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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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겁혈신(天劫血神)
눈(雪)이 흐른다.
뒤뚱거리는 어둠의 빛 사이로 창날같은 열기가 공존하고 있다.
[ 노사부가 내합을 이루라고 한 것은,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경지를 쫓지 말고 검결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는 기반부터 쌓으라는 것이었다.단순한 이치다.]
육합(六合)이 보였다.
나 자신을 거울처럼 비춰내며 돌진해 오는 무상검(無常劍)의 힘 때문이었다.
고오오오 –
진눈깨비인지 함박눈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광류(光流)가 찰나간에 내가 서 있던 자리를 은하수처럼 스쳐지나갔다. 흑백으로 칠해진 세계에서 음(陰)과 양(陽)이 천상(天上)과 천하(天下)로 나뉘고, 이내 천하(天河)가 되어가고 있었다.
‘ 아름답다…’
검신무 무상검극에 명치를 후벼져서 입에서 피를 토해내면서도 나는 그 영롱한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실로 천 년(千年)의 풍상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천지해풍운우(天地海風雲雨)에서 후반의 풍운우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이다. 바람은 대기가 움직이기 때문에 생기고, 구름은 물이 뭉쳐서 생기며, 비는 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다.땅(地)의 경우에는 좀 더 확실하다. 그것 또한 실존하는 검결은 아니지만, 나 자신이 원영신을 이루면서 천지간을 이루는 중심이 된 적이 있기 때문에 유사한 것을 체득한 것에 불과하다.]
키잉 – !
기억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서 나는 소름끼치는 역광(逆光)이 내 검(劍)의 끝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 반면에 하늘, 바다라는 것은 현상이 아니다.그저 그 자체로 있을 뿐이다.
어디에도 속하거나 움직이지 않는 자연 그 자체를 포용하는 검결이란 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강호의 문파들이 함부로 무공에 천(天)이니 해(海)니 붙이지만 경박한 짓이다. 그 움직임이 유사하다고 해서 무공을 만든 자들이 연상을 했을 뿐이다.]
역광이란 – 본디 인간을 등지고 나오는 것. 스쳐왔던 세월의 뒤편에서 형태를 알 수 없는 광기(狂氣)가 미친듯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이윽고 나는 내가 펼치고 있던 무형검(無形劍)이 완전히 실체조차 잃어버리고, 공기 중에 흩어져버리는 일을 경험했다.
[ 그거야말로 검의 본질을 망각하는 짓이 아닌가?]비웃음과 천 년의 자조가 살갗을 저민다.
스스스 –
[ 내가 추구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를 담는 것이다.검이 아무리 구름처럼 검기를 뿌린다고 해도 구름 그자체가 될 수는 없는 노릇.
마찬가지로 내가 아무리 뜻을 담으려고 노력해도 하늘이나 바다를 담아낼 수는 없다.]
그렇다.
그렇다.
바로 그것 때문에 –
합일(合一) 이후에도 무려 수백여 년 이상의 세월을 정체(停滯)하며 뼈와 살을 분지르는 고통을 겪어왔던 것이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고, 할 수 없는 것도 모두 했다. 어디에도 적이 없었지만 오로지 자기자신의 길(道)만이 적수로 존재하는 고독한 길을 수백 년 동안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인간이 자연(自然)이 될 수는 없다.
비유하지 마라.
직유하지 마라.
은유하지 마라.
환유하지 마라.
인간은 – 인간일 뿐이다.
그걸 부정해버리면, 끝까지 정점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에게 인간의 한계가 있는 것은 인정해야 하며 – 기(氣)는 편리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의(意) 조차도 세계를 읽어들이는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
천의무봉이나 백식관음, 천무보륜에 멈춰있던 자들은 그 사실을 망각했던 것이겠지.
[ 결국 해답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人間)이자 비인간(非人間)이 되는 것 뿐이었다.천지의 가운데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니 – 이 어찌 틀렸다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랐으나 내가 선택한 ‘초월(超越)’의 방법은 시간을 먼저 지배하에 두는 것이었다.]
…. 그렇다.
다음 무혼(武魂)의 제 오 단계 – 수십억 번을 노력했어도 도달하지 못했던, 지옥(地獄) 그 자체였던 팔만사천(八萬四千)에 도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총 십 단계에 이르는 무혼십절(武魂十絶)의 기초를 떼기 위한 기본(基本).
바로 그것이 인간비인간인(人間非人間人).
영겁(永劫)의 람(籃)이다.
‘ 모은다!’
파앙!!
영겁의 람이 발동한 순간 전신에 새겨져 있던 세포의 기억이 하수구에 빨려들듯, 무상검의 검극에 도달했다. 실질적으로는 영겁에 가까운 세월동안에 통합기공 진(眞) 육합귀진신공(六合歸盡神功)의 힘이 하나의 점(点)에 수렴하는 현상이었다.
본디 나는 이 방법을 생각지도 않고 있었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는 게 옳은 말일 것이다. 6개의 신공이 혼원의 단계를 지나서 합일에 도달한 상태에서는 자연 그 자체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셈이었기에 굳이 집중하거나 해산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도(道)를 해친다고 생각했다.
무형검이라는 최강의 공격수단이 있었기에 방어력은 더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나는 그 단계에서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오만일 뿐이었다.
자연의 힘을 무한정 끌어다 쓴다고?
신선지경이라고?
절반은 이미 신선이라고?
대체 거기서 만족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나와 천재들의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아직 증명하지 못했다.
