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43
노아와 나이로비 중 다음에 있을 랭킹전을 더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것은 랭킹이 높은 나이로비 쪽이었다.
원래도 랭킹전은 랭킹이 높은 쪽이 아쉬운 편이었다.
거기에 노아는 최종적인 승리를 위한 배움이 있는 패배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격.
그에 반해 나이로비는 혼자 알렌이나 펠릭스의 일까지 걱정하며 부담을 떠안고 있었다.
그녀가 주말마다 용검도에 틀어박혀 특훈을 하던 것도 그 때문.
‘이게 도대체 뭐야.’
처음 노아가 용검도에 왔을 때는 랭킹전에 앞서 탐색전이라도 해볼 생각인가? 했다.
그러나 노아는 혼자가 아니었고, 그마저도 진짜로 놀러온 것이었다.
“예이~!”
강으로 뛰어든 한별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물살을 갈랐다.
대놓고 수영복 차림이었던 그녀는 아예 물놀이를 하려고 작정을 했는지 전력을 다해 놀고 있었다.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군. 아니 자라니까 당연한가?”
노아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공원을 뛰노는 딸을 바라보는 아저씨 같은 표정이라 나이로비는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소풍이라니 참 여유로워 보이는군.”
“그야 맨날 틀어박혀서 연습만 하면 사람이 바보가 되어버리니까요.”
노아는 베로니카를 생각하며 한 말이지만 그 말은 나이로비의 명치도 찌르는 말이었다.
“연습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나이트레이에 들어와 있는 녀석들 중 연습이 부족한 녀석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럴 땐 오히려 한숨 돌리고 이것저것 경험하는 게 도움이 되죠.”
산속에 박혀 살던 노아는 산을 내려와 나이트레이에서 급성장을 거뒀다.
율리우스 또한 생텀 킵에서의 경험으로 최근 커다란 성장이 있기도 했다.
나이트레이의 커리큘럼만 해도 어지간한 사람들은 따라오지 못할 정도.
기본 연습량이 부족해서 문제가 생길 일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흥, 잘도 그런 소리를 하는구나. 기사란 어디까지나 근성이 있어야…….”
역사가 긴 정도 가문 출신답게 고루한 사고방식에 젖어 있던 나이로비는 곧 노아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이 말하는데 뭐 하는 거냐!”
“선배 이것 좀 봐봐요!”
노아가 가리킨 것은 썩은 표정으로 한 대 칠까 고민하고 있는 나루였다.
“이게 뭐야? 귀에 물 안 들어가게 하려고 해놓은 거야? 수인용 수영모 같은 건가?”
나루는 자신의 기다란 토끼 귀에 리본이 달린 귀여운 커버를 씌워놓은 모습이었다.
물론 소풍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그녀가 직접 한 것은 아니었다.
물도 있다는 소리에 일단 수영복부터 챙겨 입은 한별이 그녀에게도 강제로 씌워놓은 것.
덕분에 나루는 굉장히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아는 옆에서 나루를 붙잡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중이었다.
“토끼 수인은 귀에 물이 들어가면 안 좋은가? 근데 이걸로 방수가 되나?”
노아는 거리낌 없이 나루의 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루도 그런 손길을 피했지만, 이제는 체념하고 귀를 내어주고 있었다.
거절하면 하루 종일 자신의 귀만 바라보고 있으니 결국 부담되어서 마음대로 하라고 하게 되는 것.
“……세상에 한별이 같은 사람이 또 있을 줄은 몰랐는데.”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선배도 같이 놀죠. 저희 있다가 요리대회 할 건데 심사위원 하면 되겠다.”
그렇게 노아가 똥 씹은 표정의 두 사람을 붙잡고 어르는 한편, 처음엔 투덜대던 펠릭스는 완전히 소풍 분위기에 적응한 모습이었다.
“텐트는 여기가 좋을 것 같군. 고지대라 물이 불어도 괜찮고, 수평도 잘 맞아.”
원래 집에서 혼자 놀던 성격답게 펠릭스는 설명서를 보고 혼자 텐트를 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주어진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것.
펠릭스의 견고한 기본기는 이러한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반대로 기분파의 선두주자인 로젤리아는 짐을 푸는 것도 뒤로하고 시바와 공을 차고 있었다.
“후훗, 이 공은 평범한 소가죽으로 만들어서 세게 차면 찢어져 버리지. 공이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힘을 조절하는 것이 바로 배구의 묘미!”
로젤리아는 당당히 약을 팔고 있었다.
