계자가 아카데미도 못 들어갔으니, 란즈슈타인 가문의 위상은 많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페르펙티오는 그런 걸 신경 쓸 사람이 아니다.
언젠가 철혈검제를 부활시킬 날을 꿈꾸면서, 아들과 함께 조용히 여러 가지 연구나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에르나스가 입학하지 않으니 아카데미 내부도 비교적 평화로웠을 가능성이 높다.
루퍼스, 하인리히, 고르트, 베리스리제, 레스터 같은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이 치열하게 경쟁했을 테고, 세리느 등도 두각을 나타냈겠지만… 에르나스라는 요소가 없으면 그렇게 심한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칸델이 다른 세계에서 나타나더라도 그냥 한 사람의 학생으로서 평범하게 졸업하지 않았을까.
물론, 소설처럼 흑천마교 총본산이 토벌되어 페르펙티오가 철혈검제 부활을 위해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에르나스도 페르펙티오를 도왔을 것이다.
에르나스가 뛰어난 두뇌로 페르펙티오를 보좌한다면… 결국 철혈검제 측의 승리로 끝나지 않았을까.
“결국 모든 것은… 내 행보가 문제였군.”
“…….”
“인정하겠다, 에르나스.”
그렇게 인정하면서, 페르펙티오가 나를 쳐다봤다.
그 눈동자는 여전히 차갑고 공허했다.
“내가… 잘못한 게 맞다.”
그 말을 줄곧 듣고 싶었다.
아버지에게서 그 말을 끌어내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었음에도 만족감은 없었다.
허탈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에르나스.”
페르펙티오가 입술을 달싹였다.
목소리가 매우 가늘었다.
원래 육체의 손상이 심한 상태였지만, 이제 슬슬 한계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다.
“미안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페르펙티오는 힘이 다한 듯이 고개를 떨궜고, 거친 파도가 그를 집어삼켰다.
“아……!”
페르펙티오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거친 바다 위를 떠도는 영묘의 파편 위에서, 나는 손을 내민 채 망연자실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응시한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유년기가 끝났다고 느꼈다.
* * *
촤아악!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 나는 천천히 감정을 진정시켰다.
에르나스 본래의 인격이 강하게 드러난 탓에, 감정을 다스리기 어려웠다.
지금 나는 외부 세계에서 들어온 인격과 에르나스 본래의 인격이 융합된 상태다.
하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특정 인격만 강하게 드러날 때가 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밸런스가 잡혀서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래도…….’
에르나스 본래의 인격에는 그동안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이 있었다.
그것이 해소되면서, 정신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
이제 에르나스는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이렇게 멍하니 있을 수는 없다.
모든 싸움을 마무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내 인생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니까.
‘딱히 결말을 맞이한 게 아니란 말이지.’
그동안 나는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에르나스의 이야기를 새로운 결말로 이끌기 위해 계속 싸워 왔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모든 적을 쓰러뜨리고 나니,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야 마지막 화를 쓰면 그대로 끝나는 거지만, 인생이라는 건 그렇지 않으니까.
‘그래, 끝나지 않았어.’
나는 서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저 멀리 육지가 보인다.
그곳에서는 이제 모든 싸움이 끝났을 것이다.
다들 자신의 역할을 완수한 뒤…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
‘그러면… 가 볼까.’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내가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바다를 가로질러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해안가의 전투는 끝났다.
철혈검제 진영의 검귀와 그래듀에이트는 모조리 쓰러졌다.
무너진 영묘로 진입해 내부를 확인해 봤지만, 살아 있는 적은 아무도 없었다.
“흠, 이제 지상에서 철혈검제 세력은 전멸했군.”
페르디난드 교수가 깨져 버린 왼눈 안경을 바닥에 던지면서 중얼거렸다.
그는 평소 실전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지만, 마지막 싸움이니만큼 전력을 다해 싸웠다.
“네, 적어도 여기서는 우리들이 승리했습니다.”
“여기서는 말이지.”
욜스 교수와 안겔라 교수가 서로를 부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응급처치만 한 뒤 다시 전장에 복귀해 아군들을 도왔다.
“에르나스 님은 지금 대체 어디에 계실지…….”
“아까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은 봤는데… 별까지 날아갔을까요?”
슈미츠와 비올라가 땀을 닦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오늘 아카데미 학생들 중에서 가장 많은 적을 쓰러뜨렸다.
“그렇게까지 멀리 날아갈 리가 없죠. 바다 위 어딘가에서 철혈검제와 싸우고 계실 거예요.”
“이미 싸움이 끝났을 수도 있고 말이지.”
클로에의 차분한 발언에 베리스리제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녀들은 이번 전투에서 아군들을 지휘하면서 큰 공헌을 했다.
