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10)
먼치킨 길들이기 110화
* * *
“뭐 해! 어서 움직여!”
케이릴이 매섭게 소리치자 지쳐서 앉아 있던 막내 길드원이 고성을 내지르며 대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마물의 허리를 노린 그의 공격은 연기를 벤 것처럼 어떠한 타격도 입히지 못하고 지나칠 뿐이었다.
케이릴은 욕지기를 내뱉으며 마물의 머리에 오러를 입힌 단검을 꽂았다.
“키이이익!”
마물이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이 멍청한 새끼야! 가만 서 있다가 죽고 싶어?”
“헉, 허억. 죄송합니다.”
케이릴의 노성에 막내가 헉헉거리며 사과했다. 상태를 보아하니 막내는 더 이상 오러를 내지 못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플로어 마스터를 제일 먼저 잡아야 하는 경쟁 때문에 줄곧 무리를 해 온 탓이었다.
‘이쯤 해서 정비를 하고 가야 하나.’
플로어 마스터를 잡으려면 속도를 내야 하겠지만, 어차피 세라핌이나 가디언도 에렉시나와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때였다. 층에 있는 마물들을 다 잡기도 전에 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 잡지 못한 마물들이 남아 있는데?’
좋지 않은 예감이다. 괴성을 지르는 마물의 목을 베어 내며 케이릴이 무작정 문으로 뛰어 들어갔다.
‘……!’
플로어 마스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 케이릴은 이를 으득, 악물었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이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기다리다 지루해서 졸 뻔했네.”
에이얀이 하품을 하며 느릿하게 말했다.
‘이렇게 빨리 처리했다고? 저것들을 전부? 아니, 플로어 마스터까지?’
그 순간, 허공에 불이 화르륵 타올라 탑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7. 에이얀 크로츠 : 990,190점] [‘에이얀 크로츠’에 의해 7층 개방 완료.]7층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리고 있었다.
무속성 마물들을 전부 상대했음에도 흑야는 전혀 지치지 않은 기색이었다. 그들은 다른 정비도 필요하지 않다는 듯, 소진된 마력을 재충전하기 위해 쉬고 있는 다른 길드들을 내버려 둔 채 7층으로 향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차오르는 분노에 어깨가 떨릴 정도였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아닌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따라잡아야 해!’
그러나 7층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방전된 체력을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지금까지 체력과 마력을 소진했던 길드들은 속속들이 백기를 들어 올리기 바빴다.
남은 이들은 에렉시나와 세라핌, 가디언, 그리고 흑야.
어느새 흑야는 모두 20위권 안으로 안착해 있었다.
[1. 에이얀 크로츠: 1,996,111점2. 케이릴 혼: 1,000,502점
3. 크샨 로우: 900,049점]
게다가 에이얀이 6층부터 줄곧 플로어 마스터를 독식하는 바람에 1위인 에이얀과 2위인 케이릴의 점수 차이는 점점 더 극명해지고 있었다.
“또라고?”
에이얀이 상층을 개방시켰다는 탑의 메시지를 확인한 누군가가 탄식과 감탄 어린 목소리를 토해 냈다.
6층부터 쇄도하기 시작한 흑야의 길드원들은 지친 다른 길드원들을 제치고 상위권을 점령했다.
이제는 어떤 요행이나 우연이 아니란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5층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한껏 들떠 있던 에렉시나의 분위기는 바닥을 친 지 오래였다.
이제 남은 건 9층 공략뿐.
9층에서 격차를 완전히 뒤엎지 않으면 그들에게 기회는 남아 있지 않았다.
각자 머릿속을 여러 생각으로 가득 채운 상태로 9층에 도달했다.
마지막으로 공략할 곳.
9층은 어떤 구역으로도 나뉘어 있지 않은 1층의 로비와 같은 상태였다.
그저 플로어 마스터에게로 이어지는 듯한 문 하나가 서 있을 뿐.
“여기까지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관리자 프로스트는 9층의 플로어 마스터를 공략한 후에 이 문밖으로 다시 나와 합산 점수로 우승자를 가리겠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무쪼록 마지막까지 건투를 빕니다.”
프로스트의 말을 들으며 에렉시나, 세라핌과 가디언, 그리고 흑야가 문 안으로 들어섰다.
곧 건조한 모래바람이 들이닥쳤다.
“사막?”
9층 플로어 마스터의 방은 푸른 하늘과 황량한 모래로 가득했다.
“저, 저기!”
누군가가 정면을 가리켰다.
멀찍이 모래 둔덕 위에서, 장신의 인간형 마물이 새카만 얼굴에 새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서 있었다.
로브를 뒤집어쓴 채 긴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은 한 가지를 뜻했다.
“제기랄, 마법사형인가…….”
마법형 마물은 무척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입이었다.
각자 노련한 길드의 일원들이었으므로 주술사들은 먼저 마법 구현을 위해 캐스팅을 시작했다. 마법 공격에 대비해 방어 결계를 치기 위함이었다.
그때 플로어 마스터가 긴 지팡이를 든 팔을 들어 올리자, 모래 아래에서 거대한 갑옷들 십여 개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갑옷의 기사들은 자신들이 쥐고 있는 검에 검은 오러를 불어넣었다.
“공허한 흑기사?”
“최상급 던전에서도 보기 힘든 공허한 흑기사가 이렇게나 많이…….”
