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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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太王)
망량은 잠시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 이해를 할 수 없군!”
” 뭐가 말이오?”
” 그대같은 인물이 조그마한 주루의 하급무사로 지내서 대체 뭐가 남는단 말인가? 내공도 안 쌓이는 기묘한 체질을 고쳐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허송세월을 보낼 생각이냐.”
불끈
망량이 다시금 자신의 주먹을 거세게 말아 쥐었다. 분노 대신에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영락을 통해서 읽혀들어오는 감정은 분명히 그랬다. 아마도 그는 내가 불운한 사고 때문에 내공을 잃은 검객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 검객이 있을 자리는 언제나 자신이 정하는 법.”
그리고는 망량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말을 이었다.
” 망량. 그대는 어째서 무공을 수련하기 시작했소?”
” 뭐?”
망량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무승들도 술렁였다. 그도 그럴것이 평생을 무술에 바쳐 온 무술인들이 듣기에는 너무나 당연하고 어이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물고기보고 너는 어째서 물에 사느냐 라고 질문한 것과 같은 셈이었다.
망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 선문답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싸울아비로 살아가기를 선택했고, 그래서 내게 주어진 길을 최선을 다해 연마하며 살아간다. 이외의 대답은 없다.”
” 그대다운 대답이구려.”
영락(靈洛)으로 읽힌 망량의 인간성과 일치했다. 그는 성급하긴 하지만 자기자신에게 솔직하고 대범한 인물이다. 선문답을 싫어한다고 일부러 밝힌 이유는, 어설프게 내게 가르침 당하는 일을 피하고 싶다는 자존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 난 강해지고 싶어서 무공을 수련하기 시작했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처음에 이계진입자로서 살고 있을 때, 무공은 단순히 강해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마법이나 초능력과 마찬가지로 그저 생존을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내가 무감정하게 초식을 반복수련했던 초반부의 근성에는 생존본능이 함께 했던 것이다.
망량이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남자라면 마땅히 스스로 강해져야 하는 법(男兒當自强).”
” 맞소. 무일푼에 몸뚱이 하나로 내던져져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결국에는 [강한] 무언가를 지향할 수밖에 없소. 강함 이외의 모든 것은 임기응변이고 거짓이며 착각이고 도피라고 생각하게 되는 법이지. 마침내 나약함을 배제하고 자신의 힘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할 거라고 기대하면서.”
” … 아니란 말인가?”
망량이 의혹섞인 얼굴로 반문했다.
내가 말한 ‘남자의 길’은 대부분의 무림인들이 지니고 있는 생각이다. 무림인이 아니더라도,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남자가 살아가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 망량. 그대도 살아오면서 깨달았으리라 생각하오.
인간은, 무슨 일을 시작하든 고독(孤獨)이라는 강을 우선 건너지 않으면 안 되오.
고독을 스치기 전에 토해낸 언어는 모두 넋두리나 주절거림에 불과하오. 그 강을 건너지 않고 아무리 거창한 말을 입에 담든, 무슨 대단한 짓거리를 해도 어린애 장난이오.”
망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 또한 만만한 인생을 살아오진 않았다.
” 맞는 말이다.”
”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싫다는 가치 평가… 그런건 필요 없소. 싫어도 해야만 하오. 건너편 기슭을 노려보며 단숨에 몸을 날리는 수밖에. 강물에서 온몸으로 몸부림치게 될 것이고, 실로 멋대가리가 없어서 강기슭에서 바라보는 인간들은 조소를 할 것이오.”
” ……”
” 그런건 내버려두면 그만이오. 건너편 기슭에 도달하고서 그들에게 웃음으로 되돌려주면 되는 법이오.”
순간 망량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내 말에 숨겨져 있는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 설마? 그대는 아직도 무(武)의 궁극(窮極)에 초심(初心)으로 도전하고 있는 중이란 말인가?”
” 언제나 그렇게 살아오고 있소.”
” 하, 하하…”
강기슭의 인간.