“흥, 목소리를 들으니 녀석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군. 철혈검제와 혼자서 싸우러 갔는데 말이야.”
그렇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린 건 하인리히였다.
그는 절정급에 도달한 힘으로 전장에서 많은 검귀를 쓰러뜨렸다.
“…….”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세리느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 세리느는 아군 전체를 지휘했다.
세리느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많지만, 에르나스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세리느였다.
세리느는 이를 악물고 지휘관 역할을 수행했고, 그 결과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역할을 완수한 세리느는… 지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방금 하인리히는 아무도 에르나스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세리느는 걱정 때문에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르나스…….’
자신의 무력함이 원망스러웠다.
하인리히처럼 절정급만 되었어도 에르나스를 쫓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세리느는 아직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불과하다.
방해만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해안가에 남아 아군을 지휘하는 것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아……!”
바로 그때.
바다 저 멀리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해안가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세리느 님?”
클로에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다리가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하아, 하아……!”
오랜 전투 끝에 온몸이 지쳐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세리느는 미친 듯이 바다를 헤쳐 나갔다.
“에르나스……!”
그리고 바다 위를 가로질러 접근하고 있던 에르나스에게 뛰어들었다.
경신술까지 사용하면서 말이다.
“어이쿠!”
풍덩!
에르나스를 껴안고, 바다에 빠졌다.
눈코입에 바닷물이 들어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에르나스를 끌어안는 게 중요했다.
“에르나스, 에르나스……!”
“이, 이봐.”
에르나스가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바다 위를 떠다니던 영묘의 파편 위로 올라갔다.
“이게 무슨 짓이야.”
“그치만, 그치만…….”
물에 흠뻑 젖은 채, 세리느는 훌쩍였다.
모든 싸움이 끝나고 에르나스가 무사히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래, 너는 겉모습은 항상 당당하고 올곧은 귀족 아가씨지만… 속마음은 여린 외강내유 캐릭터였지.”
“뭐예요. 당신이 나에 대해서 뭘 그렇게 잘 안다고…….”
“잘 알고 있어. 내가 아는 범위에서지만.”
에르나스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원래는 너하고 더 사적인 교류를 하면서 재미있게 아카데미 생활을 해야 했어. 하지만 나는 하드 모드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 여유가 없었고… 너는 주인공 캐릭터의 상대라는 생각 때문에 쉽사리 가까워질 수 없었지.”
“저기, 에르나스? 혹시 머리에 부상을 입은 건가요?”
에르나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세리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리느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손을 뻗어 에르나스의 머리를 만졌다.
“부상은 없는 것 같은데…….”
“이미 다 치료했어. 피는 바닷물에 씻겨 나갔고.”
“네? 피를 흘렸다고요?”
그러고 보니 옷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깜짝 놀란 세리느는 다급히 에르나스의 몸을 살폈다.
“어, 어디를 다친 건가요? 지금까지 에르나스가 이렇게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세리느.”
“네?”
자신의 몸을 만져 대는 세리느를 보면서 에르나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순간, 세리느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에 자주 볼 수 있었던… 음흉한 미소였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싫어서 약혼까지 취소하려 했던 주제에, 이제는 내 몸을 거리낌 없이 만지작대는군. 격세지감이 느껴지는데?”
“……!”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짓궂게 비웃는 말투.
그 목소리에 세리느는 다급히 에르나스의 몸에서 손을 뗐다.
“에, 에르나스……?”
“하하, 농담이야.”
에르나스가 피식 웃으면서 세리느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이건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태도였다.
대체 에르나스는 어떻게 된 걸까?
“에르나스, 역시 머리에 부상을……?”
“미안하지만 조금만 참아 줘. 나도 아직 자연스럽지 않거든. 자주 왔다 갔다 할 거야.”
“……?”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데, 쉽지 않네. 좀 양해해 줘.”
어리둥절한 세리느의 머리에서 손을 떼면서, 에르나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온화한 표정에 세리느는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에르나스!”
“에르나스 님!”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사람들도 바다로 뛰어들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자, 세리느.”
“네?”
“언제까지고 여기 있을 수는 없으니까.”
에르나스가 항상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뺐다.
그리고 그 반지를 바다에 던져 버린 뒤, 가벼워진 손을 세리느에게 내밀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인생은, 여기서부터 새로 시작되어야 하니까.”
“…….”
세리느는 에르나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에르나스가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던 무언가를 털어 버리고, 홀가분하게 새 출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그렇다면… 세리느도 용기를 내야 한다.
“알겠어요, 에르나스.”
용기를 내서, 세리느는 에르나스의 손을 잡았다.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세리느는 이 사람 곁에 있고 싶었다.
“이번에야말로 제가 계속 함께할게요.”
“그래, 부탁할게.”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육지로 향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을 잡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