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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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타(那由佗)
그로부터 며칠 후.
서서히.
서서히 내 몸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식으로 만들어진 주박(呪縛)이 해제되면서 비상식적으로 멈춰있던 나유타영겁의 세계가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몸의 활류가 다시 제 속도를 찾는 걸 느끼자 약간 안도의 심정이 들었다.
‘ 이제… 다시 현실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길었다. 정말 길었다.
내가 묶여있는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확실한 건 이제서야 무혼 2단계를 거의 끝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몸이 엉망이고 내공도 무(無)로 돌아간 상태라고 하지만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은천은 이미 결론을 낸 상태에서도 손을 쓰는 자는 아닐 테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기대하자 약간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내공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동안의 깨달음을 기반으로 다시 쌓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내가 사라지면 천하에서 팔왕이 날뛰겠지만 그것까지 알 바는 아니다. 나는 이제 세상과 인연을 끊고 수련에만 몰두하고 싶다.
그 때였다.
[ 재밌게 되어가는군.]마치 나와 거울처럼 닮은 자가 허공의 틈새를 열고 걸어 나왔다. ‘유천영’이 윤회의 고리를 돌며 생겨난 업(業)이다. 무극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해서 그저 나를 방해하려고만 하는 놈이었다.
업이 말했다.
놈은 그 말을 하면서 내가 좌절하는 표정을 보고싶은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담담하게 응시했다. 어차피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업’은 재미가 없어진 모양인지 얼굴을 홱 돌렸다.
[ 그래, 유천영은 그런 인간이다.하지만 나는 이번에는 네놈이 영겁의 세계에서 탈출하는 걸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네놈이 겪을 지옥이란 게 정말로 기대가 되어서 말이지…]
내공이 없다.
그것 하나만으로 내가 강호무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설령 팔왕에게 살해당한다고 할지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보고 죽을 테니까. 그 정도로 절망할 거면 영겁의 세월을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업’이 독백했다.
[ 너는 순(巡)을 알고 있는가?아마 모르겠지… 너무나 머나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는 어째서 그토록 거대한 기술을 쓸 수 있었을까…]
” ……”
[ 앞으로… 나는 네가 보리수 나무에 도달하기 전까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너는 그때가 되어서야 절망할 것이리라.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사라졌다.
나는 ‘업’의 말을 믿지 않았다. ‘세계’라는 단위에서 나라는 존재는 극히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보리수나무같은 피안에 도달할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천년검로는 생사의 갈망을 회피하는 초월의 경지가 아니니까.
우드득
어깨가 풀린다. 이제 상반신도 그럭저럭 움직여진다. 나는 이제 곧 걸음을 움직여서 제대로 전신을 움직일 생각에 몸이 떨렸다. 이 시간을 그동안 얼마나 간절히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정말로 기나긴 시간이었다.
약 몇 시간 후, 드디어 나는 한 걸음을 자연스럽게 내딛었다.
턱 하는 소리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 감동스럽지도 않았다. 생각한 것보다 감정이 메말라 버려서, 기천년 동안 기다린 일이라고 해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진 못하는 것이다. 나는 무미건조하게 다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자연스럽게 움직여 진다. 나는 몸이 뜻대로 움직여지는 걸 확인하자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까지는 너무나 할 일이 많아서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도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 여기서 몸을 움직여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내 몸이 움직여진다는 것은 – 극소시간대로 진입해 있는 이 영겁의 시간도 머지않아 풀리게 된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원래 시간대로 돌아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내공이 없는 지금, 내 몸은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결국 하은천의 자비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바로 사라져서 은둔해 버린다면 하은천이고 팔왕이고 종남파고 나를 찾지 못할 것이다. 말 그대로 찰나간에 사라져 버린 걸로 보일 테니까. 나는 외딴 곳에 은둔해서 다시 나만의 수련을 반복하면 된다.
” 그래. 떠나야겠다.”
팔왕과의 대결은, 언제가 될지가 모르지만 미루어 둔다. 우선은 공력을 다시 쌓으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족히 백여 년도 넘게 걸리겠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시간놀음은 나유타영겁을 지나면서 질리도록 했기 때문이다.
나는 걸음을 옮겨서 떠나기 시작했다.
팔왕도, 내 제자도, 종남파 사람들도 하나씩 멀어지면서 산야(山野)로 묻히기 시작했다.
아직도 영겁의 여파가 남아 있어서 한 걸음이 무거운 편이지만 이 정도면 그럭저럭 움직일 수 있는 편이다.
‘ 그러고보니 권강한이… 사천당문으로 찾아오면 팔왕 1위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고 했었지.’
하지만 안 갈 것이다.
강호와 더 연결되는 건 이제 위험하다. 다시 힘을 기를 때까지는 조용히 숨어서 내 갈 길을 가는 편이 현명하다. 권강한이나 연화가 다시 나를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나중 문제. 일단은 떠나는 게 우선이다.
저벅
저벅
나는 문득 뒤를 돌아 보았을 때 깜짝 놀랐다.
” 아니?!”
이상하다.
나는 분명히 저 자리를 떠나 있는데, [유천영]은 그대로 죽어있는 채로 멈춰 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나는 혹시나 해서 내 몸을 더듬어 보았지만 역시 실존하는 육신과 같았다. 혹시나 해서 하은천이나 팔왕의 몸을 건드려 보았지만 역시 만져지기도 했고 움직여졌다. 내 몸이 유령이나 영체화된 건 아닌 듯 했다.
‘ 무슨 일이지?’
잠깐이지만 시공간이 겹쳐서 내 모습이 남아있는 거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렇게 따지면 마치 얼룩처럼 수백 개도 넘는 잔영이 생겨있어야 한다. 떡하니 한 개의 몸뚱이만 저 자리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유천영]의 몸을 만져 보았다.
그리고 다시 내 얼굴을 만져 보았다.
” 아.”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세계에 환생해서 받은 [유천영]의 몸은 죽었다.
지금 내가 지니고 있으며 움직일 수 있는 몸은 – 원래세계의 ‘나’인 것이다.
환생하기 이전의 나 자신의 육체로,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