게다가 공허한 흑기사를 조종하는 마법형 마물까지.
순식간에 분위기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연이어 속도전을 치르고 온 터라 최상의 컨디션도 아닌 상태였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긴장한 기색으로 무기를 쥐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고운 모래는 그들의 움직임을 더욱 방해하는 중이었다.
하나 오랜만에 모래 냄새를 맡은 크샨들은 즐거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모래바람은 오랜만이네요, 수장.”
“고향에 온 기분이 듭니다.”
크샨들이 들뜬 어조로 떠들었다.
이에 다른 길드들이 입을 벌렸다. 공허한 흑기사단을 앞두고 긴장감 하나 없는 태도라니. 머리 어딘가가 고장 난 게 아닌가?
그 순간, 로우가 검에 오러를 입히는 것에 따라 뒤에 도열한 크샨들의 검에도 오러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들은 지치지도 않는 괴물들인가?
‘웃고 있어?’
게다가 모두 웃는 채였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때마침 공격을 시작하려는 듯, 마법사형의 마수가 재차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에 따라 공허한 흑기사들이 엄청난 스피드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제일 먼저 세라핌에서 공허한 흑기사의 대검을 막기 위해 두어 명이 달라붙어 검을 맞부딪쳤다.
챙!
그에 반해 손쉽게 공허한 흑기사의 검을 홀로 받아 낸 로우가 크샨들에게 눈짓했다.
크샨들이 한꺼번에 움직이자 공허한 흑기사의 몸체에서 고슴도치처럼 뾰족한 검날이 솟아올라 그들을 위협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거리를 둔 크샨들은 다시 몸체로 쏘아져 들어갔다.
이내 그들이 몸체를 가르고 텅 빈 갑옷 속에서 핵을 찾아내 검을 꽂았다.
‘벌써 해치웠어!’
빠른 공략에 놀라기가 무섭게 크샨들은 다른 공허한 흑기사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 움직였다.
그렇게 공허한 흑기사들의 공격을 막고 있는 사이였다.
플로어 마스터가 캐스팅을 마쳤는지 하늘에서 쿠르릉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메테오였다.
방어 결계를 치고 있던 주술사들이 긴장하며 마력을 끌어 올리는데, 에이얀이 가볍게 거대한 삼중 방어 결계를 펼쳤다.
메테오가 삼중 방어 결계 위로 투두둑 떨어지며 소멸했다. 이를 보던 한 주술사는 허탈하다는 듯이 한숨처럼 말했다.
“이런 미친 사기가 어디 있어…….”
삼중 방어 결계라는 마법으로 단숨에 플로어 마스터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가디언과 세라핌은 이제 무기를 쥔 채 그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기만 했다.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깔끔하게 승복한 것이다.
“정말 흑야가 돌아온 거였어.”
세라핌의 누군가가 말하자 ‘흑야다.’, ‘진짜 흑야야.’라는 웅성거림이 점점 힘을 얻기 시작했다.
길드에 몸담고 있는 이상 흑야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 터였다. 그 이름을 읊조리는 이들에게선 흑야에 대한 경외가 느껴졌다.
그들은 길드명 따위가 아니라 정말 실력으로 자신들이 흑야임을 증명했으니까.
‘정말 흑야란 말이야?’
케이릴이 공허한 흑기사의 핵에 꽂아 넣었던 검을 쥐며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그들이 흑야든 뭐든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플로어 마스터를 잡아야 한다.
‘마법사형은 근접 공격에 약해.’
공허한 흑기사는 저놈들에게 맡겨 두고 일단 품으로 파고들기만 하면 기회는 있다!
펑! 펑! 퍼벙! 펑!
삼중 방어 결계에 또 한 번 폭발 마법이 가로막혔다.
케이릴은 몸을 숙인 채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주 능력은 은신. 기척을 죽인 채 캐스팅을 하고 있는 플로어 마스터 뒤로 다가갔다.
그러나 인기척을 느꼈는지, 플로어 마스터가 눈 깜빡할 사이에 케이릴의 뒤로 몸을 옮겼다.
‘……!’
제 바로 뒤에서 짧은 캐스팅 소리가 들려오자 케이릴은 잽싸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곧장 단검을 휘둘렀다.
‘됐다!’
그가 희열에 찬 웃음을 머금었다.
이번 플로어 마스터를 잡으면 상황은 뒤집어질 터.
그러나 검에 닿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플로어 마스터의 머리에 손을 댄 에이얀의 신형이 케이릴의 동공에 맺혔다.
에이얀의 새하얀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퍽!
곧 파열음 소리가 들리고, 에이얀이 손을 놓자 플로어 마스터의 몸이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케이릴은 빠르게 뒤를 확인했다. 길드원들을 지키는 삼중 방어 결계는 아직 그대로였다.
“넌, 너는…… 분명 결계를 치고 있었잖아!”
그냥 결계도 아닌 삼중 결계였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다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제 눈앞의 소년은 아주 간단한 일인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냈다.
[‘에이얀 크로츠’에 의해 10층 개방 완료.]멀리서 선망과 경외의 시선이 에이얀을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 전부 끝이라고?’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는 케이릴의 눈앞에 10층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생성되는 중이었다.
그가 돌아서는 에이얀에게로 손을 뻗었다.