“검술에 있어서도 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유연함과 부드러움! 배구는 그러한 유연성을 기르기에 최적화된 운동인 것이다!”
“과연!”
“그러니 나이로비! 너도 검술 연습을 겸해서 같이 배구하는 거야!”
“싫어요. 안 해요. 돌아가세요.”
“아잉. 그러지 말고!”
기나긴 외출 외박 금지에 스트레스가 가득 찬 학생들은 간만의 소풍에 기이할 정도로 텐션이 높아져 있었다.
화륵!
“흐음, 화력을 좀 더 약하게. 그리고 열을 사방에서 골고루 가할 수 있을까?”
“이렇게요?”
비교적 진중한 성격인 오필리아와 리나리아조차 요리대회에 대비해 화로의 화력을 점검하고 있었다.
“열기가 위로 올라가니까 위쪽의 화력이 아래쪽보다 조금 더 가까워야 할 것 같아.”
“그렇다면 익시드를 사용해서 불꽃의 방향을 돌려보죠.”
밤새 시행착오 끝에 DIY로 완성한 그들의 화로는 무려 불 조절을 리나리아의 속성변환으로 하는 기사 전용 화로가 되어 있었다.
“저런 고급 기술을 꼬치구이에 쓰겠다니. 본격적인 것도 정도가 있잖아요…….”
베로니카는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어했으나, 본격적인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미아 당신까지!”
“네?”
모두에게 철판구이를 대접하겠다며 철판을 들고 온 미아는 아까부터 철판이 달린 테이블의 설치에 한창이었다.
시간 부족으로 희귀 식재료는 구했으나 그에 맞는 요리법을 개발하지 못해 결국 ‘희귀한 철판구이 모듬’을 할 생각이라나.
‘보통의 메이드는 손님이 이상한 의견을 제시해도 점잖게 말리기 마련인데…….’
가만 보면 미아는 분위기에 편승해서 한술 더 뜨곤 하는 일이 잦았다.
‘역시 미아는 내 메이드보다는 자유로운 몸이 더 나을지도 몰라.’
최근 들어 베로니카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특히 소풍의 계기가 되었던 미아와 노아의 연습에서 더더욱.
‘미아가 내게 말도 없이 약속을 잡다니. 역시 노아를 좋아하고 있는 게 분명해.’
자신은 분명히 그런 미아를 응원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언제부터인가 두 사람이 이어지는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아파왔다.
아니, 짐작 가는 건 있었다.
초승달 군도.
멀어져 가는 배를 보며 모두가 포기했을 때.
그때 베로니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검을 들었지만, 황녀라는 입장에서 나온 관성일 뿐.
실은 마음속으로는 포기라는 단어를 마주하고 있었다.
포기하지 마라.
자신조차 믿지 못한 그 공허한 외침 속에 온기가 들어찬 것은 노아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을 때.
백야로 얼어붙은 바다 위를 달려 나가면서, 베로니카는 앞서가는 노아의 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남자가 나의 기사였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언젠가 그녀가 황제가 된다면.
제국의 황제는 어떠한 일도 이룰 수 있으니까.
그것이 베로니카가 처음으로 황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미아를 밀어주기로 했으면서 이런 생각을……!’
‘그래도 황제로서 기사로 삼는 건 상관없지 않나……?’
‘아니 그 이유가 흑심인데 상관없을 리가…….’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아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좋아. 다들 신나게 놀고 있느라 정신없는 것 같고. 그럼 우린 그동안 둘만의 시간을 가져보도록 할까?”
“네? 에? 에에?”
“뭐야 그 고장 난 자명종시계 같은 반응은.”
노아는 그렇게 말하며 뒷주머니로 손을 가져가 무언가를 꺼내려 했다.
하필 방금 전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일까.
노아의 갑작스런 행동에 문득 반지를 꺼내 프러포즈를 하는 장면이 베로니카의 머릿속을 스쳤다.
‘아니, 아니, 만화를 너무 많이 봤잖아 그런 게 여기서 나올 리가……!’
“짜잔! 요리를 못 한다고 했지? 대회를 대비해 잠깐 연습하자고. 연습용 식재료는 따로 사뒀으니까.”
노아가 꺼낸 것은 조리도구.
“쿨럭!”
“뭐야 왜 그래?”
베로니카는 침몰했다.
* * *
그리고 이어진 요리대회에선,
1. 노아 베로니카 팀.
“이거 맛있긴 한데 자취요리잖아?”
“만들기도 쉽고 맛도 괜찮지만 요리대회라고 해놓고 점수를 주기는 좀……?”