이미 초월지경(超越之境)에 도달해 있는 존재들. 나는 수백 수천년 이상 그들을 올려보기만 했고, 지금도 올려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내가 그들을 뛰어넘고 궁극에 도달할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그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망량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얼굴은 시뻘개져 있었다.
” 크하하! 무형검(無形劍)은 무신(武神) 혁월린조차 이론의 영역이라고 한 경지인데… 거기에 도달한 명인(名人)이 이토록 자신을 낮출 줄이야…!!”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 탓이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혜정대사가 염주를 굴리면서 나직이 불호를 외웠다.
” 아미타불.”
” … 흥! 아무래도 내가 정말 큰 무례를 범한 모양이군. 이거 실례했다, 망량.”
꾸벅
순간 망량이 구십 도로 내게 머리를 숙였다. 개방방주나 소림사 장문인, 혹은 십이율주 하은천 앞에서도 고개가 빳빳했던 망량이다. 다들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전에 없던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꾸욱 하고 말아쥐었다.
” 앞으로 중원에서 망량이라는 이름은 쓰지 않겠다.
나는 그저 한 명의 싸울아비일 뿐이다.
그리고 내 목숨을 걸고 그대와 무(武)을 겨루고 싶다!”
” 좋소.”
나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혜정대사가 깜짝 놀랐다.
” 아… 아무리 무형검이라 하지만, 그대가 전력을 다하는 건 공평치 못하오! 내공이 없는 자를 상대로 이 무슨 만행을.”
” 하수(下手)는 닥치고 있어!”
” ……”
그는 순식간에 폭언을 쏟아내었다. 이미 외교관계는 성립되었다고 하지만 소림사 방장에게 하수라고 모욕을 할 수 있다니, 그의 배짱을 알 만 했다. 혜정 대사가 황당해하고 있을 때 그가 자세를 잡았다.
” 한 수 부탁한다.”
” 그 전에 한 가지…”
” 뭐냐?”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 이젠 내가 망량이고, 그대는 망량이 아니오. 그럼 나는 그대를 뭐라 부르면 좋소?”
” 그것도 그렇군.”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말했다.
” 도편수(都邊首)라고 해라.”
도편수는 미장이 우두머리의 직함을 부르는 말이다. 그는 이름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존재인 듯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자칭 ‘도편수’는 아까와는 달리 제대로 기수식을 잡으며 말했다.
” 너희 중원인들은 빗장 걸치기를 백팔유령환(百八幽靈幻)이라고 부른다지? 싸울아비 전승무예 이십팔수(二十八獸) 모두를 지금 보여주겠다!”
투웅
싸울아비의 수장, 도편수는 잔공음을 남긴 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실상은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공기의 벽을 몇 번이나 뚫어버린 상황이었다. 일반인의 육체능력으로는 감지도 대항도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내 마음의 검은 이미 그만큼이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쉬칵, 하는 얇고 예리한 소리가 측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십이율 문주 도편수가 초음속 이상으로 움직이면서 가볍게 권영(拳影)을 뿌린 것이다. 하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했는지 내 검계(劍界)에 가로막히자 뒤로 물러섰다.
그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듯 씨익 웃었다.
이십팔수
구두(九頭)
우룡철진(右龍鐵進)
대기가 크게 울렸다. 빛의 광채가 여러 겹 도편수의 오른팔에 감싸이더니 이윽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차크람 여러 개를 팔에 얽어맨 듯한 형상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대더니, 변화없이 찔러오는 정권(正拳)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단순한 만큼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내 마음의 속도는 그의 초식전개속도를 충분히 따라가고도 남았지만, 정권에 담겨있는 파괴력이 결코 팔왕(八王) 금포염왕의 문무쌍극패에 못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꾸우웅!!