정점은 아직도 멀다.
그리고 천년검로(千年劍路)는 더욱 멀다.
삶이란 언제나 –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잃는 한이 있어도 계속해서 달려나가야 하는 것이다!
쿠지지지직
무언가가 부숴지는 소리가 내 명치께에서 울려퍼졌다.
어느 새 땅의 끝을 볼 셈으로 내 몸을 지하(地下)로 내려꽂고 있던 무상검 검신무의 맹진(猛進)이 멈춰 있었다. 떨림은 멎어 있었고, 피투성이가 된 내 몸의 정면에는 딱 한 사람이 들기 족한 장검이 떠올라 있었다.
파지지직!
어두운 지하토굴에서도 무상검의 빛은 영문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맑고 영롱했다.
그리고 검극에서는 연신 무시무시한 기세로 빛의 충돌이 반복되고 있었다.
일 초에도 수백 수천 번이나 튀기면서 번득이는 것은 무상(無常)의 의념(意念)이 한 점에 집중된 내 힘을 쉽사리 뚫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전신의 혈관이 터져서 말을 못할 지경이었지만 힘겹게 손을 뻗어서 중얼거렸다.
” 포기하지 않는다.”
촥
무상검의 검신(劍身)을 잡자 손가락 두 개가 숭덩 하고 베여서 날아갔다. 나는 잠시 주춤하다가 마저 장저를 뻗어 꽉하고 검을 붙잡았다. 요동치는 무한(無限)의 의지가 시공간을 격해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알 수 있다.
막연히 신명락으로 읽어들였던 유검의 강함 – 그것은 터무니없는 수준이었다는 걸 온 몸으로 체감하게 된 것이다. 가히 우주적(宇宙的)인 역량 앞에서 끝까지 맞서싸운 하은천과 동료들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 … 죽을지도…’
피가 너무 많이 흐른다.
비인간적인 몸뚱이에 과다출혈이라는 게 느껴지자 신선한 기분이 든다. 과연 초월자를 살해하는 무상검다웠다. 이 검이라면 대라신선이라도 일 검에 꿰어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공격력에 나는 웃음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대단하네. 모든 걸 포기하면서도 막아버리다니…내가 싸웠던 그 어떤 자도 그런 방법으로 무상검을 막지는 못했어.]
이건…?
나는 찰나지간에 이 목소리의 정체를 깨달았다.
유검이다.
육신은 죽어서 더 이상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이미 우주적인 강함을 지닌 초월자인 유검의 영혼은 불멸(不滅)이다. 아마도 자신의 절기가 발현되는 틈을 타서 이 곳에 의지만 내려보낸 것이리라.
그래서, 형태만 빌린 절기가 아니라 이번 공격은 진짜 유검의 일격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크크큭… 천 년을 넘는 극고의 수양을 한 순간에 버릴 각오라니. 미쳤구만.]뭔가 씁쓸하게 웃던 유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윤회(輪回)의 축(軸)이여. 더 이상 너를 시험할 필요는 없을 듯 하군.네게는 언제든지 그 태왕(太王), 아니 검황(劍皇) 흑태자(黑太子)에게 도전할 권리가 있다. 조만간 재밌는 광경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
검황 흑태자.
나는 속으로 그 이름을 되뇌었다.
어쩐지 유검이 가르쳐 준 그의 진명(眞名)이 언젠가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잠시 침묵하던 나는 나직이 대답했다.
” 거기는…”
[ 응?]콰곽!!
손에 힘을 주자, 무상검의 검신이 처참하게 부러졌다.
명백히 내 힘이 무상검의 권능을 뛰어넘었다는 증거였으므로 유검은 한동안 놀랐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한쪽 손이 완전히 엉망이 된 상태에서도 말을 이었다.
” 거쳐갈 뿐이다.”
유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는 검신무 무상검이 완전히 해제되자 조용히 정좌하고 앉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역량이 보존된 것을 확인하자 짧게 콧숨을 쉬었다.
” 흠.”
무혼 제 4단계.
영겁의 람.
그 실체란 바로, 지금까지 모으고 다루었던 모든 기(氣)와 의(意), 실로 반선지경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한 가닥의 영로(靈路)로 압축시키는 것이다. 본래는 다루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로 거대한 힘이지만, 내가 그 힘에 익숙해졌기에 압축시키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검신무를 막아낸 것도 내 천여 년의 역량을 한 점에 결집시켰기 때문이었다.
만일에 막아내지 못했다면 그대로 모든 적공(積功)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내공 하나 없는 진짜 일반인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자연의 이치를 다스리는 상단전의 묘용으로 회복조차도 먹히지 않는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 도박이었다.
압축된 영로 한 가닥은, 현재 내 단전의 심처에 고요히 가라앉아있다.
이것을 계속해서 쌓아서 – 수만 가닥을 뭉쳐서 다시 하나의 구체로 만든다.
그 구체를 다시 모아서 전신에 분포시킨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보면, 내 몸은 살아서 움직이는 축퇴로(縮退爐)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의(意)를 발휘해서 부상을 조용히 치료하기 시작했다.
‘ 다 나으려면 한 식경 정도인가…’
바깥의 상황이 궁금하지만 조금 기다려야 한다.
나는 앞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가시밭길을 생각하며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조절했다.
일만 년이라도 좋다.
길이 보였는데 그깟 세월이 대수인가?
내 가슴속에는 절망 대신에 두근거림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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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모두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