“우와 스승, 이거 레시피 좀 가르쳐 줘요!”
“과연 서바이벌 경험이 있는 만큼 야외취사에도 능숙하군.”
[7/10점]2. 카를로스 시바 팀.
“맛있어요…….”
“아니 뭔데, 얘들 게 왜 맛있는데?”
“의외의 강적!?”
[9/10점]3. 유니아 티우 팀.
“애정 점수 100만 점.”
“노아 저 녀석 소스로 하트 그려놨다고 먹지도 않고 점수 주고 있어!”
“그치만 유니아가 나를 위해 하트를 그렸다잖아!”
“일단 심사위원은 저 맞죠?”
“뭔가 미안하게 됐어 나이로비.”
[6/10점]4. 펠릭스 한별 팀.
“고급.”
“더럽게 고급.”
“무인도에 와인까지 풀 세팅해 온 네가 레전드다.”
[8/10점]5. 미호 나루 팀.
“미안해. 우리가 미안해.”
“어떤 놈이 얘들을 한 팀으로 묶어놓은 거야?”
“제비뽑기 하자고 한 건 노아다. 저 녀석을 족쳐라.”
[5/10점]6. 로젤리아 미아 팀.
“이거 먹을 수 있는 거야……?”
“물론입니다. 식용 검사는 모두 마쳤습니다.”
“아직 움직이는데?”
“익은 겁니다.”
그어어어!
“소리도 내는데?”
“익은 겁니다.”
[0/10점](심사위원이 먹기를 포기)
(의외로 눈 감고 먹으면 맛있었다는 시바의 평가)
7. 오필리아, 리나리아, 우르슐라 팀.
“10점.”
“더 말이 필요한가?”
“이건 어쩔 수 없지. 졌지만 잘 싸웠다.”
[10/10점]이후 상품을 셋 중 누가 가져가느냐를 두고 한밤중의 대련을 실행.
우르슐라의 정령태에 텐트가 박살.
결국 미아에게 혼난 뒤, 셋이 공동의 이득을 위해 쓰기로 합의를 보았다.
“텐트 어떡하지.”
“그거라면 제가 준비해둔 게 있답니다.”
노아는 소풍을 당일치기로 끝내야 하나 걱정했으나 다행히 방법이 있었다.
“혹시나 해서 사전답사 중에 만들어둔 간이주택이 있거든요.”
미아가 안내한 곳에는 정말로 큼직한 농막이 있었다.
“그런데 사전답사라니 내가 어디로 갈 줄 알고?”
“황실 메이드는 정보부와도 긴밀히 제휴하고 있거든요.”
“응?”
그 말에 베로니카에게 뭔가를 시키려고 했던 세 사람은 얌전히 소원권을 고이 접어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 * *
그리고 얼마 뒤 랭킹전의 날.
“노아, 내가 이기면 앞으로 펠릭스 도련님에게 집적거리지 마라. 그리고 전에 요리대회에 냈던 레시피도 가르쳐주고.”
“그럼 나이로비 선배는 제가 이기면 11위인 밀리아 선배 좀 소개시켜 줘요.”
“남친 있는 여자를 소개시켜 달라니 간도 크군.”
순간 관객석의 한 곳에서 따가운 시선이 날아왔다.
시선의 주인공은 밀리아와 사귀는 것으로 유명한 랭킹 6위 테리 맥도웰.
나이로비와 마찬가지로 8대 가문이 아닌 정도 가문 출신인 밀리아와 테리는 교내에서 공개연애로 유명한 커플이었다.
일반 가문 출신이면서도 8대 가문의 후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재능.
게다가 본인들의 입학식에서 당당히 ‘우리 졸업 후에 결혼할 겁니다’ 선언까지.
어릴 때부터 서로 일편단심인 극한의 러브러브 커플은 누가 보아도 눈에 띄었다.
그러니 진작부터 교내에선 유명 인사였던 것.
오늘 테리가 노아의 랭킹전을 관전하러 온 것도, 나이로비가 쓰러지면 다음 타자가 될 밀리아가 노아의 실력을 봐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런 소개를 이런 데서 당당히 요구할 리가 없잖아요.”
“남녀 간에 다른 소개가 있나?”
“이 선배 사상이 글러먹었네.”
경기장에 올라선 두 사람은 다소 가벼운 분위기에서 검끝으로 바닥을 두드렸고,
시작과 동시에 닿기만 해도 사람을 갈아버릴 칼날의 폭풍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