검의 궤적이 직각으로 맞부딪혔지만 우룡철진의 파괴력을 완전히 상쇄하진 못했다. 만일에 내공이 있었다면 충분히 눌러버리고도 남았겠지만, 검력(劍力)만으로 상대하다보니 힘이 딸리는 것이다. 나는 별 수 없이 삼 장의 거리를 훨훨 날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벽에 부딪혀서 쿵하는 소리가 났지만 나는 별 무리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혈관이 약간 터졌는지 입에서 철냄새가 났다. 나는 가볍게 피가래를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 이 무예는 좌반신과 우반신을 선공과 후공으로 나누는 듯 싶군. 완성되면 선인(仙人)조차 즉살시킬 수 있는 위력인가… 과연 십이율 문주답소.”
정말 두려운 건 단발의 위력 뿐만이 아니라 이어지는 연계기도 뛰어날 거란 사실이다. 마음만 먹으면 방금같은 위력의 절기를 6연속 이상으로 속사포처럼 쏟아낼 수도 있을테니, 순간화력만큼은 경세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 하하! 거기까지 내다보았나! 과연 엄청난 안목이군.”
십이율 싸울아비 문주, 도편수는 호탕하게 웃었다.
” 맞다. 절기 이십팔수의 또 다른 이름은 구두룡(九頭龍). 내 재질이 부족해서 아직 다 익히지는 못했지만, 완성시키면 그 재수없는 천포무장류 놈과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무공이다.”
위협적이다.
세상에 이름을 날리지 않았을 뿐, 도편수의 실력은 팔왕에 못지 않다. 나머지 십이율 문주들도 도편수급의 실력이라면 중원무림은 결코 동방무림의 실력자들을 당해낼 수 없으리라. 겨우 열두 명이 모여서 십이혈마대와 북천을 패배시켰다면 익히 예상할 수 있었다.
파앗
” 망량! 나는 방심같은 건 안 한다. 비겁한 수를 쓰더라도 이 대결은 내가 이기고 말겠다!!”
크게 외친 도편수의 신형(身形)이 갑자기 분열되었다.
아지랑이처럼 전신이 일렁이더니, 잔영이 저절로 움직이면서 내 앞으로 폭사해 왔다. 무형검의 검로에 따라서 빠르게 쳐내긴 했지만 반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압력이 덮쳐오고 있었다. 도편수의 움직임이 갈수록 빨라지더니, 종래에는 수십 개나 되는 분신이 장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켜보던 승려들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 부, 분신?!”
” 이렇게 많이 구현시키는 건 인간으로서 불가능…!!”
보통 강호무림에서 분신을 만들 정도로 신법이 빠르다면 이미 절정고수다. 분신체를 2분신이나 3분신 이상으로 늘린다면 보통 무림인이 평생 가도 보기 힘들 정도의 고수이며, 사분신쯤 되면 무림 어디를 가도 꿀리지 않는 실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도 그럴것이 동일한 위력의 절초가 서너 개 씩이나 덮쳐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도편수가 펼쳐낸 건 급(級)이 달랐다.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농밀한 밀도를 지닌 영분신(影分身)이 삽시간에 사십팔 개를 넘어가더니, 지금은 무려 칠십 이 개나 되어 있었다. 더욱이 멈춰있지도 않고 시시각각 진법이라도 펼쳐내듯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강호 어떤 무림인도 이런 초고속 분신술이 가능하다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도 분신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이미 진짜 도편수가 어디에 있는지는 쉽게 구분조차도 할 수 없었다.
관전하고 있던 소림사 장문인, 혜정대사가 침음성을 흘렸다.
” … 개방 방주와 청의단, 십대장로들을 일 수(一手)에 제압했다고 할 때 믿지 않았거늘… 이게 백팔유령환인가…”
쉬쉬쉬쉭
마치 빛이 흐름을 타고 흐르는 듯 했다. 나는 검계를 안정시키면서 마음의 속도를 계속해서 가속시키며, 궁기류 무상(無常)을 이따금 발현해서 분신들의 견제를 쳐 내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나와 도편수는 벌써 수백 초 이상을 교환한 상태였다.
내가 흔들리지 않고 버티자 도편수가 육합전성을 보내 왔다.
[ 백팔환(百八幻)이 되는 순간 승부를 보겠다! 구두룡에 일백 개가 넘는 각각의 필살기(必殺技)를 받아보아라, 망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